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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민족문제연구소 군산·김제 답사기

2019년 11월 28일 1043

<반일 종족주의>라는, 직함은 허위이고 폭력이 일상화된 대표저자와 그들의 시대착오적인 배설물로 인해 지난여름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무슨 짓을 했길래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가. 그것도 아베의 경제 도발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탄력을 받는 이 시기에. 무시가 상책이지 하고 모른척했지만 불편함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조모씨가 ‘구역질나는 책’이라 하든, 홍모씨가 ‘보수 우파의 상식과 어긋나는 책’이라 하든, 그런 표현은 이 책에는 과분하게 고상했다. 자기정체성을 깨닫지 못한 채 정확하지 않은 통계수치에 수상한 목적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저 곡학아세파에 대해 나는 그저 한 가지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지금의 이 독립된 나라에서조차 자발적으로 습득한 식민사관이 저다지도 투철한 저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었다면 과연 어떤 지경까지 친일을 했을까?’ 가을 초입 그들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는데 힘써 오신 허수열 교수님이 인솔하는 군산·김제 답사가 있다는 소식을 문자로 받았을 때, 기회를 놓칠세라 당장 신청했다. 살아가면서 교통사고처럼 일상공간에서 돌발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가진 태극기부대스러운 사고들. 이에 대처할 무기가 절실했는데 그들의 논리적 오류를 학문적으로 따져볼 기회를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답사대상자로 선택받아 안내 문자가 왔을 때는 감격과 함께 뒤늦게 걱정이 시작되었다. 왜 혼자 신청했을까. 좋은 것은 혼자 보는 게 아니라고 그래서 여행만큼은 절대 혼자는 안 가던 나는 버스에 올라타기까지 용기를 내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여행은 시쳇말로 ‘취저’(취향저격)였다. 죄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진지하게 학습하는 분위기여서 혼자인 것이 오히려 조용히 설명에 집중할 수 있었고

‘동포가 읽을 만한 역사’를 위하여

2019년 11월 28일 958

내가 처음으로 투옥된 것은 1930년이다. 그런데 당시 내가 알았던 조선에 대한 지식이란 실로 미미하였다. […] 그러기에 예심법정에서 조선총독정치에 대해 말해보라고 판사가 권하여도 그걸 구체적으로 말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나는 이건 아니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무식함이 부끄러워졌다. […] 그래서 나는 1934년 출옥과 동시에 바로 조선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였다.(김두용,<조선근대사회사화>, 향토서방, 1947년, 1쪽)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노동운동과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에 투신한 김두용은 해방 직후에 출간한 책 첫머리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이 글을 처음 접한 것은 2002년, 제가 졸업논문을 준비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때는 스쳐 지나간 구절이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일본에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이 ‘역사’를 갈망하게 될 동기는 이 김두용의 경우와 여전히 대동소이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체포와 투옥이란 극단적인 경험은 누구나가 겪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본인 친구나 동료들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식민지배를 변명하려는 언행에 당황하면서도 제대로 된 반론 하나 못한 경험은 이 글이 씌어져서 70년 이상이 지난 현재도 재일조선인들에게 여전히 평범한 일상입니다. 역사를 배우는 즐거움이 북돋는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는 질문에 맞서기 위한 지식으로서의 ‘역사’. 재일조선인들이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보면 한국 분들 눈에는 지나치게 비장하게 비쳐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장할 수밖에 없는 역사에 대한 절심함이 재일조선인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동포가 읽을 만한 책을 쓰고 싶다.’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한국어판 서문 첫마디를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던

공영방송의 책무를 잊지 않을 것

2019년 11월 28일 733

[임종국상 수상소감] 공영방송의 책무를 잊지 않을 것 KBS 밀정 제작팀 언론상 수상자 면구스러운 이야기부터 하자면, <밀정> 2부작이 여기저기서 좋은 평가를 잇달아 받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5분짜리 영상조차도 ‘길어서’ 시청하기 힘들다는 초고속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많은 열정을 쏟아 만든 진지한 다큐멘 터리는 그 분량에 상관없이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소구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도 재확인했다고 할까요. 그러나 <임종국상>은 여타 평가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 묵직한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인가. 계속 되뇌게 됩니다. ‘과공비례’가 되지 않기 위해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상을 받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번 상은 젊은 저널리스트들이 보여준 성취에 대한 축하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응원도 함께 포함된 게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힘이 나고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책장에 꽂힌 <친일문학론>을 다시 꺼내보다가 임종국 선생님이 (지난해 작고한) 김윤식 선생님과 각별한 교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거장은, 다른 거장을 알아보는 안목을 청년시절부터 갖추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치열하게 살다 가신 두 분의 업적을 어떻게 한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냐마는, 어쩌면 이들은 ‘우리의 일그러진 근대’를 탐구하는 것을 한평생 업으로 삼은 게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스치듯 들었습니다. 저희들의 밀정 추적도 100주년이라는 축제기간에 걸맞지 않은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의 일단을 가감 없이 들춰내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엄정함이란 ‘빛과 그늘’을 모두 직시하는 데에서 출발하고,

시대를 넘어 함께한 동지의 길

2019년 11월 28일 966

[임종국상 수상소감] 시대를 넘어 함께한 동지의 길 노관우 특별상 수상자 노동은 교수의 아들 먼저 이런 뜻깊은 상을 받게 되어 아들인 저를 비롯한 온 가족들과 아버지의 제자 분들의 기쁜 마음을 담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임종국 선생님이 남겨주신 소중한 발자취와 아버지께서 평생 근현대음악을 연구하시며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고 알려 오시고자 했던 걸음걸음이 그 모양은 달라도 한 방향으로 나아가셨다고 직감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함께 손을 맞잡고 걸어오셨음을 느낍니다. 또한 일본의 경제도발에 대한 작금의 국민적 분노 속에서 그동안은 없었던 특별상을 받게 되니 더욱 각별한 감회를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임종국상을 수상하신 다고 하니 많은 분들에게 그 타이밍이 절묘하다며 특별한 축하를 많이 받았습니다. 쌀쌀했던 날들을 촛불집회로 뜨겁게 녹여대던 3년 전 11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병상에서 뉴스를 보시며 하시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촛불을 보시면서 제게 ‘촛불집회에는 가봤느냐’며 당신도 몸만 괜찮으면 가보고 싶다고 아쉬워하시던 얼굴과 목소리가 더욱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런 뜻깊은 상을 직접 받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아버지를 대신하는 자리가 늘 조심스럽고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아버지께서는 <민족음악현단계> <민족음악론> 등을 저술하시는 한편으로 대학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시며 민족음악연구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오셨고, <노동은의 음악상자> 시리즈, <한국근대음악사> <한국음악론> 등을 통해 애국가문제, 친일음악, 뽕짝 등 우리 근대음악사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알리시는데 늘 앞장서셨습니다. 임종 직전까지도 오랜 기간 작업하셨던 <항일음악 330곡집>의

생을 바쳐 기록한 1만2천 장의 카드… 우리는 그에게 빚을 졌다 – 임종국 선생 30주기, 그 뜻에 가닿으려면

2019년 11월 28일 812

[회원마당] 생을 바쳐 기록한 1만2천 장의 카드…우리는 그에게 빚을 졌다 – 임종국 선생 30주기, 그 뜻에 가닿으려면 최우현 서울북부지부 회원     우리는 먼저 떠난 고인(故人)들을 기리고 추모한다.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함과 동시에 그의 생애를 회고해보는 것이다. 가끔씩은 고인이 떠난 시점을 기점으로 시간사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1주기, 10주기, 30주기… 이처럼 말이다. 이런 경우 그만큼 고인이 관철한 삶이 강렬했거나, 사상과 행적을 기념할 필요가 높았다고 판단해볼 수 있다. 지난 11월 9일 천안 일원에서 열린 ‘임종국 선생’의 30주기에 특별한 추모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임종국 선생은 친일문제 연구에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평생을 통해 일제에 부역했던 사람들의 행적을 조사했으며 관련 자료를 집대성하다시피 골몰하여 후대 연구의 기반을 조성했다. 우리가 흔히 ‘친일파’로 알고 또 지칭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기록이 그가 작성한 1만 2천 장에 달하는 ‘친일인명카드’ 속에 담겼고, 후일 이는 〈친일인명사전〉의 뿌리가 됐다. 〈친일문학론〉(1966), 〈일제 침략과 친일파〉(1983), 〈일제하의 사상탄압〉(1985) 등 실증에 입각한 저서들도 남겼다. 특히 올해가 〈반일종족주의〉, 류석춘 교수 논란 등 친일 논란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임종국 선생의 사상과 정신을 되짚어보는 일은 더욱 의미가 있다. 이날 추모를 위해 모인 시민들의 행렬은 선생이 영면한 천안공원묘원과 필사의 연구를 이어나간 요산재(樂山齋)등 공간의 발자취를 따라 이어졌다. 임종국 선생은 생애 마지막

기증자료

2019년 11월 28일 929

▪ 10월 1일 나가쓰 에쓰코(永津悦子) 씨가 자신이 쓴 <식민지 생활의 기억 : 농가에서 태어나 자란 최명란 씨의 반생(半生)>(2019)을 기증했다. 일본 고려박물관 내 조선여성사 연구회 회원을 지낸 최명란 씨가 식민지 농촌에서 겪은, 특히 농촌 여성의 삶을 5년 동안 대담을 나눠 저술했다. 최명란 씨는 1927년 경남 창녕군에서 태어났고, 1946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사키에 살고 있다. 저자는 2014년 고려박물관 기획전시 <한결같이 산 조선·한국인의 여성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책 주인공인 최명란 씨를 만났다. 이 전시에 연구소가 다수의 사진 자료 등을 제공 협력한 바 있다. 나가쓰 에쓰코 씨는 보답의 뜻으로 이 책을 기증했다. 그 밖에 도서 안내 관련 팸플릿 6점도 기증했다. ▪ 10월 10일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의 유족들과 오랫동안 교류해 온 사노 미치오(佐野通夫) 호센대학교 교수가 도서 636권, 수평사(水平社) 관련 자료 2점을 기증했다. 주로 교육사 및 재일조선인 관련 도서이다. <재일조선인의 기본적 인권>(1977), <재일조선인>(1979),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의 권리>(1996), <재일조선인과 일본사회>(1999) 등이 있다. 자료 가운데 수평사 강령 및 선언문 1점, 전국수평사창립대회 문서 1점은 신분 차별에 맞서 해방운동을 이끈 수평사(1922년 3월 일본에서 결성된 단체)에 대해 알 수 있는 귀중한 문서이다. ▪ 10월 19일 적기(赤旗)편집국 편집위원회에서 신문 ????적기???? 4부를 기증했다. 시리즈 <식민지지배 역사와 현실> 두 번째 편에서는 “억압 36년, 일본은 조선에서 무엇을 했는가?”라는 주제로 헌병경찰제, 문화통치기 친일파 양성책, 황민화정책, 강제동원 등 일제의 통치흐름을 다루었다. <식민지지배 역사와

임종국 선생 30주기 추모행사

2019년 11월 28일 746

[초점] 임종국 선생 30주기 추모행사 11월 9일 임종국 선생 30주기를 맞아 천안에서 회원들과 시민, 충남지역 학생들이 모여 임종국 선생 추모행사가 진행되었다. 선생의 흉상이 세워진 천안 신부공원 답사를 시작으로 천안공원묘원에서 추모식을 거행하고, 선생이 마지막 여생을 보낸 요산재에서 안내 이정표를 세우는 행사를 거행했으며 저녁 6시 천안중앙고등학교에서 ‘임종국 선생 30주기 추모의 밤’ 행사를 끝으로 전체 일정을 마쳤다. 이번 추모행사는 민족문제연구소·임종국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충남지부·천안지회·아산지회·천안역사문화연구회가 주관, 충남교육청과 충남역사교사모임이 후원하였다. 본부에서는 박수현 사무처장, 방학진 기획실장, 임무성 교육위원, 박광종, 이순우, 권시용, 조한성 선임연 구원, 손기순, 신다희, 국세현, 류감석, 김무성이 참여했고, 지부에서는 이민우 운영위원장, 권희용 충남지부장, 최기섭 천안지회장, 박해룡 대전지부장, 독립운동가 동암 차리석 선생의 아들 차영조 선생, 이용길 천안역사문화연구회장을 비롯한 회원 40명이 참가하였다. 천안공원묘원에서의 추모식에서는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이 참석해 추모사를 하고, 이민우 운영위원장을 필두로 전 회원이 참배하며 임종국 선생의 정신을 기렸다. 임종국 선생 유족 대표로 선생의 여동생 임경화 여사와 사위인 조원희 님이 참석하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추모의 밤 행사에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장병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장, 김지철 충남교육감, 윤일규 국회의원, 홍성표 아산시의원이 참석했다. 또 충남역사답사에 참여한 충남지역 고등학생 100여 명이 참석해 임종국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이 행사에는 고 노동은 교수의 아들 노관우 씨가 중심이 된 밴드가 판소리 심청가와 〈항일음악 330곡집〉에 수록된 ‘새야새야파랑새야’ , ‘대한혼가’, ‘광복군 아리랑’을 불러 추모의 뜻을 더했다. •

『친일인명사전』 발간 10주년 특별전 개막

2019년 11월 28일 767

[초점] 『친일인명사전』 발간 10주년 특별전 개막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 10주년을 맞아 “기억을 둘러싼 투쟁-친일인명사전 발간 그후 10년”을 개막했다. 2019년 식민지역사박물관의 네 번째 기획전이다. 임종국 선생 서거 30주기와 맞물려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가 시민들과 함께 싸워 온 친일청산운동의 발자취를 전시회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회는 크게 6부로 구성되었다. 1부 ‘시민의 힘으로 만든 과거청산의 기록, 친일인명사전’은 사전 발간까지의 경과와 국가 차원의 친일청산을 이끌어낸 의미를 되짚었다. 2부 ‘상식과 정의가 된 친일청산’에서는 친일파의 서훈 취소, 국립묘지 친일파 묘 이장 추진 등 국가에 책임을 묻는 질문과 친일파 기념사업‧기념물 중단을 위한 시민들의 역사운동이 전국에서 어떻게 펼 쳐져 왔는지를 살폈다. 3부 ‘친일파는 살아있다’는 친일파의 변명, 이어지고 있는 망언과 궤변의 계보와 참회록을 비교해서 읽을 수 있도록 꾸몄다. 그 가운데 일제 고등경찰의 고문기술의 계보자, 일본군의 의병학살로부터 비롯된 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계보도 함께 살폈다. 4부 ‘시민 박기서는 왜 살인범이 되었나’에서는 1990년대 전반 프랑스와 한국 사회에 뜨거운 논란을 던졌 던 ‘나치협력자 르네 부스케 살해사건’과 ‘백범 암살범 안두희 살해사건’을 다루었다. 사법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서 시민이 살해범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청산의 고통스런 역사를 되짚었다. 5부 ‘친일청산의 파수꾼들’에 서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이후 우리 사회에서 친일청산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4명의 주인공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6부 ‘친일청산, 시민의 손으로 기록한다’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후원회원들과

제13회 임종국상 시상식

2019년 11월 28일 714

[초점]  제13회 임종국상 시상식   제13회 임종국상 시상식이 10월 31일 오후 7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회원 및 각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시상식은 장병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장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축사, 임종국 선생의 일대기 영상 상영, 이민우 연구소 운영위원장의 기념사업회 경과보고, 윤경로 심사위원장의 선정경위 설명, 시상과 수상자들의 수상연설,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 순서로 진행됐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10건, 사회·언론 부문 6건, 특별상 2건 등 18건이 올라왔으며 10월 7일 열린 심사위원회 본심에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를, 언론부문에는 KBS 탐사보도부 ‘밀정’ 제작팀을, 특별상에 고 노동은 교수를 제13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최종 선정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는 일본군‘위안부’를 비롯한 강제동원피해자와 재일조선인 차별 문제 등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동원 책임을 추적하여 주목할 만한 성과들을 내놓은 연구자이자 한일 과거사 청산의 현장에서 맹렬히 활동해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2016년에는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날카롭게 비판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을 저술함으로써 한일양국의 역사수정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수상 저서인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는 1945년부터 1950년까지 일본은 물론 한국으로 부터도 외면당하였던 재일조선인의 생존 과정을 치밀하게 논구한 역작이다. 이 책은 그 자신 조선적(朝鮮籍) 동포 3세이기도 한 경계인으로서 저자가 ‘재일’의 정체성을 깊이 고뇌하고 싸워온 투쟁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방대한 사료를 섭렵하고 분석한

누구를 위한 식민지 ‘개발’인가 한일학술회의 열려

2019년 11월 28일 760

[초점] 누구를 위한 식민지 ‘개발’인가 한일학술회의 열려   〈누구를 위한 식민지 ‘개발’인가-경남 진영 무라이 농장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연구소가 주최하는 한일학술회의가 10월 25, 26 양일에 걸쳐 열렸다. 25일에는 강금원기념 봉하연수원에서 한일 학자들의 연구발표와 토론이, 26일에는 구무라이농장 현장 답사가 진행되었다. 학술회의에서 허수열 충남대 교수는 「일제강점기 ‘농장개발’의 실상과 허구」, 우츠미 아이코 일본평화학회 전 회장은 「무라이 기치베(村井吉兵衛)의 농장개발 과정 검증-기록 서한을 중심으로」, 김민철 연구소 연구위원은 「일제의 촌락지배와 유형」을 발표하였다. 이영채 일본 게센 여학원대학 교수의 사회로 진행한 토론에는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 박근호 시즈오 카대학 교수, 권향숙 죠지대학 교수가 함께 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생가인 봉하마을 근처의 구 진영역 일대는 일본의 신흥재벌무라이 기치베가 1910년대 대규모 농장을 조성했던 지역이다. 우츠미 아이코 선생은 신흥재벌 무라이 기치베가 농장 조성 당시 작성해 온 대량의 친필서한을 분석하여 이 농장의 형성과정을 분석 발표했다. 허수열 교수는 대산면 일대의 일본인 농장의 개발이 산미증식계획, 경제 대공황과 궤를 같이하여 조선총독부의 각종 지원을 받는 것을 지적하며 과연 누구를 위한 개 발인가를 되묻고 있다. 김민철 연구위원은 일제의 강행적인 증산적 개발이 집요하게 되풀이된 오랜 세월의 노력한 결과가 촌락지배의 여러 유형을 낳았다고 보았다. 일제의 행정력과 자본력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촌락과 행정력의 침투 정도가 낮아 촌락의 자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으로 나누었다. 특히 이 자리에는 일제 식민지배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