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임헌영 소장 KBS1TV 출연
임헌영 소장이 3월 15일 오후 11시 30분 KBS 1TV <책 읽는 밤>에 출연했다. 이 코너는 3월 11일 열반하신 법정 스님의 삶을 추모하는 시간으로 꾸며졌는데, 임 소장은 ‘법정 수필에 나타난 생태적 상상력’으로 최근 불교문학상 평론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임헌영 소장 친일청산 주제로 강연
임헌영 소장은 3월 13일 서울 충무로 대림정 식당에서 새날희망연대가 주최한 강연에 참석해 친일청산을 주제로 강연했다.
[토론회]조중동과 과거청산
[토론회] 조중동과 과거청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비롯한 대부분 과거사위원회 활동이 정리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수구언론이 보여 준 과거청산 발목잡기를 확인·점검하고 과거청산 후속 작업을 위해 필요한 부분을 논의하는 자리를 갖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일시 : 2010년 5월 11일, 화요일, 저녁 7시 * 장소 : 민언련 교육장(서부지청 뒤편) * 순서 발표1 : 조중동의 과거청산 딴지걸기 – 김유진(민언련 사무처장) 토론1 – 이창수(민간인학살범국민위 운영위원장) 발표2 : 조선,동아일보의 친일과 친일문제 인식 – 장신(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토론2 – 박수현(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 주최 및 주관 민언련, 포럼 “진실과 정의”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전화 02-778-3438 ◆전송 02-778-3437 ◆홈페이지 http://www.ktruth.org ◆서울 중구 정동 34-5 배재정동빌딩 B동 2층 (우100-785) ◆분담금/후원계좌 KB국민은행(293801-01-156682, 박석운-과거청산범국민위)
효창원을 성역화하라
성 명 서 용산구 소재 효창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이동녕과 김구, 비서장 차리석, 군무부장 조성환 선생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가 묻혀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1946년 김구 주석께서 묘역을 조성할 당시 안중근 의사 유해를 모시기 위해 빈뫼(허묘)를 마련해 놓은 곳이기도 합니다. 2010년 3월 26일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맞아 40년, 30년간 효창원을 보살피던 사람들이 이 빈뫼에 구천을 떠돌던 안중근 의사님 넋을 모시는 행사를 경건하게 치룬바 있습니다. 이에 효창원은 그간 일곱 분 독립선열이 쉬시던 곳에서 여덟 분의 독립선열 영혼들이 쉬시며 담소하는 곳으로써 위상이 더욱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과 대한민국 최상위 헌법조문의 제1조 1항~2항이 임시정부 ‘약헌’에서 직역 한 것임을 볼 때, 효창원독립선열묘역은 대한민국 수립 이후 가장 먼저 국립묘지의 예우를 받아야 할 곳입니다. 그러나 김구 주석 서거 이후, 친일반민족세력이 기반이 된 독재정권에 의해 자행된 효창원의 심각한 훼손은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우리의 독립운동사에 대한 지속적인 탄압과 평가절하였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독립선열에 대한 배은망덕한 후손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만신창이가 된 효창원의 훼손을 바로 잡고, 효창원이 겨레 사랑 정신이 살아 숨쉬는 역사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1932년 상하이 일본영사관 경찰부가 발행한 ‘조선민족운동연감’을 근거로 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4월 13일에 건립되었다’는 주장도 4월 11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 효창원을 국립묘지 예우에 관한 입법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바로알기』출판기념회
이봉원 운영위원장은 여러 해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을 여행하며 기록영화까지 제작한 이 분야의 전문가다. 이 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임시정부에 관한 내용들을 알기 쉽고 생동감 있게 구성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바로알기』출판기념회 – 때 : 4월 17일 (토) 오후 2시 – 곳 : 서울 광화문 ‘한글회관’안 얼말글교육관(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1번 출구)
4.9 인혁열사 35주기 추모제
아래 그림을 클릭하시면 큰 창이 뜹니다.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전화 02-778-3438 ◆전송 02-778-3437 ◆홈페이지 http://www.ktruth.org ◆서울 중구 정동 34-5 배재정동빌딩 B동 2층 (우100-785) ◆분담금/후원계좌 KB국민은행(293801-01-156682, 박석운-과거청산범국민위)
노근리 사건을 영화화한 꼭 봐야할 영화!
[ 작품 개요 ] 이 영화는 1950년 7월, 노근리의 철교 밑 터널 (속칭 쌍굴 다리) 속으로 피신한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이 미군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무참히 살해된 ‘노근리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 사건 보도 ] 1999년 9월 30일 AP 통신의 ‘노근리 사건’ 특종 보도! 2000년 퓰리처상 탐사보도부문 수상!! ‘노근리 사건’처럼 세상에는 의외로 언론이 직접 나서서 취재해 그들의 하고 싶은 말을 전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말을 전달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 그런 이들의 이야기에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 대한민국 국적자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AP 통신의 최상훈 기자 인터뷰 中 – [ 사건 증언 ] “소대장은 미친놈(madman)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발포하라. 모두 쏴 죽여라(kill’em all). 저는 총을 겨누고 있던 사람들이 군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거기에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목표물이 뭐든 상관없다. 여덟 살이든 여든 살이든, 맹인이든 불구자든 미친 사람이든 상관없다. 모두에게 총을 쐈습니다.” – 제 7기병연대 참전군인 조지 얼리의 증언 “다리 밑은 모래와 자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기 위해 맨손으로 구멍을 팠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은 사람들을 바리케이드처럼 쌓아 그 뒤에 숨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르고 계속 울었습니다. 우는 소리를 듣고 그 아이가 있는 곳을 향해 사격이 가해져 또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자
강제병합100년 공동행동 한국실행위원회 출범선언문
강제병합100년 공동행동 한국실행위원회 출범선언문 2010년은 일본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병합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876년 일본은 조선과 강제로 불평등조약을 체결한 이래 우리의 자주적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노력을 무력으로 짓밟았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십 수 년간 지속된 의병항쟁 등 일체의 저항을 군사력으로 진압하는 한편,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1905년 이른바 을사조약을 강요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을 간섭했다. 1907년 헤이그사건을 계기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행정과 사법을 장악하면서 군대를 해산시켰다. 마침내 1910년 8월 22일 강제로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고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문을 공포하면서 한반도는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1910년 이래 35년간 지속되어 온 일본의 식민지배는 폭력과 강압에 기초한 야만적 지배였으며 반인륜적 범죄행위였다. 일제는 한국을 강점한 후 일본에 값싼 식량과 원료를 공급하기 위한 기지로 만드는 한편,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를 침략할 때는 병참기지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모든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직접 지배를 추진했다. 일본은 민족우열론에 입각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앞세워 민족적 억압과 차별을 정당화했다.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 그리고 기만적인 동화정책과 폭력을 통해 민족 성원에게 노예의 삶을 강요하고 일체의 인간 권리를 말살했다.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독립국가를 수립하려는 일체의 저항운동은 물론 약간의 비판마저도 가차 없는 폭력과 극도의 공포분위기를 통해 뿌리째 뽑아버리려고 했다. 특히 1937년 이래 일본제국주의는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을 침략하면서 자국의 국민은 물론 일체의
창작 판소리 ‘백범 김구’
이 공연의 무료 관람을 원하시는 분은 4월 5일까지 연구소(vacationjin@empal.com)로 성함을 알려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