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민족문학연구회, <겨레의 큰 별들> 출간
[초점] 민족문학연구회, <겨레의 큰 별들> 출간 민족문학연구회(회장 맹문재)는 지난해 광복절에 펴낸 독립운동가 기림시선 1집 〈독립운동의 접두사〉에 이어 올 3월에 기림시선 2집 〈겨레의 큰 별들〉을 민연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민족문학연구회 소속 작가 45인이 쓴 가네코 후미코와 그 남편 박열, 김구, 민영환, 유관 순, 유일한, 이동녕, 장준하, 차리석, 한용운 등 45인의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 45편이 실렸다. ‘책을 펴내며’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삶을 바친 그 분들의 삶과 정신을 올곧게 되찾아 바로 세우고 그 정신의 바탕 위에서 우리를 성찰하는 것은 단순히 그 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만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림시선의 편찬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책에는 45편의 기림시뿐 아니라 45인의 독립운동가 약력을 수록했고 김성동 작가의 발문 「‘친일파’가 아니라 ‘민족반역자’다」를 실었다. 민족문학연구회는 기림시선을 앞으로도 꾸준히 발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101년 전 3·1운동의 함성 소리가 귀에 맴도는 요즘,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김산의 <아리랑>로드를 찾아서(2)
[후원회원 마당] 김산의 <아리랑>로드를 찾아서(2) 주동욱 서울 송파 후원회원 광주(광저우)에 도착하다 2020년 1월 10일 ‘아리랑 답사단’ 33명이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 광주(광저우, 廣州)에 도착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지부 회원들이 공항에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아리랑 로드〉 답사는 독립운동 유적지 발굴과 연구에 앞장선 광동지부 회원들이 기획했다. 중국 남방지역 역사 답사는 드문 편이다. 이번 〈아리랑 로드〉는 독립운동사 전공자도 처음 방문하는 곳이 많고, 김산(金山)의 삶에서 가장 치열했던 현장을 찾아가는 답사여서 관심을 끌었다. 버스에서는 이정찬 교수의 열정넘친 중국 근대사 강의가 날마다 이어졌다. 〈아리랑〉과 〈김산평전〉을 읽는 답사자도 눈에 띄었다. 첫날 광주공항에서 동쪽으로 험한 길과 산을 넘어 용문현(龍門縣) ‘홍군 4사(紅軍 4師) 주둔지’에 도착했다. 1927년 12월 광주봉기(광저우기의) 실패 후 약 1,200여 명의 봉기군이 화현(花縣, 현재 화두 화성소학교)에서 개편한 부대가 홍군 4사이다. 김산을 비롯한 조선인 20여 명이 홍군 4사에 있었다. 고담진과 해풍 답사 이튿날 고담진(가오탄, 高潭鎭)의 ‘붉은 거리’를 산책하며 본격적인 답사에 나섰다. 홍군 4사부대가 잠시 머물렀던 ‘붉은 거리’는 1927년 러시아혁명 10주년을 맞이해 조성되었다. 마르크스 동상이 세워진 광장을 중심으로 마르크스거리, 레닌거리가 이어졌고 건물마다 사회주의 혁명 구호가 적혀있다. 답사단은 연화산(蓮花山) 선인동을 거쳐 해륙풍(하이루펑, 海陸豊)의 주요 도시인 산웨이(汕尾) 해풍(하이펑, 海豊)으로 향했다. 광동성 해풍현(海豊縣)과 륙풍현(陸豊縣)을 합쳐 부르는 해륙풍은 중국 최초로 농민소비에트가 세워진 곳이다. 농민혁명가 팽배(펑파이, 彭拜)가 일찍이 해풍에서 농민운동을 전개하며 농민자위군을 창설했다. 광주에서 반혁명
식민지 관료의 옷차림까지 규정하다
1910년 8월 29일, 총칼로 대한제국을 삼킨 일본은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해 각종 제도를 꼼꼼하게 손보기 시작했다. ‘한국병합조약’ 체결과 함께 제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임시총독으로 임명하고 ‘조선 총독은 법률이 필요한 사항을 제령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긴급 칙령을 발포하였다. 그리고 1910년 9월 30일 총독부 및 소속관서관제를 공포하여 총독부를 설치했다. 이와 함께 조선총독부 관리들의 옷차림도 새롭게 규정하였다.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조선총독부 관리의 복식을 살펴볼 수 있는 <제국복제요람帝國服制要覽>(이하 요람)이다. 요람은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바로 다음해인 1911년(명치 44년) 1월 1일, 일본의 오사카매일신문大阪每日新聞 부록(제9828호)으로 발행되었다.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직원 복제는 1911년 6월 23일(칙령 제176호)에 제정되었기 때문에 요람은 조선총독부복제는 통감부 시절의 복제를 그대로 따라한 것[襲用]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도판 상단의 ‘帝國服制要覽’을 중심으로 우측에 ‘육군복제’, 좌측에 해군복제를 배치하고 부분별로 상세하게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복제 중 군복의 비중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요람의 중앙에는 제복을 입은 군인과 관료들의 풍경을 그린 삽화를 수록하여 제복 착용의 예를 보여준다. 삽화 둘레는 일본 본국에서 착용하였던 ‘문관대례복’, ‘외교관대례복’, ‘유작자有爵者대례복’ 등 관료들의 복제와 ‘경찰관’, ‘사법관’, ‘세관’, ‘철도원’ 등 소속관서 직원 복제가 나열되어 있다. 또한 일본이 식민지로 삼았던 ‘조선총독부’를 비롯하여 대만, 관동주關東州 지역의 관복자료가 소개되어 있다. 테두리에는 일제의 훈장을 그려 배치하였으며 요람의 하단 양 옆에는 복식과 훈장에 대한 ‘도해圖解’를 넣어 요람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하였다. 즉 요람은 일제와 식민지 관료들이
역사학계의 녹두장군 이이화 선생 별세
[초점] 역사학계의 녹두장군 이이화 선생 별세 민족사 정립과 역사 대중화에 헌신해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3월 18일 오전 11시경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이화 선생은 최근까지도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목표를 달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으나, 담도암 진단에 따른 두 차례의 수술 후 5개월 간 투병 끝에 영면에 들었다. 장례는 고인이 마지막까지 관여한 (재)전봉준장군동상건립추진위원회,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중심이 되어 장의위원회를 구성하여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감 염증19 사태에도 500여 명의 조문객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와 고인을 추모했다. 21일 오전 10시 약식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도 100여 명이 참석해 이이화 선생과 마지막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추모 행렬은 고인이 전국을 누비며 많은 이들의 뜻을 모아 세운 전봉준장군 동상을 거쳐 자택 헤이리에서 노제를 올렸다. 평소 가까운 이웃으로 정을 나누었던 헤이리 주민들도 노제에 함께했다. 장지는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마련되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김거성 시민사회수석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로 보내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등급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추서, 20일 오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고인의 영전에 훈장을 바쳤다. 연구소는 직접 조문하기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19일 오후부터 연구소 홈페이지에 추모사이트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이이화 선생의 연보와 연구 업적을 정리한 논저목록, 170여 장의 사진과 추모영상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기증자료
. 심정섭 지도위원 제75차 자료기증, 문서류 총 50점 보내와 2월 4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75번째 소장자료를 기증했다. 주로 1960년대~70년대 기관과 학교 등에서 수여한 표창장, 상장이다. 2월 26일 이재명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이 연구소를 방문해 해방기 남북한 극문학 선집 전 5권, 대동아문학자대회 회의록, 일제 말 친일 목적극의 형성과 전개, (幕末, 明治, 大正)面顧八十年史 8, 9집 총9권을 기증했다. • 안미정 자료실 주임연구원
가토신사(加藤神社), 당고개에 터를 잡은 왜군장수의 추모공간
일반적으로 일제강점기 서울지역에 설치되어 있던 일제의 신사들을 얘기하면, 남산 왜성대에 자리한 경성신사(京城神社)와 남산 중턱 옛 한양공원 터에 들어선 조선신궁(朝鮮神宮, 1925년 10월 준공) 정도를 언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원래 경성신사는 1898년에 남산대신궁(南山大神宮)으로 설립되었다가 1913년에 경성신사로 개칭된 내력을 지녔으며, 이 안에 천만궁(天滿宮, 1902년 창립), 남산도하신사(南山稻荷神社, 1931년 창립), 팔번궁(八幡宮, 1931년 창립)을 섭사(攝社)로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고 1916년 5월 22일에 타니무라 요리타카(谷村賴尙) 외 69명의 출원(出願)에 따라 신사창립에 대한 조선총독의 허가를 받았는데, 이는 1915년 8월 16일에 조선총독부령 제82호 「신사사원규칙(神社寺院規則)」의 제정 당시에 덧붙여진 부칙규정에 따른 조치였다. 여기에는 “본령 시행 당시 현존하는 신사는 시행일(1915.10.1일)부터 5개월 이내에 신사창립의 허가수속을 할 것”으로 정하고 있었다. 그 후 경성신사는 1936년 8월 1일부터 국폐소사(國幣小社, 조선총독부가 관리비용 일체를 부담하는 신사)로 승격되었고, 이와 동시에 1936년 8월 11일에는 기존의 「신사사원규칙」을 폐지하고 조선총독부령 제76호 「신사규칙(神社規則)」이 새로 제정되었다. 이곳 경성신사에서는 ‘천조대신(天照大神,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국혼대신(國魂大神, 쿠니타마 오미카미)’, ‘대기귀명(大己貴名, 오나무치노미코토)’, ‘소언명명(小彦名命, 스쿠나히코나노미코토)’을 제신(祭神)으로 삼았다. 이밖에 경성신사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노기신사(乃木神社, 1934년 창립)와 용산 일본군병영지의 후면 남산 기슭에 조성된 경성호국신사(京城護國神社, 1943년 창립) 등의 존재도 곧잘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 말고도 한강 건너 흑석동에 있던 한강신사(漢江神社, 1912년 창립)를 비롯하여 태평로 쪽에 에비스신사(惠比須神社, 1913년 창립), 죽첨정(竹添町, 지금의 충정로) 지역에 이즈모대사(出雲大社), 삼각지 인근에 도하신사(稻荷神社, 이나리 신사)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메이신사(神明神祠)라는 것은 영등포동, 용두동, 신길동,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봉환을 촉구하는 요청서 전달 및 협의 열려
[초점]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봉환을 촉구하는 요청서 전달 및 협의 열려 1월 21일 일본국회의원회관에서는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가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일제의 침략전쟁에 군인, 군속으로 동원되어 희생된 한국인 전사자의 유골봉환을 하루 속히 실현하도록 일본 정부에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고 일본 정부 당국자와 유골문제에 관한 협의를 가졌다. 이날 협의에는 보추협의 이희자 대표와 유족 박남순 씨,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이 참가했다. 연구소와 보추협은 일본의 연대단체 ‘전몰자 유골을 가족의 품에 연락회’와 오키나와에서 전사자 유해발굴을 벌이고 있는 ‘가마후야’와 함께 2014년부터 매년 일본 정부에게 한국인 전사자의 조속한 유골반환을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고 협의를 벌여왔다. 30여 사가 넘는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가 취재경쟁을 벌였으며, 곤도 쇼이치(近藤昭一), 아카미네 세켄(赤嶺政賢) 등 7명의 국회의원도 이날 협의에 함께 참가하여 이 문제에 대한 뜨 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요청서 전달 뒤에 이루어진 일본 정부(후생성, 외무성) 당국자와의 협의에서는 후생성 당국자로부터 오키나와에서 발굴된 전사자 700위의 유골에 대해 3월말까지 DNA 검사를 위한 검체의 채취가 이루어지고 4월부터 DNA 감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후생성 실무자가 DNA 검체를 채취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은 DNA 감정의 성패가 달려있는 검체의 채취가 비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며 전문가의 참여를 요구했다. 오키나와에서 희생된 한국인 유족 163명은 한국 정부를 통해 DNA 검사를 요청했다. 또한 참가자들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유골조사에 대해 DNA 감정의
경기도, 역대 도지사 친일행적 표시
[초점] 경기도, 역대 도지사 친일행적 표시 경기도는 1월 9일 친일 행적이 확인된 역대 도지사 4명의 명단(구자옥, 이해익, 최문경, 이흥배)과 친일사실을 경기도 누리집에 공개하고, 14일에는 도청 신관 4층 회의실에 걸려있는 역대 도지사 액자 옆에 친일사실을 표기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친일 행적을 했다고 해서 역대 도지사의 사진을 떼내는 것은 도지사를 지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내용을 요약해 인물 설명으로 달았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도는 올해 친일을 목적으로 제작된 도내 유·무형 친일문화잔재와 활용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결과를 토대로 내년부터 본격적인 친일 잔재 청산 작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 방학진 기획실장
오다 치요코 평화자료관 쿠사노이에 이사, 박물관 후원금과 감상문 보내와
[식민지역사박물관 소식] 오다 치요코 평화자료관 쿠사노이에 이사, 박물관 후원금과 감상문 보내와 작년 3월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을 방문했던 평화자료관·쿠사노이에(草の家) 이사 오다 치요코(織田千代子) 님이 최근 사고로 동생을 잃었다. 동생에게 받은 유산 중 일부인 100만 원을 작년 12월 식민지역사박물관 후원금으로 보내주셨다. 그리고 올해, 식민지역사박물관 관람 소감을 바다 건너 편지로 보내오셨다. 그 전문을 아래 소개하고자 한다. • 김슬기 학예실 연구원 정리 저는 2019년 2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쿠사노이에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회원 12명과 함께 ‘한국 평화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쿠사노이에에서 활동했던 김영환 씨가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김영환 씨의 안내로 둘러보았습니다. 이 박물관은 많은 사람들의 기부로 세워졌는데, 훌륭한 5층 건물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일제가 한국을 식민 지배했을 때의 자료를 수집, 전시, 소개하여,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연구와 실천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전시되어있는 유물을 보고 놀라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과거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일본이 한국을 식민 지배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들뿐이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한국병합’의 이름으로 침략하여 한국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친일파’라고 불린 사람들의 존재였습니다. 지금까지 ‘친일파’라는 말은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특별히 관심도 없었고 자세히는 몰랐습니다. 비로소 ‘친일파’에 대해 그들이 독립 후 한국의 입법,
신갈고등학교 역사인권동아리 ‘사인’ 기부증서 수여식
[식민지역사박물관 소식] 신갈고등학교 역사인권동아리 ‘사인’ 기부증서 수여식 지난 11월, 박물관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신갈고등학교 역사인권동아리에서 독립운동가 배지를 제작하여 판매하였고, 수익금을 박물관에 후원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기부증서를 수여하고자 방학을 맞이한 1월, 학생들을 박물관으로 초대하였다. 역사의 ‘사(史)’와 인권의 ‘인(人)’을 따서 만든 신갈고등학교 내 역사인권동아리 ‘사인’은 역사와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 만든 동아리로 올해 10년이 되었다. 2019년 교내 축제에서 ‘태극기를 그려라’라는 행사를 통해 전교생이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일제시대 헌병경찰 복장을 대여하여 당시 상황을 재연하면서 학생들이 일제강점기를 잠시나마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기획하였다고 한다. 더불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형상화한 배지를 제작하여 판매하였다. 1월 7일, 담당교사 송지호(후원회원)님의 인솔 하에 18명의 동아리 학생이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방문하였다. 동아리 및 기부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듣고 모든 학생에게 기부증서와 기념 선물을 증정하였다. 이후 상설전시관을 관람하며 일제시기와 해방 이후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억과 성찰의 역사행동에 함께해준 소은지, 오혜빈, 유지나, 이서연, 정윤서, 안형민, 이유찬, 허정인, 김성욱, 배승연, 서화진, 장우혁, 김정호, 황서연, 황석우, 김민성, 한솔비, 김가연 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