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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제17회 임종국상 시상식과 임종국 선생 34주기 추모식
[초점] 제17회 임종국상 시상식과 임종국 선생 34주기 추모식 11월 10일 오후 6시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회원 및 각계 인사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7회 임종국상 시상식이 열렸다. MC 노기환의 사회로 진행된 시상식은 장병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장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축사, 임종국 선생의 일대기 영상 상영, 이민우 연구소 운영위원장의 기념사업회 경과보고, 윤경로 심사위원장의 선정경위 발표, 시상과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 순서로 진행됐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13건, 사회·언론 부문 5건 등 총 18건이 올라왔다. 9월 27일 열린 예심에서 각 부문 3건을 선정하였고, 10월 18일 열린 심사위원회 본심에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문화부문에 방현석 중앙대 교수를, 사회부문에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을, 특별상에 히구치 유이치 재일조선인단체사전 한일공동편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제17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최종 결정하였다.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해 도면회 대전대 교수, 이지원 대림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한상권 덕성여대 명예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문화부문 수상자인 방현석 중앙대 교수는, 역사와 현실 문제에 관한 밀도 있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수상 저작인 소설 『범도』는 오랜기간 치밀한 취재와 자료조사를 거쳐 펴낸 노작으로, 홍범도 장군과 동지들의 항일무장투쟁을 새로운 시각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전쟁 영웅들을 폄훼하는 역사반동이 일상화하고 있는 가운데, 소설 『범도』는 세간의 호평을 받으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올해가 홍범도 장군 순국 80주기여서 그
이준 열사 유해봉환 60주기 추모 특별전 연계 강좌 및 탐방
[초점] 이준 열사 유해봉환 60주기 추모 특별전 연계 강좌 및 탐방 근현대사기념관은 이준 열사 유해봉환 60주기 추모 특별전과 연계하여 시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강좌 및 탐방을 11월 4일부터 11월 25일 매주 토요일 총 4회에 걸쳐 진행하였다. 1강 한국 근대 검사제도와 이준(전병무 강릉원주대 연구교수), 2강 이준의 애국계몽운동과 상동청년회(윤경로 근현대사기념관장), 3강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이계형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등 총 세 강좌를 개설하였다. 연계 탐방으로 이준 열사 관련 서울 유적지를 탐방하였다. 장원석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실장의 특별전 해설을 시작으로 이준 열사 묘소, 황성기독교청년회관(YMCA), 평리원 터, 한성감옥 터, 한성재판소 터, 법관양성소 터 그리고 상동교회를 탐방하며 이준 열사의 애국정신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독립민주시민학교 강좌는 12월 2일부터 근현대사기념관 홈페이지 및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수강할 수 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사 이현아
제66회 역사학대회 자유패널 ‘2023, 조선인 강제동원, 이슈와 연구의 최전선’ 개최
[초점] 제66회 역사학대회 자유패널 ‘2023, 조선인 강제동원, 이슈와 연구의 최전선’ 개최 10월 27일~28일 서강대학교에서 제66회 전국역사학대회가 개최되었다. 역사학대회는 전국의 역사관련 단체가 참여하는 축제로 민족문제연구소는 작년부터 자유패널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역사학대회 대주제는 ‘역사속의 인구변동’이다. 인구변동은 통상적으로 출생, 사망, 이주로 인한 인구 규모 및 구조의 변화를 의미하고 이는 중요한 역사적 변화를 추동하였기에 이에 대해 역사학적 측면에서 논하여 보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주제 속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2023, 조선인 강제동원, 이슈와 연구의 최전선’이라는 주제로 28일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327호에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최근 강제동원의 이슈와 연구성과를 확인하고 향후 연구와 운동의 방향을 가늠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첫 번째 발표는 동북아역사재단에 있는 양지혜 박사가 ‘일본 근대산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관련 연구동향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2015년 이후 현재까지 국문, 영문, 일문으로 발표된 연구를 토대로 일본근대산업유산 관련 논의의 동향을 파악하고, 한국과 미국 등 여러 주변국, 그리고 일본 현지에서 메이지산업유산의 등재가 가져온 파장과 변화를 가늠해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압축 성장을 넘어 압축소멸을 향하는 한국의 상황 속에서, 일본근대산업유산이라는 ‘오래된 미래’의 현재를 함께 고민하고자 하였다. 양지혜 박사의 발표에 민족문제연구소 김승은 학예실장이 토론하였다. 두 번째 발표는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인 김명환 박사가 ‘강제동원 관련 명부자료의 정리와 활용례 분석’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국내 각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명부의 현황을 개괄적으로 정리하고, 명부자료를 활용한 연구사례를 살펴보았다.
『다이쇼대진화재지(大正大震火災誌)』(1925)
[소장자료 톺아보기 53] 일본 경찰의 조선인 학살 책임을 철저히 은폐한 『다이쇼대진화재지(大正大震火災誌)』(1925) 『다이쇼대진화재지(大正大震火災誌)』는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지 1년 10개월이 지난 1925년 7월 31일에 경시청이 발간한 화보 140쪽, 본문 1500여 쪽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경찰 백서이다. 1925년 당시 경시총감이었던 오타 마사히로(太田政弘)는 서문에서 이 책의 발간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는 본청 당시의 노력을 기념하고 영구히 기억을 환기시키며 나아가 훗날의 발분(發奮)에 이바지하고자 하고, 하나는 미증유의 체험을 기술하여 광범한 실상을 전달하여 후대에 참조키 위해서다. 본청 문서과의 관례에 따라 당시 자료를 수집하고 사진 화도와 함께 정리 보철하는데 1년을 소비하여 본청 사관(史官)의 임무에 부응하려는 까닭이다. 이 책의 발간 경위는 일러두기에 상세히 나와 있어 그대로 싣는다. 1. 본서는 대정 12년(1923년) 9월 1일 이후 경시청이 진재(震災) 이후의 사회상태에 대응하고 질서 유지상 실시하여 특수활동의 개요를 기록하여 이를 기념하고, 또한 장래의 참고에 이바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 본서의 자료는 본청 각 부(部), 과(課), 계(係) 각 경찰서와 파출소에서 수집하고 전편을 본청 및 각서 활동의 2편으로 대별하고 나아가 장절로 분류하여 재해 후에 있어서의 활동 경과를 검토하고 그간의 법칙을 발견하려고 힘쓴다. 1. 화보와 사진판은 본청 형사부 감식과, 보안부 건축과 및 위생부 의무과, 위생과 및 자경회가 촬영한 700여 장 및 동경시역소와 관련한 300장을 수집하고 이 중에서 선택 분류하고 지진·화재의 피해
길을 만든 사람들, 이어가는 발걸음
[후원회원마당] 길을 만든 사람들, 이어가는 발걸음 김현정 후원회원 옥수수밭을 헤치고 나아가다 “여러분, 다 왔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직진하시면 됩니다!” 방학진 실장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크게 들려왔다. “앞에 얼룩소가 있습니다. 다 왔습니다.” 우리는 어느 공장 외벽을 따라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곧이어 옥수수밭이 시작되는 곳에서 1시 방향으로 한참을 더 걸었다. 앞사람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걸으면서 두 손으로 연신 눈앞의 이파리를 꺾어냈다. 밭고랑을 디딜 때마다 진흙이 들러붙어 발이 몹시 무거웠다. 팔에 상처가 나기는 했지만 모두 무사히 신흥무관학교 고산자 터에 도착했다. 신흥무관학교, 길을 만들다 1911년 문을 연 신흥무관학교는 3•1운동 이후 찾아오는 청년들이 크게 늘었다. 본교였던 합니하를 분교로 하고 새로 교사를 지어 확장한 곳이 바로 고산자다. 학생이 700여 명 정도로 가장 번성한 시기였다. 생도들은 역사와 지리를 배우고 군사 훈련을 받으며 독립군의 주역으로 거듭났다. 10년 동안 약 3천 5백 명이 졸업했고 해방을 맞기까지 우리나라 독립전쟁 역사의 굵은 줄기가 되었다. 고산자 터에서 제를 올리다 잎이 무성하고 풀이 우거진 여름은 다른 계절과 다르게 터를 찾기가 어렵다. 키 넘게 자란 옥수수가 특정 지형지물을 가리기 때문이다. 홀로 선 나무와 몇 그루 모여 자란 나무, 이 두 곳을 기준삼아 고산자 터를 조망할 자리를 잡았다. 햇볕을 받은 옥수수-만주 어디에 가도 끊임없이 보이는 옥수수, 옥수수밭 위로 집 한 채와 기지국 송수신탑이 올려다보였다. 우리가 선 자리를
누에의 혼령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전형적인 일본식 풍습
[이 땅에 남아있는 저들의 기념물 1] 누에의 혼령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전형적인 일본식 풍습 한국잠사박물관(청주)에 남아 있는 ‘충북 잠령탑(1934년)’의 조성 연혁 이순우 특임연구원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이 땅에서 벌어진 참으로 괴기스럽고 별난 일들이 한둘이 아닐 테지만,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손꼽아보면 우선은 온갖 동물(動物)의 혼령(魂靈)에다 제사를 지내거나 이것들을 위한 비석 또는 위령탑을 세우는 장면들이 퍼뜩 떠오른다. 가령, 도수장(屠獸場, 도살장)에서 죽은 짐승들의 수혼비(獸魂碑)를 조성하여 위령제를 올린다거나 총독부의원(總督府醫院) 구내에 실험동물공양탑(實驗動物供養塔)을 설치한다거나 군용모피(개가죽)의 공출에 희생된 개들을 위한 견혼비(犬魂碑)를 만든다거나 일본군 기병대와 포병대에 속한 군용마를 위한 마혼비(馬魂碑)를 세우는 따위의 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신문자료를 뒤져보면, 심지어 부산요리조합 같은 곳에서는 식재료로 사람들이 먹어 치운 하돈(河豚, 복어)의 혼을 달래고자 법요(法要)를 거행했다고도 하고, 조선조어연맹(朝鮮釣魚聯盟)에서는 낚싯줄에 걸려 최후를 마친 무수한 부어(鮒魚, 붕어)를 위한 공양제 행사를 올렸다고 하는 흔적도 눈에 띈다.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일본 오사카에서 효능 좋은 해충박멸제 ‘이마즈 승취분(イマヅ 蠅取粉, 파리약)’에 의해 몰살의 위기에 처한 파리떼를 위한답시고 커다란 승(蠅, 파리) 모형을 걸어두고 죽은 해충들의 명복을 빌며 조문(弔文)을 낭독하고 향을 피워 올리는 공양회가 벌어진 소식이 전해지는 등 우스꽝스럽다 못해 헛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곧잘 연출되곤 하였다. 그러고 보면 축령(畜靈)이니 축혼(畜魂)이니 수령(獸靈)이니 수혼(獸魂)이니 어령(魚靈)이니 견혼(犬魂)이니 마혼(馬魂)이니 우혼(牛魂)이니 하여 ‘무슨 혼(〇魂)’이니 ‘무슨 령(〇靈)’이니 하는 따위의 용어들이 속출하고, 덩달아 ‘무슨 령제(〇靈祭)’, ‘무슨
‘조선의 잔다르크’ 김명시 지사 관련 신문자료
[자료소개] ‘조선의 잔다르크’ 김명시 지사 관련 신문자료 이번 호에 소개할 자료는 ‘조선의 잔다르크’ ‘백마 탄 여장군’으로 칭송받은 김명시(金明時. 1907~1949) 지사를 다룬 신문자료이다. 김명시 지사는 경남 마산 출신으로 1933년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혐의로 징역 6년을 언도받아 만기 출옥했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화북조선독립연맹에 참가하고 조선의용군과 함께 일본군에 대항해 싸웠다. 8·15 해방 후 서울로 귀국하여 사회주의 입장에서 통일정부 건립 활동에 힘썼다. 김명시 지사는 뚜렷한 항일운동 공적에 비해 사회주의 계열이란 이유로 그에 대한 연구가 드물었고 일반인에게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8년 말 열린사회희망연대(김영만 대표, 창원 소재)는 김명시 지사의 항일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흉상 건립과 표지판 제작을 추진했으며 2019년부터 독립운동가 포상 신청을 하였다. 첫 심의에서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북로당 정치위원’이란 경력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입증자료를 추가해 2021년 다시 서훈 신청을 하였다. 그 결과 정부는 2022년 8월 김명시 지사께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사후 73년 만에 이루어져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으나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다음에서 소개할 자료는 ①조선공산당 재건사건 때의 기사(매일신보 1932.8.29.) ②1945년 12월 중순 귀국 직후 가진 기자회견 기사(동아일보 1945.12.23. 국민보 1946.7.17, 7.24) ③국군준비대 전국대회에서의 축사(자유신문 1945.12.27) ④1946년 11월 인터뷰 기사(독립신보 1946.11.21.)이다. 김명시 지사의 생애에 대해서는 『민족사랑』 2017년 2월호에 실린 「비운의 여장군 김명시」를 참조 바람 ― 편집자 주 공산대학 출신으로 반제동맹 부인부장, 밀사로 들어왔다 피체 김명시의
22세 청년이 꿈꾼 조선혁명
[연구소 글방 8] 22세 청년이 꿈꾼 조선혁명 조한성 선임연구원 1934년 11월 14일 한 젊은이가 온양에 있는 자택에서 체포됐다. 그날 밤 그는 수원경찰서로 끌려갔다가 곧바로 경기도 경찰부로 호송됐다. 사건을 보도한 기자는 경찰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격문사건 아니면 상해 방면에서 중대 사명을 가지고 비밀리에 들어왔다가 검거된 것 같다며, 사건의 확대를 예상했다. 기자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이 사건은 독립운동 관계 사건이었다. 그것도 의열단이 중국 난징에서 비밀요원들을 교육시켜 조선과 만주국에 수십 명을 밀파했다고 하여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남경군관학교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이날 체포된 청년은 22세 홍가륵이었다. 심문 투쟁 “나는 조선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중국 난징에서 의열단에 가입했고,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이하는 조선혁명간부학교로 약칭)를 졸업한 후, 단의 사명을 띠고 조선에 들어왔소.” 체포된 날 밤 시작된 경찰 조사에서 피의 사실을 묻는 경찰의 첫 번째 질문에 홍가륵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의열단에 가입한 사실도, 의열단이 난징에 세운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한 사실도, 그리고 의열단의 사명을 띠고 조선에 들어온 사실도 모두 순순히 인정했다. 피의 사실이 가볍지 않은 만큼, 혐의를 부인할 법도 한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첫 질문과 첫 진술 사이에 있었을 엄청난 고문과 구타이다. 그렇다. 일제의 경찰은 이쪽으로 너무 유능했다. 그들은 치사사건도 별로 겁내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경찰의 고문과 구타로 숨진 조선인들이
유엔 인권이사회에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다
[현지 활동 보고] 유엔 인권이사회에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다 ― 2023년 10월 20일 유엔인권이사회 참가기 김영환 기획실장 1 제54차 유엔인권이사회(2023년 9월 11일~10월 13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파비안 살비올리(Fabian Salvioli) 유엔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of truth, justice, reparation and guarantees of non-recurrence, 아래‘진실정의 특보’)은 한국의 과거청산에 대한 공식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엔 진실정의 특보는 2022년 6월 8일부터 14일까지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여 외교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국방부, 교육부, 경찰청, 국가기록원, 국가인권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위원회, 국회의원 및 사법부 관계자들과 면담했다. 또한, 국가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 시민사회단체 대표, 인권활동가, 연구자, 전문가 등을 만나 국가폭력에 의한 한국 사회 인권침해 실태를 확인하고, 국제인권법에 비추어 피해자들의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이행조치를 조사했다. 이번에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발표된 진실정의 특보의 보고서는 한국의 과거청산에 관한 유엔의 첫 번째 공식 보고서라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22년 진실정의 특보의 한국 공식방문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과 함께 진실정의 특보를 면담하여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의 이행, 야스쿠니무단합사문제 등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한 활동을 소개하고 이 문제의 해결을 호소했으며, 관련 시민단체와 함께 발간한 ‘한국의 과거사 청산 시민사회 보고서’에서 강제동원 부분을 작성하여 진실정의 특보에게 제출했다. 2
김상진 열사의 뜻을 새기며 생명운동에 나서다
[인터뷰] 김상진 열사의 뜻을 새기며 생명운동에 나서다 -강석찬 후원회원(화성한과 대표) 방학진 기획실장 명절이면 어른들에게 보내드리는 선물 중 고급 한과 세트가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소비 경향이 변하여 다양한 건강식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묵묵히 우리 한과를 만들며 생명운동을 실천하는 ㈜화성한과 대표인 강석찬 후원회원을 만나 보았다. 화성한과의 소재지는 이름대로 화성시 양감면에 있다. 대목인 설과 추석 명절은 일손이 부족해 밀려드는 주문을 채우기 어렵다고 한다. “1985년 말에 결혼하고 농촌에 농사를 지으러 들어와서 한살림협동조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친환경이나 유기재배 같은 인증이 없던 시기에 우리 땅을 살려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건강한 식재료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 생명운동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이제 막 움튼 시기라 쌀을 친환경으로 경작해도 수요가 따라주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선 식품 가공이 필요하였고 그중에서도 우리 농업의 근간인 쌀을 이용한 가공제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가공제품의 대부분은 정크푸드로 지탄을 받고 있지만 우리 전통식품은 원료 자체의 영양과 맛을 화학첨가제에 의존치 않고 살릴 수 있었기에 한과와 미숫가루, 떡과 조청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한살림 외에도 많은 소비자협동조합이 있지만 40년 전에 그러한 생각을 가진 데에는 어떤 동기가 있었을까. “시골생활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서울내기로 1976년 서울대 농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후 비로소 노동의 귀중함과 우리 농업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또 야학활동을 통해 인간에 대한 배려를 조금은 배울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