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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식민지로 전락한 도시 풍경

2023년 1월 31일 973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에는 ‘청일전쟁 전의 경성日淸戰役前の京城’의 모습을 시작으로 조선총독부, 총독관저, 경성시가, 남대문, 경복궁 등 경성의 모습 44장과 인천, 개성, 평양, 압록강, 부산, 수원, 목포, 군산 등 지방 명소와 고적 사진 86장이 실려 있다. 이 사진들은 강제병합 직전에 촬영된 이미지가 아니라 한반도 곳곳의 모습을 길게는 20여 년에 걸쳐 담은 것이다. 일제의 조선 ‘보호국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조선에 대한 체계적인 사진기록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한국병합기념첩>, <일한병합기념 대일본제국조선사진첩> 등 여러 종류의 ‘병합’을 ‘기념’하는 사진첩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사진첩에는 ‘대한제국’은 ‘조선’으로, 황도皇都 ‘한성’은 ‘경성’으로 전락한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침략자의 시선으로 담아내었다.  • 강동민 자료팀장

학교이름에 도(道), 방위, 숫자 명칭의 흔적이 성행했던 시절 내선일체 완성을 위한 식민교육제도의 변경이 빚어낸 부산물

2022년 12월 26일 1387

[식민지비망록 88] 학교이름에 도(道), 방위, 숫자 명칭의 흔적이 성행했던 시절 내선일체 완성을 위한 식민교육제도의 변경이 빚어낸 부산물   이순우 책임연구원   여러 해 전에 박완서(朴婉緖, 1931~2011)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지식하우스, 1992)를 아주 흥미롭게 읽다가 일제강점기의 학교생활과 관련한 내용에 눈길이 끌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대목에 따로 책갈피를 꽂아둔 기억이 퍼뜩 떠오른다.   (22~23쪽) …… 오빠는 면 소재지에 있는 사년제 소학교를 졸업하고 송도로 가서 이 년을 더 다녀 그때 개정된 학제로 육년 동안의 초등교육을 마쳤다. 숙부들은 다 사년제 소학교만 나왔는데도 마을에서 유일하게 신학문을 한 청년이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오빠가 송도에서 이년 더 배운 걸 굉장한 고학력으로 여기셨다. (60쪽) …… 문안에 있는, 엄마 마음에 드는 학교 중에서 다시 나의 통학거리를 감안해서 골라잡은 학교가 매동국민학교였다. 현저동에서 그 학교엘 가려면 산을 하나 넘어야 했다. 인왕산 자락이었다. 현저동 중턱에서 성터가 남아있는 근처까지 더 올라가면 사직공원으로 통하는 꽤 평탄한 길이 나 있었다. (82쪽) …… 국민학교 입학식은 4월이었다. 나는 또 수단 두루마기를 입고 엄마 손잡고 산을 넘어 학교에 갔다. 점잖은 동네아이들이라 과연 우리 동네 아이들하고는 달라 보였다. 예쁘장하고 깡똥한 양복으로 차려입은 애가 대부분이었다. 학부형은 일주일 동안만 따라오라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일제 때의 초등학교는 당초 4년제였다가 6년제로 바뀐 것이라든가 그 당시 입학식을 거행하는

제82주년 부산항일학생의거를 기념하며

2022년 12월 27일 513

[후원회원마당] 제82주년 부산항일학생의거를 기념하며 이상국 부산동구문화원 전문위원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 출처 <조선부산명소>(1928) 1940년 11월 23일 “제2회 경남학도 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가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에서 부산·경남지역 18개 남녀중등학교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대회는 학생체육대회가 아닌 군사훈련을 모방한 이상한 대회이다 보니 경기규정도 조악했다. 경기종목은 ‘수류탄던지기, 모래운반, 비상소집, 환자 들것 운반, 무장 행군’ 등 15개 종목이었다. 특히 심판관인 일본군 학교배속장교들이 한국인 학교인 동래공립중학교(현 동래중·고등학교)와 부산제2공립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중·고등학교)에 대해 편파적인 경기판정을 일삼아, 일본인 학교인 부산공립중학교(현 부산중·고등학교와 다름)에 우승을 안겨 줬다고 판단한 1천여 명의 한국인 학생들이 폐회식에서 일본인에게 폭행과 폭언으로 경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또한 의분이 격화된 200여 명의 한국인 학생들은 야간에 대회심판장인 경남지역 학교배속장교 총책임자인 ‘노다이 켄지’(乃臺兼治) 육군대좌[현 대령]의 관사로 몰려가 돌팔매질로 기물을 크게 파손하는 등,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을 물리적으로 토해내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일제는 중일전쟁 등의 침략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인 학생들에게 식민지교육을 통한 동화정책과 아울러 우민화·황민화 정책을 펼쳐, 향후 한국인 학생들을 전쟁터로 내몰려고 중등학생들에게도 군사 집체훈련을 강화했었다. 그리고 일본제국의 군인으로서 일왕을 위해 영광스러운 목숨 바치기를 세뇌화시켰으며, 애교심을 앞세운 학교 간의 군사훈련 경쟁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 학생들은 이날의 국방경기대회를 통해 일제 식민정책의 기만성을 깨우침과 동시에 민족차별에 대한 잠재적 저항정신을 불러일으켰다. 일제는 이 사건으로 한국인 학생 15명(동래중학 9명, 부산제2상업 6명)을 ‘폭력행위 등의 죄’로 재판에 회부시켜

걸개그림 그리던 미대생이 우리 역사문화 콘텐츠 전도사가 되다

2022년 12월 26일 1722

[인터뷰] 걸개그림 그리던 미대생이 우리 역사문화 콘텐츠 전도사가 되다 방학진 기획실장   2020년 9월 ‘디자인 가안채’(www.gaanche.com)라는 회사가 민족문제연구소에 전화해왔다. 가안채는 3·1절을 기념하여 태극기와 독립신문을 디자인한 손수건을 제작·판매하였고 그 수익금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우리 연구소에 각각 기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독립운동과 함께한 태극기·독립신문 손수건’이라는 주제로 제작된 이 손수건은 ‘카카오 메이커스’ 플랫폼에서 2주 만에 3,500여 장이 판매되는 등 호응이 좋았다고 한다. 강효숙 가안채 대표는 기부와 함께 연구소 후원회원에 가입하였고, 2022년 8월 1일 연구소에서 진행한 ‘독립운동을 활용한 문화컨텐츠 제작사례’ 강좌에 강사로 참여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강효숙 가안채 대표에게 기부 이유를 물었다. “2019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유물을 활용한 상품개발을 계기로 우리 근현대사 관련 콘텐츠로 상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 독립의 역사를 기억하거나 이를 알릴 수 있는 유물을 찾아 <대한독립과 함께한 태극기, 독립신문>이라는 주제로 손수건을 제작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 임시의정원 태극기와 임시정부 소식지 역할을 한 독립신문을 큰 주제로 손수건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예상 외로 반응이 폭발적이었고 이 상품을 구매하신 분들의 뜻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처음에는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려 했으나 전액 기부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기부처를 찾던 중 임시의정원과 독립신문에 가장 연관성이 높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 현금과 현물을 기부했어요. 그런 다음 평소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던 민족문제연구소에 기부하게 되면서 연구소와 소중한 인연이 시작되었네요.”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밀집되어 있는 부천시

조선의용군 전모, 자료소개 귀국한 관계자 좌담회

2022년 12월 27일 729

[자료소개] 조선의용군 전모, 자료소개 귀국한 관계자 좌담회 1945년 9월 초 옌안(延安) 나가평(羅家坪)을 출발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는 조선독립동맹·조선의용군 대원과 가족들 출석자 명단 심운(沈雲) 전 조선의용군 제2지대원 이일청(李一淸) 전 조선의용군 선견종대원(先遣縱隊員) 박훈(朴薰) 전 조선의용군 공작반원 고찬보(高贊輔) 전 조선의용군 선전부원   ① 왜군과 감투(敢鬪), 천하에 용명(勇名) 연안을 중심한 진동남변구(晋東南邊區)를 근거로 하여 팔로군과 함께 포악무쌍한 왜군과 영웅적인 전투를 감행하여 그 용명을 천하에 날린 조선의용군의 존재는 우리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독립동맹이 경성에 특별위원회를 조직하는데 따라 입경한 동맹원 중에는 조선의용군에 적을 두고 분투했던 관계자들이 많다. 본사에서는 이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용군의 전모를 이야기 들을 기회를 얻었다. 본사 : 조선의용군이 조직된 경로부터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고찬보 : 조선의용군은 1942년 7월 20일 하북(河北)과 산서(山西)의 접경인 진동남변구에서 무정(武亭) 장군의 통솔 아래 결성된 것입니다. 심운 : 이보다 먼저 1938년 10월 10일 황포군관학교의 후신인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조선인 300여 명을 중심으로 한구(漢口)에서 조선의용대라는 것을 조직하였습니다. 이것이 한구 함락 직전의 일인데 그 후 정세 변화에 따라 양자강 이북에 있던 제1지대, 이남에 있던 제2지대와 제3지대가 행동을 개시하여 낙양(洛陽)을 향하여 북으로 올라오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940년 3월에는 전원이 낙양 에 집결하는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고찬보 : 낙양에 집결한 우리는 목적지인 진동남변구를 향하여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낙양서 진동남변구를 가려면 황하를 건너야 하고 이 황하를

덕수궁

2022년 12월 27일 384

[후원회원 마당] 덕수궁 김유 광동지부장 도심 속의 고궁, 그러나 쓰라린 역사를 간직한 곳. 분주한 도시생활 중에 세월의 유장함을 느끼고자 오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알고서 찾는 것일까. 나는 지난주에 우연히 시청 앞에 있는 덕수궁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늦가을의 단풍은 노란색과 붉은 빛이 어우러졌다. 그리고 소나무의 푸른빛도 함께였다. 이제 단풍도 오늘이 지나면 아마도 마지막일 것이다. 서산의 저녁 햇살, 만추의 길목에 서있는 낙엽들의 향연, 단풍을 즐기러 온 사람들 그들 모두는 손마다 카메라를 들고 사라지는 가을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을을 즐기러 온 사람들, 그러나 바람에 소소히 날리며 떨어지는 나뭇잎, 하루의 쓰러져가는 황혼 빛에 하나의 왕조가 무너지는 비운의 터임을 알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중에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중화문과 이따금 달력의 그림에도 나오는 중화전을 거쳐 석조전의 계단에 앉았다. 여기서 쓰러져가는 왕조를 회상하였다. 연못이 있고 몇 포기 가을 억새가 지는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시성 두보는 쓰러진 왕조를 두고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가 무너져도 산과 강은 남아있네).”라고 피눈물을 뿌리며 읊었다. 을사늑약이 맺어진 중명전은 여기서 멀지않다. 고종의 처소인 함녕전은 지척이다. 이곳은 선조가 임진왜란의 전화(戰禍)가 끝나 한양으로 돌아와 즉시 왕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임시로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임시 거처로 삼으면서 ‘정릉동 행궁’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였고 나중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경운궁이라고 불리었다. 인조가 반정에 성공한 후 왕위에 오른

신흥무관학교의 노래 (2) : 신흥학우단 단가

2022년 12월 26일 606

[항일노래 함께보기 2] 신흥무관학교의 노래 (2) : 신흥학우단 단가 이명숙 선임연구원·강태구 근대음악 연구가 2017년 연구소에서 발간한 노동은 선생님의 유작 ????항일음악 330곡집????은 올해로 발간 5주년을 맞았다. <항일음악 330곡집>에 다 담지 못했던 항일노래 이야기를 이번 달 ????민족사랑????부터 싣는다. 노래가 만들어지고 불리던 시기의 역사적 사실, 관련 사건이나 단체·인물 등에 관한 내용과 함께 노래가 가진 음악적 특징 등을 소개하려 한다. 노동은 선생님과 편찬 작업을 함께 했던 이명숙 선임연구원과 강태구 근대음악 연구가가 원고 집필을 맡았다. 역사적으로, 음악적으로 더 풍부해진 항일노래를 만나보길 기대한다. – 편집자 주   신흥무관학교의 노래로 소개할 두 번째 곡은 신흥학우단 단가이다. 현재까지 2개의 단가가 전해진다. 신흥학우단은 신흥무관학교가 1911년 6월 개교한 후 약 2년만인 1913년 5월 6일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 신흥강습소에서 ‘신흥교우단(新興校友團)’으로 먼저 창단됐다. 이 같은 사실은 2010년 신흥교우단의 기관지 <신흥교우보> 제2호(1913.9.15.)가 발굴·수집되면서 확인되었다. 이전에는 신흥무관학교 출신자들의 증언과 <신흥학우보(新興學友報)> 제2권 제2호(1917.1.13.), 제2권 제10호(1918.7.15.)를 통해 ‘신흥학우단’이 독립운동의 조직적 전개와 신흥무관학교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조직돼 활동했다고 알려졌다. 이 세 개의 기관지가 현재까지 전해진 신흥무관학교의 유일한 기록물이다.   <신흥교유보>제2호 <신흥학우보>제2권 제2호 <신흥학우보>제2권 제10호 신흥교우단의 창단과정은 <신흥교우보>에 실린 「신흥교우단 역사의 대개(大槪)」에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1913년 5월 6일 오후 2시 신흥강습소에서 학생 일동이 모여 장시간 협의 끝에 단 조직을 결정하고 명칭과 규칙 등을 논의·결정한 후 같은 달 두 차례의

‘고양시 일제잔재 청산 연구용역’ 완료

2022년 12월 26일 504

[초점]  ‘고양시 일제잔재 청산 연구용역’ 완료 •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연구소는 고양시가 발주한 “일제잔재 청산지원 추진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11월 29일 완료하고 결과보고서를 발주기관에 제출하였다. 4월 20일 고양시 용역사업에 응찰하고, 6월 2일 계약을 체결한 후 문헌과 현장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일일이 확인하는 6개월 간의 작업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연구팀에는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를 연구책임자로 조세열, 박광종, 이순우, 방학진, 심철기, 임무성, 김혜영 연구원이 참여하였고, 고양시의 친일인물, 기념비·건축물 등의 시설물, 친일 논설 및 신문기사 등 고양시의 유·무형 일제잔재 현황조사와 일제잔재 청산 지원 추진계획의 수립을 위한 비전과 목표 제시를 과제로 수행하였다. 각자 맡은 과업에 대한 보고와 토의를 병행한 6차례의 전원회의, 3차례의 고양시 보고회, 전문가와 시민참여자가 함께한 2차례의 자문회의, 현장을 확인하고 촬영하는 6차례의 답사 등을 진행하였다. 연구소는 그간 경기도가 발주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 연구용역”을 2019~20년간 수행하며 도내 각 시군에 광범위하게 남아있는 친일문화잔재를 발굴하여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경기도는 이를 바탕으로 항일 및 친일 문화콘텐츠 공모사업을 시행하여 시민의 역사의식을 높이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또한 친일인물·식민통치 관련 기념물 등에 대한 안내판 작성 사업도 후속 사업으로 추 진하여 시민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21~22년에는 충청남도가 발주한 “충청남도 친일잔재 기초조사 연구용역”을 수행하여 충남 출신 친일인물의 행적과 또한 그들과 관련된 비석·기념물,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 토지의 기초조사를 완료하여 보고하였다. 충남의 연구용역 사업은

공익사단법인에 대한 과도한 규제에 제동 민족문제연구소, 서울시교육청 상대 소송 일부 승소

2022년 12월 26일 436

[초점] 공익사단법인에 대한 과도한 규제에 제동 민족문제연구소, 서울시교육청 상대 소송 일부 승소   공익법인에 대한 감독청의 과도한 규제에 제동을 거는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이상훈)는 지난 11월 24일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제기한 ‘기본재산편입예외 기부금사용승인신청 반려처분 등 취소 청구의 소(2021구합68551) 1심 선고에서 “피고가 2020. 11.27. 원고에 대하여 한 상근임직원 정수승인신청 반려처분을 취소한다.”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20. 10. 20. 민족문제연구소가 감독청의 정수승인을 받지 않고 상근 임직원을 채용하여 공익법인법 제5조 제9항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경고처분하고, 이어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출한 정수승인신청을 상근임직원 인건비 지급 기준 미충족을 이유로 반려하였다. 「서울시교육청 공익법인 운영 인·허가 세부기준」에 따르면 ‘상근임직원의 인건비는 운용소득의 20% 이내’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출한 서류를 검토한 결과 인건비를 기부금에서 지급하고자 하는 것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이 반려 사유였다. 이번 판결은 서울시교육청의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정수승인신청 반려처분을 취소하라는 요지이지만, 기부금의 상근자 급여 지급을 목적사업 수행으로 해석하여 학술연구단체 등 공익사단법인의 특성을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사실상 ‘원고 전부 승소’에 가까운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1심 선고는 12월 16일 서울시교육청이 항소를 하지 않음에 따라 확정됐다. 관계자들은 향후 공익사단법인들이 겪었던 인력운용에 대한 어려움이 많이 해소되어 시민단체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간 외부 단체로 소속을 옮겨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용역을 받아 일해 왔던 기존의 상근자들도 기형적 구조를 청산하고 다시 민족문제연구소로 복귀해

심산 김창숙 서거 60주기 추모 특별전 개막

2022년 12월 26일 395

[초점] 심산 김창숙 서거 60주기 추모 특별전 개막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사 정햇살 근현대사기념관은 심산 김창숙 서거 60주기를 맞아 독립, 민주, 통일 운동에 평생을 바친 김창숙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되새겨보는 <심산 김창숙 서거 60주기 추모 특별전> ‘시대에 맞서 싸운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을 12월 14일 개막하여 2023년 3월 30일까지 진행한다. 추모 특별전은 서울시 강북구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하고 심산김창숙기념관 후원으로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였다. 개막식은 12월 14일 연구소 함세웅 이사장, 임헌영 소장, 근현대사기념관 윤경로 관장, 강북구 이순희 구청장, 강북구 의원 최미경의원, 심산 김창숙선생 손자 김위 선생, 손녀 김주 여사, 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김수옥 여사, 조광전 국사편찬위원장, 성균관대학교 김시업 명예교수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내빈들의 인사 말씀과 테이프 커팅이 있은 후 장원석 학예실장의 전시 해설을 끝으로 개막식이 마무리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심산김창숙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파리장서운동’과 ‘2차 유림단 의거’ 등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을 중심으로 민족문제연구소, 독립기념관, 국가기록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 관련 기관들이 소장한 다양한 유물과 자료들이 공개된다. 특히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선생의 친필 편지와 벼루, 인장 등 다수의 귀한 유품들이 처음으로 전시된다. 김창숙 선생은 국망의 위기 앞에서는 외세와 매국세력에 맞서 국권수호운동에 나섰고,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와 친일부역자들에 맞서 비타협적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고령의 나이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분단·독재세력에 맞서 평화통일과 민주주의를 앞장서 외쳤다. 시대의 불의에 맞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