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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일보] 광풍중, ‘내가 역사의 증인이다’ 오감으로 느끼는 역사 체험 실시
광풍중학교(학교장 황영은) 학생회 임원 22명은 지난 17일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의 아픈 기억과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그대로 간직한 역사박물관 두 곳을 방문하여 ‘친일’과 ‘독립운동’의 명암을 체험활동을 통해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이날은 1905년 을사늑약이 있었던 날이고 ‘순국 선열의 날’이어서 더 뜻깊었다. 첫 방문 장소로 학생들은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초를 당한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았다. 높게 솟은 붉은색 외벽 담장이 외부와의 단절을 실감케 했다. 학생들은 옥사의 내부 바닥과 벽면에 남겨진 당시 수감 되었던 독립지사들의 절절한 글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꼈다. 또한 감시와 통제를 위하여 격벽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간단한 운동을 하게 한 격벽장, 오직 조국의 독립을 소원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사형장과 시구문 앞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숙연함과 경건함이 묻어났다. 책에서만 보고 말로만 듣던 일제 강점기 독립지사들의 고초와 독립에 대한 숭고한 뜻 가슴에 새겼다. 다음으로는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와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 독립지사들의 항일 투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한 일제 강점기 전문 역사박물관인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해외동포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성금과 기증자료로 운영되는 곳으로, 올바른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학생들은 ‘ 내가 역사의 증인이다’ 활동을 통하여 일본이 부정하는 식민지 범죄의 실상의 증거들을 찾아보고, 친일 부역과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신흥무관학교 제6편 독립전쟁의 주역 독립군의 총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신흥무관학교 제6편 : 독립전쟁의주역 독립군의 총 ☞ 신흥무관학교 제5편 : 서간도 국치일의 풍경 ☞ 신흥무관학교 제4편 : 신흥무관학교 24시 ☞ 신흥무관학교 제3편 : 서간도는 어떤 곳일까 ☞ 신흥무관학교 제2편 : 망명로드 ☞ 신흥무관학교 제1편 : 신민회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오마이뉴스] 빼곡히 적은 위패 명단… “진주 민간인학살, 진정한 명예회복 호소”
진주유족회, 합동위령제 지내… 정연조 회장 “국가 범죄는 소멸시효 배제해야” 단상에 걸린 펼침막에는 300여 명의 위패 속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명단의 주인공은 71년 전 한국전쟁 전후 경남 진주 지역에서 국군 등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이다. (사)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회장 정연조)가 12일 오후 진주 문산실내체육관에서 6·25전쟁 71주년 진주지역합동위령제를 열었다. 진주유족회는 억울하게 희생 당한 원혼들의 해원과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올해로 13번째 합동위령제를 열었다고 밝혔다. 앞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1기)는 진주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하면서 위령사업을 권고한 바 있다. 이날 위령제는 전통제례에 이어 추모식으로 진행되었다. 현장에는 진주시, 진실화해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보내온 조화가 놓여 있기도 했다. 정연조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매년 7월에 추모제를 열어오다 코로나19 등 여러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득이 하게 오늘 올리게 되었다”고 인사했다. 유해발굴, 추모탑 건립 등을 강조한 정 회장은 “정치권은 여전히 이념 논쟁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자파의 이익이나 표와 인기만 의식하며 정책이나 대안, 방법의 제시보다는 서로를 음해하고 헐뜯는 것이 자신의 본분인양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고 일갈했다. 이어 “그러한 정치 상황 속에서 한국전쟁 전후, 그렇게 많은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덮으려 해왔다”며 “결국 모처럼 기회였던 1기 진실화해위 활동을 위축시켰고, 산적한 문제들을 남겨 노은 채 서둘러 문을 닫았다. 정치인들의 실상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과거사 문제는 정치의 대상이 아니다. 당연히 해결하고 나가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이며, 그렇게
[더팩트]”천안에 친일 청산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 기념관 건립하자”
천안시의회 ‘기념관 건립 정책토론회….”공적 성과 99%는 천안 거주 10년간 이뤄져” [더팩트 | 천안=김경동 기자] 대표적인 친일 문제 연구가인 임종국 선생의 천안 유택을 매입해 기념관으로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0일 천안시의회는 ‘친일청산의 선구자 임종국 기념관 건립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갖고 임종국 기념관 건립을 위한 여론 조성에 나섰다. 임종국 선생은 1929년 경남 창녕 출신으로 1966년 ‘친일문학론’을 출간하며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80년 충남 천안으로 이주해 ‘정신대 실록’, ‘일제침략과 친일파’, ‘밤의 일제 침략사’, ‘일제하의 사상 탄압’, ‘친일논설 선집’ 등을 집필했다. 특히 자신의 친일 연구를 총망라한 ‘친일파 총서’발간을 계획하고 저술하다 1989년 지병인 폐기종으로 사망했다. 이러한 임종국 선생의 뜻은 2009년 ‘친일인명사전’ 출간으로 완성되며 친일 청산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다. 이에 천안지역에서는 임 선생이 친일 연구를 본격적으로 벌인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업적을 기려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2016년 11월 천안 신부문화공원내 임종국 선생 조형물 제막으로 이어졌으며, 최근에는 임 선생이 거주했던 구성동 유택을 매입해 기념관으로 건립해야 한다는 뜻이 모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임종국 선생의 공적인 성과 99%는 천안에서 거주한 10년 동안 이뤄진 것”이라며 “이미 타 지자체에서 임종국 선생에 대한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천안이야말로 임종국 선생을 기념할 다양한 콘텐츠가 존재하는 만큼 천안시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용길 천안역사문화연구회 회장은 “임종국 선생 기념관 건립을 위해
[YTN] “친일청산이 현재 대한민국 모든 문제의 근본해결”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문학평론가)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3:00~14:00) ■ 진행 : 김혜민 PD ■ 방송일 : 2021년 11월 08일 (월요일) ■ 대담 : 임헌영 문학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의 이슈&피플] “친일청산이 현재 대한민국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소장(문화평론가)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식민지 시대 해방과 분단, 독재와 항쟁, 급격한 경제적 성장과 불평등한 경제적 상황들. 작은 대한민국에 100년도 안되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이 역설 가운데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인생 하나하나가 사실 영화고 노래인데요, 오늘은 한 분의 인생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좀 훑어보려고 합니다. 임헌영 문화평론가인데요, 제가 잠깐 평론가님의 사연을 좀 소개해 볼게요. 1966년 문화평론가로 등단하신 이후, 사회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 잡지 <다리> 를 비롯해 여러 잡지의 편집주간으로 일했습니다. 1974년 긴급조치 시기에 문인간첩단사건으로 투옥했고, 1979년부터 83년까지 남민전 사건으로 복역했습니다. 이후 98년 복권되어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계십니다. 임헌영 선생님 모시겠습니다. 선생님. 어서오세요. ◆ 임헌영 문학평론가(이하 임헌영)> 예. 반갑습니다. 초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혜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청취자 분들께 인사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 임헌영> 예. 제가 그 명색이 문학평론가인데 평론이라는 것은 문학 장르 중에서 제일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시인이 되려다 안 되고, 소설가가 되려다 실패한 사람이 이제
[보도자료] 제14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령자로 양지혜 박사 선정
[보도자료] [다운로드] l [자료집] [다운로드] 제14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령자로 양지혜 박사 선정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이사장 함세웅)은 제14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령자로 한국교원대학교 한국근대교육사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양지혜 박사를 선정했다고 17일 밝혔다. 〈강만길연구지원금〉은 신진 연구자들이 진보적 학술성과를 심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2008년 제정되었으며,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개척자 강만길 선생이 사재를 출연해 마련한 ‘강만길연구기금’을 재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수여 대상은 최근 1년간의 국내외 한국근현대사 박사학위 취득자이며 지원액은 2천만 원이다. 강만길 선생은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고쳐 쓴 한국근대사』 『고쳐 쓴 한국현대사』 『한국민족운동사론』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 등 수많은 연구업적을 냈으며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을 화두로 현실참여에 앞장서 왔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재임 때인 1980년 신군부세력에 의해 해직당해 4년간 고초를 겪기도 하였으며, 상지대 총장을 역임한 뒤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과거사 청산에도 크게 기여했다. 올해 수령자인 양지혜 씨는 2020년 2월 한양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일제하 일본질소비료(주)의 흥남 건설과 지역사회」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지도교수 : 박찬승). 심사위원회(위원장 김성보 연세대 교수)는 선정 사유로 “이 논문이 일본질소 흥남공장을 소재로 공업사, 지역사, 도시사 등의 시각에서 다면적 접근을 시도하여 공업 정책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환경 문제를 아우르면서 근대의 개발문제와 식민지의 민족문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는 점을 들었다. 또 기업, 정책, 지역사회의 동향 등 다방면에 걸쳐 공식자료는 물론 관계자들의 일기·회고록·증언 등을 발굴·분석하여 입체적이고 객관적인 논지를 전개한 점도 이 논문의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수여식은 10월 19일(금) 오후 4시 서울시
[한겨레] 억울과 참담이 쌓이는 국회 프락치 사건
[기획]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6) 국회 프락치 사건 친일청산 앞장선 제헌국회 소장파 항일투사 탄압한 헌병대에 체포돼 고문 끝에 ‘남로당의 프락치’ 혐의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거기에 모든 인간의 종말이 있으니 살아 있는 사람은 이를 마음에 새길 일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얼굴은 애처로워도 마음은 편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이들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고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잔칫집에 있다.” (코헬렛 7,2-4) 모두가 공감하는 선현들의 체험과 가르침입니다. 일상의 교훈이지만 성서 작가가 성경에 기록하면 이 말은 “하느님의 말씀”이 됩니다. “사람을 잘 보면 하느님이 보인다”는 신학적 정언과 같이, 역사를 회상하고 성찰하면 아름다운 기도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상처와 아픔, 고난과 죽음이 깃든 역사의 현장을 찾아 조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함께 울고 고뇌하고 위로하며 새롭게 기쁨과 희망을 찾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20세기에 가톨릭 교회가 깨닫고 고백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첫 대목의 고백과 선언입니다. “오늘날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는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입니다.” 성경은 히브리인들의 역사입니다. 선조들의 삶을 기리며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 안에서 성찰하고 후대를 위하여 기록한 이 문서는 신앙 고백이자 역사 증언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1934~1935년 동인지 <성서조선>에 연재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에서 나름대로 과감한 시도를 꾀했습니다. 물론 히브리인들의 성서 역사를
[톡톡뉴스] 광주 명진고, ‘학생독립운동 기념 역사 전시회’ 화제
“독립운동의 역사 헛되지 않게 교육현장서 지도” [톡톡뉴스] 명진고 학생역사동아리 HIM 학생들이 지난 2~9일 일주일 동안 본교 1층에서 광주시교육청의 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의 주관 하에 ‘제92주년 학생독립운동 기념 역사 전시회’를 개최했다. 14일 명진고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일제 당국의 식민지 차별 교육과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에 저항하기 위해 학생들이 중심이 돼 1929년 11월 광주에서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시위를 진행한 3·1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로 벌어진 항일운동이었음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했다. 또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가 학생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주변국에 의해 끊임없이 왜곡되고 있는 세태에서 자주 국권의 중요성에 대한 역사의식 정립 차원에서 기획했다. 역사 전시회는 독립운동사를 알 수 있는 패널과 사진 및 유물이 전시됐으며, 평화의 소녀상을 포함한 독립운동가의 실제 모습을 본뜬 모형을 설치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포토존을 마련했다. 기타 독립운동사를 쉽게 알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전시해 학생들의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우당 이회영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 세력까지 시대 순으로 알기 쉽게 전시해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역사교육이 이뤄졌다. 학생 역사 동아리 학생들은 교우들에게 청산되지 못한 일제의 식민사관으로 인해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독립군들의 행적과 성과, 명예가 갈수록 자취를 잃어가는 현실에 대해 알리는 캠페인 행사를 벌였다. 이외에 이번 역사 전시회는 2020 광주 비엔날레
[연합뉴스] 정연태 교수·김종성 역사저술가, 제15회 임종국상 수상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는 제15회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로 정연태 가톨릭대 교수를, 언론부문 수상자로 김종성 씨를 각각 선정했다고 8일 밝혔다. 정 교수는 일제강점기 농업정책사 전공자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식민지농정을 연구해 성과를 쌓아왔다. 사업회 심사위원회는 정 교수의 저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중등학교 입학부터 취업 이후까지’를 수상 저서로 선정하면서 “담론이 아닌 구체적 사례분석을 통해 민족차별의 실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 식민지시대상 연구에 선도적인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정 교수가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시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도 높이 샀다. 역사저술가 김종성 씨는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에서 ‘김종성의 히, 스토리’,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등을 연재해왔다. 저서로는 ‘대논쟁 한국사’, ‘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등이 있다. 심사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갈등과 현안을 역사적 성찰의 차원에서 진단함으로써 시민들의 역사인식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며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임종국(1929∼1989) 선생은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된 이후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는 등 친일문제 연구와 과거사 청산에 앞장선 인물이다. 시상식은 이달 12일 오후 7시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송은경 기자 norae@yna.co.kr <2021-11-08> 연합뉴스 ☞기사원문: 정연태 교수·김종성 역사저술가, 제15회 임종국상 수상 ※관련기사 ☞한겨레: 정연태 교수·김종성 역사저술가 ‘임종국상’ 수상 ☞경향신문: 정연태 교수·김종성 역사저술가, 제15회 ‘임종국상’ 수상 ☞오마이뉴스: 15회 임종국상 언론부문에 김종성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스토마토: 제15회 ‘임종국상’에 정연태 교수·김종성 씨
[오마이뉴스] 윤보선 생가에 얽힌 진실, 친일 안내문 설치는 당연하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마을 주민들의 ‘연좌제’ 주장이 맞지 않는 이유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의 윤보선 생가 등에 친일 행적 안내문을 설치하는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현지 주민들이 “헌법은 연좌제를 금지한다”며 “독립운동을 한 대통령에게 친일파로 연좌하는 거냐?”며 반발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2016년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제35권 제4호에 게재된 김일환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연구실장의 논문 ‘아산 신항리 근대문화 사적지의 현황조사 연구’는 윤보선 생가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윤치소가 1920년대 지은 집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한다. 윤치소(1871~1944)는 윤보선(1897~1990)의 아버지다. 충남도의회 친일잔재청산특위 자문위원들이 안내문 설치를 건의한 것은 윤보선 때문이 아니라 윤치소 때문이다. 이 건의가 나온 것은 아산시가 추진하는 윤보선 대통령 기념관 등의 근대문화마을 조성사업에 충남 재정이 투입되고 있고, 이 마을에서 윤치소를 비롯한 친일파 4명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윤치소의 행적 대한제국시대에 경성신문을 창간하고 중추원 의관(議官, 의원)이 된 윤치소는 광장주식회사 감사역, 대한천일은행 감사역, 광업주식회사 사장 등을 지낸 뒤 일제강점기에 조선상업은행 감사, 분원자기주식회사 감사, 경성직뉴주식회사 사장, 동양서원 경영자, 광업주식회사 전무취체역, 조선교육회 이사, 경성부 학교평의원 등을 역임했다. 그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아들 윤보선의 성장기에 대한 서술에서도 나타난다. 정윤재·심지연·김영수가 공저한 <장면·윤보선·박정희>는 윤보선의 유년기에 관해 “대대로 벼슬을 해온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그는 부러운 것을 모르고 유년 시절을 보냈다”며 “서울에도 집이 있어 유년 시절 그는 형편에 따라 아산과 서울을 번갈아 오가며 살았고, 집에 독선생을 따로 두고 한문을 배울 정도로 여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