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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옛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인권기념관 건립부지 선포 및 이관식

2019년 1월 24일 1137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는 12월 26일 오후 2시, 옛 남영동 대공분실 마당에서 남영동 대공분실 운영과 관리를 경찰청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넘기는 이관식을 열었다. 1970~1980년대 대표적인 고문기관으로 악명을 떨쳤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의 요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과거군사독재 시절 박종철 열사 등 수많은 민주화 인사를 고문했던 장소인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최근까지 경찰청 인권센터로 사용됐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10민주항쟁 31주년 국가기념식에서 이 자리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조성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이관되어 민주인권기념관이 조성될 예정이다. 이날 이관식에는 고문피해자, 고문피해자 가족 및 유가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그리고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민갑룡 경찰청장 등 수백 명이 참석했다. • 편집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활동 백서> 출판

2019년 1월 24일 968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활동 백서> 출판기념회가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상임대표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 주최로 12월 19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에서 열렸다. 역사학자 이이화 이사는 축사에서 “아무리 의미 있는 역사라도 기록해야 기억되며, 나쁜 놈은 나쁜 놈으로, 옳은 사람은 옳은 사람으로 기록해 후배들에게 기억하게 하는 것이 역사의 정의”라고 말했다. 1권 751쪽, 2권 894쪽, 3권 667쪽 등 모두 2312쪽에 달하는 백서는 1권에서는 활동가 소회 등 활동 평가와 일지·좌담회·언론 보도·논평, 2권에서는 교과서 분석·집필 거부·교육부 공문서, 3권에서는 법적 대응 자료와 국제기구 활동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송두환 민변 전 회장(전 헌법재판관)은 축사에서 “2018년 3월 헌법재판소에서 민변이 제기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 위헌 헌법소원심판청구’를 각하했다”며 “국정화 고시와 같은 불순하고 위헌적인 시도의 재현 위험성을 보다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서는 헌재의 명시적 위헌 선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고 본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한경 부천 중원고 교사(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는 같은 자리에서 “박근혜 한마디에 국정교과서가 추진된 것처럼, 다음 문재인 대통령 한마디에 국정교과서가 폐기됐다”며 “앞으로 누구도 국정교과서를 꿈꾸지 못하는 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방학진 기획실장

히토쓰바시 대학에서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초청 강연회와 좌담회 열려

2019년 1월 24일 979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명예이사장)는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学) 초청으로 12월 12일~16일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 한국학 연구센터 설립 2주년을 기념하여 이루어진 초청 방문으로 신용옥, 조세열 상임이사가 수행하였다. 일정은 12일 출국, 13일 강덕상 전 히토쓰바시 대학 교수 자택 방문, 14일 강연회, 15일 강덕상 교수와의 좌담회, 16일 귀국 순으로 이루어졌다. 강덕상 교수는 재일사학자로서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과 일제의 조선인 학병동원 등을 연구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와는 초창기부터 지도위원을 맡은 인연이 있다. 강 교수는 12월 14일 히토쓰바시대학 국제연구관에 열린 ‘나의 인생과 역사학-분단시대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로’ 강연회에서 조선사회 정체후진성론을 주장한 후쿠다 도쿠조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백남운의 사제 관계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를 연구하게 된 계기, 사회경제사에서 변혁운동사로 연구 지평을 넓혀가게 되는 과정 등 그간의 연구 역정을 소개했고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시아 평화 구축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전망했다. 이튿날 같은 장소에서 강만길 교수와 강덕상 교수의 ‘한반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다-역사연구의 과거·현재·미래’ 좌담회가 송연옥 아오야마 가쿠인대학(靑山學院大學) 명예교수의 사회로 열렸다. 강덕상 교수는 강만길 교수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1978)을 들고 나와 자신의 역사연구에 큰 영향을 준 책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두 강 교수는 자본주의맹아론이나 내재적 발전론과 관련한 역사인식 문제와 한국 및 동아시아의 근대 이행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강연회와 좌담회에는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생들이 참석했는데, 한국 유학생뿐만 아니라 재일조선인이 많았다. 재일조선인으로서 우리역사를

사제 김병상의 삶과 신앙의 기록, <따뜻한 동행> 출간

2019년 1월 24일 1153

천주교 사회참여 운동 1세대 원로이며 연구소 3대 이사장인 김병상(86·필립보) 신부의 삶과 신앙을 기록한 회고록 〈따뜻한 동행〉 헌정 미사와 출판기념회가 12월 15일 인천시 심곡동 국제성모병원 3층 마리아홀에서 열렸다. 이 책에는 선후배 동료 사제들이 김 신부를 소개한 글과 더불어 김 신부의 구술·인터뷰·일기를 비롯해 지인들의 증언까지 충실히 정리해 놓았다. 1974년 유신독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지학순 주교가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되자 초대 회장을 시작으로 김 신부는 천주교와 인천지역 민주화운동계의 상징이 됐다. 1977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기도회 사건으로 옥고도 치렀고, 1976년~1980년 인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3년 8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에 임명되었으며, 은퇴 이후에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 방학진 기획실장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합니다

2019년 1월 24일 1350

[신년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합니다 함세웅 이사장   2019년 새해를 맞으면서 지난 한 해 우리 연구소 설립 목적을 이루기 위해 봉사하고 격려해주신 은인 회원들과 구성원 모든 분들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올해는 3·1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남북 정상은 지난 100년을 기억하고 평화와 통일의 문을 여는 새로운 100년을 남북 8천만 겨레가 함께하자는 취지로 남북공동행사를 약속했습니다. 남북공동행사의 성공을 위해 지난 역사에 대한 해석과 그 안에 남아있는 차이를 우리는 함께 극복해야 합니다. 100주년 남북공동행사는 평화공존과 일치를 위한 약속과 다짐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00여 년간 우리 민족공동체는 일제의 침략과 그 후유증인 이념과 정파 때문에 갈등과 분열 속에서 서로 헐뜯고 살았습니다. 100주년 남북공동행사가 이 모든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 3년 동안 서로 비판하고 심지어 경멸하며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부끄럽고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남북 분단과 증오였습니다. 이에 친일 매국노와 반공 분단 권력이 손잡고 독버섯이 되어 인권과 민주주의를 짓밟았습니다. 올해는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과 함께 선조들이 품었던 그 ‘새로운 민족국가’에 대한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합니다. 3·1혁명 100주년 남북공동행사가 바로 구체적 표징입니다. 해방 정국 3년, 곧 미군정 시기가 미국이 지배했던 식민지였다는 분명한 역사 인식을 지녀야 합니다. 이 인식이 미국을 넘어 남북이 함께 손잡고 확인해야 할

새야새야 파랑새야(녹두장군 겨울맞이)

2019년 1월 25일 1108

[회원마당] 새야새야 파랑새야(녹두장군 겨울맞이) 김판수 전북지부 회원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가을 끝자락에 초겨울이 겹쳐 거친 바람이 싸남을 내어 에워싼 느티나무 왁살스레 흔들어서 곱게 물든 나뭇잎 휘휘 훑어다가 장군님 무릎앞에 수북수북 쌓았네요 장군님! 녹두장군님 앉아서 할일 없으시니 낙엽이나 치우세요 사람들아 내가 할일 없어 앉아있나? 나는 시방 복장이 터져 죽겠네 세상 돌아가는 꼴이 124년전 갑오년과 뭣이 다른가? 제폭구민! 제폭구민! 목숨걸고 싸웠더니 강자독점 승승장구 평등세상 가망없고 승자독식 갑질행패 노예세상 지옥일세 삐뚤어진 판사가 검사에게 조사받고 짜고치던 대법원장 사법농단 창피하다 척양척왜! 척양척왜! 대창들고 덤볐더니 강토는 쪼개놓고 핏줄은 찢어놨네 대화하자 구슬리며 어르면서 할똥말똥 핵폭탄 치워주면 햄버거 주겠다며 감질나게 줄똥 말똥 기관총 침략전범 참회는 못할망정 이즈모 뜯어고쳐 항공모함 가당찮다 아서라! 이 낙엽 치우지 마라 갑오년 기관총에 따다다다 다다다…… 추풍낙엽으로 이름없이 스러져간 농민의병 무주고혼 무더기로 쌓였구나 지켜내라 의열의 얼 잊지마라 종속굴욕 흔들리지 말아라! 평등 자유 정의 인권 든든하게 설 때까지 후천개벽 사인여천 밝은세상 올 때까지 자주 자력 자립 자존 외세개입 물리치고 배놓아라 감놓아라 외세간섭 뿌리쳐라 2018. 11. 7. 입동 여럿이 함께 손잡고 ‘평화의 길’ 김판수 두손모음

학살, 원폭, 강제동원 관련 국제학술회의가 연구소 주관 하에 열려

2019년 1월 24일 868

12월 21일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주최하고 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가 주관한 국제학술회의가 ‘학살, 원폭, 강제동원 피해를 말한다-조사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덕성여대에서 열렸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학살, 원폭, 강제동원 피해’ 등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일어난 인적 피해 문제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국가와 시민사회 차원에서 달성한 진상규명 현황과 성과를 정리하고, 향후 심화되고 발전된 진상규명을 위해서 어떠한 노력과 방법, 자료 발굴 등이 필요한지를 함께 모색하고자 마련되었다.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1부에서는 학살, 원폭, 강제동원 피해에 관한 발표가 있었다. 김승은 책임연구원이 ‘한반도 내 인명피해 조사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성균관대 박사과정의 김강산 씨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 발표하였으며, 재한원폭피해자를 구원하는 모임의 이치바 준코 대표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조선인 피폭자’를 주제로 발표하였다. 강제동원을 주제로 한 발표는 김민철 책임연구원, 히구치 유이치 전 고려박물관 관장, 고바야시 도모코 유골봉환종교인시민연락회의 공동대표가 맡아 한국과 일본에서의 강제동원 피해조사의 현황에 관해 각각 발표하였다. 이어서 조시현 연구위원의 사회로 종합토론이 진행되었는데, 류준범(국사편찬위원회), 이상의(인천대), 히다 유이치(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고바야시 히사토모(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량대륭(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씨 등이 한국, 일본, 자이니치의 입장에서 연구 성과와 활동 등에 대한 소개를 비롯하여 깊이 있는 토론을 주고받았다. 이번 회의는 한국과 일본에서 이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오랫동안 현장에서 연구와 실천을 거듭해 온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열띤 논의를 통해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함께 모색한 뜻 깊은 자리였다. 또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을 둘러싸고

친일반역자 백선엽의 송덕비를 어떻게 할까?

2019년 1월 2일 2143

[회원마당 ] 친일반역자 백선엽의 송덕비를 어떻게 할까? 임승관 전남동부지부장     몇 해 전 한 언론사에서 해방 이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후손들의 삶을 비교 분석한 기사를 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 가운데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를 넘었고 봉급생활자는 겨우 10%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분들은 다행이라고 할까? 대부분 독립운동가가 일본군과의 전투 중 숨지거나 사형당했고, 그나마 후손이라도 남겨 그 이후 삶이 추적 가능한 분들이 이 정도다. 반면 친일파 후손의 삶은 그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일제로부터 돈, 토지를 하사받은 친일파의 후손들 대부분은 사회 각계로 진출해 기득권을 누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부와 가난이 후대에 대물림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후손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었다. 순천은 어떨까?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자료를 보니 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는 63명(추정),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친일파는 6명이다. 친일파 6명 중 해방 이후의 행적까지 기록된 3명을 확인하니 3선 국회의원, 조계종 총무원장, 고려대 교수 등 탄탄한 기득권 세력으로 성장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의 삶은 살펴보진 못했으나 위 언론사의 자료와 별반 다를 것 없을 것이다. 내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에서는 독립을 위해 싸우던 사람들이 가난과 싸워야 했던 왜곡의 현대사를 바로 세우고, 역사 앞에서 이름 없이 사라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사업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회원이 순천에 백선엽의 송덕비가 있다고 제보해 왔다. 일본군에 자발적으로

‘미도리가오카’ 신흥 주택지로 변신한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터

2019년 1월 2일 3077

식민지 비망록 42 ‘미도리가오카’ 신흥 주택지로 변신한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터 – 메가타 재정고문의 관사는 왜 청파동 연화봉 언덕에 자리했나?   이순우 책임연구원   지난여름 92세의 나이로 숨진 김종필(金鍾泌, 1926~2018)의 죽음은 잠시 기억 속에 잠겨있던 이른바 ‘삼김시대(三金時代)’에 관한 회상을 불러 일으켰다. 김대중(金大中, 1924~2009)과 김영삼(金泳三, 1927~2015), 그리고 김종필, 이들 세 사람은 굳이 이름 석 자를 적지 않더라도 각각 DJ, YS, JP라는 애칭만으로 통용되기도 했고, 그들의 위상은 동교동(東橋洞)이니 상도동(上道洞)이니 청구동(靑丘洞)이니 하는 동네 이름조차도 자신들의 대명사로 치부될 정도였다는 사실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말이 난 김에 이들이 살았던 동네의 지명유래가 궁금하여 관련 자료를 살펴보았더니 나름 흥미로운 내용들이 포착된다. 먼저 동교동은 예로부터 서울도성에서 양화진나루로 가는 대로에 걸쳐 있던 세교(細橋, 잔다리)가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지명이다.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당시 경성부 연희면 일대가 고양군(高陽郡)으로 편입되면서 종전의 세교리 일계(一契)와 세교리 이계(二契)가 각각 서세교리(西細橋里)와 동세교리(東細橋里)로 바뀌었고, 다시 1936년 4월 1일에 이곳이 경성부로 재편입되는 과정에서 서교정(西橋町)과 동교정(東橋町)으로 명칭이 축약되었다가 해방 이후 오늘날의 서교동과 동교동으로 전환되는 과정이 이어졌다. 다음으로 상도동에 대해서는 1911년 4월 27일에 경기도 고시 제9호에 의해 시흥군 동면 상도리와 성도화리(成道化里)를 합쳐 새로운 ‘상도리’로 설정한 내용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앞서 <1872년 지방도(규장각 소장자료)>에 포함된 「시흥현 지도(始興縣 地圖)」에 ‘상도리’ 라는 표시가 이미 들어 있는 점에

옥중의 계명성(鷄鳴聲) – 왜정시대 혁명가의 옥중생활

2019년 1월 2일 1877

유청렬 편집자 주 ― 이번 호에 소개하는 자료는 『신천지』 1947년 8월호에 실린, 유청렬(柳淸烈)의 「옥중의 계명성」이다. 필자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직접 만났거나 전해들은 권태산, 엄순봉, 정태식, 이재유, 안창호, 허응철, 여운형 등 7인 혁명가의 옥중 일화를 다루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혁명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면서도 그들의 기개와 실천활동에서 느껴지는 감동을 전하고 있다. 필자 유청렬에 대해서는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신천지』 1946년 10월호에 그가 쓴 「倭政 淸津 刑務所 滅亡記」라는 글이 있다. “8월 15일 감옥문이 열려 민중과 격리되었던 우리의 수많은 혁명가들이 자유로운 천지로 나올 때 다시는 이 땅에서 일제시대 모양으로 정치범을 위하여서는 감옥이 불필요하다고 믿었던” 인민들이 그러한 당연한 희망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전에 배(倍)한 다수 정치범이 투옥되고 있는 오늘날의 기구한 현실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은 ????신천지????(1946년 11월)에 게재된 오기영(吳基永) 선생의 「민족의 비원(悲願)」에 솔직히 대변한 바 있다. 민족적 양심이 있는 동포들이 동 선생과 더불어 그윽히 간탄(艱歎)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여기에 일제시대에 옥중에서 고투(苦鬪)하던 수많은 혁명가들 중에서 특히 인연이 있는 면면들과 그 밖에 자연적으로 알게 된 몇몇 지사들의 죄없는 죄인으로서의 옥중생활을 소개함으로써 독자 제현(諸賢)과 같이 동정을 나누려 한다. 여기에 적으려는 것은 나의 과거의 환경이 지배하던 한도 내에서만 얻은 자료이기 때문에 보편적이 아닌 것이며 또 그 중에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미 고인(故人)이 된 사람도 있고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