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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기행

2021년 10월 29일 975

[답사기]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기행 지난 10월 14일 학예실 상근자들은 군산대의 지역사회 열린강좌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하는 독립운동활동가를 통한 통일 바라보기> 강의를 위해 함께 군산에 방문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군산역사관, 군산평화박물관, 군산미군기지 답사를 다녀왔는데요.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은 식민지역사박물관에도 자료를 기증해 주신 이치노헤 쇼코 스님이 다량의 자료를 기증해서 만들었다고 하여 가보게 되었고, 군산 평화박물관은 최근 개관하여 방문하였습니다. 아침 8시 30분에 서울에서 출발하니 거의 12시 딱 맞춰서 군산 근대문화유산거리에 도착했습니다. 1.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 군산에는 ‘근대문화유산거리’가 조성되어 곳곳에 스탬프 투어를 안내하는 조형물과 스탬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은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무료로 개관한다고 합니다. 입구로 들어가 보니 2층 전시실은 원래 상설전시실인데 현재는 전시 준비 중으로 운영하지 않아 3층의 기획전시만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에서는 <매의 눈으로 조선을 보다 – 2부 근대지도전> 기획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1부 조감도전에 이어 지난 10월부터 2부 근대지도전을 시작했는데요. 저희는 감사하게도 전민재 학예연구원의 특별 해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획전은 일제 임시토지조사국의 토지조사사업을 소개한 후 일제가 어떻게 지리교육을 했는지 교과서 등을 통해 보여줍니다. 측량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행정적 성격의 전국 지도(토성약도, 특산물 분포도, 교통 전도 등)와 군산 각종 지도(지번 지도, 시가지도 등)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침략전쟁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지도들(대동아전쟁 지도, 러일전쟁 지도 등)을 소개합니다. 일제가 강제병합을 기념하여 대일본전도를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병합하자마자 조선을 일본의 영토로 함께 소개하고 있고,

한국인·조선인 BC급 전범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기까지 – 故 이학래 동진회장 2주기를 맞아

2021년 10월 29일 1110

[기고] 한국인·조선인 BC급 전범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기까지 – 故 이학래 동진회장 2주기를 맞아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 이학래 어르신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고인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아들로 태어난 잘못으로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사셨습니다. 이승을 떠나시는 순간까지 슬픔과 분노 속에 그 억울함을 어찌 감당하셨습니까. 저는 어르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오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께서 남기신 <한국인 BC급 전범 이학래 회고록>을 차마 읽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화가나고 속상한 마음이 숨통을 조여와 지금까지도 다 읽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르신을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12월입니다. 저는 1989년부터 유족회 활동을 하면서 일본을 오가며 일본한테 빼앗긴 아버지의 작은 흔적이라도 더 찾아보려고 힘쓰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일본 국회의원회관 도로변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진행하는 한국인 BC급 전범 피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재판이 열리고 있었는데, 유족 대표로 제14회 증인심문을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간 변광수 씨가 이학래 어르신을 모시고 농성장소에 왔습니다. 우리를 응원을 하러 오신 것이죠. 대단히 반가웠지만 인사만 했을 뿐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 후 이학래 어르신이 한국에 오셔도 바쁜일정에 따라 움직이시니까 별도로 만나서 따뜻한 식사 한 번 대접하지 못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잠깐 잠깐 만난 것뿐입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저희 같은 사람들은 일본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습니다. 언어의 장벽

기증자료

2021년 10월 29일 512

[기증자료] • 안미정 자료실 주임연구원 • 9월 26일, 임종국 선생의 누이동생인 임경화 회원(수원지부)이 <이상전집> 초판본(문성사, 1966)을 기증했다. 1950년대 중반 고려대 늦깎이 대학생 시절 임종국은 이상(李霜) 문학에심취해 이상의 문학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56년 7월 태성사에서 전3권으로 구성된 <이상전집>을 출간했다. 이상 문학 연구의 불모지였던 당시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최초의 이상 작품 전집이었다. 태성사판 <이상전집>은 출간 즉시 큰 호응을 얻었으나 1959년 3판을 찍은 후절판되고 말았다. 1966년 이것을 개정 증보하여 문성사에서 새로 출판했다.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 기념 콘텐츠공모전 시상식

2021년 10월 29일 730

[초점]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 기념 콘텐츠공모전 시상식 • 방학진 기획실장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상임대표 윤경로)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을 맞아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공모전을 개최했다.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해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음악, 회화, 문학,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응모작을 모집한 결과 50여 점이 출품되었다. 9월 13일 열린 심사에는 김완태 전 육사 교장, 역사학자 조재곤 박사, 이지상 가수가 참여해 대상 4명, 우수상 10명을 선정했다. 심사 결과 대상인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회장상은 이석영 6형제를 소재로 한 희곡을 출품한 이종화님, 국가보훈처 처장상은 석주 이상룡을 소재로 타임슬립 형식의 웹툰을 출품한 김준성 님, 육군사관학교 교장상에는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창작곡을 출품한 오태석 님, 경희대학교 총장상에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뮤지컬을 출품한 대구 성서고등학교 뮤지컬동아리 블 랙홀이 각각 선정되었다. 우수상은 1929년부터 1938년까지 만주에서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한 조선혁명군의 깃발을 꽃으로 표현한 김수빈 님을 비롯한 10명이 선정되었다. 시상식은 10월 22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에서 열렸고 대구MBC, YTN라디오 등이 취재했으며 선정작품은 연구소 홈페이지 등을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 웹페이지 일본어 서비스 시작

2021년 10월 29일 453

[초점] <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 웹페이지 일본어 서비스 시작 • 김승은 학예실장 2020년 연구소는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개관에 대응해 일본 근대 산업유산 시설이 은폐하고 있는 역사를 알리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이어 올해 10월에는 노기 카오리 선임연구원의 번역으로 일본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웹페이지는 2017년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든 세계유산 가이드북 <일본의 메이지산업혁명유산과 강제노동>의 내용에 근거하여 작성되었다. 최근까지 현장 답사를 통해 조사한 내용도 담겨 있다. 이 웹페이지에서는 산업유산 등재 과정과, 이후 일본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외면한 채 강제동원․강제노동 사실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선전을 강화해 온 사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각 산업시설에 담긴 전체역사와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 연합군포로의 강제노동 실태도 소개했다. 특히 강제동원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요약해 소개하고 있으니 실제 산업시설 현장에서 벌어진 생생한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일본이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의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는지도 일본 교과서를 통해 짚어 보았다. 이러한 상세한 내용과 자료의 소개는 지난 6년간 일본의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와 함께 한 현지조사와 연구작업을 통해 가능했다. 특히 강제동원 전문가 다케우치 야스토 씨가 적극 협력해 주셨고, 일본어 페이지의 감수도 맡아 주셨다. 지난 7월 2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설명하도록 시정할 것을 촉구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일본 산업유산 시설의 진실을 알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행동 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이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출간 기념 대담

2021년 10월 29일 489

[초점]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출간 기념 대담 • 방학진 기획실장 문학평론가인 임헌영 소장은 10월 8일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을 펴냈다. 이 책은 임헌영의 유년 시절부터 두 번의 수감생활을 거쳐 민족문제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현재의 생애까지를 집약한 자전적 기록으로 유성호(한양대 국문과 교수)와 함께한 대화록이다. 2005년 리영희 선생의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대화>에서 질문자로 나선 임헌영 소장은 이번에는 자신의 삶과 세계관을 밝히고 있다. 임헌영 소장과 유성호 교수의 첫 대담을 시작한 지 13개월 만에 출간을 기념하는 이번 대담이 10월 20일 식민지 역사박물관 5층 강당에서 열렸다. 임헌영 소장, 유성호 교수가 출연했고 방학진 기획실장이 진행했다. 대담에서 임헌영 소장은 유년시절 대구 10월 항쟁의 여파로 희생당한 가족 이야기를 시작으로 안동사범학교 졸업 후 모교인 조문초등학교 교사 재직 시절 맞이한 4·19를 통해 학교를 그만두고 상경해 문학인의 길에 들어선 계기와 여러 문인들과의 교류, 순수-참여문학 논쟁의 본질, 정치인 김대중·김상현과 월간 <다리> 활동, 박현채·권오헌 등 평생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동지들, 유신 이후 조작 사건인 ‘ 문인간첩단 사건’과 ‘남민전’ 사건의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만 약 520명, 주요 사건과 단체가 약 200개가 넘기에 대담 시간 2시간은 너무 부족하여 조만간 대담 2부를 진행키로 했다. 2부에서는 한길사,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산문, 민족문제연구소 등을 주로 다룰 예정이다. 이날 대담에는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을 출판한 한길사 김언호 대표,

황금물결 출렁이는 빼앗긴 들

2021년 10월 29일 886

황금빛 들판으로 변해가는 수확의 계절 10월. 농촌은 한 해 농사의 결실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에 여념이 없을 시기다. 그러나 풍성한 들판을 보고도 웃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일제가 강제 병합한 1910년 이후 조선의 쌀 가격은 일본의 시장과 연동되어 일본이 쌀가격을 마음대로 책정하게 되었다. 지속되는 전쟁 속에 일본 국내에서 쌀 수요가 폭증하자, 일제는 1920년부터 1934년까지 식민지 조선에서 대대적인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했다. 산미증식계획의 명분으로 조선농촌의 경제적 향상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일본 국내의 쌀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조선을 식량기지화하는 것이었다. 일제가 역점을 둔 사업이 토지개량사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사업이 수리조합사업이었다. 쌀 증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리시설의 안정화와 경작지의 확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쌀 생산량이 증가하게 되면서 싼 가격에 일본으로 쌀 이출(移出)이 크게 늘어났다. 그 결과 조선은 극심한 식량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부 지주들은 배를 불리는 반면 대부분의 농민은 초근목피로 근근이 생활하였다. 부족한 조선인의 식량은 만주산 잡곡으로 보충하였지만, 결국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식량문제가 점점 악화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수요를 억제하기 시작했다. 국민총력조선연맹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식량 절약 운동을 전개하여 조선인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빼앗긴 들에 봄이 올 때까지 버티고 또 버티는 삶을 살았다. 불과 80여 년 전의 일이다. • 강동민 자료팀장

조선 전역의 신사(神社) 및 신사(神祠) 총목록(1)

2021년 10월 6일 1872

[식민지 비망록 74] 조선 전역의 신사(神社) 및 신사(神祠) 총목록(1) 이순우 책임연구원 정리   지난달에 이곳 지면에 소개한 「식민지비망록 일흔 세 번째」 “식민통치기간에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일제 신사가 만들어졌을까?”라는 글을 통해 일제 때 무수하게 존재했던 일제 신사(神社, 진쟈)와 신사(神祠, 신시)의 조성배경과 허가추이, 그리고 지역적 분포에서 나타난 특징을 두루 살펴본 바 있다. 이때 신사조성 연혁의 기초자료로 삼기 위해 조선 전역의 신사목록을 함께 정리하였는데, 이번에 다시 그 내용을 두 차례에 걸쳐 일괄 공개하고자 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존재했던 신사의 총 숫자에 대해서는 보통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1910~1992)가 지은 <조선종전의 기록 ― 미소양군의 진주와 일본인의 인양(朝鮮終戰の 記錄 ― 米ソ兩軍の 進駐と 日本人の 引揚)>(1964), 108쪽에 수록된 것이 가장 유용한 근거자료로 사용된 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쉽게도 세부 목록 없이 조선신궁(朝鮮神宮)과 부여신궁(扶餘神宮)을 포함하여 조선 전체의 각종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합쳐 모두 1,141개소(1945년 6월말 현재)가 존재했다는 집계표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총독부관보>의 「휘보(彙報)」에 수록되는 ‘신사 창립 허가’와 ‘신사 설립 허가’의 내역을 전부 취합하더라도 그 숫자는 949개소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다 대륙신도연맹(大陸神道聯盟)의 <대륙신사대관(大陸神社大觀)>(1941)에 정리된 신사 목록을 대조하여 누락분(49-3=46개소)을 가려내고 또한 <경기도보(京畿道報)>에서 확인한 사례(14개소)를 모두 합하더라도 1,009개소를 넘지 못한다. 요컨대 일제가 패망하던 바로 그 순간에 이 땅에는 모두 1,141개의 신사관련시설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조선신궁과 부여신궁을 포함하여 모두 1,011개소만 그 구체적인 위치가 확인될 따름이고, 나머지

심산 김창숙 선생의 유품인 안경을 기증받아

2021년 10월 6일 644

[초점] 심산 김창숙 선생의 유품인 안경을 기증받아 • 방학진 기획실장   성균관대학교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인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의 안경을 손녀인 김주 여사와 외손주 김태욱님이 8월 27일 연구소에 기증했다. 김태욱님은 효창 독립커피를 기획한 연구소 후원회원이기도 하다. 김창숙선생의 안경테는 망실된지 오래되어 안경알만 김주 여사가 보관해 오던 것을 연구소가 전문업체에 의뢰하여 당시 안경테로 복원을 마친 것이다. 김주 여사는 “테가 망가져 버려 알만 남긴채 참 오랫동안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사하면서 안경알이 나왔다”면서 “기증처로 성균관대학교와 심산김창숙기념사업회를 생각하기도 했으나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심산 선생의 뜻을 잘 이어갈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날 안경을 기증받은 윤경로 식민지역사박물관장은 “심산은 선비의식을 끝까지 지키신 분”이라며 “그분의 한 몸과 같았던 안경을 우리 박물관에 보관함으로써 그 정신을 잘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기증식에는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기증자료

2021년 10월 6일 694

[기증자료] • 김슬기 학예실 연구원 • 6월 21일, 이춘상기념사업회는 서화가 여태명 교수의 글씨 1점을 기증했다. 글씨의 내용은 “너는 환자들에게 못된 짓을 많이 하였으니 내 칼을 받아라!”로 이춘상 의사가 소록도 갱생원 원장 스오 마사스에를 처단하면서 외친 말이다. 이춘상 의사는 1916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40년 소록도갱생원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로 당시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조선총독부 고위 관리인 갱생원 원장 스오를 처단하여 소록도의 실상을 세상에 알렸다. 1943년 2월 19일 대구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 안미정 자료실 주임연구원 • 8월 17일, 중국 광동지부(지부장 김유)에서 <정률성 평전> 등 관련 도서 12권을 기증했다. • 9월 1일, 이건제 후원회원이 <함석헌 전집>, <우남노선> 등 도서 60권을 기증했다. • 9월 6일, 서승(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법학과 특임교수,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동아시아평화연구소 소장) 후원회원이 평생을 수집한 도서 약 300박스를 기증했다. 1945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서승 교수는 도쿄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유학하던 중 1971년 4월 보안사에 불법 체포되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당국의 공작에 맞섰고, 고문 수사를 받던 중 분신을 시도하 여 온몸에 중화상을 입었다.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동생 준식과 함께 기소되어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90년 2월 28일 석방될 때까지 ‘비전향장기수’로 19년간 갇혀 있었고 석방 이후에는 리츠메이칸 대학 법학부 교수로 일하며 고문 반대운동 등 인권 운동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