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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역대 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이 잇달아 벽제관을 시찰한 까닭은? 사쿠라와 단풍나무 동산으로 구축한 그들만의 성지

2020년 7월 27일 2739

[식민지 비망록 60] 역대 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이 잇달아 벽제관을 시찰한 까닭은? 사쿠라와 단풍나무 동산으로 구축한 그들만의 성지 이순우 책임연구원   <승정원일기> 고종 40년(1903년) 10월 3일(양력 11월 21일) 기사에는 평양이궁(平壤離宮)인 풍경궁(豐慶宮)에 어진과 예진을 봉안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현지로 떠나려던 의정 이근명(議政 李根命, 1840~1916)에게 고종황제가 하문하는 내용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화 한 토막이 수록되어 있다.   …… 이어 전교하기를, “어느 곳으로 길을 잡았는가?” 하니, 이근명이 가로되, “처음에는 수로(水路)로 가기로 계획하였습니다만, 감동당상 민영철(監董堂上 閔泳喆)이 전보한 바에 근일(近日) 수로에 풍랑이 잦아 육행(陸行)을 권하기에 육로로 가려고 하나이다.” 하였다. …… 상(上)이 이르기를, “며칠간의 노정(路程)인가?” 하니, 이근명이 가로되, “550리인데, 하루에 7, 80리를 가면 7, 8일이면 가능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갑오년(1894년) 이전에 칙사(勅使)나 동지사(冬至使)가 지날 때는 도로가 광탄(廣坦)하고 점막(店幕)도 즐비했는데, 지금은 틀림없이 많이 황폐해졌을 것이니라. ” 하니, 이근명이 가로되, “그렇습니다.” 하였다   사진엽서에 남아 있는 벽제관의 옛 모습이다. 아래의 설명문에는 “임진왜란 때 코바야카와 타카카게가 명나라군대를 격파했던 곳”이라고 하여 이 공간의 의미를 전적으로 자신들의 전승지라는 점과 결부시켜놓고있다. 언덕 위에 보이는 것이 ‘괘갑수(掛甲樹)’라고 전해지는 느티나무이다.(민족문제연구소 소장자료)   (왼쪽) 벽제관의 외대문에 달려 있는 ‘벽제관(碧蹄館)’ 편액의 모습이다. 이 사진의 아래에는 성종 때 사신으로 왔던 동월(董越, 1430-1502)이 쓴 글씨라고 전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 편액의 잔편은 현재 일산호수공원에 있는 ‘고양600년기념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다. (경전하이킹코스 제6집,

부역언론의 ‘산파’, 두 사주(社主)의 민낯

2020년 7월 27일 1367

[특집] 미리 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기획전시 │ 조선 동아 적폐언론 100년을 다시 본다(3) 부역언론의 ‘산파’, 두 사주(社主)의 민낯 최우현 학예실 주임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기획전을 마련했다. 영광과 오욕의 100년 가운데 ‘오욕’이 사라진 100년을 비판하기 위해 기획됐다. 원래 두 신문의 창간일에 맞춰 3월에 개막하고자 했으나 코로나 19 감염병 확산으로 박물관을 잠정 휴관함에 따라 전시를 8월로 연기했다. 민족사랑에 3회에 걸쳐 미리 전시회의 주요 내용과 자료를 소개한다.   1939년 12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하시 고이치로(三橋孝一郞)가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를 자기 관사로 불렀다. 조선일보의 경영에 관한 내용을 청취하고 총독부의 ‘언문신문’ 관리 의향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총독부는 당시 최고의 실세 중 하나였던 미하시와 방응모의 만남을 「언문신문통제에 관한 건(諺文新聞統制ニ關スル件)」이라는 극비문서로 자세히 기록했다. 이 문서에 ‘협의(協議)’로 정의된 둘의 만남은 이날부터 무려 10차에 걸쳐 이어졌다.  12월 22일 첫 번째 만남에서 방응모는 먼저 이렇게 고백했다. “신문사업을 경영한 지 6년여에 그 실비(失費)가 많아서 곤란함에 빠져 오히려 교육 기타 사회사업 등의 문화 사업으로 전환하기를 희망한다.”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자진’ 폐간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미하시는 반색했다. 2차대전 발발 등으로 어수선한 정국을 ‘언론통폐합’을 통해 다잡으려 했던 조선총독부의 모략을 언론사 사주(社主)가 스스로 나서 도와주는 셈이었다. 미하시는 실제로도 이 같은 방응모의 제안이 고마웠던지 통제방침에 잘 응하면, 방응모의 희망에 대해서도 “상당한 고려를 할 수 있다”며 선심을 썼다. 이에

언론중재위, <친일인명사전> 폄훼한 매경닷컴 칼럼에 대해 반론보도 결정

2020년 7월 27일 997

[초점] 김세형 매일경제 고문이 6월 9일자 매경닷컴에 게재한 ‘한국의 친일파, 토착왜구는 누구인가?’라는 칼럼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술하여 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의 신뢰를 크게 손상시켰다. 즉 칼럼에서 “일개 시민단체가 정치권의 보수・진보의 합의도 없이 입맛대로 정하다보니” “만해 한용운, 춘원 이광수까지 모조리 친일 명단에 들어가고” “민주당 고위층 할아버지는 을사오적에 버금가는 고위급 관료 출신이었는데도 빠졌다.” 등등 〈친일인명사전〉 발간 취지나 수록자 선정기준, 사전 내용과 전혀 맞지 않는 허위 사실을 기사화했던 것이다. 연구소는 이러한 허위 왜곡보도를 바로잡고자 6월 18일에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신청했다. 이어서 7월 2일과 15일 두 차례의 조정심리를 가졌는데 2차 심리기일에 처음 출석한 매경닷컴측은 연구소의 입장을 전면 수용하였다. 이에 언론중재위원회는 ‘반론보도’ 형식으로 김세형 칼럼 하단에 다음 문구를 영구적으로 게재하도록 결정했다. 연구소는 앞으로도 〈친일인명사전〉과 연구소를 허위 비방하거나 음해하는 세력과 언론매체 에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다.   본 신문(매경닷컴)은 지난 6월9일 게재한 <한국의 친일파, 토착왜구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김세형 칼럼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술했습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은 국민성금으로 학계를 망라한 180여명의 교수 연구자들이 8년간의 지난한 작업 끝에 이뤄낸 소중한 성과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의 객관성 공정성은 학계가 공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판결에서도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습니다. 나아가 보수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정부기관에서도 공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는 데서 그 엄밀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본 칼럼에서는

2020 여름 시민강좌 ‘차별과 혐오의 역사 넘어서기’ 강좌 진행

2020년 7월 27일 1360

[초점] 2020 여름 시민강좌 ‘차별과 혐오의 역사 넘어서기’ 강좌 진행   연구소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공동으로 지난 6월 30일부터 시민강좌 ‘차별과 혐오의 역사 넘어서기’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나날이 심각해가는 배외주의 분위기에다가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 믹까지 더해져 차별과 혐오가 노골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에 기반한 혐오범죄 사건이 발생했고, 이로써 촉발된 반차별 운동이 국제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국제적 반차별 운동은 제 국주의 역사 기념물 철거운동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지금도 지속되는 ‘차별과 혐오’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성찰해 보고자 이번 시민강좌를 기획하였다. 특히 이번 강좌는 ‘차별’의 오랜 기원이라고 할 제국주의 침략 역사와 과거 청산의 노력을 살펴보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차별과 혐오에 맞설 수 있는 공감과 연대의 힘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이 강좌에는 차별반대, 과거사청산, 식민주의 극복의 연구와 실천운동을 펼친 연구자와 활동가가 강사 로 초빙되었다. 1강 염운옥 교수의 “제국주의의 인종차별, 낙인과 폭력의 역사”는 강좌 주제 전체를 개괄 하였고, 2강 김민철 교수의 “‘차별’로 구조화된 일제 강제동원·강제노동의 역사”와 3강 이동기 교수의 “역사정의와 유럽의 과거청산-증오와 혐오를 넘어”는 제국주의 시대 차별 양산 구조와 과거청산의 현재적 실태를 살펴보았다. 4강 미류 인권활동가는 “질문으로서의 차별금지법”을 소개하며 차별 철폐 법제화의 의의를 강조하였고, 5강 조경희 교수의 “자이니치, 혐오와 차별에 맞서다”는 혐오범죄에 맞선 재일조선인 투쟁의 역사를 다루었다. 6강은 서승 교수가

친일화가가 그린 이순신 표준영정, 47년 만에 지정 해제

2020년 7월 27일 1271

[초점] 친일화가가 그린 이순신 표준영정, 47년 만에 지정 해제   우리 연구소는 지난 2004년부터 친일경력이 있는 화가들이 그린 위인들의 표준영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리고 연구소 충남지부와 천안아산지회는 2014년 10월부터 아산 현충사 앞에서 “친일화가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을 즉각 교체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과 서명운동을 벌여왔다. 이러한 여론을 바탕으로 2010년과 2017년 문화재청 산하 현충사관리 사무소는 문화체육관광부 영정심의위원회에 이순신 표준영정 지정 해제를 신청했지만 모두 반려됐다. 2010년 영정심의위원회는 심의규정에 ‘멸실, 도난, 훼손 등의 경우’에만 영정을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의 친일 논란은 지정 해제 사유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신청을 반려했다. 2017년에는 “충무공은 국민적 영웅으로서 표준영정 지정 해제에 따른 혼란과 갈등이 야기될 우려가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판단,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은 국가사적지인 현충사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현상변경의 필요성에 대해 문화재위원회 사전심의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역시 신청을 반려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영주 의원은 “항일의 상징인 충무공의 영정을 친일 화가가 그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즉각 교체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지정해제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특히 김영주 의원은 영정심의위원회 규정과 심의위원회 구성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 결과 문체부는 지난해 12월 영정 심의규정에 ‘복식, 용모 등이 잘못 표현된 경우’와 ‘사회통념에 비춰 재제작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를 추가한 것이다. 즉 ‘친일’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사회통념’을 추가하여 사실상

기증자료

2020년 7월 27일 671

[기증자료] 다니구치 요코(谷口洋子) 씨가 6월 30일 한일 과거사 관련 기사가 실린 일본 신문 및 잡지와 일본 오카야마(岡山) 현에서 열린 남북공동선언 19주년 기념강연 심포지엄 자료 등 총 15점을 보내왔다. 후원회원 곽의진 씨가 기증한 면마스크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에 후원금 50만 엔(약 550만 원)을 기부했다.   다니구치 씨가 기증한 자료이다.   오카베 토시오(岡部壽郞) 씨가 6월 한달 동안 <도쿄신문> 기사 총 18점을 스캔하여 데이터로 기증했다. 이번 기사에는 지난 6월 15일 도쿄에서 일반 공개된 ‘산업유산정보센터’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오카베 씨는 지난해 박물관을 관람한 이후로 올해 1월부터 지속적으로 한국 관련 기사 데이터를 메일로 보내오고 있다. • 김진희 학예실 연구원

조선신궁어진좌10주년기념 은뢰恩賴

2020년 7월 27일 1880

<은뢰>, 발음부터 어렵다. 뜻은 ‘천황’의 위엄한 자태 또는 존엄한 ‘천황’이 내려와 온 세상에 가득한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목부터 이 책자의 편찬 방침이 ‘천황의 은혜’가 곳곳에 미쳐 발전한 조선의 모습을 시각적이고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은뢰>는 1937년 11월 조선신궁봉찬회에서 조선신궁 건립 10주년을 기념하여 발행한 사진첩이다. 따라서 메이지 ‘천황’을 제신으로 하는 조선신궁의 모습을 중심으로 조선의 자연, 문명, 모성, 의례 등 350여 점의 사진 이미지 삽입, 총 338쪽으로 구성하였다. 책자의 크기는 가로 26cm, 세로 36.5cm이며 재질이 좋은 종이를 사용하여 고급스러움을 추구했다. 비매품인데도 불구하고 발행년도를 달리하여 여러 쇄를 찍었는데 배포대상이 일반인이 아니라 조선을 통치하는 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증정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은뢰>의 소장처는 독립기념관과 연세대 등 몇몇 대학도서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데 인쇄 수량에 비해 발견된 것은 많지 않다. 연구소는 수집본과 기증본(즈시 미노루) 총 2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모두 1940년 판본이다. <은뢰>는 총설편, 제1편~제5편, 외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설편에서는 신궁의 창립 유래와 진좌제 등 조선신궁을 개략적으로 소개한다. 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내선융화’의 정서를 시각화한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제1편~제5편은 1925년부터 1935년까지 11년을 11개의 장, 5편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각 장마다 해당 년에 일어난 사건과 각종 의례 등을 기록해 연보적 성격을 보여 주는데 각 지역의 신사와 명승고적 및 메이지 ‘천황’의 제사를 고르게 배치하였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현인신現人神’인 ‘천황’의 실체는 사진첩에

조선 동아 적폐언론 100년을 다시 본다(2) 조선·동아 전쟁범죄의 민낯

2020년 6월 23일 1616

[특집] 미리 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기획전시 │ 조선 동아 적폐언론 100년을 다시 본다(2) 조선·동아 전쟁범죄의 민낯 최우현 학예실 주임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기획전을 마련했다. 영광과 오욕의 100년 가운데 ‘오욕’이 사라진 100년을 비판하기 위해 기획됐다. 원래 두 신문의 창간일에 맞춰 3월에 개막하고자 했으나 코로나 19 감염병 확산으로 박물관을 잠정 휴관함에 따라 전시를 8월로 연기했다. 민족사랑에 3회에 걸쳐 미리 전시회의 주요 내용과 자료를 소개한다.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기본 정신으로 성장한다. 자유는 언론이 성장하기 위한 토양이다. 여기서 말하는 ‘표현의 자유’는 권력의 억압적 성격에 저항하는 언론의 속성으로 상당한 순기능을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다. 그러나 반대로, 권력의 위치에 선 언론이 행하는 ‘표현의 자유’는 국가의 이름하에 약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장치로 변질된다. 여기에 심각하게 경도된 언론들은 특히 전쟁이나 사변 같은 사태에 민중을 선동하면서 중대한 인권범죄를 합리화하거나 폭력과 증오의 ‘표현의 자유’를 외치기도 한다. 국제인권규약은 전쟁선동, 선전 등에 대한 언론의 자유에 분명한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 제20조에 따르면 전쟁을 위한 어떠한 선전도 법률에 의하여 금지되며, 차별이나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만한 증오의 고취 또한 금지된다. 물론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생한 국제적 선언으로 그보다 이전의 사례에 일방적으로 적용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같은 규약은 존재 자체로 언론의 전쟁부역 행위가

군부대 소재지를 일컬어 ‘◯◯대(臺)’라는 별칭이 생겨난 연유는? 일본천황이 육군사관학교에 ‘상무대’로 하사한 것이 최초 용례

2020년 6월 23일 2872

[식민지 비망록 59] 군부대 소재지를 일컬어 ‘◯◯대(臺)’라는 별칭이 생겨난 연유는? 일본천황이 육군사관학교에 ‘상무대’로 하사한 것이 최초 용례 이순우 책임연구원   이른바 ‘7080세대’이면서 수도권대학에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무대(文武臺)라는 명칭에 대해 아련한 기억 한 자락씩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해묵은 자료를 뒤져보니 ‘김신조 사건(1.21사태)’으로 촉발된 안보위기를 빌미로 대학생을 상대로 한 군사교육(교양필수과목으로 교련과목을 설정)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69년이었다. <동아일보> 1976년 6월 29일자에 수록된 학생병영훈련소 즉, ‘문무대’ 준공 관련 보도내용이다.   여기에 더하여 1975년에 월남이 패망하자 유신체제 하의 군사정권은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총력안보(總力安保)라는 구호를 앞세워 그 이듬해부터 이른바 ‘병영집체훈련’이라는 제도를 장착하였다. 이때 긴급하게 경기도 성남시에 ‘학생병영훈련소’가 만들어졌으며, 여기에 붙여진 이름이 ‘문무대’였던 것이다. <동아일보> 1976년 6월 29일자에 수록된 「학생병영훈련소(學生兵營訓鍊所), ‘문무대’ 준공」 제하의 기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대학생 병영훈련의 도장이 될 학생병영훈련소가 준공, 28일 오후 〇〇지역 현장에서 이세호(李世鎬) 육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 및 현판식이 있었다. 박(朴) 대통령의 휘호로 ‘문무대(文武臺)’라 명명된 이 훈련소에는 7월 1일부터 11월 중순까지 전국 57개 대학 일반군사교육 대상자 중 1학년 일부가 단계적으로 입영, 10일간의 집체교육을 받게 된다.   더구나 이곳에는 1977년 4월 14일에 이은상(李殷相)이 지은 건립취지문을 덧붙여 박정희대통령의 휘호를 새긴 문무탑(文武塔)이 건립된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후 1981년에는 ‘전방부대 입소교’이란 것이 생겨나 철책선 경계근무가 추가되었고, 재학생 입영연기와 더불어 최대 6개월의

광복회의 비전과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에 대해 듣다

2020년 6월 23일 1221

[인터뷰] 광복회의 비전과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에 대해 듣다 인터뷰 MC노·방학진 기획실장 | 정리 김혜영 선임연구원 이번 인터뷰는 6월 2일 연구소 5층 스튜디오에서 김원웅 광복회장과 가진,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5 제9화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를 요약 정리하였다. 인터뷰 전문은 유튜브와 팟빵에서 ‘내역사 김원웅 광복회장’으로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편집자 ● MC노 2019년 21대 광복회장으로 취임하신 김원웅 광복회장님을 모셨습니다. 지난 1년간의 광복회 사업과 앞으로 광복회 비전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 김원웅 작년 6월 1일에 취임을 했으니까 딱 1년 됐습니다. 광복회는 독립유공자 후손 중 한명만 회원 자격이 주어집니다. 저 같은 경우도 7남매 중에 장남으로 저는 광복회원이지만 동생들은 광복회원이 아니고 독립유공자 유족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약 8,100명이 광복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 MC노 그렇군요. 광복회에서 주로 하는 사업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 김원웅 광복회는 민족정기를 선양하는 사업, 그리고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 등을 하도록 정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 MC노 김원웅 광복회장님에 대해서는 방학진 기획실장님이 소개해주세요. ● 방학진 많은 분들이 광복회장 김원웅보다는 정치인 김원웅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분의 숨겨진 이력 중에 하나는 부모님 두 분 모두 독립운동가십니다. 이런 분들을 우리는 ‘성골’이라고 하죠.(웃음) ● MC노 그러면 부모님 두 분은 어떤 분들입니까? ● 방학진 아버님은 김근수 선생님이시고 어머님은 전월선 여사님이십니다. 아버님은 1935년 중국 난징에서 의열단 활동을 하셨고, 광복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