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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심정섭 지도위원 제79차 자료 기증, 임정 요인 조경한 선생의 귀중한 자료도 포함

2024년 12월 30일 83

[기증자료] 심정섭 지도위원 제79차 자료 기증, 임정 요인 조경한 선생의 귀중한 자료도 포함 지난 12월 10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이 제79차 소장자료를 기증하였다. 이번에는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 관계 자료가 많아 연구소 조세열 상임이사를 비롯하여 자료실, 학예실, 기획실 책임자들이 광주의 자택을 방문하여 직접 수령하였다. 주요 자료는 심정섭 지도위원의 외조부인 백강 조경한 선생의 ‘임시정부선전위원회 위원 선임통지서’, ‘임시정부국무위원 당선통지서’와 서간, 유묵 등이다. 이와 함께 임시정부 주요 인물들의 사진과 유묵, 도서, 친일파의 유묵 등 총 111점을 기증하였다. 심정섭 지도위원의 자료 기증은 제80차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에 자료를 선별하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기증자료 특별전시를 계획 중이다. • 강동민 자료실장

동지冬至에 만난 동지同志들

2024년 12월 30일 448

[후원회원마당] 동지冬至에 만난 동지同志들 – 남태령 대첩의 빛나는 밤 – 김수빈 후원회원 저녁 8시. 우린 명동에서 남태령으로 가는 4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12월 21일, 동지(冬至)였다. 이날은 나와 내 친구가 함께 시위를 3탕 뛴 날이었다. 오전 11시 대통령 관저 앞 시위, 오후 3시 광화문, 그리고 저녁 8시 이후 남태령에서의 밤샘 시위. 광화문 시위가 끝나고 다리와 목이 너무 아파 잠시 머물렀던 카페 안에서 남태령에 발이 묶인 전봉준투쟁단의 소식을 접했다. 친구가 “지금 남태령에 사람들 계속 모이고 있대. 이거 봐봐” 하며 보여준 사진에는 농민들의 트랙터와 경찰 버스가 어둠 속에서 대치하고 있고, 그 뒤로 빛나는 야광봉 대열이 늘어선 광경이 담겨있었다. 우리는 묵묵히 짐을 다시 챙겼다. 명동에서 남태령으로 가는 4호선 안에서 ‘2024년의 우금치, 남태령’으로 와 달라는 전봉준투쟁단의 다급한 호소문을 읽었다. 1894년의 우금치, 끝내 넘을 수 없었던 그 고개가 2024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라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고 오로지 백남기 농민의 얼굴만이 떠올랐다. 딱 광화문 집회까지만 예상하고 온 터라 밤을 새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핫팩도, 보조 배터리도, 담요도 없고 물도 부족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백남기 농민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경찰의 물대포로 돌아가신 농민 백남기. 그리고 무엇보다 ‘펄펄 타오르는 젊음’이 있었다. 가서 몸으로라도 때우자. 연설문을 준비해 놓고 너무 떨려 자유발언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쫄보인 내가,

목포 고하도 무화과밭에 남아있는 ‘육지면 발상지지 기념비(1936년)’

2024년 12월 30일 81

[이 땅에 남아있는 저들의 기념물 14] 목포 고하도 무화과밭에 남아있는 ‘육지면 발상지지 기념비(1936년)’ ‘남면북양(南棉北羊)’으로 상징되는 면화증산의 식민정책이 남긴 흔적 이순우 특임연구원 농촌진흥(農村振興), 자력갱생(自力更生), 민심작흥(民心作興), 심전개발(心田開發), 산금장려(産金獎勵), 북선개척(北鮮開拓), 전작장려(田作獎勵) ……. 이러한 것들은 제6대 조선총독을 지낸 우가키 카즈시게(宇垣一成; 재임 1931.6.17~1936.8.5)의 통치시기에 그가 내세운 대표적인 금간판(金看板, motto)이다. 그리고 이 목록에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으로 ‘남면북양(南棉北羊)’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이는 면화증산(棉花增産, 면작증식)과 면양장려(緬羊獎勵)를 통해 목화와 양모의 자급자족을 꾀한 것으로, 여기에는 식민지 조선을 원료공급지(原料供給地) 그 자체로 여긴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깔려 있었다. 우가키 총독의 부임 직후 만주사변(滿洲事變, 1931년 9월 18일 발생)으로 촉발된 비상시국이 전개되었으므로, 이 와중에 불안한 대외의존도의 심화를 방지하고 위급한 원료수급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남면북양’을 산업정책의 골간으로 삼는 시기가 한동안 이어졌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매일신보』 1936년 8월 13일자에 수록된 「우가키 전 총독 5년간 치적(宇垣 前總督 五年間 治績)(5) 면작증식장려(棉作增殖獎勵) 지방자치완성(地方自治完成)」 제하의 연재기사에는 우가키 재임 시기에 추진된 면화증산의 성과를 이렇게 그려놓고 있다. [제3년(第三年, 소화 8년)] 면작장려(棉作獎勵)는 우가키 씨(宇垣氏)의 산업정책중(産業政策中) 또한 중요한 역할을 가진 것이니 소화 8년(1933년) 2월 발표된 면화증식계획(棉花增殖計劃)이 그것이다. 익(翌) 9년(1934년)에 수립한 면양증식계획(緬羊增殖計劃)과 병칭(倂稱)하여 유명한 소위(所謂) 남면북양책(南棉北羊策)이라는 것이다. 내선(內鮮)을 통(通)하여 방적업(紡績業)의 발달에 따라 면화수입은 연년(年年) 격증하여 소화 9년(1934년)에는 실(實)로 7억 3천만 원(圓)에 달하는 현상(現狀)이었으니 이의 자작자급(自作自給)을 도(圖)함은 국가적 견지로 끽긴(喫緊, 매우 긴요)한 일대사업(一大事業)이라고 착안(着眼)한 우가키

중일전쟁 시기 ‘한국청년’의 항일음악(1)

2024년 12월 30일 73

[연구소 글방 18] 중일전쟁 시기 ‘한국청년’의 항일음악(1) 이명숙 연구실장 2024년 12월 14일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까지 10여 일 이상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촛불집회에는 아이돌 응원봉과 K-pop으로 무장한 ‘청년여성’들이 대거 등장했다. 누구보다 신명나게 탄핵을 외치며 노래와 춤으로 광장을 가득 메운 이들 청년들을 보며 일제강점기 항일항쟁 어디든 존재했던 ‘청년’이 떠올랐다. 대일항쟁에서 매 순간 커다란 역할을 해냈던 청년 특히 중일전쟁 이후 항일 선전·예술 활동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냈던 청년들에 대해 써보려 한다. 그들의 활동 속에서 활용된 항일노래를 주로 다루고자 한다. 이들 청년은 스스로를 ‘한국청년’으로 명명하며 항일 역사로부터 자신들의 역할을 명백히 자각하고 있었는데, 김구 지도하에 결성된 한국국민당청년단(韓國國民黨靑年團, 1936.7. 결성)의 창립선언에 잘 표현되어 있다. “혁명은 반항이다. 투쟁이다. 그러므로 혁명은 철권(鐵拳)과 열혈(熱血)을 요구한다. 보라. 혁명의 성패가 오로지 청년에게 달렸다는 것을 호언(豪言)이라 할 수 없나니 3·1운동과 6·10운동, 광주학생운동, 그 외에 내외국의 위대한 혁명운동이 모두 이것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우리는 한국의 혁명청년이다.”라고 시작하는 창립선언 말미에 “일본제국주의를 우리의 철권으로 박멸하자! 내지(內地) 전야(戰野)로 들어가자!”라는 구호로써 ‘일제 박멸을 위한 전쟁’이 최종 목표임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선언 후 불과 1년 만인 1937년 7월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는 곧바로 군무부 관할로 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군사위원을 선임해 개전을 준비했다. ‘한국청년’들 또한 독립전쟁의 호기로 생각하며 임시정부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들 대다수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등에서 군사훈련을

군사쿠데타와 국가폭력에 저항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내려 한 의인義人들

2024년 12월 27일 188

[특집] 군사쿠데타와 국가폭력에 저항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내려 한 의인義人들 편집부 12월 3일 밤 10시 23분경 긴급 브리핑을 연 윤석열은 종북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전국 대상의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국회의사당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민주당사, 언론사 등 주요 기관에 무장 계엄군을 동원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를 통해 ①국회 및 정당의 정치활동 일체 금지, ②모든 언론과 출판의 자유 통제, ③전공의 및 의료인 불복종 시 처단, ④재판 절차나 영장 없는 일방적인 체포, 구금, 압수수색 등 전 국민의 정치적·사회적 기본권을 박탈하는 통제 조치를 공표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당은 불법 계엄령에 의한 친위 쿠데타이자 전대미문의 국헌문란 행위라 규정하고 유튜브 방송과 SNS를 통해 국회의원과 시민들에게 국회의사당에 모이도록 호소했다. 국회 정문에서 출입을 금지하는 계엄군과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당 대표와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해 12월 4일 새벽 1시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였고 오전 4시 30분 국무회의 의결로 계엄 해제를 선포함으로써 6시간 만에 완전히 종료하였다. 야당은 계엄 해제 즉시 내란 수괴인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였다. 국회는 12월 14일(토) 오후 4시 본회의를 열고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이에 따라 윤석열의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고 이제 윤석열에 대한 완전한 탄핵은 헌법재판소의 손으로 넘겨졌다. 윤석열이 국방부, 방첩사, 수방사, 특전사 등 군 수뇌부와 함께 오래전부터

대구지역위원회 총회

2024년 12월 27일 108

[초점] 대구지역위원회 총회 대구지역위원회 총회가 12월 12일 대구 대명동 봉자주막에서 열렸다. 이날 총회에서는 이상술 대구지부장 후임으로 권주연 후원회원(피아노 학원 운영)을 대구지역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이날 총회에는 권주연 후원회원을 비롯해 권혜민 김광출 김영범 김영희 박종혜 송정훈 이상술 이수진 이원식 장현주 정종훈 조현제 채영희 천윤경 후원회원이 참석했다. 권주연 신임 위원장은 고령 출신으로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상덕선생기념사업회 활동을 비롯해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고문에는 이상술 전 지부장을 추대한 데 이어 이수진(재정), 천윤경(홍보), 김광출(관리) 후원회원이 각각 집행부에 선출되었다. 부위원장 등 후임 집행부는 추후 선출키로 했다. 총회에는 김순흥 광주지역위원장, 변량근 부산지역위원장을 비롯해 송필경(전태일의 친구들 대표), 유민아빠(김영오) 윤솔지(영화 제로썸 감독) 등도 참석해 축하해 주었다. 그동안 대구지역위원회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동대구역에 박정희 동상 설치를 공표한 이후 여러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박정희 우상화 반대 범시민운동본부’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10월 항쟁 추모식, 합천군 일해공원 철거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또한 광주에서 시작해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은 광주 탕탕전에 이어 올해 첫 번째로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열린 ‘탕탕전’ 행사의 하나인 분장대회에 참여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 대구지역위원회는 2025년에는 ‘인혁당’ 희생자 50주기 행사, 광복 80주년 기념행사 등 여러 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다. 한편 새로 개정된 (사)민족문제연구소 정관과 운영위원회 세칙에 의거하여 부산지부를 부산지역위원회로 바꾸었으며 신임 권주연 지역위원장은 (사)민족문제연구소 사원총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추인받아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

『세계유산으로 역사배우기 – 사도광산에서 기억해야 할 한국인 강제동원의 역사』 역사부교재 발간

2024년 12월 27일 122

[초점] 『세계유산으로 역사배우기 – 사도광산에서 기억해야 할 한국인 강제동원의 역사』 역사부교재 발간 11월 30일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세계유산으로 역사배우기—사도광산에서 기억해야 할 한국인 강제동원의 역사』 역사부교재 2종(초등용·중등용)을 발간하였다. 2024년 경기도 일제잔재 청산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제작한 이 교재는 세계유산의 진정한 가치와 일본 산업유산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을 부정하며 산업유산 현장에서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이번 역사부교재 발간 사업은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작업으로 시작되었다. 2종의 책에는 일본에 있는 세계유산,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산업유산 현장을 직접 방문 조사하고 그 과정에서 축적한 사진기록과 관련 사료 분석 내용이 풍부하게 실렸다. 유네스코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친 인류가 과거 잘못에서 비롯된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미래 세대에게 교육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두운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조차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일본의 산업유산도 산업혁명과 근대화의 성과와 밝은 면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침략전쟁으로 이룬 근대화의 어두운 면,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으로 희생된 이들을 제대로 추모하고 알려야 한다. 『세계유산으로 역사배우기 – 사도광산에서 기억해야 할 한국인 강제동원의 역사』 역사부교재는 세계유산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2015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 유산’과 2024년에 새로 지정된 사도광산이 어떤 곳인지, 그곳에 끌려간 한국인들과 그밖에 강제노동에 희생된 이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를 다루었다. 특히 하시마탄광과 사도광산에 동원된 피해자들의 이야기까지

‘지도에 새긴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2024년 12월 27일 65

[초점] 동학농민혁명·청일전쟁 130주년 특별전 ‘지도에 새긴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은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던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 순간이자,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를 뒤흔든 중대한 사건이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동학농민혁명·청일전쟁 130주년을 맞아 특별전시 ‘지도에 새긴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개막식을 지난 10월 16일(수) 개최하였다. 이번 특별전은 서울시 강북구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하고, 천도교중앙총부와 강덕상자료센터 후원으로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여 12월 31일까지 진행된다. 개막식은 민족문제연구소 함세웅 이사장, 임헌영 소장, 근현대사기념관 윤경로 관장, 강북구 이순희 구청장, 강북구의회 김명희 의장,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 관장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전시 구성은 1부 <동학 창시, 사람이 하늘이다>, 2부 <1차 봉기, 사발에 담긴 농민의 꿈>, 3부 <일본의 조선 침략과 청일전쟁>, 4부 <2차 봉기, 보국안민(輔國安民) 깃발 들고 일어선 항일 농민봉기> 등 네 시기로 나누어, 대동여지도, 대한여지도, 일본 점령지 실측지도, 조선내란지도 등 19세기 후반 조선과 일본에서 제작된 다양한 지도를 통해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의 전개과정을 상세히 조명하였다. 이와 함께 동학 경전인 『동경대전』의 최초 판본인 1880년 인제 경진판과 현존하는 『용담유사』 판본 중 가장 오래된 1893년 계사판, 그리고 동학농민혁명 당시 포고문, 임명장, 농민군 편지를 비롯해 2023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전시된다. 또한 청일전쟁 화보집, 사진, 일본 군인들이 사용하던 화투패와 같은 희귀 유물도 함께 소개된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국제 정세가 다시금 요동치는 상황에서, 1894년의 혁명과

민족사랑 2024년 12월호

2024년 12월 27일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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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시정기념엽서 시리즈(3)

2024년 12월 27일 95

[소장자료 톺아보기 65] 통계 수치를 활용해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를 선전하는 시정기념엽서 조선총독부 시정기념엽서 시리즈(3)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의 발전상을 홍보할 목적으로 시정기념엽서 도안에 산업과 교육, 운송과 관련한 통계 수치와 관련 막대 그래프를 이용해 그 추이를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그 대표적인 시정기념엽서는 위에 제시된 시정5주년(1915), 시정6주년(1916), 시정25주년(1935), 시정30주년(1940) 기념엽서이다. 먼저 시정5주년기념엽서에서는 쌀과 면화의 수확량과 유출량을 1912년부터 1914년까지 3년간 비교했다. 이를 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위 표에서 쌀과 면화의 경작면적과 수확량, 그리고 어획량이 해마다 증가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쌀과 면화의 경우 해마다 생산량 대비 일본으로의 유출량이 증가하고 있다. 즉 쌀의 경우 1912년에 6.4% 1913년에 8.6% 1914년에 10.8%로 늘어나고 면화도 1912년에 8.2% 1913년에 10% 1914년에 12.2%로 증가하여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많은 쌀과 면화가 일본으로 유출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수출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에서 일본으로의 물자 수탈 양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정6주념기념엽서에는 축우(畜牛)와 소가죽, 엽연초 경작면적과 생산량의 증가 추이를 1912년부터 1914년까지 통계표로 보여준다. 시정25주년기념엽서에는 ‘성장해가는 조선(伸び行く朝鮮)’이란 제목으로 한반도 지도 위에 농공산품 생산량, 우편·전신·전화, 철도 길이, 무역량을 1910년과 1933년의 수치로 비교하였다. 농공산업, 우편산업, 철도와 무역 부문에서 조선총독부 시정 25년간의 성과를 가시적으로 선전하는 것이다. 1940년 10월 1일 시정30주년기념엽서가 발행되었고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로 인해 이후 시정기념엽서의 발행이 중단되고 말았다. 시정30주년기념엽서 봉투의 앞면에는 “국위선양 견인지구(國威宣揚 堅引持久)”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