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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2021년 근현대사기념관 학술회의 〈신간회, 식민지 조선의 ‘정치’와 운동〉 개최

2021년 10월 6일 781

[초점] 2021년 근현대사기념관 학술회의 〈신간회, 식민지 조선의 ‘정치’와 운동〉 개최 •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원 홍정희 9월 3일 금요일,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근현대사기념관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며, 강북구와 한국역사연구회가 후원하는 2021년 근현대사기념관 학술회의 <신간회, 식민지 조선의 ‘정치’와 운동>을 개최하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신간회 해소 9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신간회의 ‘정치’운동과 조선총독의 정책에 대한 연구, 1920년대 좌우통합의 독립운동과 일제하 합법적 정치운동의 의미, 신간회에 참여하였던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분석함으로써 1930년대 이후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세력의 동향에 대해 조명하는 자리였다. 학술회의는 임헌영소장의 개회사와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Ⅰ부에서 주제발표 및 토론, Ⅱ부 종합토론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신간회, 식민지 조선의 ‘정치’와 운동> 학술회의 Ⅰ부는 심철기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실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제1주제 「일본 정당정치기 사이토 총독의 ‘문화정치’와 신간회」는 광운대학교 전상숙 교수가 발표하였다. 민족주의세력과 사회주의세력이 연합하여 결성한 신간회가 일제하 ‘문화정치’시기 합법적 정치운동 단체로 결성될 수 있었던 ‘정치참여의 공간’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고 그것이 식민지시기 일본의 조선지배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석하였다. 토론자 김민철 경희대학교 교수는 ‘정치’를 근대국민국가를 전제로 하는 좁은 인식에서 벗어나 광의의 개념으로 확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이어서 제2주제 「신간회의 ‘민족동권’운동과 식민지배 체제의 균열적 성격」은 순천대학교 윤효정 교수가 발표하였다. 발표자는 재만동포운동으로 대표되는 신간회의 ‘민족동권’운동은 직접적인 식민지배 체제를 전복하고자 했던 반제투쟁은 아니었지만, 식민지배 이데올로기를 균열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반(反)식민주의적이었다고 분석하였다.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발표자가

일본 산업혁명유산 시설에 동원된 한국의 피해자 증언

2021년 10월 6일 867

[학술심포지엄 요지] 일본 산업혁명유산 시설에 동원된 한국의 피해자 증언 김승은 학예실장 지난 9월 18일, 일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주최한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묻다-7.22 유네스코 결정이란?”이라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제목에 나오는 “7.22 결정문”이란 제4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 정부가 ‘메이지 일본 산업 혁명 유산’에 관한 권고를 ‘완전히 이행하지 않은 것은 지극히 유감’이라며 채택한 결정문을 말한다. 이 결정에 앞서 유네스코와 이코모스(ICOMOS)는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하였다. 그리고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해설이 충분하지 않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적절한 전시가 없다’, ‘전체 역사에 관한 해설에 있어서도 비슷한 역사를 가진 다른 산업유산과 비교해 볼 때 강제 노역과 군사 목적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이 충분히 설명된 국제적 모범 사례에 미치지 못 하고 있다’, ‘(한·일 간에) 향후 대화가 중요하며 추구되어야 한다’라고 결론지었다. 일본 정부는 그 동안 ‘약속한 조치를 포함해 성실히 이행해 왔다’고 했지만 유네스코는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따라서 이번 심포지엄은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를 유네스코 결정에 따라 개선하라고 촉구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 심포지엄에서는 유네스코 결정문의 채택 배경과 의의, 산업유산정보센터의 문제점 등을 주제로 4개의 발표가 있었다. 그 가운데 김승은 학예실장이 발표한 ‘일본 산업혁명유산시설에 동원된 한국의 피해자 증언’을 요약해 소개한다. 이 발표문은 식민지역사박물관의 특별전을 위해 일본의 산업유산 시설에 동원된 피해자 구술 기록의 조사와 공개 과정에서 파악한 강제동원 피해자 구술기록의 현황과 문제점, 피해자 증언이 밝힌

추석에 떡을 금지한다 – 경고문

2021년 10월 6일 1037

[소장자료 톺아보기 30] 추석에 떡을 금지한다 – 경고문 • 강동민 자료팀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 한여름의 땡볕을 이겨내고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수확의 계절인 가을. 달이 유난히도 밝은날에 우리는 풍요를 기리면서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이때는 오곡이 익는 계절로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거운 놀이로 밤낮을 보냈기 때문에 늘 이날처럼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빼앗긴 들에서 수확한 곡식으로는 풍성한 추석을 보내기 어려웠다. 1943년 9월 3일자 <경고문>을 통해 식민지 조선인이 어떻게 추석을 보내야 했는지 알 수 있다. 이 <경고문>은 1943년 추석을 맞이해 상주군 유도회와 상주군, 국민총력상주군연맹, 상주경찰서가 침략전쟁시기 전시생활 지침을 내린 문서이다. 5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고문>은 1. 매일아침 궁성요배와 정오 묵도를 할 것, 2. 8월 15일 추석제사에는 절대로 떡을 장만하지 말 것, 3. 비용을 극도로 절약하고 관혼상제시 새 옷을 만들거나 떡을 절대 만들지 말 것, 4. 8월 15일, 기타 명절에는 새 옷을 절대로 만들어 입지 말 것, 5. 국민개로운동에 순응하여 부녀자의 옥외운동을 힘쓸 것(단, 몸뻬를 착용할 것) 등이 적혀 있다. ‘절미운동, 추석에 떡하지 맙시다’, <매일신보> 1939.9.25.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시국의 급박함’을 내세워 쌀을 아끼기 위해 추석에 떡을 하지 말 것을 선전하고 있다. 또한 경성부윤,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등 각계 인사들의

식민통치기간에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일제 신사가 만들어졌을까? ‘1군 1신사(神社)’와 ‘1면 1신사(神祠)’의 건립을 강요하던 시절

2021년 8월 27일 2626

[식민지 비망록 73] 식민통치기간에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일제 신사가 만들어졌을까? ‘1군 1신사(神社)’와 ‘1면 1신사(神祠)’의 건립을 강요하던 시절   이순우 책임연구원   2020년 정초 무렵에 경기도 양주시 남면행정복지센터(옛 남면사무소) 앞에 일제 때 만들어진 비석 하나가 남아 있다는 얘길 듣고 서둘러 그곳을 탐방하러 길을 나선 적이 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곳은 분명 ‘남면(南面)’인데 그 위치가 정작 양주시의 제일 북쪽에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알고 봤더니 원래 이 지역은 경기도 연천군에 속했으나 해방 이후 1945년 11월 3일에 이르러 군정청 법령 제22호 「북위 38도 이남에 연접한 군촌면읍시(郡村面邑市)의 관할구역 임시이전」에 따라 ‘파주군 남면’으로 조정되었다가 다시 1946년 2월 5일 ‘양주군’ 관할로 이관 처리된 내력을 지녔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에 이곳은 어디까지나 연천군 남면이었던 것이다 경기도 양주시 남면행정복지센터에 남아 있는 ‘히라누마 젠쵸(윤선장) 송덕비’의 모습이다. 1940년 11월에 건립된 이 비석은 신산체육공원과 남면사무소의 구내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친일잔재논란과 관련하여 2019년에 철거되어 별도로 보관중인 상태이다.   아무튼 양주시 남면행정복지센터의 창고 옆쪽에서 바닥에 뉘어놓은 옛 비석 하나를 살펴보았더니 거기에는 “학무위원 겸 면협의회원 히라누마 젠쵸 송덕비(學務委員兼面協議會員 平沼善長頌德碑)”라는 글씨가 또렷하다. 이를 단서로 관련 자료를 뒤져보니 이 이름은 윤선장(尹善長, 1879~?)의 창씨명이며, 그가 연천군 남면 상수리 구장(1937.6)을 지냈다거나 양주세무서 관내 조선주 제조업자 총회에서 탁주 1등상을 수상(1937.10)했다거나 연천군 남면 면협의회원(1939.5)의 당선자라거나 하는 등의 경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비석의

잊혀진 ‘뭉우리돌’을 찾아 나선

2021년 8월 26일 991

[인터뷰] 잊혀진 ‘뭉우리돌’을 찾아 나선 -김동우 작가 인터뷰 : 방학진 기획실장 정리 : 김혜영 선임연구원 ‘뭉우리돌’의 사전적 의미는 ‘모난 데가 없이 둥글둥글하게 생긴 큼지막한 돌’이다. <백범일지>에서 차용한 이 단어는 독립운동 정신을 상징한다.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김구 선생은 일본 순사가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자신을 협박하자 이 말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며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답했다.  올곧은 일에 생을 바치고자 했던 뭉우리돌들, 전 세계 곳곳에 굳건히 박혀 대한 독립을 일궈낸 뭉우리돌의 역사. 독립기념관 자료를 샅샅이 뒤져 주소 한 줄, 사진 한 장으로만 남은 국외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니며 사라져가는 역사의 현장과 그곳에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을 사진과 글로 남긴 김동우 작가를 만나보았다. 김동우 작가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신문사 기자로 일했으며 세계 60 여개국을 여행했다. 중국, 인도, 멕시코 등 10 여개국의 우리 독립운동 사적지 200여 곳을 직접 방문, 카메라로 기록해 2019년 사진집 <뭉우리돌을 찾아서>를 출간했다. 그 후 독립운동사적지와 그곳에 사는 후손을 찍은 사진을 전시하는 개인전과 단체전을 여러 차례 개최했다. 지난 5월 18일부터 강북구의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쿠바 한인 이주 100주년 기념 특별 사진전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를 열고 있으며, 최근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의 우리 독립운동 유적지를 다룬 <뭉우리돌의 바다>를 펴냈다. ●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전시 중인 ‘기억, 잃어버린

광저우기의열사능원(廣州起義烈士陵園)

2021년 8월 27일 787

[후원회원 마당] 광저우기의열사능원(廣州起義烈士陵園)   김유 중국 광동지부장 슬픈 노래 그리고 마침 비가 오는지라 높게 이는 연못물이 아득하고 구슬퍼서 물결을 가르고 또한 헤집는 듯하였다. 우산을 펴고 희생자 분향탑을 지나 뒤쪽으로 막 층계를 내려간 순간 보이는 크나큰 호수 그리고 갑자기 들려오는 음악소리, “저 음악은 1년 365일을 끊이지 않고 울립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끊임이 없습니다.” 안내해주는 분의 설명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음악소리는 공원에서 시시때때 틀어놓고 듣는 그런 소리는 아니었다. 해금을 닮은 깽깽이 소리가 구슬프게 하늘을 맴돌고 한동안 이어지다가 끊어지자 다시금 온갖 악기들이 어우러지면서 구곡을 끊어내는 듯 한꺼번에 울어내는 소리가 허공에 사무쳤다. 오늘 아침에 광저우기의열사능원을 간다고 하였을 때 그곳은 그저 과거의 지나간 한때였으며 혁명의 와중에 흔히 있는 싸움과 희생 그리고 후세의 승리자들에 의해 선별되어진 유적들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서 음악을 듣는 순간 달라졌다. 공원은 월수구(越秀區) 안에 있다.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로 혁명을 찬양한 기념비와 조각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곳은 광저우 코뮨의 3일 천하로 끝난 아쉬움, 사람이 많이 죽은 아픔으로 충만하다. 공원의 한가운데에는 당시 코뮨 때에 희생된 5천여 명이 넘는 시신이 모셔진 커다란 봉분이 있다. 그 봉분에는 150여 구의 조선인 시신도 있다고 한다. 1920년대의 광저우는 혁명의 중심지였다. 약 800명에 달하는 조선의 젊은이들이 조국광복을 위해 만주나 러시아, 일본 등에서 왔으며, 그들은 이웃나라 혁명의 성공이 조국독립의 선결조건이라고

친일파 열전, 화제의 신간으로 독자들의 호응 높아

2021년 8월 26일 712

[초점] 친일파 열전, 화제의 신간으로 독자들의 호응 높아 • 방학진 기획실장 연구소 창립 30주 년 특별 기획으로 역 사만화 <친일파 열전> 이 나왔다. 지난해 8 월 <35년>(전 7권) 을 완간한 박시백 화 백이 정확히 1년 만 에 친일파만을 다룬 <친일파 열전>을 펴 낸 것이다. 올초 연구 소의 제안을 받은 박 시백 화백이 다른 작 업을 일시 중지하고 반년 동안 <친일파 열전> 작업에 집중한 결과이다. 박 화백은 1984년 고 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전두환 독재에 맞 서 1986년 건대 항쟁과 1988년 미문화원 점거 투쟁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이후 박재동 화백의 뒤를 이어 <한겨레>에서 만평 을 그렸고 2001년 퇴사 후 12년 동안 <조선왕조 실록> 전 20권 완간해 이름을 알렸다. 2020년에 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35년> 전7권을 완간하 여 제14회 임종국상(문화부문)을 수상하였다. 8월 9일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출판 보 고회에서 박시백 화백은 “친일파들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한 상황에서 ‘친일청산’이란 무엇일 까. 그들의 친일행위 자체를 제대로 알리는 것 이 이 시대의 친일청산이 아닐까 싶다. <친일 파 열전>이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이라 고 소회를 밝혔다. <친일파 열전>은 <35>년의 후속작 성격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4,389명 중 연구소 연구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해방 이후까지 크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각 분야의 친일파 153명의 행적을 담았다. 정식 출간 전 예약 판매 때부터 예스24,

근현대사기념관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특강 진행

2021년 8월 26일 512

[초점] 근현대사기념관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특강 진행 • 근현대사기념관 홍정희 학예연구원 2021년은 일제강점기 비밀결사단체인 광복회 총사령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의 순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근현대사기념관은 1910년대 전국 지부에 연락 거점을 마련하여 군자금을 조성하고 독립전쟁을 위해 독립군을 양성하였던 광복회와 총사령 박상진을 조명해보는 특별강좌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을 진행하였다. 특강은 8월 7일 토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에 근현대사기념관 2층 강의실에서 현장수강과 함께 온라인 수강을 위한 촬영을 병행하였다. 촬영된 강의영상은 8월 11일 박상진 의사 순국일에 맞춰 홈페이지에 게시하였다. 첫 번째 강의는 박상진 의사의 증손인 박중훈 고헌학당 이사장이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의열투쟁의 선구자 박상진의 삶과 사상”이란 주제로 강의하였다. 박상진 의사가 추구했던 독립운동의 방향은 단순한 의열투쟁이나 해외 독립운동단체의 지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독립전쟁론의 실질적인 실천으로 볼 수 있다. 박상진 의사는 광복회의 결성으로 그 뜻을 이루고자 하였지만 군자금 모집 과정에서 체포되어 대구감옥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비록 박상진 의사의 삶은 힘들고 고되었지만 그의 사상은 많은 독립운동가에게 영향을 준 고귀한 희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강의였다. 두 번째 강의 “1910년대 국내 최대 비밀단체 광복회와 총사령 박상진”은 충남대학교 이성우 교수가 강의하였다. 한말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이 독립전쟁론으로 결합되는 과정과 이러한 연합으로 조직된 1910년대 국내 최대 비밀 단체인 광복회와 총사령 박상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강의였다. 광복회의

식민지역사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2021년 8월 27일 615

[후원회원 마당]   식민지역사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김선태 효창공원에서 백범묘소, 삼의사 묘소와 임정요원 묘소까지 둘러보면서 참배도 하고나자, 이제 우리 일행을 식민지역사박물관으로 안내하였다. 우리 역사의 아픈 매듭이자 가장 슬픈 역사가 되어야 할 일제침탈의 역사를 살피고 그 아픔을 새겨 민족의 앞날을 밝히자는 뜻의 박물관이지만, 참으로 슬픈 ‘식민지’라는 이름이 미리 그 아픔을 전달하고 있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은 대로변도 아닌 이곳 청파동 골목길 중에서 중앙이라 할 숙대앞길에서 다시 골목길로 들어서서도 한참이나 더 들어가야 하였다. 슬픈 이름의 박물관이 위치까지도 ‘이건 아닌데…’하는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멀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이란 간판을 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눈길을 사로잡은 동판에는 이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데 도움을 주신분들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모두 10개 안팎이나 걸려서 여기 이름을 올리지 못한 나에게 ‘부끄러워하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아서 위압감을 주었다. 박물관으로 들어서기 전에 입구 한 켠에 ‘반민특위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전시되어 있었다. 너무 뜻밖이어서 의아하였는데, 본래 있던 자리에 새로 호텔건물을 짓고 있는데, 그래도 다행스럽게 공사장에서 연락해주어서 여기에라도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며, 호텔이 완성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싶지만 과연 받아줄 것인지 의문이란다. 호텔이라면 외국 손님들이 드나들게 되고 거기엔 일본사람들도 있을 텐데 호텔 측에서 리스크를 안고 이 표지석을 세워주려 할는지 걱정이란다. 국가에서 지정하여 세우면 모르지만 학술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그럴만한 힘이 없어서 걱정이란다. “보훈처나 문광부 같은 정부기관에서

기증자료

2021년 8월 26일 716

[기증자료] 김종철 후원회원 7월 28일, 김종철 후원회원(대전지부)이 연구소를 방문해 소장자료 43점을 기증했다. 이번이 벌써 4회차 기증이다. 주요 자료는 초등지리, 보통학교 국사, 신편 고등조선어 및 한문독본 등 일제 강점기 교과서류, 호적, <인물계> 등 해방 후 잡지류와 토지관계문서 등이다.  7월 20일, 정주수 전 연구위원이 저서 포함해 법원판례공보, 법무여록, 일제강점기 창씨개명 해설, 일제강점기 호적, 기류 일제조사 연구 등 총 167권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