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림
[안내]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 동상 제막 반대 집회 (7.5)
‘백선엽 동상’이 360도를 회전해도 친일행적을 감출 수는 없다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동서남북 사방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로 360도 회전하는 ‘백선엽 동상’이 결국 세워지고 말았다. 동상 건립비용 5억 원 중에는 국가보훈부 1억 5천만 원, 경상북도 1억 원 등 2억 5천만 원의 혈세가 포함되어 있다. 백선엽은 교사 양성기관인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일제의 침략전쟁이 극에 달하던 1940년 3월 진로를 바꿔서 일제가 세운 괴뢰 만주국의 초급장교 양성기관인 중앙육군훈련처(일명 봉천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자발적으로 만주국군 장교가 된다. 특히 백선엽은 1943년 12월부터 악명 높은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이런 부역행위로 백선엽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음은 물론, 여야 합의로 제정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최종보고서에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한명으로 수록되었다. 백선엽 스스로도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회고록에서 자백하였다. 한마디로 백선엽은 국가가 공인한 친일파이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가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국가가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백선엽이 2020년 7월 대전 국립묘지에 묻히게 되는 대단히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국가보훈부와 경상북도 그리고 백선엽 후손 등은 후안무치하게도 백선엽 사망 3년을 맞아 그의 동상을 더욱 드높이 세우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해방 후 반공영웅으로 신분을 세탁하여 재등장하였듯이 백선엽 역시 분단과 냉전의 질곡
[부고]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 별세
〈강만길 선생 연보〉 〈다운로드〉 1933년 10월 25일 경상남도 마산에서 강재갑(姜在甲)씨와 진야묘치(陳也妙致)씨 사이의 2남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남. 1937년 부모님의 열성으로 세는 나이 다섯 살부터 독접장(獨接長)에게 『천자문』과 『동몽선습』 등을 배움. 1940년 마산의 완월(玩月)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에 입학. 1941년 소학교 2학년 때 제국주의 일본이 ‘대동아전쟁’이라 부른 태평양전쟁 도발. 1945년 국민(초등)학교 6학년 때 8・15 해방을 맞음. 1946년 미군정시기 변경된 학기제에 따라 9월에 6년제 마산공립중학교에 입학. ‘해방공간’의 극심한 좌우대립 상황을 여러가지 형태로 겪으며 역사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됨. 1950년 중학교 5학년 때 6・25전쟁을 겪음. 8월경 마산이 최전선지역이 되면서 마산 학도의용대에 편입됨. 8월말~9월초 학도의용대 해산 이후 숙부가 살던 부산으로 감. 약 9개월에 걸쳐 부산부두 하역 노동자, 포탄 운반 노동자 생활, 미군부대 ‘체커’ 생활을 하고 1951년 5월 하순 마산으로 돌아감. 1952년 학제 변경으로 마산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졸업함. 마산 근처 한 농촌의 초등학교 임시교사로 취직할 예정이었으나 담임교사가 구해준 대학입학원서를 받아 응시해 합격함으로써 피난지 대구에서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함. 1953년 7월에 휴전이 조인되고 9월에 대학이 서울로 돌아가게 되면서 군입대 전까지 서울생활을 시작함. 이 시기부터 식민사학 극복론에 관심을 가지고 백남운, 이청원, 김한주 등 사회경제사학 계통의 연구들을 접하기도 함. 한편 1954년 학부 3학년 때 홍이섭 교수의 강의를 통해 처음으로 민족주의사학의 신채호를 알게 됨. 은사 신석호 선생의 도움으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도서정리 아르바이트를 함. 1956년 현역병으로 군입대. 논산훈련소
[보도자료] 조선일보, “징용 배상금 받으면 20% 내라” 지원단체, 피해자와 11년전 약정 보도 관련문화일보 “‘돈’ 걷자는 시민단체…징용해법 훼방” 보도와 관련
<조선일보>, “징용 배상금 받으면 20% 내라” 지원단체, 피해자와 11년전 약정 보도 관련 조선일보는 23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시민 단체가 징용 피해자들과 ‘일본 기업들에서 어떤 형태로든 돈을 받을 경우, 20%는 단체에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11년 전에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일부 피해자 유족이 최근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수용해 판결금을 2억원 안팎 수령한 가운데, 해당 단체가 이 약정을 근거로 금액 지급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보도 했습니다. ■<개요> 앞서 일본 소송(1999~2008)에 나선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 5명은 201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소송의 대리인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광주전남지부’ 소속 변호사들이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전신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2009년 창립)은 지원단체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금덕 등 원고 5명은 소송 대리인 및 소송 지원단체인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과 아래와 같은 약정을 체결했습니다. 1. 위임인들은 위 사건과 관련하여 손해배상금, 위자료, 합의금 등 그 명칭을 불문하고 피고로부터 실제로 지급받은 돈 중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게 교부한다. 2. 위임인들은 수임인들이 피고로부터 직접 손해배상금 등을 지급 받은 다음 위 1항에서 정한 금액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에 동의한다. 3.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위임인들로부터 지급 받은 돈을 위 1항에서 정한 대로
[안내] 다큐멘터리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 개봉 (6.21)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터 시민유해발굴단에 관한 다큐멘터리 <206: 사라지지 않는>이 오는 6월 21일에 개봉합니다. 뜻있는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바랍니다. 스페셜 예고편 예고편
[강좌신청] ‘강제동원’ 회원·시민 특강 (5.24~6.14)
<수강 신청 바로가기> <강좌 Zoom 주소 안내> ▷수강신청을 하셔야 강좌 입장이 가능합니다. (6시30분부터 접속가능하며 강좌시작은 7시입니다.) ▶1강 강제동원, 역사적 연원-일제침략전쟁에 끌려간 조선청년들(김명환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https://us02web.zoom.us/j/83620651353 (회의 ID: 836 2065 1353) ▶2강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감춰진 비밀:사라진 강제노동 이야기(노기 카오리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https://us02web.zoom.us/j/88345715015 (회의 ID: 883 4571 5015) ▶3강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조선인 이야기(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https://us02web.zoom.us/j/82442063796 (회의 ID: 824 4206 3796) ▶4강 윤석열 정권의 대일굴욕외교와 동북아 평화(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https://us02web.zoom.us/j/83711681049 (회의 ID: 837 1168 1049)
[안내] 제43회 어린이 백범학교 (6.20~24)
※어린이백범학교 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