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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2023 겨울 인턴활동 소감문

2023년 2월 27일 448

[후원회원마당]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2023 겨울 인턴활동 소감문 이한나 안녕하세요, 2023년 1월부로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희대학교 사학과 학생 이한나입니다. 사학과 학생인 저는 역사에 대한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고 더 나아가 바른 역사를 다음 세대에게 알리는 교육자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지난 2019년, 광복 74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축이 되어 진행했던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태풍으로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를 뵈었습니다. 울음으로 목이 메셨는데도 ‘그때 가서 고생한 것이 원통하고도 힘든데 오늘은 즐겁고 반갑고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에 저도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보태야겠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한일 과거사 청산에 대한 관심이 민족문제연구소 인턴 지원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인턴으로 활동하며 보게 된 연구소의 모습에서 저는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기획실은 후원회원을 위한 여러 행사를 진행하거나 지원하고 있는데 1만여 명의 회원분들이 민족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고 있음에 놀랐습니다. 자료실에서는 각종 서적이나 문서를 정리하는데 연구소에 소장된 방대한 도서와 유물 중에서 회원이나 일반인들이 기증해준 도서와 유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데에 인상 깊었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건립과 운영에는 연구소 회원뿐 아니라 국내 지부와 세계 각지의 지역위원회,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지원하는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같은 뜻을 갖고 한 자리에 모인 것이 뭉클하게 느껴졌고 민족문제연구소 존립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비록 작은 힘이나마

조선혁명선언

2023년 2월 27일 515

[자료소개] 조선혁명선언 신채호 1922년 12월 신채호는 의열단장 김원봉으로부터 의열단 선언문을 작성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신채호는 1개월여의 숙고 끝에 1923년 1월 조선혁명선언을 완성하였다. 5개 부분 6,400여 자로 이루어진 이 선언문은 ‘5파괴’의 대상―이족통치(異族統治)·특권계급·경제약탈제도·사회적 불평등 및 노예적 문화사상과 ‘5건설’의 목표 – 고유적 조선·자유적 조선민중·민중적 조선·민중적 사회 및 민중적 문화를 천명하였다. 이 선언문은 의열활동의 방향과 자주독립국가 건설방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이후 한국 독립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글은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의 원문을 바탕으로 하여 일부 한자어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현행 맞춤법에 의거하여 표기하였다. – 편집자주 1. 강도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애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천택(川澤)·철도·광산·어장 …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가옥세·인구세·가축세·백일세(百一稅)1·지방세·주초세(酒草稅)·비료세·종자세·영업세·청결세·소득세…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은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여간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차차 자본집중의 원칙 하에서 멸망할 뿐이요 대다수 인민 곧 일반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종년(終年) 소득으로 일신(一身)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일본강도에게 진공(進供)하여 그 살을 찌워주는 영세(永世)의 우마(牛馬)가 될 뿐이오, 종내(終乃)에는 그 우마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이민의 수입이 해마다 높은 비율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려가 아귀(娥鬼)부터 유귀(流鬼)가 될 뿐이며 강도일본이

기증자료

2023년 2월 27일 193

기증자료 • 안미정 자료실 주임연구원 1월 12일, 김광렬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가 조선문제자료총서, 전시기 식민지통치자료, 근대일본 사회운동사인물대사전, 재일 조선인 관련 도서 등 약 400권을 기증했다.

‘약산 김원봉과 함께’, 1박 2일 밀양 답사 다녀와

2023년 2월 27일 443

[초점] ‘약산 김원봉과 함께’, 1박 2일 밀양 답사 다녀와 • 방학진 기획실장 지난해 11월 창립한 ‘약산 김원봉과 함께’(공동대표 김언호 한길사 대표, 서중석 전 성균관대 교수, 안경환 전 서울대 교수)가 우리 연구소와 함께 1월 28일~29일 1박 2일 일정으로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의열단 밀양역사기행’을 진행했다. 약산 김원봉과 함께가 창립 후 처음으로 마련한 이번 답사에는 전국에서 8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는데 김언호·서중석·안경환 공동대표를 비롯해 밀양 출신의 원로 민주화운동가 박중기 선생, 임헌영소장, 송기인 신부, 한상권 전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 양보경 전 성신여대 총장,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김원봉 평전>을 쓴 이원규 소설가, 밀양 출신 김춘복작가, 김원봉의 오촌 조카인 김재현(밀양) 선생, 의열단원 초산 김상윤 의사의 장손자 김기봉 선생 등 다양한 분들이 참여했다. 1박 2일동안 안내를 맡은 이준설 밀양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사는 “현재까지 정부에서 인정한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는 91명이고, 이는 전국 어느 곳 못지않게 많은 수치”라며 “특히 김원봉선생의 생가터에 세워진 의열기념관에서 반경 1km 안에는 29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독립운동가의 밀집도가 높다”고 말했다. 답사단은 첫날 황상규 선생 묘소를 비롯해 밀양독립운동기념관, 의열기념관, 의열체험관을 둘러본 후 저녁에는 밀양시청 강당에서 ‘약산 김원봉의 독립운동과 그 사상’을 주제로 한 김영범 교수(대구대)의 특강을 들었으며 둘째 날에는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투탄 의거지, 영남루, 표충비각을 둘러보고 박차정 여사 묘소, 신영복 선생 묘소 등을 참배했다. 약산 김원봉과 함께는 삼일절에는 ‘독립과 민주의 현장을 가다’라는

친일문학론을 일역한 오무라 마스오 교수 별세

2023년 2월 27일 335

[초점] <친일문학론>을 일역한 오무라 마스오 교수 별세 오무라 교수 부부 한국 근·현대문학 연구에 헌신한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 명예교수가 지난 1월 15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2017년 소명출판에서 「윤동주와 한국 근대문학」 「식민주의와 문학」 등 그의 저작집 총6권이 발간되었고 2018년엔 한국문학번역상을, 2022년엔 연세대 용재학술상을 받았다. 오무라 교수는 1970년에 결성된 ‘조선문학의 회’의 주요 인사로 활동하면서 동인지 <조선문학 소개와 연 구>(1970~1974)를 간행하고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하였으며 임종국, 김윤식 등과 학문적인 교류를 해왔다. 임종국 선생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게 된 계기는 <친일문학론> 번역이었다. 1975년 봄에 일본의 고려서림에서 일어판 번역을 오무라 교수에게 의뢰했다. 그해 6월부터 1976년 11월까지 번역과정의 세부사항을 서신을 통해 논의했다. 1976년 12월 마침내 <친일문학론> 일어판이 출간되자 임종국선생은 오무라 교수 부부에게 작은 병풍과 연수정 목걸이를 선물했다. 오무라 교수는 <친일문학론> 일어판 출간의 1등 공신이었을뿐더러 “임종국 씨의 <친일문학론>은 해방 직후와 같은 친일파 규탄의 책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객관적 사실을 리얼하게 정리하여 문학사의 공백을 메우는 시도이다”라는 역자 해설에서 임종국의 연구사적 위상을 정립한 최초의 평론가라 할 만하다. 일어판 출간 이후에도 두 사람은 매년 초에 안부 편지를 나누었고 임종국의 임종 전까지 학문적·인간적 교류를 가졌다. 임종국 선생의 요청으로 1981년과 1987년에는 요산재에 방문하여 회포를 풀기도 했으며 임종후인 1989년 11월 하순에 임종국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오무라 교수 부부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직전인 2018년

병합기념 조선사진첩 속 이미지(3)

2023년 2월 27일 819

[소장자료 톺아보기 46] 병합기념 조선사진첩 속 이미지(3) – 강제병합의 주역들, 침략자와 친일파 • 강동민 자료팀장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에 수록된 약 400컷의 사진 중 인물사진은 단체사진을 포함해 약 200컷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대부분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주역들로 일본의 ‘천황가’와 군부를 비롯한 관료들, 이에 협력한 친일 조선 관료들이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제작된 <병합기념조선사진첩>에 등장하는 첫 인물은 메이지(明治) ‘천황’ 부부다. 이와 함께 ‘천황가’ 일족을 수록하고 ‘이왕가’로 전락한 대한제국 황실일가는 다음 순서로 밀려났다. 이어서 ‘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한다는 순종의 칙유와 병합조약체결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를 수록하였다. 조선의 병합은 ‘원만하고 평화롭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후로는 일본의 내각대신, 역대 조선통감, 조선주차군사령관 등 일본의 인물들부터 대한제국 내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 이완용·박제순·민병석·고영희·조중응·김윤식 등 ‘병합’에 결정적인 이바지를 하였던 친일 인사들의 사진이 줄지어 나온다. 특히 ‘왕비사건 당시의 공사, 자작 미우라 고로’, ‘강화도사건 당시의 함장, 이노우에 요시카’, ‘제물포조약 당시의 전권대사, 구로다 기요타카’ 등과 같이 한국병합에 결정적인 사건의 주요 인물들이 사건 당시 직위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사진첩에 수록된 주요 인물들은 다양한 책자와 화보에 지속적으로 소개되는데 연구소의 소장자료인 <한국병합기념화보>에도 실려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상설전시장을 방문하면 강제병합의 일본 주역들을 비롯해 친일파들의 상세한 이력을 살펴볼 수 있다.  「반도의 명사」는 강제병합 당시 조선인 주요 관료들과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구성된 부분으로 친일 인사들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서울 거리에 오백 마리의 제주 조랑말이 무더기로 출현한 까닭은?

2023년 1월 31일 463

이른바 ‘지나사변(支那事變; 중일전쟁)’ 1주년을 막 넘길 무렵, <매일신보> 1938년 7월 15일자에는 「소비절약(消費節約)의 총수(總帥) 마상(馬上)의 미나미 총독(南總督), 자동차(自動車)를 ‘넉아웃’」이라는 제목의 기사 하나가 등장하였다. 시간극복(時艱克服)의 의기에 불타는 미나미(南) 총독은 솔선하여 자동차의 승용을 절감하고 있는데 14일부터는 우천이 아닌 경우에는 언제든지 승마(乘馬)로 퇴청하기로 되었는데 금후 매일 오후에는 총독부 왜성대 관저 간에 말을 달리는 총독의 자태를 보게 될 것이다. 난다 긴다 하는 조선총독이 솔선수범하여 자동차 없이 말을 타고 통근하는 풍경을 연출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제 막 본격화하는 전시체제기 아래 총후보국(銃後報國)과 물자절약, 그 가운데 특히 ‘가솔린(gasoline, 휘발유)’의 부족사태를 이겨내는 방편의 하나로 고안된 결과물이었다. 이에따라 총독부의 관리들은 전차와 도보로 출퇴근을 하고, 총독과 정무총감 역시 승마(乘馬)와 인력거(人力車)를 이용토록 했던 것이다. 이러한 광경은 경복궁 후면에 경무대 총독관저(景武臺 總督官邸)가 완공되어 남산총독관저(南山總督官邸)에서 그곳으로 이사를 마치게 되는 1939년 9월 22일의 시점까지 그대로 지속되었다. 그렇다고 그 이후에 말 타고 다니는 조선총독이 길거리에 출현하는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는데, 그것은 바로 ‘승마’ 대신 ‘마차’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일신보> 1940년 4월 29일자에 수록된 「미나미 총독(南總督) 태우고 달릴 삽상(颯爽) 일두마차(一頭馬車), 6월부터는 통감부 시대(統監府時代) 재현(????現)」 제하의 기사에는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신록이 우거지는 서울 장안 거리에는 미나미(南) 총독이 타고 다니는 일두마차(一頭馬車)가 삽상 등장하게 되었다. ‘까소린’을 절약하는 의미에서 총독부에서는 벌써 작년부터 도쿄(東京)에 있는 마차제조회사에다 마차를 주문중이더니 약 1주일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3년 1월 31일 403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9월, 전국의 후원회원을 담당하는 연구소 기획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 후원회원들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원하는 분들에 한해 그분들의 업체, 업종, 연락처 등을 정리하여 전체 후원회원들에게 메일링을 한 적이 있다. 그러한 홍보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자영업 후원회원께 작은 도움과 격려를 드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당시 홍보한 업체는 모두 30개였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누룽지 과자인 ‘서울칩’을 생산하는 ㈜서울칩 정동수 대표를 처음 만나게 되었지만 사실 정 대표는 더 오래 전부터 연구소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1998년에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처음 연구소를 알게 되었는데요. 5년 전부터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강의와 연구소가 수탁하여 운영하는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진행하는 강좌를 들으면서 연구소에 더 많은 애정을 갖게 되었어요.” 홍보 메일링 발송 이후 정동수 대표는 직접 제품을 들고 감사의 뜻으로 연구소를 찾아왔다. 정 대표에게 제품 설명을 들어 보았다. “수년간 영화나 드라마에 음식을 기획하는 푸드 디렉터(음식 메뉴를 개발하는 일부터 음식 산업 전반의 일을 기획하는 사람) 업무와 식품회사에 신제품을 개발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최근에 개봉한 영화 ‘영웅’에도 참여했는데요. 바로 독립운동가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께 만두를 먹는 장면이에요.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관부재판을 영화로 만든 ‘허스토리’에도 참여했었고 그 외에도 ‘더킹’, ‘환혼’ 등 많은 작품에 참여했죠. 그리고 국내 백화점이나 식품회사에 신제품 컨설팅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쉬는 시간이 많아졌죠. 때는 이때다 싶어 그동안 생각했던

민족문제연구소 10대 뉴스

2023년 1월 31일 283

민족문제연구소 10대 뉴스 <재일조선인단체사전> 출간과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선정 2월, 10여 년간에 걸친 지난한 작업 끝에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 편찬사업이 일단락을 지었다. 마흔 명이 넘는 한·일 연구자들이 집필에 참여해 일제시기 재일조선인단체(총 551개)를 처음으로 집대성한 1,263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을 출간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 책은 7월에 대한민국학술원의 ‘2022년 우수학술도서’에도 선정되었으며, 현재 일본어판 발간이 추진되고 있다. 2022년도 민간통일운동 유공 대통령 표창 수상 4월 25일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2년도 ‘민간통일운동 유공 정부포상’ 전수식에서 우리 연구소가 통일운동 활성화와 통일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간 통일 관련 시민강좌를 개최하고 <일맥상통 백두대간> 사진전의 전국 순회 전시 등을 통해 통일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고양시키는 데 꾸준히 노력해왔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6월민주항쟁 35주년 기념 초대전 〈이상호, 역사를 해부하다〉 개최 이상호 작가 초대전이 8월 4일부터 10월말까지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열렸다. 이 작가는 1987년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 제작에 참여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후, 역경 속에서도 치열하게 창작활동을 지속해온 대표적인 민중미술가 중 한사람이다. 이번 초대전은 작가의 대표작 중 53점을 선정, 연대기적으로 배치하여 그의 의식세계의 변화를 조명했다. 전시가 끝난 뒤 작가는 국내외에서 화제가 되었던 광주 비엔날레 출품작 「일제를 빛낸 사람들」을 연구소에 기증했다.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년 / 김창숙 선생 서거 60주년 추모 특별전 개최 강북구의 위탁을 받아

용서와 화해 그리고 진실 규명으로 희생자들의 한이 풀리길 바라며

2023년 1월 31일 523

11월 15일 저녁 7시 한국전쟁 당시 충남 태안지역에서 벌어졌던 ‘민간인학살’을 다룬 구자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태안’을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를 비롯한 17개 시민사회단체 공동 주최로 상영하였다. 작은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당시 고향인 울릉도에서 경찰에 의해 끌려가 경북 경산의 코발트 광산에서 희생되셨고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에서 근무할 당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 일원으로 활동했던 나에게는 영화 ‘태안’의 관람이 남달랐다. 한국전쟁 당시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자행되었던 ‘민간인학살 사건’을 영화로 알리고 있는 구자환 감독은 2013년의 ‘레드툼’, 2017년의 ‘해원’에 이어 세 번째로 ‘태안’을 제작했다. 영화 ‘태안’은 1950년 여름 보도연맹사건을 시작으로 좌우 보복 학살을 다루고 있는데 태안유족회 상임이사인 강희권, 유민 아빠로 알려진 세월호 유가족인 김영호 씨가 출연해 태안 곳곳의 학살지역을 비추고 같은 동네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유가족이 사건 후에도 마주 보고 살아야 했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 ‘태안’에서 증언해 주신 유가족분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대다수가 민간인학살 당시 14살, 15살 정도의 어린 나이였고 이제 70년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응어리진 한과 슬픔을 차마 가늠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영화에 출연하신 분들은 좌우 보복 학살의 두 주체가 한 마을에서 70년이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아픔만큼 상대의 아픔도 컸음을 알고 있었고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개개인이 스스로 깨우치고 용서하며 화해의 길로 나가고 있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에서 구자환 감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