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민족사랑

봄날은 간다 – 대구 갑부 서병조의 친일 인생

2017년 5월 26일 6317

신주쿠공원 관앵어회 초대 1934년 4월 20일, 봄을 맞은 일본 도쿄의 신주쿠공원은 벚꽃으로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신주쿠공원은 벚꽃 명소다. 양복과 기모노로 한껏 갖춰 입은 사람들이 공원을 가득 메웠다. 주인공은 벚꽃이 아니었다. 일본 천황과 황후를 비롯해 황족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고위 관료들과 외국인들도 제법 보였다. 일본 각지에서 초대받아 온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날 신주쿠공원에서는 관앵어회(觀櫻御會)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었다. 우리말로는 벚꽃놀이다. 관앵어회는 가을에 열리는 관국어회(觀菊御會)와 함께 일본 궁중의 공식행사였다. 일제는 천황이 국민들과 함께 국화와 벚꽃을 감상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국화와 벚꽃은 일본 황실을 상징한다. 이 행사를 통해 황실의 위엄을 드높이고, 국민들에게 평화롭고 풍요로운 일본이란 이미지를 각인시키고자 했다. 벚꽃을 감상하는 사람들 틈에 식민지 조선에서 온 중년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이자 조선을 대표하는 실업가 서병조(徐丙朝, 1886~1952)였다. 작년 추석에는 관국어회에 초대받는 광영을 입었습니다. 올해 다시 관앵어회에 초대되는 광영을 입으니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번에는 제 처와 함께 지존의 용안을 뵈었으니 진실로 감격하였으며, 일대의 광영입니다. 일본 황실이 여는 관국어회와 관앵어회,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특별히 초대 받은 인사들만 참석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일본 황실 무늬가 금박된 초대장을 받았다. 특히 조선에서 민간인이 초대된 것은 1929년부터였고, 한 번에 한두 명만 참가할 수 있었다. 1934년 관앵어회에 초대된 조선인은 중추원 참의인 서병조와 박영철(朴榮喆) 두 사람이었다. 이렇게

역사적 진실을 지켜낸 세기의 재판실화 <나는 부정한다>를 보고

2017년 5월 26일 1331

역사적 진실을 지켜낸 세기의 재판실화 <나는 부정한다>를 보고  신학재 회원 최근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과거 자신들의 침략 역사를 부인할 뿐 아니라 위안부 할머님들이 동의하지 않는 위안부 합의를 해놓고는 불가역적 합의니 이제 종료되었다느니 망발하고 있는 와중에 유럽판 홀로코스트인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영화 〈나는 부정한다〉를 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독일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뮌헨 다하우 유대인 수용소의 보존을 통해서 과거를 반성하고 있기에 대학살에 대한 이견이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극우주의자들이 수십년 간 독가스에 의한 대량학살을 부인하며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고 거꾸로 요구한다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더구나 독일인이 아니라 승전국인 영국의 역사저술가 데이빗 어빙은 가스실 대학살을 부인하고 장장 30여 권의 저서를 써서 희생자 숫자가 과장되었으며 히틀러의 지시가 없었다고 강변하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미국의 유대학 여교수가 저술한 『홀로코스트 부정하기』라는 책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며 런던 법정에 고소하여 1996년 9월 5일부터 2000년 1월 11일까지 총32번의 공판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최종 공판 끝에 334페이지의 판결문을 통해 여교수가 승소하고, 이 재판 이후 데이빗 어빙은 오스트리아에서 기소되어 3년형을 언도받고 감옥에 수감되었다는 점을 볼 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의 과제인 위안부문제에 비하면 형편이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처럼 독가스에 의한 학살인 경우에는 물증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느낄 수 있었고, 아무리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더라도 별도의

방응모 사건 파기환송심 판결

2017년 5월 26일 1268

지난 5월 12일 서울고등법원은 방응모가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6월 29일 방응모의 행위들이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 제2조의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바 있고, 이러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이 제기됨에 따라 이루어진 네 차례의 재판 끝에 이루어졌다. 전 조선일보사 사장 고 방우영이 원고로, 또한 조선일보사와 방상훈이 소송의 보조참가인으로 참가한 이 사건에서 2010년 12월 22일 서울행정법원은 방응모의 다른 행위들의 경우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지만 제2조 제14호의 “일본제국주의 전쟁수행을 돕기 위하여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한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판결하였다. 이에 대한 항소심에서 2012년 1월 12일 서울고등법원은 군수업체에 관한 부분도 친일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여 제1심 판결을 뒤집었고, 이에 대한 상고로 2016년 11월 9일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한 행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군수품 제조업체에서 일정한 직위로 재직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자료들에 비추어 군수품 제조업체의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거나 업무집행에 주된 역할을 수행하는 정도의 행위를 하였음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해석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방응모의 행위는 군수업체를 운영했다고는 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사건을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였고 다음에 이번 판결이 나온 것이다. 방응모 사건의 피고인 행정자치부장관 측은 이러한 기준 속에서 대응 논리를 개발하여야 했고 새로이 발굴된 자료들도 제시하며 파기환송심에 임하였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상고심인 대법원의 사실상 및 법률상 판단에

[초점] 역사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1 ‘역적’ 출범

2017년 5월 26일 1323

연구소는 5월 15일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역사적폐 청산’(줄임말 역적) 홍보방송을 내보냈다. 연구소는 그동안 박정희기념관 설립 저지, 이명박 정부의 건국절 반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 저지,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에 이르기까지 친일 청산에 앞장서 왔고, 이번 최순실 게이트 때에도 전국 각지의 회원들이 촛불항쟁에 적극 나섰다.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1 ‘역적’은 이명박근혜 9년간 쌓여온 역사적폐를 치우라는 촛불혁명의 역사적 소명을 담아내고자 기획되었다. 팟캐스트 ‘역적’에는 교육홍보실 박한용 실장을 주축으로 하여 방은희, 임선화, 송민희, 오경아 등 상근자가 참여하고 외부 인사로는 김세호 PD가 총괄 기획, 노기환 MC가 진행을 맡는다. 시즌1 ‘역적’은 총 20회로 구성될 예정이다. 1회부터 10회까지는 역사적폐의 주범은 누구인지? 이들의 역사쿠데타 음모와 논리가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리고 11회부터는 구체적인 역사적폐의 실체들을 파헤치고 우리가 청산해야 할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이다.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그동안 외부강연과 방송출연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역사적폐의 모든 것을 청취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5월 22일에 방송될 제1화에서는 ‘누가 역사적폐의 주범인가’라는 주제하에 고추장을 이용한 우리 시대 진보 보수 수구의 판별법, 대한민국 헌법 1조의 의미, 제1공화국의 비밀=보수와 수구의 뿌리 그리고 건국절의 배경 등 박실장만의 예리한 분석과 재치 있는 비유로 한국 수구의 기원을 파헤칠 것이다. 박실장의 대담이 메인 요리라면, 다양한 부대 메뉴도 준비중이다. 그 중 하나가 ‘이것이 실화냐?’이다. 화제의 역사현장을 찾아가 전문가의

36년 전 맺지 못한 인연, 친일청산운동으로 대신하겠습니다

2017년 5월 26일 1339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전에 살고 있는 대전민중의꿈 대표 김창근입니다. 선생님은 저를 잘 모르시겠지요? 저는 선생님을 잘 압니다. 그것은 36년 전 선생님과 제가 천안에서 함께 하게 된 우연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천안 청수동과 풍세를 지나 광덕에 가면 호두가 많이 나는 광덕산이 있었지요. 그 산자락 공원묘원에 선생님이 모셔져 있더군요. 무려 36년이 지나 선생님의 영전에 절을 올리면서 생전에 뵙지 못한 회한과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엄혹한 시절 선생님과의 인연을 끝내 맺지 못했지만, 너무 늦게 찾아뵌 것을 용서해 주실 수 있는지요? 1980년의 봄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혼란의 시기였고, 저는 당시 천안경찰서 남부파출소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몸은 공직에 있었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친일청산과 외세를 몰아내야 한다는 민족주의자의 길을 걷던 20대의 열혈청년이었지요. 당시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심취해 있던 저는 친일청산을 위해 저술활동을 하시는 선생님을 단박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소문과 저술활동에 전념하시는 분을, 아무런 소개도 없이 경찰관이 불쑥 찾아가는 게 결례일 것 같아 직접 찾아뵙지는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서재인 ‘요산재’가 있던 삼룡동은 마침 제가 담당한 지역이라서 호구조사를 핑계로 찾을 수도 있었지만, 호구조사라는 것이 실제로는 주민 사찰하는 수단이어서 그 또한 선생님께 불편을 드릴 것 같아 하지 못하였지요. 그리고 1981년 7월 ‘아람회사건’으로 구속되어 선생님과의 만남을 끝내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통한 자료 기증 잇달아

2017년 5월 26일 1240

일본에서 수화 통역자로 활동하고 있는 기타무라 메구미 씨가 교류하고 있는 청각장애우들의 소장자료를 전달받아 4월 11일 연구소에 기증했다. 지난 11월에도 장애우들의 소장자료를 전달한 메구미씨는 지속적인 교류활동을 통해 적극적인 자료기증을 유도하고 있다(민족사랑 2016년 11월호 참조). 이번 기증자료는 교과서, 지도, 엽서 등 문서류로서 특히 1944년 문부성에서 발행한 <중등문법>에는 패전 후 전쟁과 관련된 예문을 검은 색으로 칠한 흔적도 남아있다. 한편 기타무라 메구미 씨의 연구소 방문은 4・16 세월호 참사 추모를 위해 방한하면서 이루어졌다. 야노 히데키 씨, <계간 삼천리> 등 도서 기증 4월 16일, 야노 히데키 씨(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잇는 모임 사무국장)가 <日本歷史の圖鑑>(1957), <季刊 三千里> 등 총 40권을 기증했다. 특히 <季刊三千里>는 강재언, 김달수, 이진희 등 재일 조선인 학자들이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총 50호를 발행한 진보적인 일본어판 종합잡지다. 김지하 오적필화사건, 김대중납치사건 등 한국의 정치문제와 강화도사건 100년, 3・1운동 60주년 특집 등 한국의 역사, 문화를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4월 16일 히다 유이치 씨(일본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공동대표)가 <現場を歩く, 現場を綴る: 日本·コリア·キリスト教>(2016) 등 도서 3권을 기증했다. 문응상 회원(강원지부), 전교조 활동 자료와 도서 기증 4월 12일, 문응상 회원이 교무수첩, 월급명세서, 40년간 들고 다닌 가방, 학생들의 편지, 신문스크랩, 도서 등 귀중한 자료를 연구소에 기증했다. 1981년 교사생활을 시작한 문응상 회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이전 ‘교사협의회’ 시절부터 지금까지 전교조 활동에 참여해 왔다. 문 회원은 방안 가득 채웠던 자료와 도서를 모두 기증하고

[기고] 영화 〈나는 부정한다〉를 좀 더 잘 보려면

2017년 5월 26일 2882

* 이 글은 <프레시안> 4월 28일자에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모든 것 – 영국 명예훼손 재판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진실이 법정에 서게 된 파라독스 이 영화는 실제 재판(어빙사건)에 기초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 또는 쇼아라고 이름 붙여진 유대인대학살을 부정하는 역사학자와 이를 규탄하는 역사학자 사이의 대결을 극화하고 있다. 어빙사건은 유럽 곳곳에서 신나치 등 극우세력들이 등장하고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 미국의 립스타트 교수는 용기 있게 이러한 흐름을 고발하는 책을 썼다. 이에 대해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인 영국학자 어빙은 영국법원에 명예훼손으로 민사소송을 걸었다(영국의 High Court라는 법원은 대개의 영한사전에는 고등법원이라고 번역되고 있고 영화의 번역도 이에 따른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사법제도에서 말하는 항소법원으로서의 고등법원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제1심 법원 역할을 한다). 립스타트는 졸지에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피고의 자리에 서야만 했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어빙이 민사이든 형사이든 피고석에 앉았어야 했을 터이다. 부정론자가 아니라 역사적 진실을 지키려는 사람이 법정에 서게 된 이 역설은 어빙과 그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이 이길 가능성이 높은 나라에서 재판하려고 했기 때문에 생겨났다(재판이 끝난 뒤 립스타트는 과연 2005년에 ‘법정에 선 역사(History on Trial)’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소송이 제기된 1996년의 시점에는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홀로코스트는 물론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부정하는 것도 범죄로 처벌하고 있었다. 어빙은 전략적으로 그렇지 않은 영국을 선택한 것이다(영국에서는

20개월 ‘야탑투쟁’, 적폐청산 투쟁으로 승화시켜야

2017년 5월 26일 1397

∷ 인터뷰 – 경기동부지부장 허남해 / 정리 : 방학진 기획실장 5·18의 도시 광주가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비롯해 진보적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면 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비, 시립병원 건립 등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성남시가 주도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야흐로 성남이 진보의 중심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이곳 성남의 번화가 중 한 곳인 지하철 야탑역 광장에서 허남해 경기동부지부장을 비롯한 많은 회원들이 만 20개월 동안 이른바 ‘야탑투쟁’을 벌여 왔다. 5월 12일 저녁 7시에 성남동 복지회관에서 허남해 지부장을 비롯해 야탑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회원들 몇몇과 함께 뒷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부 첫 업무지시로 국정 역사교과서 정책을 전면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문 : 야탑투쟁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답 : 2015년 9월경 사드(THAAD) 배치가 예견되자 연구소 회원이면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이신 서덕석 목사와 김종국 회원 두 분이 야탑역, 모란역, 수내역 등 성남 시내에 있는 거의 모든 지하철 역사를 순회하면서 주로 퇴근 시간에 맞춰 피켓 시위를 하셨어요. 그러면서 차차 서명대도 설치하고 작은 앰프도 마련하여 진행하던 차에 10월 12일 국정교과서 국정화고시가 발표되자 분위기가 심각해졌지요. 광복회 성남지회장이었던 이용위 회원, 이순선 회원, 박종완 부지부장, 성백만 회원, 신승학 회원 등 여러 회원들이 점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문 : 야탑역 광장에 천막까지 설치하셨군요. 천막 설치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답 : 국정화고시를 강행한

식민지 관료의 민족차별

2017년 5월 26일 3218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조선총독부 관리임용에 관한 문서이다. 먼저 이원국의 승서장은 1914년 2월 28일 조선총독부 군수 정7위 이원국을 고등관 5등으로 승서陞敍(벼슬을 올려줌)한다는 내용과 함께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權兵衛’의 직인이 찍혀 있다. 반면에 1917년 12월 15일자 박준호의 판임관견습 임명장으로 보이는 문서에는 월봉 15원을 지급한다는 내용과 함께 직인 없이 ‘조선총독부’ 기관명만 명시되어 있다. 관직의 지위에 따라 임명기관이 다르다. 이는 주임문관奏任文官 이상의 진퇴는 내각총리대신을 거쳐 이를 일왕에 상주上奏하고, 판임문관判任文官 이하는 조선총독이 전행專行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조선총독부관제 칙령 제354호) 조선총독부 관리는 크게 고등관과 판임관(1~4등)으로 구분된다. 고등관은 임명의 형식에 따라 친임관親任官, 칙임관勅任官(1·2등), 주임관奏任官(3~9등)으로 구분된다. 주임관 아래에는 하급관료인 판임관이 있다. 판임관 이상을 관리라 통칭했다. 정규직제 외의 보조인력으로 고원雇員, 용인庸人, 촉탁囑託 등을 두었다. 고원은 공무를 수행하기는 하지만 관리의 신분을 얻지 못한 준공무원이고, 용인은 국가에 고용되어 있는 하급종사자거나 일용노동자다. 촉탁은 임시직으로 보수는 관리의 대우를 받는 자부터 고원의 대우를 받는 자까지 다양하다. 총독부의 관리임용정책은 기본적으로 민족차별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식민통치기구의 조선인 임용은 소수에 그쳤으며 말단 직위에 임용된 경우라도 신분·보수·진급 등에서 차별 대우를 받았다. 전체 고등관 관료 중 조선인의 비율은 20% 내외이고 그 중 절반은 군수를 비롯한 지방직이었다. 고등관 중에서도 핵심인 총독부 본부 관료의 4%정도만 조선인이었으며 식민지 기간 동안 단 2명의 조선인이 학무국장(차관급)에 기용됐다. 중앙정책의 대민집행관으로서 일본의 식민통치를 선전·관철시키고 조선인들에 대한 통제와

[특집] 새 정부, 역사 적폐 청산해야 – 더 이상 ‘외교참사’를 되풀이하지 말라

2017년 4월 27일 1512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향해 치달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돌출적인 독도 방문으로 역사・영토문제가 불거졌고,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내건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2월 28일 굴욕적인 ‘위안부’문제 합의라는 ‘외교참사’를 저질렀다. ‘합의’가 나온 이후 양국 간의 대화는 실질적으로 중단되었으며, ‘교육칙어’의 부활을 비롯하여 평화헌법의 개정까지 시도하고 있는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화 행보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일본군‘위안부’, 원폭피해자, 사할린동포, 시베리아억류자, BC급 전범, 근로정신대, 야스쿠니문제, 강제동원・강제노동 등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들은 하나 둘씩 세상을 뜨고 있다. 피해자들의 뜻을 철저하게 무시한 한국 정부의 ‘외교참사’가 불러온 재앙이 이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과거사 현안의 해결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질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한일위안부 합의’는 이미 폐기되었다고 보아도 마땅할 것이다. 새 정부는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 필수적인 과거사 문제의 해결방안을 종합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현재 꽉 막혀있는, 일본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전사자 유골반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016년 4월 일본 정부는 ‘전몰자유골수집추진법’을 제정하여 전사자 유골수집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사망한 전사자의 유골을 수집하여 유족들에게 돌려주는 것을 국가의 책무로 정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발굴된 유골을 유족에게 돌려주기 위해 유골의 DNA를 추출하여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유족들에게는 D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