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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내란 주모자 윤석열의 나팔수, 뉴라이트 인사들은 자진 사퇴하라!
“뉴라이트 기관장 자진 사퇴” 기자회견문 내란 주모자 윤석열의 나팔수, 뉴라이트 인사들은 자진 사퇴하라! 지난 14일 국회는 12.3 내란 수괴 윤석열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단만 남았지만 헌재가 면죄부를 줄 것으로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무장한 계엄군에 온몸으로 맞서 헌정질서를 지켜낸 것은 오직 국민이었음을 헌재도 잘 알 것이다. 계엄 당시 한밤중에 한달음에 달려와 국회를 지켰고 탄핵 가결까지 매일 집회를 이어온 분들도 국민 여러분이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내란 세력의 실체는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12.3 내란 세력을 군인, 경찰, 일부 국무위원에만 국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뒤 뉴라이트 세력이 역사와 교육 관련 기관장을 독점하면서, 사대매국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나팔수 역할에 앞장서온 죄상을 낱낱이 알고 있다.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찬양하는 이들의 행태는 헌법 전문에 명시된 독립 · 민주 · 평화통일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헌법적 ‘역사쿠데타’로 이는 군사반란을 넘어서는 정신사의 반란이었다.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홍범도 장군 등 독립영웅 흉상 철거 시도, 이승만 기념관 건립 추진, 영화 〈건국전쟁〉 지원, KBS 이승만 미화 다큐 상영, 백선엽 동상 설치, 독도조형물 철거, 뉴라이트 한국사교과서 출판,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묵인 등. 이 모든 역사부정 행위의 원천은 정권의 요소요소에 핵심으로 뿌리박고 암세포처럼 영향력을 넓혀가는 뉴라이트 세력임이 자명하다. 뉴라이트 사관에 입각한 윤석열의 친일 행보 결과는 참담한 지경이다.
[결의문] 헌법 유린, 내란 수괴 진실화해위원장 임명 무효다! 박선영은 즉각 나가라!
<결의문> 헌법 유린, 내란 수괴 진실화해위원장 임명 무효다! 박선영은 즉각 나가라! 지난 12월 3일 10시 45분 윤석열의 선포한 비상계엄은 내란이다. 천만다행으로 국민들이 계엄군을 막아서고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로 2시간만에 계엄 상황은 종료되었다. 전쟁과 독재정권에 의해 죽음 고문, 투옥 등으로 고통을 당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는 고통의 재현이었다. 이후에 국회 질의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는 계엄 준비, 당일 군과 경찰의 투입은 과거 독재정권이 행한 계엄 포고와 실행이 다르지 않았다. 이는 계엄법을 통해 국민을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가 법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내란, 군사반란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하야 하기를 바랬지만 끝끝내 이마저도 거부했다. 비상계엄 이후 국민들의 일상은 깨졌고,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는 12월 14일 탄핵으로 이어졌다.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던 중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보고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2시간의 비상계엄과 탄핵에 이르는 과정은 죽은 자가 산 자들을 구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과거가 현재의 우리를 돕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과거청산의 중요성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된다. 과거 전쟁과 독재정권 아래에서 국가가 저지른 폭력으로 죽음을 당하거나 고문, 사건 조작 등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국민적 화해를 통해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오마이뉴스] 계엄령하 대한제국 죽이기에 가담한 친일파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윤덕영 아베 신조(3188일)보다는 짧지만 당시로서는 최장수 총리 재임 기록(2720일)의 보유자였던 이토 히로부미가 피격된 뒤, 일제와 친일세력은 계엄령 상태에서 대한제국 죽이기에 착수했다. 이 계엄은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다. 그래서 대한제국은 일본 땅이 됐다. 그때 맹활약한 인물이 윤덕영(1873~1940)이다. 그의 기여도가 이완용에 뒤지지 않는다고 일본 정부는 평했다. 내각 상훈국이 1940년에 펴낸 <쇼와 15년 공문잡찬>은 윤덕영의 공적을 정리하면서 “위 사람은 조선 굴지의 명문가 출신”이라고 한 뒤 “한국 병합은 일면 이완용 후작의 활동에 의해 성사되었지만, 다른 한 측면은 윤 자작이 내부에서 활동한 결과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윤덕영의 숨은 공로가 이완용의 드러난 공로에 뒤지지 않는다고 봤다. 1910년 경술국치를 주도한 경술국적 윤덕영이 그런 활약을 펼친 데는 계엄령이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그해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이 강제되기 전에 한국통감부는 한국인들을 겁주고 억누를 목적으로 계엄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지금의 서울 용산이 가장 분주해졌다. 2021년에 <유관순 연구> 제26권 제2호가 실은 김종호 호서대 교수의 논문 ‘일제의 한국 침략과 국가책임’은 1910년 5월 30일 취임한 데라우치 마사타케 한국통감이 “통감유고(統監諭告)를 발하여 조선 전역에 계엄 태세를 발령하였다”라고 말한다. 논문에 따르면, 1910년판 ‘서울의 밤’ 당시의 계엄군은 이런 지침을 받았다. “기병 제2연대 본부병 중대를 용산으로 초치하고, 보병에 대해서는 총계 15개 중대를 모을 것.” “극비 중에 준비를 갖추라.” “각 부대의 이동 시각을 정확히
[기자회견]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발족 기자회견
☞ 다운로드: [보도자료] 1. 취지와 목적 12월 3일 밤, 윤석열은 헌법을 파괴하는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은 순식간에 유린당했고, 군인은 국회의원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군홧발로 국회와 선관위 등 헌법기관을 유린했습니다. 이는 중대한 헌법파괴 범죄이자 명백한 내란이며 윤석열은 내란수괴입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윤석열은 여전히 대통령직에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지난 12월 7일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허울뿐인 ‘질서있는 퇴진’을 내세우며 아무런 헌법적 권한이 없는 한동훈 당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통치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는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권자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되고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습니다. 윤석열은 아직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어 내란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7일 국회에 모인 100만 명의 시민들은 “내란수괴 윤석열을 탄핵하라”를 외쳤습니다. 즉각적인 직무정지를 통해 추가적인 헌법파괴 범죄를 막아야 합니다. 이제 윤석열은 더 이상 국민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내란수괴 윤석열과 그 일당을 즉각 체포하고 수사하여 엄중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민 주권을 실현해야 합니다. 이에 전국의 윤석열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사회대개혁을 촉구하는 여러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을 구성・발족했습니다. 2. 개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발족 기자회견> 일시 장소 : 12. 11. (수) 11:30 향린교회 2층 예배당 주최 :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프로그램 – 대표 발언(발족 취지) – 각계 발언 – 활동 목표, 방향 및 사업계획 발표 – 출범선언문 낭독 문의
[오마이뉴스] 합천-광주 시민들 ‘12.12 전두환 심판의 날’ 연다
생명의숲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 12일 ‘전두환 흔적 지우기 전국화’ 행동 전두환(1931~2021)씨 고향인 경남 합천에서 ‘12.12 전두환 심판의 날’을 내걸고 ‘전두환(일해) 공원 폐지’와 ‘전두환 흔적 지우기 전국화’의 행동이 벌어진다. 생명의숲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는 5.18기념재단과 함께 12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12.3 윤석열, 12.12 전두환 군사반란 심판의 날’을 진행한다고 10일 밝혔다. 합천군민운동본부가 벌였던 ‘전두환을 찬양하는 공원 폐지 및 관련 법률 제정 요청에 관한 청원’이 기준인 30일 내 5만 명을 넘겨 성사됐다. 11월 15일부터 시작됐던 국민청원은 12월 15일까지가 마감인데, 지난 8일 5만명을 넘었고, 10일 현재 7만4000명 이상이 동참했다. 국민청원에 동참한 사람들은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사법부의 유죄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서 기념사업과 기념물을 조성할 수 없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국민청원을 성사시켰던 시민들이 전두환‧노태우 주도의 신군부가 1979년에 일으켰던 ‘12.12 군사반란’ 날짜에 맞춰 합천에서 ‘전두환 심판’을 외치는 것이다. 군사반란으로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는 징역 17년형을 확정받았다. 이번 ‘전두환 심판의 날’에는 5.18기념재단, 5.18부상자회, 옛 전남도청 원형복원 지킴이 어머니,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범시민운동본부 등 단체가 함께한다. 참가자들은 먼저 합천읍에 있는 옛 생명의숲(일해공원)을 찾아 표지석을 살펴본다. 이어 이들은 합천군청을 찾아가 ‘전두환 기념식수 표지석 제거 상징의식(퍼포먼스)’을 하고, 경남작가회의 회장인 정선호 시인이 시를 낭송한다. 이 자리에서 박진우 5.18기념재단 사무처장과 김남영 합천군여성농민회원이 ‘일해공원 폐지’를 요구하는 회견문을 발표한다. 합천군민운동본부는 합천군수와 합천군의회 의장 면담을 요구했으나 불발되었다고 밝혔다.
[오마이뉴스] 계엄군으로 국회를 공격한 친일군인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원용덕 무장한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를 위협하는 모습을 처음 연출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과 그의 하수인인 친일 군인 원용덕이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 5월 25일 오전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들은 국회의원들의 국회 등원을 봉쇄했다. 전쟁 중이라 자가용을 이용할 수 없었던 의원 47명이 26일 아침에 통근버스를 타고 임시 의사당인 경상남도청을 향했다. 버스가 도청 정문을 통과할 때의 상황을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이 그곳에 미리 도착해 있었던 김문룡 경향신문사 기자다. 1981년 9월 20일 자 <조선일보>에 그의 목격담이 실렸다. “버스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정문을 통과하려 하자, 정복·정모에 무장한 헌병 10여 명이 앞을 가로막았다. 상관의 지시에 따라 불심검문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스에 타고 있던 야당 의원들은 이유 없이 헌병에 의한 검문에 응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헌병들의 검문 사유는 버스 안에 빨갱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김문룡 기자는 헌병들은 빨갱이를 잡겠다며 버스에 승차하려 하고 의원들은 버스 문을 잠근 채 헌병대에 저항하고, 길 가던 행인들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며 몰려드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런 상태로 시간이 흘러 정오경이 되자 더 황당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윽고 헌병대에서 보내온 견인차가 버스의 뒷범퍼를 추켜들고 끌고갔다. 끌려간 의원 중 임흥순(민국)·서범석(민국)·김의준(민우)·이용설(무소속)·이석기(원내자유) 의원 등은 국제공산당 혐의로 즉석에서 구속됐다.” 운전석 쪽을 들어 올리면 승객들이 의자에 머리를 기대기가 쉽지만, 뒷쪽을 들어 올리면 그게 다소 곤란해진다. 계엄군이 고약한 방식으로
[이데일리] 역사학계도 尹 비상계엄 사태 비판 “탄핵 적극 지지”
민족문제연구소·역사학회 등 60개 단체 공동 성명 “대통령 직무 정지 시급…가담자 조사·처벌도 요구”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역사학계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근현대사학회 등 60개 단체는 6일 공동 성명을 내고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를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중략> ———— <2024-12-06> 이데일리 ☞기사원문: 역사학계도 尹 비상계엄 사태 비판 “탄핵 적극 지지”
[성명] 우리는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
※관련기사 ☞이데일리: 역사학계도 尹 비상계엄 사태 비판 “탄핵 적극 지지” ☞노컷뉴스: 역사학자들 “윤석열은 ‘위험인물’…탄핵안 반드시 통과돼야”
[영상] 하나의 전쟁, 세 개의 기억 청일전쟁
지금부터 130년 전 동아시아 삼국의 운명을 결정짓고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던 청일전쟁 오늘날 전쟁의 당사자인 한국,중국,일본 이 삼국은 청일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이 영상은 경기문화재단의 ‘2024년 ‘경기도 일제잔재 청산 지원사업’의 지원금을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 “8·15 이후 지금까지 필화가 가장 많은 시대는 윤석열 정권”
[김종성의 히,스토리] <한국 현대 필화사 1> 펴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 블랙리스트 차별을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필화(筆禍)로 규정한다. 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의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그는 ‘글’로 인한 탄압뿐 아니라 ‘말’과 ‘행위’로 인한 탄압 역시 본질은 다 같다면서 “8·15 이후 지금까지 필화가 가장 많은 시대는 윤석열 정권”이라고 평한다. 문학평론가인 그는 지난달 25일 나온 <한국 현대 필화사 1>의 주요점을 브리핑하는 이 자리에서 필화를 ‘지배이데올로기에 맞선 말·글·행위에 가해진 국가폭력’으로 넓게 정의했다. 1941년생인 그는 붓이나 펜으로 맞서는 것이나 컴퓨터·유튜브·SNS 등으로 맞서는 것이나 본질은 다 같다고 강조한다. 2024년 지금의 현상 역시 굳이 컴퓨터화(禍) 등으로 표현할 필요 없이 필화의 개념에 넣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관점으로 83년 인생을 조망할 때 필화가 가장 극심한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게 그의 인식이다. 임 소장은 이번 책에서 그런 필화의 개념으로 한국 현대사를 재해석했다. 정치의식이 싹트던 10대 초중반에 진보당 조봉암을 관찰하면서 성장한 그는 시리즈 제1권인 이 책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집권기를 집중 분석했다. 출간 예정인 제2권과 제3권은 박정희 집권기와 그 이후를 다루게 된다. 그는 1950년대에 대논쟁을 유발한 정비석 장편소설 <자유부인>에도 필화의 불똥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국문과 교수의 부인인 오선영이 남편의 제자인 신춘호와 교제한 일을 소재로 하는 1954년의 이 작품에도 필화의 흔적이 묻어 있다고 말한다. <서울신문>에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출간된 <자유부인>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