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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과학도의 꿈을 접고 평화통일과 인권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임재근 후원회원

2020년 12월 2일 1401

이번 달에 인터뷰하는 대전지부의 임재근 후원회원은 통일뉴스와 오마이뉴스 기자로서 대전지역의 여러 현안에 대해 적극 발언해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에서 교육연구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06년 김창룡 묘 이장 추진 시민연대를 구성할 때 민족문제연구소를 알게 되었고 2016년 연구소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지부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으며 2019년 ‘대전현충원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서’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임재근 회원은 2016~17년 촛불항쟁 시 61차례 131일간의 대전촛불시위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참여하며 기록사진을 찍어 <대전대전(大田大戰) 봄으로 간 촛불>(대장간, 2017)을 펴냈다. 2019년 8월에는 한국전쟁이 대전지역에 남긴 상처들을 증거하는 사진 27점을 전시한 임재근 사진특별전 〈콘크리트 기억〉을 개최했고, 같은해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는 제18회 민주언론상을 수상했다. 올해에는 <한국전쟁기 대전전투에 대한 전쟁기억 재현 연구>(북한대학원대학교, 2020)라는 논문으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난 8월에 한국전쟁·대전전투 70년 기록전 〈전쟁기억,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을 열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문제를 사회 이슈로 부각시켰다. 서면으로 진행된 임재근 후원회원과의 인터뷰를 정리해 보았다. 문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 안녕하세요. 저는 대전에 있는 비영리민간단체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에서 교육연구팀장으로 활동하면서, 대전지역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의 평화통일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소중함과 통일의 필요성을 실내 강연으로 진행하기도 하구요. 대전형무소 터, 산내 골령골 등 우리 주변에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곳들을 다니면서 평화기행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영상과 사진을 통해서도 평화통일과 인권, 역사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의 꿈은 과학도였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카이스트에 진학했는데, 지금은 그 꿈을 잠시 뒤로 미루고 통일교육을 통해 통일에

기증자료

2020년 12월 2일 783

• 10월 10일 제12회 임화문학예술상 시상식이 끝난 뒤 박성모 소명출판사 대표가 우리 연구소에 ‘무운장구武運長久’ 기원 일장기 1점을 기증했다. 소명출판사는 임헌영 소장의 수상저서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를 발간한 곳이다. 이 일장기는 박 대표가 일본에서 입수하였으며 재일조선인들이 일본군에 끌려가는 동료를 위해 써준 것으로 추정된다. ‘황군만세’ ‘보답군은’ 등의 문구가 당시 우리 민족의 처지를 실감하게 한다. 다른 것과 달리 정사각형 형태인 점이 특이하다. – 안미정 자료실 주임연구원     • 10월 5일 오랫동안 교류를 이어온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씨가 연구소의 자료를 제공받아 집필한 저서 <오키나와전(沖繩戰)에 동원된 조선인-군인・군속을 중심으로-> 3부를 연구소와 박물관에 기증했다. • 10월 6일 미노시마 마사루(箕島勝) 씨가 최신 <아사히신문>과 <기억의 등불 희망의 하늘로- 이시카와(石川)의 전쟁과 평화> 등 총 7점을 기증했다. <기억의 등불 희망의 하늘로-이시카 와의 전쟁과 평화>에는 1931년부터 오늘날까지의 이시카와 현에서 있었던 전쟁 관련 유적과 평화운동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현 내의 조선인 강제연행에 관한 유적들에 대해서도 위치를 알 수 있는 지도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 오카베 토시오(岡部壽郞) 씨가 10월 한달 동안 <도쿄신문> 기사 등 총 12점을 스캔하여 데이터로 기증했다. 이번 기증받은 기사에는 한국인 전 징용공 소송 대법원판결 이후 2년간의 흐름에 관한 내용 등이 있다. – 김진희 학예실 연구원

제14회 임종국상 시상식

2020년 12월 2일 584

[초점] 제14회 임종국상 시상식 제14회 임종국상 시상식이 11월 9일 오후 6시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회원 및 각계인사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올해는 코로나-19라는 감염증의 유행으로 참석인원을 제한하고 대신 연구소 페이스북으로 시상식을 생중계하였다. 시상식은 장병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장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의 축사, 임종국 선생의 일대기 영상 상영, 이민우 연구소 운영위원장의 기념사업회 경과보고, 윤경로 심사위원장의 선정경위 설명, 시상과 수상자들의 수상연설, 임헌영 연구소장의 인사말 순서로 진행됐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부문 아홉, 사회·언론부문 셋 등 12건이 올라왔으며, 10월 12일 심사위원회 예심을 거쳐 19일 열린 본심에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를, 문화부문에 박시백 화백을 수상자로 최종 선정하였다. 심사에는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해 박찬승 한양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정해구 전성공회대 교수,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 등이 참여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역사사회학자로서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통제와 공안, 국가폭력과 제노사이드, 냉전과 과거청산 등을 주제로 주목해야 할 성과들을 꾸준히 내놓은 연구자이자 맹목적 반공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 여성과 소수자 혐오에 맞서 맹렬히 활동해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최근에는 미국과 영국 등 해외 기관에서 일본군‘위안부’와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 관련 중요자료를 발굴 수집하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기여했다. 수상 저서인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반일종족주의>를 비롯한 한일 극우연합세력의 역사부정론을 정면으로 논파함으로써 그 허구성을 명백하게 드러내었다는 평가를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주최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 기념 강화 드라이브스루 답사

2020년 12월 2일 683

[초점]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주최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 기념 강화 드라이브스루 답사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연구소와 서울시의 후원으로 9월 26일(토), 10월 24일(토), 25일(일) 총 세 차례의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 기념답사’를 강화도에서 진행했다. 이번 답사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답사 장소와 일정이 몇 차례 변경된 끝에 드라이브스루 답사라는 방식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당초 올해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의 답사는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을 맞아 정미의병(강화), 신흥무관학교(안동), 조선의용대(밀양)를 차례로 살펴보며 한국광복군의 원류를 되돌아보고자 했는데 코로나19로 강화도에서만 답사를 진행하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컸다. 드라이브스루 답사는 참석자 각자가 자기 차를 타고 답사지로 이동하며 진행했다. 방역 수칙에 따라 참가자 전원이 항상 마스크를 썼고 각 차량에는 3명 이상 타지 않도록 제한을 뒀으며, 식사도 흩어져 도시락을 먹었다. 3차례의 답사에는 총 67명(1차 17명, 2차 18명, 3차 32명)의 참가자와 스태프 3명(방학진 기획실장, 신다희 총무 부팀장, 김무성 회원사업 부팀장)이 참여했다. 답사 안내는 1차 답사에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이, 2차 답사에 한정우 산마을고등학교 선생님이, 3차에 방학진 기획실장이 맡아주었다.   답사는 강화 만남의 광장에 집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통제영학당 옛터에서 성공회 강화성당, 합일초, 강화중앙교회를 차례대로 보고, 마지막으로 연미정으로 이동하며 진행되었다. 첫 답사지인 통제영학당은 대한제국에서 세운 최초의 근대식 해군사관학교이다. 이동 중 보수 공사 중인 진해루 외벽에 그려진 강화의 역사를 표현한 그림 앞에서 강화의 지리와 역사에 대해 듣고, 강화도에서 벌어진 수차례의 민간인

2020년 교사 직무연수 운영, <박물관에서 만나는 교과서 사료 읽기>

2020년 12월 2일 705

[초점] 2020년 교사 직무연수 운영, <박물관에서 만나는 교과서 사료 읽기> 식민지역사박물관은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직무연수, 〈박물관에서 만나는 교과서 사료읽기〉를 주관했다. 이번 연수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현대사 자료들 중에서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사료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편성됐다. 참여한 교사들은 모두 5차에 걸쳐 ‘니시키 에’, ‘일출신문조선쌍육’, ‘애국반회보’ 등 일제의 선전 자료와 친일, 강제동원으로 대표되는 과거사 청산 과제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10월 27일(화) 진행된 이번 연수의 첫 프로그램, 「니시키에로 본 청일전쟁과 지워진 역사」에서는 강효숙 원광대 교수가 강사로 나섰다. 니시키에(錦絵)는 근세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를 모태로 탄생한 회화 장르로, 18세기 후반부터 메이지 시기까지 유행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반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침략주의를 고취시키고 선전 미술로 활용되는 등 어두운 양면을 가진 예술이기도 하다. 강효숙 교수는 니시키에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에는 조선과 청나라를 ‘야만’으로 격하하고 제국주의적 침략을 본격화한 ‘청일전쟁’이 니시키에를 통해 다시금 조망됐다. 강의를 마친 후 수강생들은 박물관 상설전시실을 방문, 「조선안성도격전지도朝鮮安城渡激戰之圖」 등 청일전쟁 관련 니시키에를 관람했다. 아울러 박물관은 강연장 내에도 10여점의 니시키에를 별도 전시하여 수강생들의 학습과 체험을 도왔다. 이러한 실물 사료 체험에 대해 수강생들은 필요한 부분을 기록하고 때로는 설명을 청하기도 하며 높은 열의를 보였다. 박물관은 앞으로 이어질 연수에서도 사료를 실제로 감상하고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코로나 시대, 한일 시민들이 함께 외친 “야스쿠니 NO!”―야스쿠니문제 국제회의 온라인 화상회의로 열려

2020년 12월 2일 629

[초점] 코로나 시대, 한일 시민들이 함께 외친 “야스쿠니 NO!”―야스쿠니문제 국제회의 온라인 화상회의로 열려 10월 23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야스쿠니문제 국제회의가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되었다. 이 국제회의는 침략신사 야스쿠니의 본질을 폭로하고, 야스쿠니무단합사철폐소송의 현황을 점검하며, 국제사회에 야스쿠니문제의 해결을 호소하기 위해 2016년부터 매년 서울에서 열려왔는데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올해는 온라인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는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사무국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했으며, 동북아역사재단과 식민지역사박물관의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올해는 2006년부터 시작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15년을 맞이하여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15년, 성찰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에 함께 해온 야스쿠니합사철폐소송 원고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변호인단, 연구자, 활동가, 지원단, 시민 등이 참가하여 야스쿠니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가졌다. 특히 올해 국제회의를 준비하며 온라인 화상회의의 특징을 살려 인터넷 홍보를 통해 일반 참가자를 모집하였는데, 한국과 일본에서 30여 명의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참가하여 야스쿠니문제의 대중화라는 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 김영환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1부에서 이희자공동대표는 개회사를 통해 코로나 사태를 맞아 비록 직접 만 날 수는 없지만,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함께 싸워나갈 것을 강조하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모든 이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모임’ 사무국장은 스가 정권의 출범을 맞아 대일과거청산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전망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한일시민들의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야스쿠니 합사철폐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아사노 후미오(浅野史生), 오구치 아키히코(大口昭彦) 변호사

근현대사기념관, 독립전쟁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개최

2020년 12월 2일 858

[초점] 근현대사기념관, 독립전쟁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개최   10월 23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며, 강북구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가 후원하는 독립전쟁 선 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이 개최되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대한민국임시 정부의 독립전쟁선포 100주년이자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이 되는 올해 독립전쟁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에 부응하고자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3·1운동 이후 본격화한 만주 일대의 항일무장투쟁을 재조명하였다. 학술회의는 개회식을 시작으로 Ⅰ부에서 기조발제와 주제 발표 및 토론, Ⅱ부는 종합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임헌영 소장의 개회사와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환영사로 학술회의가 시작되었다.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학술회의 Ⅰ부는 심철기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실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기조발제를 맡은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는 ‘독립전쟁과 신흥무관학교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독립전쟁에서 신흥무관학교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 발표하였다. 제1주제 ‘1910년대 유교계의 독립운동과 신흥무관학교’는 서동일 국가보훈처 학예연구사가 발표하였다. 일제 강점 초기 만주에 정착한 유림들과 신흥무관학교의 관계를 중심으로 유교계의 독립운동기지 건설 참여에 대해 다루었다. 토론자로 나선 박성순 단국대학교 교수는 신흥무관학교와 유교계가 어느 정도로 관계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였다. 이어서 제2주제 ‘신흥무관학교 출신(자) 현황 분석과 독립운동’은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발표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구축한 신흥무관학교 인명 DB를 토대로 신흥무관학교 출신자들의 활동과 분화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토론자로 나선 숭실대학교 황민호교수는 신흥 무관학교와 관련이 있는 436명의 인물들을 직접관련 단체 9개와 간접관련 단체 5개로 구분하고 중요 인물들의 특징을 파악한 것은 엄청난 공력이

조선일보사 옥상 위에 올려놓은 비행기의 정체

2020년 12월 2일 1865

[소장자료 톺아보기•21 ] 조선일보사 옥상 위에 올려놓은 비행기의 정체 <조선·동아 100년 기획전,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이 진행되는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의 쇼케이스에는 한 장의 빛바랜 옛 사진이 진열되어 있다. 비행기 한 대를 배경으로 삼고 3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체로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이들 가운데 두루마기 차림의 방응모(方應謨, 1884~?) 조선일보 사장이 앞줄에 자리한 것이 무엇보다도 퍼뜩 눈에 띈다.  그 주변에는 이훈구(李勳求) 부사장 겸 조광 주필을 비롯하여 함상훈(咸尙勳) 편집국장, 이상호(李相昊) 편집국차장, 송병휘(宋秉暉) 광고부장, 홍종인(洪鍾仁) 사회부장, 이석훈(李石薰) 조광 기자, 이갑섭(李甲燮) 정치부장, 함대훈(咸大勳) 조광 편집주임, 김기림(金起林) 학예부장 등의 모습이 확인되는데, 이로써 조선일보 사원들의 기념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함흥방송국에서 근무하던 이석훈이 조선일보사 발행 잡지인 <조광>으로 자리를 옮겨 일한 것이 1939년 5월에서 1940년 4월까지의 시기였으므로 이를 단서로 사진촬영시기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이 사진을 살펴보노라면 여기에 보이는 비행기가 자리한 곳이 도대체 어딘지가 자꾸 궁금해진다. 흔히 비행기가 등장하는 사진이라면 무슨 비행장 활주로나 격납고 앞일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을 알고 나면 대단히 의외의 공간이라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진촬영장소를 확인하는 첫 번째 단서는 비행기 뒤쪽에 솟아있는 건물이다. 일장기가 펄럭이고 싸이렌에다 송신탑 꼭대기가 보이는 곳은 1937년 11월 16일에 신축 이전된 경성소방서(京城消防署, 태평통 1정목 1번지)의 8층 높이에 달하는 망루 부분이다. 이곳의 길 건너편에 1935년 6월에 준공한 조선일보사(朝鮮日報社, 태평통 1정목 61번지)의

심판받을 김창룡 중장의 송공비(頌功碑)

2020년 12월 2일 915

[자료소개] 심판받을 김창룡 중장의 송공비(頌功碑) 신현복(申玄福)   이번 호에 소개하는 자료는 <실화(實話)> 1960년 12월호에 실린 「심판받을 김창룡 중장의 송공비」라는 기사이다. 일본군 헌병오장으로 소만국경지대에서 첩보활동에 종사했던 김창룡은 해방 후 남한으로 탈출해 국방경비대 정보장교로 두각을 나타냈고 이승만 정부 시절 ‘숙군과 타공’ 공작으로 이승만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중 1956년 1월 30일 출근길에 과거 부하였던 육군대령 허태영의 지시를 받은 특무부대 출신자들의 저격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일 육군중장으로 추서되고 2월 3일 최초의 국군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진 뒤 안양의 사설 묘역에 묻혔다. 묘비 앞면의 묘주명(墓主名)은 이승만 대통령이 썼으며, 묘갈명(墓碣銘)은 사학자 이병도가 지었다. 이 글은 4월혁명 이후 쓰여진 것이라 이승만의 실정(失政)과 특무대장 김창룡의 악행을 언급하며 이들에 대한 역사상의 평가를 다시 내릴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김창룡의 묘갈명과 관련하여 특기할 만한 사실은 김창룡 본인과 묘갈명을 지은 이병도, 묘지 조성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있던 정일권이 모두 친일파로 선정되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이 자료는 이순우 책임연구원이 제보해주었다. ― 편집자   역사의 심판은 내려지고 만다 “그 사람의 진가는 관뚜껑에 못을 박고 난 후라야 안다.”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관뚜껑에 못을 박고 난 뒤에도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러야만 비로소 인간의 공죄(功罪)가 밝혀지고 따라서 역사적인 평가가 내려지는 모양이다. 이게 말하자면 역사의 심판이라는 것인가 보다. 과거에도 그랬었지만 우리들은 지금 숱한 사람들이 이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을

단재 신채호 선생의 집터에 표석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삼청동(三淸洞)’ 집터의 실제 위치는 ‘팔판동(八判洞)’

2020년 11월 10일 1688

[식민지 비망록 63] 단재 신채호 선생의 집터에 표석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삼청동(三淸洞)’ 집터의 실제 위치는 ‘팔판동(八判洞)’ 이순우 책임연구원   <조선총독부관보> 1910년 11월 19일자에 수록된 ‘경무총감부 고시 제72호’에는 안녕질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발매금지 및 압수대상 처분이 이뤄진 출판물의 목록에 신채호 선생의 저술인 『을지문덕(乙支文德)』과 『이태리건국삼걸전(利太利建國三傑傳)』이 포함된 것이 눈에 띈다. 김가진, 김경천, 김옥균, 김창숙, 남궁억, 노백린, 민영환, 백용성, 손병희, 송진우, 심훈, 여운형, 이동녕, 이상재, 이준, 이회영 6형제, 지석영, 지청천, 현상윤 …… . 여기에 나열한 명단은 현재 서울시에서 해당 인물의 생가(生家) 또는 집터에 표석을 설치한 19군데 사례들의 목록이다. 여기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 사장인 영국인 어네스트 베델(Ernest T. Bethell, 裵說)과 김수영, 박인환, 전영택, 현진건 등 문인(文人)들의 경우를 다 합치더라도이 숫자는 겨우 스물 몇 건 정도에 머문다. 우리 근현대사를 통틀어 그 집터를 기억하고 업적을 기릴만한 훌륭한 인물이 고작 이 정도뿐일까 마는 행적평가, 지명도, 형평성 등과 같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역사인물들에 대한 표석의 설치를 무작정 늘리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런데 설령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업적과 상당한 역사 문화적인 평가를 지닌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해 당 인물의 집터에 표석을 세울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 집터의 위치가 어디인지 도무지 확인을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 선생의 경우가 딱 그러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