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북한언론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수한 기자
3월 12일 오후 5시, 연구소 3층 회의실에서 헤럴드경제 기자인 김수한 후원회원을 인터뷰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2001년부터 20년 가까이 연구소를 후원해 온 김수한 회원이 작년 8월 동국대학교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연구 주제가 이례적으로 김정일·김정은 정권하의 북한 언론 현황에 관련된 것이었다.몇 년 전부터 ‘기레기’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언론 개혁과 기자들의 자질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현직 기자로서 여전히 금단의 영역이면서 조심스러운 북한문제, 그것도 우리에게는 생소한 북한언론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문 : 연구소는 언제 후원회원으로 가입했나요? 답 : 제가 95학번(고려대 노어노문학과)인데 2001년 2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앞둔 상태에서 방학진 당시 사무국장 권유로 가입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복학 후에 연구소에서 주최하는 강좌나 소모임에 가끔 나갔었고, 2002년 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친일 예술인과 그들의 작품전’ 전시회 때 자원봉사도 했었죠. 그 무렵 누군가 고대 인촌(김성수) 동상에 페인트를 뿌린 사건이 발생했는데, 고려대 영자신문사 기자 출신으로서 ‘큰 사건’이라는 직감이 들어 방 국장께 전화해 사건을 알리기도 했었어요. 그때 방 국장이 전화통화 직후 즉시 고대로 와서 함께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었죠.ㅠ 문 : 1997년 창단된 한국축구 국가대표 서포터즈인 ‘붉은악마’로 활동했다고 들었는데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말씀해 주세요. 제가 1997년 8월 고려대 영자신문사 편집국장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어요. 그때가 3학년 1학기를 마친 상태인데, 막상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오니 ‘은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체감이 좀 됐었어요.
31년 역사교사를 마치며
[후원회원마당] 31년 역사교사를 마치며 김해규 후원회원(전 평택한광여중 교사・현 평택인문연구소장) 31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올해 2월 퇴직한 김해규 후원회원은 2004년 4월부터 연구소를 후원하기 시작한 이후 평택지역 후원회원 모임 조직, 평택지역 내 일제잔재 조사 자문, 신흥무관학교 국외 답사 등 연구소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제자는 물론 동료선생님들과도 석별의 정을 나누지도 못한 채 교단을 떠나게 되는 아쉬움을 달래며 퇴임의 글을 보내왔다. 퇴임에 즈음하여 김해규 후원회원은 2월 6일 평택지역 인문학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활동을 하게 될 평택인문연구소를 창립해 소장에 취임했다. 저서로는 <평택역사산책> <근현대 평택을 걷다> <평택사람들의 길> 등이 있다.- 엮은이 역사학이 너무 좋아 역사책이라면 무엇이든 읽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역사박사’라는 기분 좋은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역사과목 잘해봤자 선생밖에 더 돼’ 친구들은 비아냥거렸지만 소년은 ‘역사교사’의 꿈을 꿨습니다. 역사교사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알았습니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말이죠.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도 겨우 입학한 처지에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사범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친구들은 고등학교 진학준비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아버지 눈치만 살폈습니다. 큰 맘 먹고 ‘아부지 저 고등학교 가요?’라고 물었던 어느 날, 아버지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더니 ‘한 번 가봐라’라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허락이 떨어진 뒤에도 눈치만 살폈습니다. 소년은 인문계를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원했던 것은
삼가 인사드립니다
[감사인사] 삼가 인사드립니다 이이화 선생 마지막 가시는 길에 찾아와 명복을 빌어 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수선한 시국에 멀리서 마음을 전해 주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는 화창한 봄날 파주집 근처 공원묘지의 양지바른 곳에 편히 잠드셨습니다. 당신의 생전 사진과 때 묻은 수첩의 연락처를 정리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시고, 또 당신께서 사랑하신 분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습니다. 생전에 당신께서 남기신 족적과 더불어 전국 각지의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교류하신 폭과 깊이의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성심을 다해 그간의 과정을 준비해주신 장의위원회의 윤경로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어르신들 훈장 수여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힘써주신 분들 장례식장의 데스크를 지키고 밤늦도록 정리해주신 분들 멋지고 감동적인 추모 영상을 만들고 장시간 촬영과 기록을 해주신 분들 멀리 전주에서 오셔서 사흘 밤낮 상가를 지키며 함께 해주신 선생님 당신의 저서와 부고 기사를 가져와 영전에 올리신 분 평토를 마친 묘 위에 막걸리를 부어 주신 분 그밖에도 고인을 위해 울어 주신 모든 분들께 숙연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감사 올립니다. 당신께서 남기신 일들을 받들어 이어가는 한편, 그간의 위로에 보답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새로운 봄을 맞아 모쪼록 건강하시고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020.4.1. 고 이이화 선생 유족을 대표하여 상주 이응일 올림 ※ 고 이이화 선생님 아드님인 상주 응일 씨가 유족을 대표해서 감사의 글을 보내왔다. 한편 장례가 끝난 후
기증자료
• 2월 21일 니시우미 유코(西海ゆう子) 씨가 조선인 강제연행 내용이 실린 마쓰시로 대본영(松代大本營) 역사관 팜플렛, 교토(京都) 우지(宇治)의 윤동주 비석 위치를 표기한 지도, 조선학교 무상화 요구 집회 전단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다큐멘터리 상영회 전단 등 총 6점을 기증했다. 니시우미 씨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을 두 번째로 방문하여 한일관계의 보다 좋은 미래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료와 함께 1만 엔의 후원금을 기부했다. •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아 일본에서 진행하는 야스쿠니신사강제합사철폐소송(노합사 소송) 일본 지원자의 소개로 2월 24일 니이쿠라 아키코(新倉郞子) 씨가 <경성부사> 1~3권 및 <제국일본의 식민지지배와 한국철도> 1권 총 4권을 보내왔다. 도서는 남편의 유품으로, 조금이나마 박물관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기증했다. • 3월 20일 나가노(長野) 현의 마쓰모토강제노동조사단(松本强制勞働調査團)이 단체활동 회보인 「통신단」의 데이터 74건을 기증했다. 3월 23일 나가노 현 마쓰시로대본영평화기념관(松代大本營平和記念館)은 1987년의 창간호와 최근 1년의 활동이 담긴 회보 「보존운동」의 데이터 16건을 기증했다. 작년에 대학생들과 박물관을 찾은 나가노현의 신슈(信州) 대학의 일본사 교수가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마쓰모토강제노동조사단은 앞으로도 강제동원, 강제노동의 실태를 위해 같이 진상규명에 나서자는 말을 남겼고, 마쓰시로대본영평화기념관은 지속적인 자료 기증 의사를 밝혔다. • 3월 18일 지속적으로 자료기증 중인 다니구치 요코(谷口洋子) 씨가 강제동원, 한일교류 등의 기사가 실린 <세계>, <불굴>, <적기>, <시민의 의견>, <평화신문>, <부인통신>과 같은 일본 신문, 잡지, 뉴스레터 총 21점을 보내왔다. “저항력을 유지하고 코로나를 이겨내자”라는 메시지와 함께 후원금 10만원을 기부했다. • 오카베 토시오(岡部壽郞) 씨가 2월부터 3월에
연구소 후원회원들에게 면 마스크 기증
[초점] 연구소 후원회원들에게 면 마스크 기증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전세계적인 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수준 높은 시민의식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어려운 가운데 서도 희망을 보게 된다. 연구소는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다시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후원회원과 그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전국 65세 이상 후원회원 약 600명에게 면 마스크를 발송했다.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감염 위험이 높은 환경에서는 보건용 마스크 사용이 필수적이지만 밀집도가 낮거나 환기가 잘 되는 곳 등 감염 우려가 낮은 환경에서 건강한 일반인을 위한 보조적 예방수단으로 당국에서도 면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있다.
‘효창독립커피’ 출시
연구소는 국내외 후원회원들의 정기적인 후원금 외에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기업과 자영업자 분들의 기부금도 적지 않다. 4월 8일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는 ‘효창독립커피협약식’이 열렸다. 함세웅 이사장과 성빈인터내셔널 전혁준 대표이사 사이에 체결된 이번 협약에서 성빈인터내셔널은 효창독립커피 매출의 10%를 매달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부 키로 했다. 효창독립커피 사업은 2018년 김태욱 후원회원(전 장안대학교 교수)의 제안과 기획으로 커피·원두 판매사인 ㈜카페리즈(대표 강인규)와 유통 전문업체인 성빈인터내셔널(대표이사 전혁준)이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사가 판매, 유통하는 커피 매출의 일정액을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부하기로 뜻을 모으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뜻을 전달받은 연구소는 두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이 사업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발전시키기 위해 독창적인 커피 브랜드 제작을 제안하였다. 그 결과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 인근으로 독립운동의 상징적 장소 중 하나인 효창공원에 착안하여 ‘효창독립커피’로 제품 이름을 결정하고 첫 번째 효창독립커피 디자인 인물로는 효창공원 임정요인 묘역에 모셔져 있는 동암 차리석 선생을 정하였다. 효창독립커피 디자인은 평소 독립운동가 작품으로 유명한 젊은 그라피티 작가 레오다브(Leodav)가 참여하였다. 또한 효창독립커피 로고의 ‘獨立’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에서 집자(集字)한 것이다. 동암 차리석 선생의 아드님으로서 효창독립커피 디자인을 허락해 준 차영조 선생은 “평소 흑백 사진으로만 존재하던 아버지께 화려한 새 옷을 선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면서 “많은 시민들이 효창독립커피를 마시며 나의 아버지 나아가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분들을 한 번 더 생각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와 서울시 차원에서도 효창공원을 대표적인 독립운동
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5 개시
[초점] 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5 개시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5가 시작되었다. 이번 시즌에서는 다양한 외부 전문가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책으로 만나는 한국근현대사’ 코너를 마련했다. 근현대역사를 다루는 신간의 저자들을 초대해 책을 소개하고 근현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코너이다. 첫 번째 초대손님은 <첩보 한국 현대사>의 저자인 국사편찬위원회 고지훈 편사연구사이다. 이외에도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의 저자인 한겨레 김효순 대기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흥미로운 신간들이 속속 소개될 예정이다. 연구소 식구들이 꾸미는 코너들도 있다. 임헌영 소장의 ‘문학이야기’, 방학진 실장의 ‘시민운동의 현장’, 김영환 실장의 ‘한반도 평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먼저 소개되는 코너는 임헌영 소장의 ‘문학이야기’이다. 임헌영 소장의 풍부한 지식과 입담으로 즐거운 방송이 될 것이다. 또한 올해 60주년을 맞는 4·19혁명, 40주년을 맞는 5·18민주화운동, 70주년을 맞는 한국전쟁과 조선일보·동아일보 100년 등을 다루는 특집방송도 준비하고 있다. 시즌5를 위해 연구소는 지난겨울 연구소 5층에 팟캐스트 녹음과 영상 제작이 가능한 조그만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급격히 변화해가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극 대응하고 고유의 컨텐츠 생산 능력을 배가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팟캐스트와 유튜브 영상을 많이 청취해 주시고 아울러 변함없는 성원을 부탁드린다. • 조한성 출판팀장 • 업로드 : 매주 화요일 • 오디오 팟빵 : www.podbbang.com/ch/14024/?e=23229402 • 출연진 : MC 노기환, 임헌영, 방학진, 김영환, 조한성, 권시용, 초대손님 • 연출 : 김세호 PD • 촬영 : 오경아
지고의 희생은 찬연한 역사를 창조한다
[소장자료 톺아보기•14] 지고至高의 희생은 찬연燦然한 역사를 창조한다 <민권투쟁> – 민주혁명의 역사적 기록 “인간 기본 권리의 부활과 억압당한 민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조국의 부름에 奮然히 총궐기한 전국 애국학도의 피의 의거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靑史에 기록될 英勇한 민권의 투쟁이었다. 또다시 있어서는 안 될 폭정에 吊鍾을 울리고 민권의 승리를 이룩한 이 투쟁은 감격적 세기의 軌道에 絢爛한 역사를 창조하였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기억될 민주혁명의 교훈을 받들어 「제2공화국」의 밝아오는 여명기에부여된 과업을 수행하여 원한의 흉탄에 쓰러져 간 영혼들에 보답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피흘린 자죽처럼 엮어진 민권투쟁의 이 적은 기록을 삼가 비통하고 거룩한 희생으로 散華한 젊은 애국학도들의 영전에 바치나이다.” – 편집인 일동, 단기 4293년 5월 19일-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올해로 60년을 맞이한 4월혁명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 화보이다. 서울의 동방사진뉴스사에서 1960년 5월 23일 <동방사진뉴스> 제180호 임시증간호로 발행한 것으로 총 51쪽으로 구성하여 <민권투쟁 – 민주혁명의 역사적 기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선거에 대한 반대로 시작한 1960년의 4월혁명은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2월 28일 대구학생시위를 시작으로 3월 15일 마산 시위, 4·18 고려대생 시위에 이어 혁명의 절정에 이른 4월 19일의 대규모시위와 4·25 대학교수단 시위로 전개되었다. 특히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던 마산상고 김주열 군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지방에서 발생하였다. ‘피의 화요일’이라고도 불린 4월 19일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언덕에 자리했던 순직경찰관초혼비 3•1만세운동 때 처단된 일본인 순사들을 위한 기념물
[식민지 비망록 56]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언덕에 자리했던 순직경찰관초혼비 3•1만세운동 때 처단된 일본인 순사들을 위한 기념물 이순우 책임연구원 수원화성 팔달문 쪽에서 성벽 옆의 계단길을 삼백미터 남짓 따라 올라가면 서남 암문 앞쪽에 이르러 숲속의 작은 빈터에 자리한 ‘3.1독립운동기념탑’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1969년 3월 1일 ‘삼일독립기념탑’이란 명칭으로 중포산(中布山)에 조성되었던 것을 삼일동지회(三一同志會, 1969년 4월 12일 창립)에 의해 그해 10월 15일에 다시 지금의 자리로 이전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 기념탑 바로 옆에는 이것과 함께 옮겨온 약간은 이색적인 또 다른 기념비 하나가 남아 있는데,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앞뒷면에 한글로 ‘대한민국독립기념비’라고 새겨넣은 것이 눈에 띈다. 한쪽 옆에는 ‘수원읍민 수원군내 학생 일동’이라고 되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단기 4281년 8월 15일 건립(유근홍 씀, 이상훈 만듬)’이란 글씨가 있다. 수원 팔달산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민국독립기념비’의 모습이다. 원래 수원화성 화홍문 옆 방화수류정 언덕에 있었으나 196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동아일보> 1949년 1월 18일자에 수록된 ‘대한민국독립기념비’ 제막 관련 기사이다. 일제 때 조성된 ‘순직경찰관초혼비’를 헐어내고 바로 그 자리에 이 비석이 건립되었다. 이 비석의 건립 내력이 궁금하여 신문자료를 찾아보았더니, 한참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동아일보> 1949년 1월 18일자에 수록된 「수원에서 대한독립기념비 제막식 성대 거행」 제하의 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수원] 잔악무도한 왜적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또 그대들이 세운 가증한 공비를 부시고
“대한의 광복을 죽기로 맹세한 땅” 해간도 항일독립운동의 본거지를 가다
[기고] 항일운동 유적지 취재기 “대한의 광복을 죽기로 맹세한 땅” 해간도 항일독립운동의 본거지를 가다 이은지 YTN 라디오 PD 과거 역사를 더듬어보고 미래로 이어주는 중간지점이 한·러수교 30주년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와 미래를 잇는 데에 연해주 독립운동 유적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러시아가 소련의 많은 레거시(전통)를 부정했는데 현대까지 계속 유지되는 것 중 하나가 ‘꺼지지 않는 불꽃’ 이라는 겁니다. 조국을 위해 싸운 무명용사들을 우리 후손들이 기억하겠다, 그들의 불빛이 꺼지지 않게 하겠다는 거죠. 우리에게도 이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독립운동에는 좌우가 없습니다. 이념 때문에 잊힌 러시아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우리가 새롭게 발굴하고 체계화하여 지켜나가고, 의미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오성환 총영사 인터뷰에서 역사는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다 지난해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서간도를 답사한 후 제작한 라디오 다큐멘터리 〈서간도 독립운동가 무명씨의 꿈〉(연출 : 이은지, 구성 : 홍기희)에 담았던 문장입니다.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는 데에도 이런 ‘투쟁’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필수적인 과정은 시간을 다툽니다. 기억은 한 세대를 거치면서 그 양과 선명도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가의 대부라고 불렸던 ‘페치카 최’ 최재형의 손자인 최 발렌틴 러시아 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이 지난 2월 14일 별세했습니다. “이제라도 찾고, 우선 기억하는 것부터 기록해놓아야 한다”던 그의 한마디가 마음에 사무칩니다. 이에 저는 지난해 11월 해간도 항일독립운동 본거지라고 불리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일대를 답사하고 온 기억들을 이곳에 기록합니다. 연해주(沿海州)는 해간도(海間島)로 불리며 만주의 북간도, 서간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