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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독립운동가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기념해야

2018년 1월 9일 2135

– 신흥무관학교 교관을 지냈던 김경천 장군 증손녀 김올가 씨   독립투사의 후손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랑스러운 선조를 갖는다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 역사가 독립투사를 제대로 대우했던 역사가 아니라,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 제대로 기념하지 않은 역사였기에 더욱 그렇다. 일본육사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김경천 장군의 증손녀 김올가 씨를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문 : 연구소 회원들을 위해 김경천 장군이 어떤 분인지 소개해주세요. 답 : 증조할아버지인 김경천 장군은 ‘백마 탄 김장군’이라는 전설로 유명한 독립투사예요. 본명은 김광서였는데 무관가문 출신이었어요. 아버지 김정우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고위 장교로 대한제국 군대의 병참 분야 최고 직위인 군기창감을 지내셨어요. 형 김성은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공병대장을 지내셨구요. 아버지는 공업을 배우라고 권하는데 나폴레옹 전기를 탐독하던 할아버지가 결국 군인의 길을 선택하셨대요. 1904년 대한제국 관비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으로 건너가셨어요. 일본육군유년학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셨어요. 말 타고 싸우는 기병장교로 동경 제1사단 기병 제1연대에서 근무하다가 3·1운동 후인 1919년 6월 만주로 탈출해서 신흥무관학교 교관이 되셨어요. 할아버지는 일본육군사관학교 후배인 이청천 장군, 중국 사관학교를 나온 이범석 장군과 함께 청년들을 가르치셨어요.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가셔서 독립군 대장이 되셨어요. 동포들을 괴롭히는 마적들을 소탕하셨고, 러시아 내전에 출병한 일본군과도 싸우셨어요. 그렇게 평생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셨어요. 한국이 독립된 뒤 할아버지의 동지인 이범석 장군님은 국무총리가 되시고 이청천

이학래 선생 회고록 <전범이 된 조선청년> 출간

2018년 1월 9일 1458

12월 1일 연구소가 한국인 BC급 전범 이학래 선생의 회고록 <전범이된조선청년>을펴냈다.강제동원 피해자의 회고록으로는 원폭피해자 곽귀훈 선생의 회고록 <나는한국인피폭자다>에이어 두 번째다. <전범이된조선청년>은 일본에서 출판된 <한국인전BC급전범의호소>를 번역한 책이다. 번역은 <적도에묻히다>,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등을 번역한 김종익 선생이 무료로 맡아주었고, 일본 게이센여학원대학 이영채 교수가 번역 원고를 검토해주어 책의 가치를 높였다. 일본어판에 해설을 실었던 우쓰미 아이코 선생이 한국어판 출판에 맞춰 새롭게 해설을 써주었고, 인천대 이상의 교수도 해설을 덧붙여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해 주었다.   ▲ 지은이 이학래 옮긴이 김종익ㅣ출판사: 민연 l 15,000원 ㅣ신국판 312page l 발행일: 2017.12.01.ㅣISBN 978-89-93741-22-3     이학래 선생은 열일곱의 나이로 최연소 포로감시원이 되었다. 포로는 감시와 감독의 대상일 뿐, 포로를 인도적으로 처우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배우지 못한 채, 상급자가 시키는 대로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죄로 그는 전쟁이 끝난 직후 전범으로 체포되었다. 일본군의 포로정책 책임자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가운데, 포로를 직접 대면해야 했던 최말단 한국인 포로감시원들이 그 책임을 떠맡게 된 것이다. 일본에 의해 강제동원 되었던 그들은 ‘일본인’으로 취급되어 처벌받았지만, 이후엔 ‘조선인’으로 취급되어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한국인 BC급 전범문제는 일제하 강제동원문제 가운데 낯선 부분에 속한다. 연구소는 2013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범이 된 조선청년들-한국인 포로감시원의 기록’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하여 한국사회에 이 문제를 환기한 바 있다. 이학래 선생의 회고록 <전범이된조선청년>의 출간으로

야스쿠니 합사 철회 소송 13차 구두변론,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려

2018년 1월 9일 1073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의 유족들이 제소한 야스쿠니 합사 철회 2차 소송 13차 구두변론이 지난 11월 28일 오전 10시 30분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 원고 이인복 씨는 법정 진술을 통해 일본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동원되어 희생된 끝에 야스쿠니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아버지의 이름을 야스쿠니에서 뺄 것과 일본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사죄를 요구하였다. 이인복 씨의 아버지 고 이민구 씨는 일본군으로 동원되어 1944년 4월 뉴기니에서 전사하였다. 이 소송은 자신의 가족이 야스쿠니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27명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무단합사 철회와 사죄, 유골봉환을 요구하며 2013년 10월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 제소한 것이다. 함께 방일한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같은 날 니시도쿄에서 열린 ‘함께 노래하는 모임’에서 ‘아버지의 기록을 찾아 야스쿠니와 맞서다’라는 주제로 강연했으며, 김영환 대외협력팀장은 가나가와 종합정책연구센터 주최로 열린 ‘세계와 지역을 잇는 가나가와포럼’에서 ‘촛불혁명과 동아시아 평화를 생각하다’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 김영환 대외협력팀장

미국 워싱턴, 뉴욕, LA에 연구소 지부 창립

2018년 1월 9일 1262

미국의 대표 도시인 워싱턴, 뉴욕, LA에 민족문제연구소 지부가 창립되거나 창립준비 중이다. 연구소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해외 지부를 결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진작부터 제기되었다. 특히 미주지역은 그 상징성이나 영향력 등을 고려하자면 일본 지역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 때문에 임헌영 소장은 몇 년 전부터 미주 지역 지인들과 연락을 지속하면서 지부 결성을 위한 토대를 다져왔다. 그리고 워싱턴의 윤흥로(민주평통 워싱턴지회장), 주희영 회원 등이 연구소를 방문하면서 급물살을 타 11월경 소장 등 연구소 관계자들을 초청해 강연과 지부 창립대회를 열기로 하고 일을 진행시켜왔다. 워싱턴 지역 회원들이 뉴욕의 박매헌-클레어 부부와 이춘범 선생과 연결되어 뉴욕에서도 일정을 맞추어 지부 창립 준비를 하기로 하고, LA 또한 정찬열 선생(문인) 등 현지동포들이 적극 호응하면서 11월 중에 3개 지역 지부를 결성하기로 일정을 조정했다. 이에 맞춰 11월 9일부터 16일까지 8박 9일간 임헌영 소장과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 그리고 LA에 지부 창립과 현지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와 문학 강연차 출장을 다녀왔다. 현지 동포들의 반응도 뜨거워서 11월 11일(현지 일자)에는 워싱턴 한미과학협력센터에서 박한용 실장의 강연에 이어 20-30명 정도의 회원을 기초로 하여 워싱턴지부가 창립되었다. 지부 이사장에는 윤흥로, 지부장은 박진영 아메리칸대 철학과 교수가 추대되었고, 사무총장은 주희영, 간사로는 정성덕 김미현 회원 등이 선임되었다. 이어 11월 12일에는 이춘범 선생 댁에서 30여 명이 모여 뉴욕지부 준비위원회를

‘위안부’ 기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보류로 진실은 봉인되지 않는다

2018년 1월 9일 1023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는 비참한 망국의 수난자로서 인류역사상 가장 가혹한 상처를 입었다. 일본제국이 탐욕의 침략전쟁을 위해서 전대미문의 일본군 ‘위안부’라는 간악한 꾀를 내고 여성을 전쟁터로 강제로 끌고가 감금과 폭압으로 성노예로 삼아 존엄한 인격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게 짓밟아 삶을 피폐하게 파괴하여 버린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질렀던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비극적인 불의의 역사를 인류역사에 기록하여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이 정직한 과거청산과 정의로운 역사화해의 첫걸음임에도 가해 전범국 일본이 정의롭지 못한 농간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훼방한 것은 일본 자신이 미래를 포기하는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어둠이 빛을 가릴 수 없듯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군국 일본은 침략전쟁을 야기하여 ‘전범국’ 오명을 얻었고 죄 없는 자국의 양민들이 막대한 피해와 처절한 고통을 겪었던 아비규환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비겁한 간계로 정의실현을 지연시킨다고 해도 명백한 불의의 역사는 말소할 수 없고 소멸되지도 않으며 시간이 지난다고 면죄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외면하려는가. 미래를 위해서 과거는 묻어버리고 가자며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더 덧내고 힘없는 약자를 얕잡아 우롱하는 양심 없는 무례의 극치다.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그렇게 두려워서 잔꾀를 부려 어설프게 봉인을 조작하기보다는 진실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반성하고 용서받고 아픈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 화해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우치기를 기대한다. 등재 보류된 ‘위안부’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원만하게 등재하고 지난날 약육강식으로 이웃나라를 괴롭혔던 야만적인 침략역사를

일제에 의해 ‘중류사회의 표준’이 된 삼베수의

2018년 1월 9일 2347

요즘 우리네 일상에서 접하는 수의(壽衣)는 삼베[麻布]를 소재로 한 ‘삼베수의’다. 그런데 본래 삼베라는 소재는 돌아가신 분께 입혀드리는 수의에 쓰는 것이 아니라, 망자(亡者)의 가족과 친척들이 입는 상복(喪服) 소재로 쓰는 것이다. 돌아가신 분과의 혈연적인 친소(親疏) 관계를 따져서 아들이나 딸처럼 가까운 사람은 슬픔[哀]이 크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꾸밀 겨를이 없다는 것을 형상화하기 위해 가장 거칠고 성글게 짠 삼베옷을 입고, 관계가 먼 사람일수록 슬픔이 작기 때문에 조금씩 고운 삼베옷을 입고 바느질도 제대로 한 옷을 입는 것이 예법이었다. 그런데 상주 등이 입어야 하는 거칠기 짝이 없는 삼베옷을 지금 우리는 돌아가신 분께 입히고 있다. 우리네 상장례문화에서 삼베수의가 본격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다. 현재까지 문헌에서 확인된 것은 1925년 김숙당(金淑堂)이 지은 <조선재봉전서>에서 ‘가는베(細布)’로지으라고 한 것이 처음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베’는 기본적으로 삼베[痲]를 의미한다. 이어 1934년에 조선총독부가 반포한 <의례준칙(儀禮準則)>에서 ‘포목(布木)’으로 수의를 마련하도록 규정하는데, 여기서 ‘포(布)’는 삼베이고 ‘목(木)’은 무명(면)이다. 즉 일제강점기에 삼베수의가 등장하고 총독부에서 이를 백성들이 지켜야 할 준칙으로 규정한 것이다. 준칙을 제정, 공포한 이후 총독부는 각 지방별로 지방의 실정을 반영한 준칙시행서를 발행하게 했고, 수년 간 온갖 조직을 동원해 폭압적인 방식으로 준칙을 실행해나가면서 기존의 풍습 중 준칙과 맞지 않는 것은 ‘단연코 배제하는데 힘쓰고’, ‘확고한 신념과 부단의 노력을 통한 철저한 보급’을 강조한다. 이렇게 삼베수의는 우리네 일상으로 들어와 어느새 “삼베수의가 본래의 우리 전통”이라고

연구소,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노동> 가이드북 제작

2018년 1월 9일 1663

11월 30일, 일본정부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해석전략 보고(2017.12.1)를 앞두고 <한일시민이 함께 만드는 세계유산 가이드북-일본의 메이지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노동>(이하‘가이드북’)이 제작, 배포되었다. 이 ‘가이드북’은 우리 연구소와 일본의 ‘강제동원 진상규명네트워크’가 중심이 되어 현지조사와 자료수집을 통해 제작한 것이다.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의 23개 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하며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고 일본정부에 권고했다. 이에 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관련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현지답사 결과 한국인과 중국인, 연합군 포로 등의 강제노동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현지 시설 안내자들은 ‘강제노동’ 문제에 대한 질문에 ‘내가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라고 얼버무릴 뿐이었다. 오히려 ‘올바른 역사를 추구하는 하시마 도민회’는 그들이 배포하고 있는 동영상 「군함도의 진실」을 통해 강제노동을 부정하면서 한국이 역사를 왜곡·날조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가이드북’은 유네스코의 권고에 기초하여 일본정부가 해당시설의 전체 역사를 충실히 밝히고, 강제동원·강제노동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가이드북’에는 일본정부가 숨기고 싶어 하는 개별 시설의 어두운 역사와 함께 피해자들의 증언이 실려 있다. 독자들이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본의 ‘산업화와 전쟁,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의 역사를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산업혁명유산’ 시설 주변에 있는 일본시민들이 만든 각종 추모비를 소개하여 현지 방문자가 역사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에는 식민통치와 강제수용, 노예무역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정적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 기자회견과 청원운동 전개

2018년 1월 9일 916

11월 3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박정희 출생 100년을 하루 앞둔 11월 13일에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 4m 크기의 박정희 동상을 세울 것이라는 첫 언론보도가 나왔다. 연구소는 즉시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후 11월 6일 연구소 집행위원회(소장, 실국장, 운영위원장단의 회의체)를 소집해 강력 대응키로 결의했다. 우선 뜻을 같이 하는 마포지역 정당,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11월 13일 제막식 저지 집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집회 전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동상 건립의 부당성을 널리 알렸다. 다행히 서울시도 시유지인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내에 동상을 세우려면 서울시 공공미술설치조례에 따라 해당 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동상 건립은 명백한 불법임이 드러났다. 게다가 연구소와 함께 동상 소재지를 파악하던 CBS가 동상 소재지를 독점 보도하여 반대 여론은 급격히 늘어났다. 이처럼 자신들에게 상황이 불리해지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측은 당초 동상 제막식을 동상 기증식으로 변경해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연구소와 마포 지역주민들이 조직한 ‘박정희동상 설치 저지 마포비상행동’ 소속 회원 등 100여 명은 13일 오전 10시부터 동상 기증식장 앞 계단에서 1시간 넘게 동상 건립 반대 집회를 열었다.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차라리 황국 군인 동상을 세워라’ ‘헌정질서 파괴주범의 동상이 웬 말이냐’ 등의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또한 “지난해 촛불시민혁명으로 적폐청산이 시대의 화두가 된 지금 원조 적폐인 박정희 동상을 서울시민의 땅에 세우겠다는 준동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박정희 동상 설치 심의를

제11회 임종국상 시상식과 임종국 선생 28주기 추모식 개최

2018년 1월 9일 1068

제11회 임종국상 시상식이 11월 10일 오후 7시 한국언론회관 19층 기자회견장에서 회원 및 각계인사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시상식은 장병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장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이이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의 축사,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축하영상, 이민우 연구소 운영위원장의 기념사업회 경과보고, 윤경로 심사위원장의 선정경위 설명, 시상 그리고 수상자들의 수상연설,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 순으로 진행됐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6건, 사회·언론 부문 6건 등 총 12건이 올라왔으며, 9월 26일 열린 심사위원회에서 열띤 토론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가, 사회부문에는 한상권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가 최종 선정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하여 박찬승 한양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정근식 서울대 교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조세열 사무총장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조재곤 교수는 <한국근대사회와보부상><그래서 나는 김옥균을쏘았다><민영환: 대한제국의마지막숨결> 등 다수의 저서를 내놓은 한국근대사 중견 연구자이다. 학술연구뿐만 아니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오랜 기간 민간기구와 정부의 과거사 청산에도 기여해 왔다. 수상저서인『전쟁과인간그리고‘평화’-러일전쟁과한국사회』는러일전쟁에 관한 한·중·일의 연구성과와 자료는 물론 러시아의 사료까지 섭렵하여 분석에 활용함으로써 러일전쟁의 연구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기존의 연구와 달리 전장으로서 한반도와 피해자로서 한국인의 관점에서 주체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러일전쟁의 역사상을 재정립한 점이 돋보인다. 사회부문 수상자인 한상권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는 대학의 민주화와 친일잔재 청산을 추진하다 해직당하는 등 학술연구와 현실참여를 병행해 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그는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

일제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제작 배포한 영문판 식민통치보고서, 애뉴얼 리포트

2018년 1월 9일 2219

강원도 삼척군(三陟郡)에서 상치(尙齒)의 은전(恩典)에 욕(浴)한 최동욱(崔東昱) 외 37명의 양반유생(兩班儒生)은 성은(聖恩)의 우악(優渥)하심을 감격하여 성덕(聖德)을 만세에 전하기로 거월(去月) 3일 천장가절(天長佳節)에 복(卜)하여 동군(同郡) 읍내 서단 죽서루(竹西樓)의 측(側)에 고(高) 8척(尺) 5촌(寸), 폭(幅) 2척 4촌, 후(厚) 8촌의 기념비를 건립하고 기(其) 기석(基石)은 융기한 천연의 대반석(大盤石)을 이용하였다는데, 전면에는 ‘天長地久’ 후면에는 ‘明治 四十四年 十一月 三日 立 天皇在上 葛人西蜀 命我總督 召化南國 恤窮褒節 耆老兩班 勸業省稅 臣民一體 江原道 三陟郡 兩班耆老 崔東昱 金炯國 外 三十六人’이라 서(書)하고, 건립위치는 풍광이 명미(明媚)하고 조망이 절가(絶佳)한 강원도 팔경(八景) 중 유명한 처(處)이라더라. 이것은 <매일신보>1911년12월6일자에수록된「천장지구(天長地久)」제하의기사이다.여기에는 삼척에 사는 ‘얼빠진’ 양반유생들이 천황의 은사금 하사에 감읍한 나머지 그 공덕을 길이 기리고자 삼척 죽서루 옆에 ‘천장지구’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다는 소식을 담고 있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 병합한 직후,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한 회유책의 하나로 친일귀족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은사금을 광범위하게 살포하였다. 이때 양반유생의 기로(耆老)로서 은사금을 받은 자가 12,115명이오, 효자절부(孝子節婦)로서 포상은사금의 대상자가 3,209명이며, 환과고독(鰥寡孤獨;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으로서 구휼은사금을 받은 이가 무려 70,902명에 달하였다. 위에 나오는 삼척지역의 양반유생들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들이 은사금 사령서(辭令書)를 수여받는 장면이 담긴 사진자료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장기를 내건 삼척수비대 앞에서 이들이 양쪽에 차례대로 도열한 광경이 포착된 이 사진의 출처는 조선총독부가 1911년 12월에 펴낸 <애뉴얼리포트(1910~11년판)>이다. 이 책자는 원래 1908년 12월에 통감부에 의해 ‘1907년판’이 처음 나온 이래로 글자 그대로 해마다 간행된 ‘연차보고서’이다. 이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