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청년훈련소가 된 학교
[소장자료 톺아보기 34] 청년훈련소가 된 학교 • 강동민 자료팀장 1. 교육강령 3대 목표 앞에서 졸업기념 사진 촬영, <전주공립농업학교 졸업앨범>, 1941년 ‘내선일체를 통한 황국신민의 육성’을 교육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일제는 교육강령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국체명징國體明徵(‘천황’ 중심의 국가체제를 명확히 하는 것) 내선일체內鮮一體(조선은 일본 사상을 바탕으로 하나가 되는 것) 인고단련忍苦鍛鍊(어려움을 참고 이겨내도록 수양하는 것) 2. 나무로 만든 총을 들고 군사교육훈련을 하는 국민학생들, <싸우는 조선戰ふ朝鮮>, 1945 유사시 조선 학생들을 최후 3. <월간 소국민>, 1945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가 발행한 국민학생용 잡지. 1943년 12월에 창간되었으며 일본어로 제작하였다. 전시국가총동원체제에 따라 전시상황에 관련된 글, 사진,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4. 군복 차림인 교련 교사의 모습, <예산공립농업학교 졸업앨범>, 1938년 현역 장교가 학생들의 교련 수업을 담당하여 군대식 실전 훈련을 진행하였다. 5. <학교교련교과서>, 육군성 병무과, 1943년 각종 제식 훈련의 모습을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일전쟁 이후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천황’을 위한 삶을 강요시켰던 일제는 학생들에게 이른바 ‘결전교육 실시’라는 명목으로 군사훈련을 강제하는데 이르렀다. 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무조건 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게 한 것이었다. 울려 퍼지는 발소리는 轟く轟く足音は 나라를 위해 상처 입은 お国の為に傷ついた 용사를 지키고
소설 「자유부인」에도 등장하는 중화요리점 ‘아서원’의 내력 역관 홍순언의 일화가 얽힌 ‘곤당골’ 지역의 공간변천사
[식민지비망록 78] 소설 「자유부인」에도 등장하는 중화요리점 ‘아서원’의 내력 역관 홍순언의 일화가 얽힌 ‘곤당골’ 지역의 공간변천사 이순우 책임연구원 평안북도 용천 출신으로 본명이 정서죽(鄭瑞竹)인 소설가 정비석(鄭飛石, 1911~1991)은 일찍이 신의주중학교 재학 시절인 1929년 6월에 ‘신의주고등보통학교 학생결사사건’으로 검거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전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한 그가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문단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1935년 정초의 일이다. 이때 그는 <매일신보> 1935년 신년현상독물(新年懸賞讀物) 장편소설(掌篇小說, 콩트) 부문에 「여자(女子)」로 입선하면서 등단하였고, 잇따라 <동아일보> 1936년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졸곡제(卒哭祭)」가 선외(選外)로 뽑혔다. 그리고 다시 <조선일보> 1937년 신춘문예에서도 단편소설 「성황당(城隍堂)」이 1등에 당선되는 것으로 서서히 문단에서의 입지를 넓혀갔다. 그러나 1938년 7월 24일 경성부민관에서 열린 ‘전향자단체’인 시국대응전조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全朝鮮思想報國聯盟)의 결성식에 신의주보호관찰소 소관의 전향자 대표로서 출석하였고, 특히 1941년 10월에 <매신사진순보(每新寫眞旬報)>의 편집기자로 들어간 이후에는 일제패망의 순간까지 노골적으로 친일 성향의 글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기간에 그가 남긴 친일작품과 기고문이라는 무수한 흔적들로 인해 자기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2009)에 수록되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아무튼 그는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대중소설가의 면모를 과시하였는데, 아무래도 이 시기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자유부인(自由夫人)>이 아닌가 싶다. <서울신문>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9일에 걸쳐 총 215회로 연재된 이 소설은 한국전쟁의 여파로 어지러워진 시대상황과 허물어져가는 가정윤리, 그리고 향락적인 사회풍조를 파격적으로 묘사하여 큰 논쟁을 야기하면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고, 그 이후 「자유부인」(1956)과 「속편 자유부인」(1957)이라는 영화도 잇따라
올리브 햇순 – 희망의 새해를 꿈꾸며
[신년사] 올리브 햇순 – 희망의 새해를 꿈꾸며 함세웅 이사장 임인(壬寅)년 새해를 맞아 우리 연구소 회원들과 임직원들과 우리 사회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새로움과 은총이 충만하기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관계가 있는 동물입니다. 우리 민족 신화에 최초로 등장하는 동물이 곰과 호랑이입니다. 호랑이는 귀신을 몰아내기도 하고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신화(神話)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꿈이 담긴 염원과 기도입니다.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사람과 제도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세상살이를 소망한 것입니다. 새해를 맞는 우리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이 새로워지는 삶과 사회공동체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꿈은 바로 남북평화와 공존, 국내정치의 안정 무엇보다도 부동산 안정과 청년들을 위한 희망 제시입니다. 무엇보다 올해 우리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자치장과 의회 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책임 있는 정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꿈과희망을 알고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일입니다. 그 장치를 우리는 정당이라고 합니다. 정당은 정치인들이 모여 활동하는 공간입니다. 공동체의 조정과 통합을 고민하는 중요한 집단입니다. 그 집단 안에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정화하여 그런 사람의 정치활동을 통제하고 제어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고, 남녀 분열을 조장하고, 남북을 갈라 민족 간 대립을 격화하여 이를 이용하려는 행태와 정치인을 꾸짖고 거부해야 합니다. 이런 행태를 선거전략이라 부추기는 언론도 거부해야 합니다. 이러한 선거를 끝내고 나면 우리 사회공동체는 지금보다 더 심한 갈등과 분열 그리고 대립을 각오해야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을 보고
[후원회원 마당]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을 보고 백승문 양정고등학교 교사 2022년 1월 20일 개봉과 동시에 이 영화를 관람하였다, 영화 제작 소식을 계속 듣고 있었던지라 극장에서 개봉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참이었다. 1970년대 평화시장은 내게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으로 환기되는 공간이다. 문자 너머에 살아 움직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당사자들의 육성으로 듣고 보는 마음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어떤 때에는 문자언어가 힘이 세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음성언어의 힘이 세다. 이 영화에는 두 경우가 모두 들어 있다. 파주 통일동산. 높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미싱 세 대. 그곳을 향해 두런두런 걸어가는 세 사람. 하늘 높이 올라가는 웃음소리. 웃음으로 둘러친 사진틀에 눈물과 이야기가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는 그런 사진 한 장 같은 영화. 초등학교 졸업사진에나 있어야 할 소녀들이 노동교실 소풍 사진 속에 들어가 있는 걸 본 순간부터 이제 초로에 접어든 그 시절 소녀들이 한 자리에 서서 ‘흔들리지 않게’를 함께 부르는 순간까지 내내 눈물을 훔쳤던 것 같다. 노동교실: “너 밥 먹을래, 노동교실 갈래?” 할 때 기꺼이 노동교실로 달려가는 사람들. ‘우리의 소원은 배움 / 꿈에도 소원은 배움’이라고 바꾸어 부른 가사. 밥보다 배움이 절실한 사람이 내 주위에도 있었다. 1977년 9.9사건이 벌어질 당시 나는 중1이었는데, 등장인물 중 한 분은 나보다 두살밖에 많지가 않다. 학교가, 그리고 교실이 무엇이기에? 어떤 숙제: 1부터 10까지 한자로 쓰고, 은행에
‘한국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MC’ 노기환 후원회원을 만나다
[인터뷰] ‘한국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MC’ 노기환 후원회원을 만나다 인터뷰 :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드는 역사전문 팟캐스트 채널” 2017년 5월 15일, 촛불정권의 출발과 함께 역사적폐 청산을 주제로 한 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가 역사적인 첫 전파를 내보냈다. 그로부터 5년 6개월, 연구소의 팟캐스트는 2021년 12월까지 6차례의 시즌을 거치며 여전히 우리 시대의 중요한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역사적폐 청산의 목소리를 발신해 왔다. 그동안 팟캐스트를 통해 방송된 에피소드만 무려 210개. 지난 5년 반의 시간 동안 팟캐스트 진행을 위해 강릉에서 서울까지 먼 걸음을 마다 않는 수고를 기꺼이 자청해 온 고마운 이가 있다. 전문 MC로 활약하고 있는 ‘MC노(노기환)’ 후원회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팟캐스트뿐만 아니라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전국 순회 항일음악 토크콘서트,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식, 5분 친일인명사전, 항일음악회 등 굵직굵직한 연구소 행사의 사회를 도맡아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연구소 창립 30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작, 방영되고 있는 “과거청산의 빌런들”의 진행을 맡아 명실공히 민족문제연구소의 ‘전속 MC’로 연구소 활동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연구소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그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었다. 대학에서 연극을 했고 연극 연출가의 꿈을 꾸었던 노기환은 스물아홉의 늦깎이로 대학을 졸업하고 어쩔 수 없이 일반 회사에 취직하여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서 ‘아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회사원 생활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 다큐영상 <과거청산의 빌런들> 제작
[초점]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 다큐영상 <과거청산의 빌런들> 제작 • 김세호 PD 민족문제연구소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30년 활동의 의미를 기록하는 다큐 시리즈 <과거청산의 빌런들>을 제작했다. 연구소의 지난 30년간의 활동은 해방 이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과거청산을 시민들이 직접 나서 실천해온 역사를 의미한다. <과거청산의 빌런들>은 해방직후 좌절된 친일청산부터 과거청산을 막아온 세력들을 빌런(악당)으로 설정하고 그에 대항한 시민들의 싸움을 민족문제연구소의 활동과 연결 지어 스토리로 구성하였다. 무겁고 딱딱 할 수 있는 주제를 재미난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하고 스토리텔러가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과거청산의 빌런들>은 총 6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제1화(12월 9일 업로드)에서는 백범암살의 진실을 찾아내려 했던 시민들의 추적기를 다룬다. 좌절된 과거청산의 시작은 어디이며 백범 암살의 추적자를 통해 시민들의 실천운동으로 연구소 활동의 의미를 조명한다. 제2화(12월 24일)에서는 한일협정과 관련한 미국 CIA의 ‘비밀문건’을 중심으로 박정희와 일본 정부 사이에 오갔던 부당 거래가 무엇인지, 그 결과 한일협정은 식민청산을 완전히 봉인해 버린 사실을 추적한다. 제3화(1월 20일)와 제4화(2월중)에서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집중적으로 제기된 과거청산의 과제들을 평가해본다. 제3화에서는 이완용, 송병준을 비롯한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 땅 찾기’가 불러일으킨 국민적 공분과 친일재산 환수운동을, 제4화에서는 악질적 친일행위를 하고도 독립유공자가 된 인물들의 민낯을 추적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활동을 각각 조명한다. 제5화(3월중)와 제6화(4월중)는 현재 진행중인 과거청산의 과제들에 집중한다. 제5화에서는 군함도(하시마) 등 일제강제동원시설을 유네스코 산업유산으로 등재하며 역사를 부정하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고
안녕하세요 김철기 선생님
[후원회원 마당] 안녕하세요 김철기 선생님 정인혜 저는 새날 팟캐스트에서 선생님의 녹화에 참여했던 민족문제연구소의 인턴 정인혜라고 합니다. 전 세계가 종전임에도 여전히 전쟁을 이어가는 한국이기에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각국에서도 심각성을 가지고 논의하는 지뢰문제인 만큼 세계에서 안전지역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안에서 환경문제를 위해 힘쓰시던 도중 피폭을 겪게 되셔서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가장 마음이 안 좋았던 이유는 국가의 처우입니다. 물론 국방부나 국가에서 전부 찾아낼 수없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계속 생기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를 계속 숨기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오래 전 선조들이 꿈꿔 오던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 국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피폭 이후 다리를 잃어 절망 속에 빠졌음에도 다시 일어서서 차라리 내가 당해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물론 그 누구에도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당연한 것이고 사과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어른들이 저희에게 가르친 내용이자 모두가 노력해 실천하려는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직접 말해주시고 나서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셨을 테지만 선생님의 선택은 절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당사자들이 나서서 사과를 해달라는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나라에서 해결해 주는 시스템을 만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올바른 정의를 지닌 나라가 되길 바라며 정인혜(민족문제연구소 인턴) 올림
다양한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 기념사업 진행
[초점] 다양한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 기념사업 진행 • 방학진 기획실장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상임대표 윤경로)는 2021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진행했다.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진행한 110주년 기념사업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최대한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시도되었다. 특히 대부분의 사업이 코로나19 상황이 다소 완화된 하반기에 집중되었다. 모두 8개의 기념사업은 온라인 기념식, 문화콘텐츠 공모전,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갈라 콘서트, 강화도 및 안동 답사, 학술 심포지엄, 라디오 다큐멘터리, 독립운동가 어록 문화 콘텐츠 제작, 백서 발간 등이었다. 우선 6월 10일 유튜브를 통해 송출된 온라인 기념식은 신흥무관학교의 역사를 소개하는 안중걸 만화가의 드로잉 작품을 시작으로 대회사(윤경로 상임대표), 축사(김정수 육군사관학교 교장), 축하행사(110주년을 축하는 육사 생도들의 화랑의식) 등으로 구성되었다. 신흥무관학교 정신 계승 청년 콘텐츠공모전은 39세 미만의 청년 문화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콘텐츠 제작을 장려하는 사업으로 약 70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이 가운데 창작곡(전장에 핀 꽃 : 오태석), 웹툰(흔들리지 않는 나라 : 김준성), 뮤지컬(그날의 오늘 : 대구 성서고 뮤지컬 동아리), 시나리오(여섯 꽃의 넋이여 : 이종화) 등이 각각 육사 교장상, 국가보훈처장상, 경희대 총장상, 신흥무관학교기념 사업회장상을 수상했고 김수빈의 민화(조선 혁명군의 기억) 외 9편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갈라 콘서트는 2018년, 2019년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를 바탕으로 군복무 당시 주연 배우로 활약했던 조권, 고은성 배우가 출연해 콘서트 시작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이 단행본으로 출판됩니다.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이 단행본으로 출판됩니다. • 김종욱 기획위원 용산보병연대 전경(연구소 소장자료) 군기수여식 당시 용산역에 도착한 일본군 군기(욱일기) 조선사진화보(조선사단창설기념호)1916.11 효창원(스키장시험 사진) <매일신보> 1929.1.10 효창원 골프장과 조선인 소년 캐디, <조선> 조선총독부 1925 용산정거장(용산역) 전경(개인소장자료) 한강가교공사(1899년), <조선철도사> 제1권 1929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이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2017년 12월 용산청파동으로 이전해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용산 일대는 러일전쟁 직후 일본군이 대규모 병영을 조성하고 각종 군사시설을 세우면서 침략전쟁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그후 100여 년 간 이방인의 땅이자 외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연구소와 박물관은 일제침략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는 용산의 어두운 역사를 추적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주요사업의 하나로 추진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억하고 전파하기 위해 현장답사와 청소년·시민강좌를 지속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침략사에 대한 현장답사는 일본 시민사회에도 입소문이 나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들이 다수 참여하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정착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된 상태이지만 상황이 호전되는 대로 재개할 예정이며, 우선 그간의 성과를 정리하여 용산의 옛 모습을 책으로 만날 수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일본군 병영지 일대의 변천사, 용산연병장과 남영동의 지명 유래, 용산역의 설치 연혁,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시기 효창원의 수난사 등 용산에 얽힌 다양한 일화를 담은 <용산,빼앗긴 이방인들의 땅>이 두 권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답사와 강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던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책임연구원이 각종 문헌자료를 섭렵하여 꼼꼼하게 분석하고 연구소가 소장한 희귀자료를 활용하여 용산의 근현대사를
“덕은 봉의산만큼 높고, 은혜는 소양강만큼 깊도다”
지난 2021년 3월 25일에 문화재청 고시 제2021-31호를 통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이던 ‘순천 팔마비(順天 八馬碑)’가 보물 제2122호로 승격 지정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청렴한 지방관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이 비석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사(昇平府使)를 지낸 최석(崔碩)과 말 8필에 얽힌 고사(故事)에서 비롯되었으며, 정유재란 때 훼손된 것을 1617년(광해군 9년)에 이르러 순천부사(順天府使)로 있던 이수광(李睟光, 1563~1629)이 이를 재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유서 깊은 팔마비를 새로 세운 경위는 비석의 뒷면에 새겨져 있는 것이 남아 있긴 하지만 워낙 풍화가 심하여 이것만으로는 정확한 판독이 힘든 상태이며, 그 대신에 이수광의 문집 『지봉집(芝峰集)』에 「순천부중건팔마비음기(順天府重建八馬碑陰記)」의 전문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이를 통해 그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에 관한 자료를 구하여 대략 살펴보니 그 가운데 이러한 내용이 퍼뜩 눈에 띈다. …… 아아, 최공이 이 부를 다스린 것은 현재까지 4백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백성들은 그 덕을 하루 같이 사모하여 비석은 비록 못쓰게 되었으나 구비는 여전히 건재하니, 어찌 구구하게 돌에 새길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드러내어 알림으로써 사람들을 격려하여 힘쓰게 하는 것이 이 비석에 달려 있으니 참으로 불가결한 일이로다. (噫 崔公之爲是府四百年于今 而民思其德如一日 碑雖廢而口碑尙存 則安用區區刻石爲哉 然所以表識 而風厲乎人者 實在於此碑 固不可闕也) 여기에 나오는 ‘구비(口碑)’라는 것은 “비석에 새긴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다는 뜻”을 담은 표현이다. 이러한 취지의 말은 음기(陰記)의 뒤쪽에 이수광이 최원우(崔元祐)의 시(詩)를 차운(次韻)하여 직접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에서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