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알림

[책소개] 독도강치 멸종사

2016년 11월 30일 2285

  독도의 본디 주인은 강치다 독도의 본디 주인인 강치에게 헌정하는 멸종의 연대기이며, 인간의 역사에서 배제되고 있는 본디 주인에 대한 뒤늦은 예의이자 ‘기억투쟁’이기도 하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이 첨예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고,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은 변함없이 이어진다. 해양문명사가 주강현 박사는 그간의 독도문제를 바라보는 고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생태사관의 시각적 전환이 국제사회에 알려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독도의 본디 주인인 강치의 연대기를 추적하는 이 책은 일본이 ‘다케시마 영토론’의 주요 근거로 제시하는 독도강치잡이를 정반대로 해석한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강치잡이를 통한 독도경영은 사실상 반문명적인 범죄행위였음을. 적어도 수만 마리 이상 살아가던 환동해 최대의 강치 서식지에서 피비린내 나는 집단학살극이 벌어졌다. 환동해 복판에 솟아 있는 화산섬에서 집단서식하게 된 강치는 누대의 역사를 평화롭게 살아왔다. 그러나 에도시대 이래로 강치는 그물에 갇히고 총칼로 죽임을 당했다. 가죽은 벗겨지고 기름을 짜내어져 일본 본토로 실려 갔다. 얼마만큼의 강치가 집단학살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강치 멸종은 어쩌면 독도 문제의 또 다른 본질이다. 독도의 주인공은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바로 강치임을. 독도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 셋 첫째, 생태사관의 문제다. ‘다케시마 영토론’의 직접 근거로 에도와 메이지 시대 독도강치잡이 역사가 국제사회에서 선전된다. ‘동북아 해상영유권의 화약고’일 수도 있는 독도 문제를 오로지 국제해양법으로만 끌고 나감은 사태의 한 면만을 보는 것이다. 1905년 비밀리에 이루어졌다는 시마네 현의 독도 편입도 강치잡이와 연관이 있다. 기존 역사관을 뛰어넘어 세계관의 전환과

[알림] 2016 근현대사기념관 한국사강좌 – 역사를 바꾼 그날

2016년 10월 18일 1112

근현대사기념관 바로가기 https://www.mhmh.or.kr/

[성명] 밤새 했다는 고민이 기만과 꼼수인가 몸통은 박근혜다 즉각 퇴진하라

2016년 11월 29일 1087

밤새 했다는 고민이 기만과 꼼수인가 몸통은 박근혜다 즉각 퇴진하라 오늘 오후 대통령 3차 대국민담화문이 발표됐다. 스스로 담화문 첫머리에 말했던 것처럼, 결코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풀 수 없는 변명으로 가득했다. 밤을 지새우며 했다는 고민은 결국 또다시 국민에 대한 기만과 꼼수에 불과했다. 박근혜가 중대범죄 피의자라는 사실은 온국민이 알고 있다. 그것도 단순 가담자가 아닌 주범이자 공범이다. 그러나 오늘 담화에서 박근혜는 그 모든 범죄행위와 의혹들이 “공적인 사업”이었으며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실수 정도로 치부했다. 이전부터 유영하 변호사의 입을 통해 일관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측근의 일탈이라고 변명해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검찰조사조차 거부하면서 뻔뻔스럽게 특권을 요구하고 있는 작태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또한 오늘 담화에서 밝힌 거취에 대한 입장은 결국 지난 한 달 간 광장에서 백만, 이백만 촛불이 외치고 전국민적으로 요구했던 즉각퇴진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전국민적 퇴진여론이 불붙자 최근에는 친박계도 ‘질서 있는 퇴진’, ‘명예로운 퇴진’을 운운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측근실세는 물론 재벌들과 결탁해 국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범죄정권의 명예를 보장할 생각도 없으며 단 하루의 임기라도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명분으로 유지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오늘 담화는 정권에 대한 분노와 즉각퇴진을 외치는 국민의 함성을 전면 거부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결국 박근혜는 국회에 공을 넘기며 시간을 벌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얘기했지만,

[책소개]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

2016년 11월 29일 1433

“차라리 죽음이 부러웠다.” 강제 징용, 지금-여기의 이야기 2016년 6월 1일 미쓰비시[三菱]머트리얼(구 미쓰비시광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원된 중 국인 강제노동 피해자 3,765명에게 공식 사죄와 함께 1인당 10만 위안(약 1,800만 원)씩의 사실상의 보상금을 지급하는데 합의했다. 보상금 총액은 752억 원 정도로, 일본기업의 보상액으 로는 전후 최대 규모이다. 미쓰비시 머트리얼은 이에 앞서 2015년 7월 제2차 대전 당시 강제노역 피해를 입은 미군 포로들을 직접 찾아가 머리 숙여 사죄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3대 재벌 중의 하나인 미쓰비시 산하 회사에 동원된 조선인 징용 피해자만 약 10만여 명이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같은 시기, 같은 회사에서 똑같이 혹사당한 한국 피해자들에 관해서는 모르쇠하고 있다. ‘당시 조선은 일본과 한 나라였고, 일본 국민으로서 동원 됐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가 다르다’는 기막힌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징용도 서러운 처지에, 국적에 따라 목숨 값마저 차별받고 있는 씁쓸한 현실……광복 71년을 맞고 있는 한일 간 단면이다. 격정과 눈물로 강제 징용을 고발하다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소명출판, 2016)는 미쓰비시 탄광에 끌려가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탈출한 한 퇴직교사의 강제 징용 수기다. 전남일보가 광복 45주년을 맞아 공모한 일제 강 제 징용 수기 공모전에 당선된 입상작이자 피해자 본인이 직접 작성하여 더욱 귀한 글이다. 지은이인 이상업 어르신이 강제 징용되어 끌려간 것은 1943년 11월경으로, 그의 나이 16세였다. 당시 일제가 제정한 징용령에 의하면 만 17세 이상의 남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