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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뉴스파고]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등 시민단체, “천박한 역사의식 드러낸 박상돈 시장은 사과하라”

2021년 11월 10일 708

“천안시장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에 개탄을 금할 수 없어” [뉴스파고=한광수 기자]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를 비롯한 천안의 시민단체들이 조병옥 동상철거 및 동학농민혁명세성산전투와 관련한 천안시의회에서의 박상돈 천안시장 발언을 두고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10일 오전 10시 천안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0월 28일 김선태 시의원의 시정질의에 대한 박상돈 시장의 답변은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천안역사문화연구회, 동학농민혁명천안기념사업회가 추진해 온 천안지역의 역사문화발전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을 폄훼하고, 이를 진영논리, 좌우 이념대립, 일부 활동가들의 주장으로 왜곡하는 등 역사적 사실조차 부정하는 태도로 일관하여 천박한 역사의식을 드러냈다”면서 이같이 요구했다. 이날 천안역사문화연구회 이용길 회장은 “천안시민으로 살면서 천안시장을 규탄하고자 하니 마음이 불편하다”면서도 “하지만 도지사님한테는 상을 받고 시장님한테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서 시민들께 알려드리고자 기자회견을 하게 됐다”고 기자회견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이 회장은 성명서 발표를 통해 “민족문제연구소천안지회가 그동안 수 십차례 민원을 제기하고 기자회견 등의 노력 끝에 결국 ‘그날의 함성’ 조형물 중에서 조병옥 동상을 철거했는데 이에 대해 박상돈 시장은 ‘단순한 작가의 실수’로 치부하고, ‘이런 문제제기가 진영논리이며 좌우 진영의 미정립된 역사이고, 미 군정의 경무부장으로서 일시적인 일이었다’고 제주4.3학살과 거창 양민학살의 책임자 조병옥의 죄과를 옹호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무용 시장 재임 중인 2009년)당시에 작가(박유섭)는 이대로 진행하면 후에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학예사(이영미)가 ‘위의 지시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 사실은 그동안의 기록에 분명하게 나와 있으며, 이는 전임 시장의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신흥무관학교 제5편 서간도 국치일의 풍경

2021년 11월 9일 685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신흥무관학교 제5편 : 서간도 국치일의 풍경 ☞ 신흥무관학교 제4편 : 신흥무관학교 24시 ☞ 신흥무관학교 제3편 : 서간도는 어떤 곳일까 ☞ 신흥무관학교 제2편 : 망명로드 ☞ 신흥무관학교 제1편 : 신민회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인천일보] 민족문제연구소, 김구 선생의 탈출로와 해방 후 인천 방문로 현장 답사

2021년 11월 10일 1013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지부장·김재용)는 지난 6일 오전 중구 동인천역과 신포동 일대에서 김구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김구 선생의 탈출로와 해방 후 인천 방문로 현장 답사’를 진행했다. 이날 답사는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장과 이희환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가 각각 해설을 맡았다. 오전 10시 동인천역 앞에서 출발한 답사단은 전동고개-내리교회-인천감리서터-청년 김구거리를 거쳐 인천축항1부두 등을 차례로 돌아봤다. 백범은 인천과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청년 시절 김창수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백범은 1896년 스물 한 살의 나이로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인 스치다 조스케를 죽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된 백범은 1896년 8월 초 인천감리서로 이감됐다. 백범의 아버지 김순영 옹과 어머니 곽낙원 여사도 인천으로 거처를 옮겨와 감리서 근처 객주에서 일을 하며 아들의 옥바라지를 했다.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고종의 사형집행 중지명령으로 목숨을 건진 그는 1898년 3월 탈옥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부친 김순영 옹이 아들 대신 1년간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백범은 이후 1911년 안악사건과 105인 사건으로 다시 구속돼 15년 형을 선고받고 인천감리서로 또다시 이감됐다. 이 때 백범은 인천항 축항공사 노역에 동원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백범일지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인천 축항공사에서 지게에 흙을 잔뜩 짊어지고 허리에는 철쇄로써 다른 최소와 연락당한 채로 높은 층계에 운반케 되었으나 피로에 찌들어 전신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적고 있다. 1915년 가석방 된 김구는 상해로 넘어가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KBS 뉴스] [오늘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2009. 11. 8.)

2021년 11월 11일 386

2009년 11월 8일 오늘은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 날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 전화 : 02-781-123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뉴스홈페이지 : https://goo.gl/4bWbkG <2021-11-08> KBS 뉴스 ☞기사원문: [오늘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2009. 11. 8.)

[보도자료] 제15회 임종국상 시상식 (11.12)

2021년 11월 8일 2104

[다운로드] [보도자료] 제15회 ‘임종국상’ 시상식 학술부문       정연태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 언론부문       김종성 역사저술가·자유언론인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임종국 선생(1929∼1989)은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고 있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하여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으며, 그 외에도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회장 장병화)가 제정한 〈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실천적 삶을 오늘의 현실 속에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 200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나, 2008년과 2009년도는 사무국을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편찬에 주력해야 했던 사정으로 시상이 잠시 중지되었으며, 올해가 15회째이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11건, 사회·언론 부문 11건 등 총 22건이 올라왔으며, 지난 9월 27일의 예심을 거쳐 10월 28일 열린 심사위원회 본심에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정연태 가톨릭대 교수를, 언론부문에는 저널리스트 김종성 씨를 제15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최종 선정하였다.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 박찬승 한양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 한상권 덕성여대 명예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정연태 가톨릭대 교수는, 일제강점기 농업정책사 전공자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식민지농정에 대한 주목할 만한 성과들을 꾸준히 내놓아 왔다. 나아가

[시사경제신문] 은평구, 백두대간 종주 최초의 외국인 ‘로저’ 작품 기증받아

2021년 11월 11일 440

한반도 평화기원 위한 사진 전시작품 ‘백두산 천지’ 전달 로저 세퍼드 작가, “백두대간 통해 통일 인식 제고하길” 은평구가 백두대간을 종주한 최초의 외국인인 뉴질랜드 출신 로저 셰퍼드 사진작가의 ‘백두산 천지’ 사진 작품을 기증받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구는 구청 1층 로비에서 ‘한반도 평화 기원 – 일맥상통 백두대간’ 사진전을 이달 12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사진전 전시 기간에 맞춰 진행한 ‘백두산 천지’ 사진작품 기증식에서 작가 로저 셰퍼드는 “남북한의 백두대간 전체 구간을 종주하면서 직접 촬영한 ‘백두산 천지’는 분명 구민들에게 남북한 백두대간이 하나의 국토임을 느끼게 하고 평화와 통일에 대해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로저 셰퍼드는 지난 2007년 90여일에 걸쳐 남측의 백두대간을 종주했고, 2011년 북한의 협조를 얻어 총 12차례에 걸쳐 북녘 백두대간 등반에 성공했다. 2015년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사진전도 열었다. 이후 한국에서 여러 차례 사진전을 열면서 화제를 모았다. 구에서 개최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기원 – 일맥상통 백두대간’ 사진전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치르는 순회전 형식으로 총 3회 열렸다. 앞서 지난 6월 혁신파크 상상청에서 시작해 7~8월 삼각산금암미술관에 이어 현재 은평구청 1층 로비에서 전시 중이다. 지난 여름 전시를 실시한 삼각산금암미술관은 북한산 한문화체험특구에 위치한 곳으로 평화통일의 공감대를 충분히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장점으로 높은 호응을 받기도 했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평화와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힘써주시는 로저 셰퍼드 작가를 비롯해 사단법인

[오마이뉴스] 16개월 만에 재개된 수요시위… 일장기 흔든 『반일종족주의』 저자

2021년 11월 3일 1549

[현장] 1516차 수요시위, 보수단체 선점으로 연합뉴스 앞에서 진행 ‘위드코로나’ 후 수요시위가 정확히 16개월 만에 다시 오프라인 집회로 전환됐다. 그러나 현장에는 일장기를 흔드는 보수단체 회원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이 이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3일 ‘반일동상 진상규명 공대위’ 등 보수단체 회원들은 서울 종로구 중학동 평화의 소녀상 부근 연합뉴스 앞에서 열린 1516차 정기 수요시위에 모여들어 일장기와 성조기, 태극기 등을 흔들며 “위안부 성노예설은 거짓이다”, “위안부 동상 철거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섰다. 그 자리에는 <반일종족주의> 공동저자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있었다. <반일종족주의> 저자가 일장기 흔든 이유 그는 <오마이뉴스>의 ‘수요시위 현장에서 일장기를 흔드는 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무례한 일 아니냐’라는 질문에 대해 “다수가 옳다고 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 않냐”며 “수요시위가 옳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일장기를 흔드는 시위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수요시위에 참석한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극우주의자들이) 먹고살려고 저런 행위를 하는 것”이라면서 “안타까운 건 저들의 뻔뻔함이 어느새 수요시위에 와서 히노마루(일장기)를 흔드는 단계까지 왔다. 갈 때까지 갔다”고 비판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도 일장기를 흔든 이 위원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라고 되묻기도 했다. 수요시위는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에 앞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회원들이 그해 1월 8일 정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연 이후 매주 수요일 12시에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앞서 1991년 8월 14일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6. 15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집_전북지부 후원회원과 함께”

2021년 11월 9일 661

☞ (11.02) ‘내역사’ 시즌 6: 15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집_전북지부 후원회원과 함께” ☞ (10.26)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4부 “4월 혁명의 노래” ☞ (10.19)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3부 “노래에 담긴 전쟁과 상흔” 2편 ☞ (10.12)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3부 “노래에 담긴 전쟁과 상흔” 1편 ☞ (10.5)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2부 “해방과 분단의 노래” ☞ (9.28)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_1부 “식민지시대 금지곡” ☞ (9.14) ‘내역사’ 시즌 6: 13화: “쌀로 보는 근현대사 2부” ☞ (9.07) ‘내역사’ 시즌 6: 13화: “쌀로 보는 근현대사 1부” ☞ (8.11) ‘내역사’ 시즌 6: 12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별기획_만화 친일파 열전_박시백 화백과 함께” ☞ (8.11) ‘내역사’ 시즌 6: 11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사 순국100주기 특집 _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2부” ☞ (8.10) ‘내역사’ 시즌 6: 11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사 순국100주기 특집 _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1부” ☞ (7.06) ‘내역사’ 시즌 6: 10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집_대전지부 후원회원들과 함께” ☞ (6.29) ‘내역사’ 시즌 6: 9화: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 (6.22) ‘내역사’ 시즌 6: 8화: “비핵화 프레임을 넘어 종전선언으로(2) ☞ (6.15) ‘내역사’ 시즌 6: 8화: “비핵화 프레임을 넘어 종전선언으로(1) ☞ (6.14) ‘내역사’ 시즌

[미디어오늘] 장지연 언론상에 김순덕 동아일보 대기자

2021년 11월 4일 855

2012년 수상자 이후로 9년 만 장지연 친일 논란에 휩싸이기도 김순덕(59) 동아일보 대기자가 지난 1일 제24회 위암 장지연 언론상을 수상했다. 위암 장지연기념회(회장 조강환)는 장지연 선생 서거 100주기 맞아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학술토론회(‘장지연 명(名) 논설과 사실 보도 토론회’)와 언론상 시상식을 열었다. 위암 장지연 언론상은 9년 만이다. 2012년 제23회 수상자는 김세형 매일경제 고문이었다. 을사늑약 후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싣는 등 독립운동가로 알려졌던 장지연 선생은 2000년대 들어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환영 하세가와 총독’이라는 한시를 싣는 등 그에 관한 사료를 보면 독립유공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을 수록했다. 2011년 4월 정부는 1962년에 수여했던 장지연의 건국훈장을 박탈했다. 언론재단은 1999년부터 15년 동안 위암 장지연기념회와 장지연상을 공동 주최하고 매해 4500여만 원의 재정을 지원했지만 친일 논란이 제기된 2005년 지원을 중단했다. 반면 김진경 동아일보 지식서비스센터장 겸 사료연구실장은 지난 9월 관훈저널 가을호에서 장지연을 둘러싼 논쟁과 논란을 정리했다. 김 실장은 장지연의 저서 ‘일사유사’를 번역·출간한 김석회 인하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와 제자들의 주장을 빌려 “장지연 저작 전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더욱이 친일 행위 일색으로 비끄러매어 재단하는 것은 온당한 이해의 관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편 수상자인 김순덕 대기자는 보수진영을 대변해온 언론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3·1절 기념식에서 친일 잔재로 ‘빨갱이 낙인’을 꼽고 청산을 선언하자 그는 칼럼을 통해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슬픈 죽음

2021년 11월 4일 428

고인의 마지막은 외롭고 서글펐다. 지난달 23일 숨을 거뒀는데 유족은 빈소조차 차리지 못했다. 돈이 없었다. 차렸다 한들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친척 몇 분이 조문을 왔지만 눈시울을 붉히며 슬퍼할 뿐 주변을 서성이다 하릴없이 발길을 돌렸다. 시신은 병원 영안실 차가운 냉동고에 3일간 보관됐다. 찾아오는 이도, 그리고 이들이 함께 슬픔을 나눌 공간도 없는 쓸쓸한 이별이었다. 발인도 쉽지 않았다. 운구할 사람이 없었다. 보다 못한 상조회사 직원들이 관을 짊어지고서야 시신은 영안실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경기도 용인 모처에 안장됐다. 고 박태정 여사의 이야기다.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안중근 의사의 조카며느리라고 하면 좀 알아볼까. 박 여사의 시아버지는 안 의사의 친동생인 안정근 지사다. 안 지사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은 독립운동가로 안 의사와 함께 삼흥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양성했다. 1918년 길림에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9인의 대표 중 한 명이었던 안 지사는 친형이 순국하자 연해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황해도 신천에서 만석꾼으로 유명한 처가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셈이다. 안 지사의 아들이자 박 여사의 남편인 안진생씨는 선박 제조 기술을 배워 조국 독립에 이바지하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이탈리아로 유학해 한국 최초로 공학박사 학위를 딴 엘리트였다. 서울대 출신인 박 여사와 결혼하고 1960년대부터 외교관으로 일했다. 시련은 80년에 시작됐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당시 외교안보연구원 본부 대사였던 안씨는 전두환 정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