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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건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식민통치의 심장, 조선총독부> 기념엽서

2020년 5월 26일 5108

[소장자료 톺아보기•15] 건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식민통치의 심장, 조선총독부> 기념엽서 남산에 위치한 구 조선총독부 청사 남산에 위치한 구 조선총독부 청사   경복궁 근정전 앞을 가로막은 형태로 지어진 조선총독부 신청사 경복궁 근정전 앞을 가로막은 형태로 지어진 조선총독부 신청사   경성의 명소로 소개하며 유통된 조선총독부 엽서들 경성의 명소로 소개하며 유통된 조선총독부 엽서들   경복궁 앞에 공사 중인 조선총독부 신청사, 조선총독부청사신영지, ⓒ 국립중앙도서관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식민통치 기관 설립을 위해 「조선총독부 설치에 관한 건(朝鮮総督府設置ニ関スル件)」을 공포, 최고 통치기구이자 수탈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였다. 식민지 조선의 입법·사법·행정기구는 모두 조선총독에 직속되었고, 1910년 9월 30일에 칙령 354호로 「조선총독부관제」가 공포됨으로써 조선총독부의 중앙 조직이 1관방 5부제로 구성되었다. 조선총독부의 행정조직이 새롭게 구성하게 되자 총독부와 중앙기관의 청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처음에 총독부는 남산 왜성대에 위치하였던 기존의 통감부 건물을, 중앙기관의 청사는 기존의 중앙관아나 관찰부, 일본이사청 등의 건물을 사용하였다. 필요에 따라 지속적으로 청사를 증축하였는데 ‘청사의 산재(散在)로 인한 집무 불편 및 노화’를 이유로 조선총독부 신청사 건립이 추진되어 1916년 6월 26일 지진제(地鎭祭)와 함께 신청사가 착공되었다. 조선총독부 신청사는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적인 건물이었기 때문에 조선 내 최고기관으로서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입지 선정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위압적인 식민통치를 위해 조선의 중심부인 경복궁, 그것도 경복궁의 중심이자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건축물인 근정전 앞에 대규모의 건축물로 계획하여 영구적인 청사로 사용하고자 했다. 또한 도시의 중심축인

황제를 꿈꾸는 수인(1)

2020년 4월 21일 1525

[둘러보기] 황제를 꿈꾸는 수인(1) 임헌영 소장・문학평론가 1. 유폐된 황제의 사상 영하 20도라고 한다. 감방은 영락없이 냉동고다. 천장만 덩실하게 높은 이 비좁은 감방에 세 사람이 웅크리고 앉았는데, 입김이 유리창에 서려 하늘로 통하는 유일한 창구는 하얗게 두툼하게 얼어붙었다. 조금 받아놓은 물도 돌덩이처럼 얼어붙었다. 방 한구석에 놓인 변기통도 얼어붙었다. 숨을 쉴 때마다 콧구멍이 따끔따끔하다. 콧속의 털이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는 것이다. 자연은 그 모든 위세를 총동원해서 만상을 얼어 붙이려고 기를 쓰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기적처럼 얼지 않고 있다.(<소설, 알렉산드리아>, 한길사 판)   이병주(왼쪽)가 1963년 12월16일 2년7개월의 수감생활 후 특사를 받아 부산교도소에서 출소할 때 모습. 이권기 경성대 일문과 명예교수 제공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 : 1921.3.16.~1992.4.3.)의 인문학기행은 영하 20도 이하의 겨울날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에서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종로 3가나 청량리 588처럼 지번으로만 서울의 우울을 상정했던 이곳은 조선시대에 전옥서(典獄署)였다가 감옥서(監獄署)로 바뀐(1895) 뒤, 일제에 의하여 사실상 법 집행권을 약탈(1906, 조선통감부 설치)당한 후에 경성감옥(京城監獄)이란 명칭 아래 독립운동가들을 수감시킬 목적으로 지어진 곳(1908.10.21. 개소)이다. 민족사적 수난의 상징인 경성감옥은 서대문형무소(1920), 경성형무소(1946), 서울형무소(1950), 서울교도소(1961), 서울구치소(1967)로 화류계 여성 이름 바꾸듯이 변성명하다가 1987년 11월 15일 의왕으로 이전함으로써 대부분의 건물이 허물어지고 지금은 우아하게 서대문형무소역사관(1998.11.5. 개관)이란 명칭으로 몇 동만 남아있다. 이 시설을 원형 그대로 보관했다면 실로 세계적인 명물로 유네스코문화유산 목록에 오르고도 남을 아까운 유적이건만 이를

그해 겨울 그는 왜 맨발로 남산성벽을 넘어야 했나? 고봉근 집터, 일본인 순사를 사살한 김상옥 의사의 항거지

2020년 4월 21일 2549

[식민지비망록 57] 그해 겨울 그는 왜 맨발로 남산성벽을 넘어야 했나? 고봉근 집터, 일본인 순사를 사살한 김상옥 의사의 항거지 이순우 책임연구원 서울 용산구에 있는 후암시장 삼거리에서 영락보린원(永樂保隣院, 후암동 370번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후암로 28길’을 따라 260미터 남짓 걷다보면 약간 언덕길을 이루는 지형이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갈라지는 골목길(후암로 28바길)을 만날 수 있다. 이 길의 초입에는 한울연립주택이 서 있고, 이곳과 남쪽으로 등진 자리에 2층짜리 단독주택 한 채가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집 앞에 덩그러니 서 있는 ‘김상옥 의사 항거 터’ 안내표지판은 이곳이 결코 예사롭지 않은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자리는 ‘옛 삼판통(三坂通, 지금의 후암동) 304번지’에 해당하며, 고봉근(高奉根, 1896~1961)의 집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 당시 돼지고기 행상을 했던 고봉근은 다름 아닌 1923년 정초에 서울은 물론 조선 천지를 들썩이게 했던 의열투쟁의 주인공 김상옥(金相玉, 1890~1923) 의사와 처남 매제(妻男 妹弟)가 되는 사이였다. 지금은 이 일대가 온통 주택가 밀집지역으로 변한 통에 어떠한 주변 지형이 둘러싸고 있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지만, 일제강점기의 경성시가지도를 살펴보면 고봉근의 집은 조선은행 사택지(朝鮮銀行 舍宅地)가 넓게 포진한 지역의 외곽선에 간신히 터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곳은 삼판통 대로변에서 죽 이어지는 평지(平地)의 막바지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뒤쪽으로는 곧장 남산에서 흘러내린 비탈면이 높게 치솟아 있는 것이 지형상의 특징이었다. 일찍이 1920년 여름 미국의원단(美國議員團)이 경성을 방문하는

북한언론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수한 기자

2020년 4월 21일 1704

3월 12일 오후 5시, 연구소 3층 회의실에서 헤럴드경제 기자인 김수한 후원회원을 인터뷰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2001년부터 20년 가까이 연구소를 후원해 온 김수한 회원이 작년 8월 동국대학교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연구 주제가 이례적으로 김정일·김정은 정권하의 북한 언론 현황에 관련된 것이었다.몇 년 전부터 ‘기레기’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언론 개혁과 기자들의 자질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현직 기자로서 여전히 금단의 영역이면서 조심스러운 북한문제, 그것도 우리에게는 생소한 북한언론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문 : 연구소는 언제 후원회원으로 가입했나요? 답 : 제가 95학번(고려대 노어노문학과)인데 2001년 2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앞둔 상태에서 방학진 당시 사무국장 권유로 가입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복학 후에 연구소에서 주최하는 강좌나 소모임에 가끔 나갔었고, 2002년 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친일 예술인과 그들의 작품전’ 전시회 때 자원봉사도 했었죠. 그 무렵 누군가 고대 인촌(김성수) 동상에 페인트를 뿌린 사건이 발생했는데, 고려대 영자신문사 기자 출신으로서 ‘큰 사건’이라는 직감이 들어 방 국장께 전화해 사건을 알리기도 했었어요. 그때 방 국장이 전화통화 직후 즉시 고대로 와서 함께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었죠.ㅠ 문 : 1997년 창단된 한국축구 국가대표 서포터즈인 ‘붉은악마’로 활동했다고 들었는데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말씀해 주세요. 제가 1997년 8월 고려대 영자신문사 편집국장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어요. 그때가 3학년 1학기를 마친 상태인데, 막상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오니 ‘은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체감이 좀 됐었어요.

31년 역사교사를 마치며

2020년 4월 21일 1707

[후원회원마당] 31년 역사교사를 마치며 김해규 후원회원(전 평택한광여중 교사・현 평택인문연구소장)   31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올해 2월 퇴직한 김해규 후원회원은 2004년 4월부터 연구소를 후원하기 시작한 이후 평택지역 후원회원 모임 조직, 평택지역 내 일제잔재 조사 자문, 신흥무관학교 국외 답사 등 연구소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제자는 물론 동료선생님들과도 석별의 정을 나누지도 못한 채 교단을 떠나게 되는 아쉬움을 달래며 퇴임의 글을 보내왔다. 퇴임에 즈음하여 김해규 후원회원은 2월 6일 평택지역 인문학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활동을 하게 될 평택인문연구소를 창립해 소장에 취임했다. 저서로는 <평택역사산책> <근현대 평택을 걷다> <평택사람들의 길> 등이 있다.- 엮은이   역사학이 너무 좋아 역사책이라면 무엇이든 읽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역사박사’라는 기분 좋은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역사과목 잘해봤자 선생밖에 더 돼’ 친구들은 비아냥거렸지만 소년은 ‘역사교사’의 꿈을 꿨습니다. 역사교사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알았습니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말이죠.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도 겨우 입학한 처지에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사범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친구들은 고등학교 진학준비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아버지 눈치만 살폈습니다. 큰 맘 먹고 ‘아부지 저 고등학교 가요?’라고 물었던 어느 날, 아버지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더니 ‘한 번 가봐라’라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허락이 떨어진 뒤에도 눈치만 살폈습니다. 소년은 인문계를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원했던 것은

삼가 인사드립니다

2020년 4월 21일 2959

[감사인사] 삼가 인사드립니다 이이화 선생 마지막 가시는 길에 찾아와 명복을 빌어 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수선한 시국에 멀리서 마음을 전해 주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는 화창한 봄날 파주집 근처 공원묘지의 양지바른 곳에 편히 잠드셨습니다. 당신의 생전 사진과 때 묻은 수첩의 연락처를 정리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시고, 또 당신께서 사랑하신 분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습니다. 생전에 당신께서 남기신 족적과 더불어 전국 각지의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교류하신 폭과 깊이의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성심을 다해 그간의 과정을 준비해주신 장의위원회의 윤경로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어르신들 훈장 수여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힘써주신 분들 장례식장의 데스크를 지키고 밤늦도록 정리해주신 분들 멋지고 감동적인 추모 영상을 만들고 장시간 촬영과 기록을 해주신 분들 멀리 전주에서 오셔서 사흘 밤낮 상가를 지키며 함께 해주신 선생님 당신의 저서와 부고 기사를 가져와 영전에 올리신 분 평토를 마친 묘 위에 막걸리를 부어 주신 분 그밖에도 고인을 위해 울어 주신 모든 분들께 숙연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감사 올립니다. 당신께서 남기신 일들을 받들어 이어가는 한편, 그간의 위로에 보답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새로운 봄을 맞아 모쪼록 건강하시고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020.4.1. 고 이이화 선생 유족을 대표하여 상주 이응일 올림 ※ 고 이이화 선생님 아드님인 상주 응일 씨가 유족을 대표해서 감사의 글을 보내왔다. 한편 장례가 끝난 후

기증자료

2020년 4월 21일 607

• 2월 21일 니시우미 유코(西海ゆう子) 씨가 조선인 강제연행 내용이 실린 마쓰시로 대본영(松代大本營) 역사관 팜플렛, 교토(京都) 우지(宇治)의 윤동주 비석 위치를 표기한 지도, 조선학교 무상화 요구 집회 전단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다큐멘터리 상영회 전단 등 총 6점을 기증했다. 니시우미 씨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을 두 번째로 방문하여 한일관계의 보다 좋은 미래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료와 함께 1만 엔의 후원금을 기부했다. •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아 일본에서 진행하는 야스쿠니신사강제합사철폐소송(노합사 소송) 일본 지원자의 소개로 2월 24일 니이쿠라 아키코(新倉郞子) 씨가 <경성부사> 1~3권 및 <제국일본의 식민지지배와 한국철도> 1권 총 4권을 보내왔다. 도서는 남편의 유품으로, 조금이나마 박물관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기증했다. • 3월 20일 나가노(長野) 현의 마쓰모토강제노동조사단(松本强制勞働調査團)이 단체활동 회보인 「통신단」의 데이터 74건을 기증했다. 3월 23일 나가노 현 마쓰시로대본영평화기념관(松代大本營平和記念館)은 1987년의 창간호와 최근 1년의 활동이 담긴 회보 「보존운동」의 데이터 16건을 기증했다. 작년에 대학생들과 박물관을 찾은 나가노현의 신슈(信州) 대학의 일본사 교수가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마쓰모토강제노동조사단은 앞으로도 강제동원, 강제노동의 실태를 위해 같이 진상규명에 나서자는 말을 남겼고, 마쓰시로대본영평화기념관은 지속적인 자료 기증 의사를 밝혔다. • 3월 18일 지속적으로 자료기증 중인 다니구치 요코(谷口洋子) 씨가 강제동원, 한일교류 등의 기사가 실린 <세계>, <불굴>, <적기>, <시민의 의견>, <평화신문>, <부인통신>과 같은 일본 신문, 잡지, 뉴스레터 총 21점을 보내왔다. “저항력을 유지하고 코로나를 이겨내자”라는 메시지와 함께 후원금 10만원을 기부했다. • 오카베 토시오(岡部壽郞) 씨가 2월부터 3월에

연구소 후원회원들에게 면 마스크 기증

2020년 4월 21일 610

[초점] 연구소 후원회원들에게 면 마스크 기증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전세계적인 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수준 높은 시민의식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어려운 가운데 서도 희망을 보게 된다. 연구소는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다시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후원회원과 그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전국 65세 이상 후원회원 약 600명에게 면 마스크를 발송했다.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감염 위험이 높은 환경에서는 보건용 마스크 사용이 필수적이지만 밀집도가 낮거나 환기가 잘 되는 곳 등 감염 우려가 낮은 환경에서 건강한 일반인을 위한 보조적 예방수단으로 당국에서도 면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있다.

‘효창독립커피’ 출시

2020년 4월 21일 1947

연구소는 국내외 후원회원들의 정기적인 후원금 외에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기업과 자영업자 분들의 기부금도 적지 않다. 4월 8일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는 ‘효창독립커피협약식’이 열렸다. 함세웅 이사장과 성빈인터내셔널 전혁준 대표이사 사이에 체결된 이번 협약에서 성빈인터내셔널은 효창독립커피 매출의 10%를 매달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부 키로 했다. 효창독립커피 사업은 2018년 김태욱 후원회원(전 장안대학교 교수)의 제안과 기획으로 커피·원두 판매사인 ㈜카페리즈(대표 강인규)와 유통 전문업체인 성빈인터내셔널(대표이사 전혁준)이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사가 판매, 유통하는 커피 매출의 일정액을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부하기로 뜻을 모으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뜻을 전달받은 연구소는 두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이 사업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발전시키기 위해 독창적인 커피 브랜드 제작을 제안하였다. 그 결과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 인근으로 독립운동의 상징적 장소 중 하나인 효창공원에 착안하여 ‘효창독립커피’로 제품 이름을 결정하고 첫 번째 효창독립커피 디자인 인물로는 효창공원 임정요인 묘역에 모셔져 있는 동암 차리석 선생을 정하였다. 효창독립커피 디자인은 평소 독립운동가 작품으로 유명한 젊은 그라피티 작가 레오다브(Leodav)가 참여하였다. 또한 효창독립커피 로고의 ‘獨立’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에서 집자(集字)한 것이다. 동암 차리석 선생의 아드님으로서 효창독립커피 디자인을 허락해 준 차영조 선생은 “평소 흑백 사진으로만 존재하던 아버지께 화려한 새 옷을 선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면서 “많은 시민들이 효창독립커피를 마시며 나의 아버지 나아가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분들을 한 번 더 생각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와 서울시 차원에서도 효창공원을 대표적인 독립운동

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5 개시

2020년 4월 21일 897

[초점] 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5 개시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5가 시작되었다. 이번 시즌에서는 다양한 외부 전문가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책으로 만나는 한국근현대사’ 코너를 마련했다. 근현대역사를 다루는 신간의 저자들을 초대해 책을 소개하고 근현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코너이다. 첫 번째 초대손님은 <첩보 한국 현대사>의 저자인 국사편찬위원회 고지훈 편사연구사이다. 이외에도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의 저자인 한겨레 김효순 대기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흥미로운 신간들이 속속 소개될 예정이다.   연구소 식구들이 꾸미는 코너들도 있다. 임헌영 소장의 ‘문학이야기’, 방학진 실장의 ‘시민운동의 현장’, 김영환 실장의 ‘한반도 평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먼저 소개되는 코너는 임헌영 소장의 ‘문학이야기’이다. 임헌영 소장의 풍부한 지식과 입담으로 즐거운 방송이 될 것이다. 또한 올해 60주년을 맞는 4·19혁명, 40주년을 맞는 5·18민주화운동, 70주년을 맞는 한국전쟁과 조선일보·동아일보 100년 등을 다루는 특집방송도 준비하고 있다. 시즌5를 위해 연구소는 지난겨울 연구소 5층에 팟캐스트 녹음과 영상 제작이 가능한 조그만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급격히 변화해가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극 대응하고 고유의 컨텐츠 생산 능력을 배가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팟캐스트와 유튜브 영상을 많이 청취해 주시고 아울러 변함없는 성원을 부탁드린다. • 조한성 출판팀장 • 업로드 : 매주 화요일 • 오디오 팟빵 : www.podbbang.com/ch/14024/?e=23229402 • 출연진 : MC 노기환, 임헌영, 방학진, 김영환, 조한성, 권시용, 초대손님 • 연출 : 김세호 PD • 촬영 : 오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