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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낮엔 친일파 땅 찾고 밤엔 학업 매진

2009년 9월 9일 303

낮엔 친일파 땅 찾고 밤엔 학업 매진(서울신문, 09.08.18)

“친일파 후손 잘사는 충청” 개탄

2009년 9월 9일 286

“친일파 후손 잘사는 충청” 개탄(충청일보, 09.08.26)

정부, 고 조문기선생에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2008년 2월 10일 513

    민족문제연구소   ▲ 정부가 고인에게 추서한 국민훈장 모란장     관련기사 ‘부민관 폭파의거’ 조문기 선생 11일 `겨레장’(연합뉴스, 08.02.10)‘부민관 폭파의거’ 故 조문기선생 모란장 추서… 11일 겨레장(국민일보, 08.02.10)‘부민관 폭파의거’ 주역 3인방(연합뉴스, 08.02.10)‘마지막 義士’ 故 조문기 이사장, 11일 ‘겨레장’(프레시안, 08.02.10)친일파 청산 끝내 다 못보고… (경향신문, 08.02.10)독립투사 조문기 선생, 11일 겨레장(뉴시스, 08.02.10)‘살아 있는 역사’이던 문기 아저씨를 떠나 보내며(오마이뉴스, 08.02.10)‘부민관 폭파 의거’ 고 조문기 선생, 11일 겨레장(오마이뉴스, 08.02.10)故 조문기 선생 장례 ‘겨레장’으로(서울경제신문, 08.02.10)     ▲ 빈소에 헌화한 후 훈장을 근정하는 김정기 차관보     정부는 지난 5일 타계한 고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의 민족사 정립과 독립정신 선양에 끼친 공로를 높이 평가하고, 10일 교육인적자원부 김정기 차관보를 빈소로 보내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앞서 9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김인회 시민사회 비서관을 보내 조의를 표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보도자료] “민족의 사표 고 조문기선생, 역사 속으로”

2008년 2월 9일 765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내려받기       조국 독립과 민족사 광정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고 조문기 선생의 영결식이 2월 11일(월) 오전 10시 서울 성공회 대성당 성프란시스홀에서 겨레장으로 엄수된다. 겨레장은 고 문익환 목사 장례 이후 두 번째이다. 시민사회와 독립운동계, 학계, 정계를 망라한 각계 원로 중진으로 구성된 “독립투사 고 조문기선생 겨레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7시 대학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하고, 생전 고인이 이사장으로 몸담았던 민족문제연구소를 들른 뒤 성공회 대성당으로 이동, 영결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영결식을 마친 후에 부민관폭파의거 현장인 서울시의회 본관(중구 태평로)에서 다시 노제를 지낸 후 11시 서울을 출발하여 수원 자택을 경유해 오후 3시 대전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에서 안장식을 거행한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영심 여사, 딸 조정화, 사위 김석화, 외손녀 슬아, 슬샘, 양자 조강협이 있다. 조문기 선생은 누구인가   조문기 선생은 1945년 7월 24일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부민관 폭파 의거”의 주역이다. 1944년 소년의 몸으로 일본강관주식회사에서 30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참여한 ‘조선인 멸시 규탄 파업’을 주도했다. 선생은 1945년 1월 조국으로 돌아와 항일비밀결사 단체인 ‘대한애국청년당(약칭 애청)’을 조직하고 친일파 거두인 박춘금과 총독부 주요 인사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박춘금의 ‘대의당’ 집회 광고를 보고 7월 24일 친일거두가 총집결한 아세아민족분격대회장인 부민관 폭파 의거를 결행했다. 이 의거는 가혹한 전시체제하에서 숨죽여 지내던 민중들에게 저항정신을 일깨웠으며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굳건히

일제의 ‘병원 죽이기’, 그 진실은?

2009년 9월 9일 281

일제의 ‘병원 죽이기’, 그 진실은?(프레시안, 09.09.09)

“친일인명사전은 식민지의식 벗어나는 좋은 안내자”

2009년 9월 9일 548

『야생초 편지』 저자 황대권의 편지 전문 민족문제연구소 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대표 이종수 www.artizen.or.kr) 주관으로 9월 2일 오후 7시 30분부터 약 1시간 30동안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친일인명사전발간기념콘서트 <기억과 기록 그리고 미래>가 열렸다. 이날 콘서트에서는『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 씨가 편지 형식의 축사를 통해 “친일인명사전이 나오기까지 더디고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이제라도 발간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반일하자고 만든 것이 아닌 우리민족의 부끄러운 의식인 식민지 의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에 이 책이 좋은 안내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씨는 서울대 농업교육학과를 졸업 후, 뉴욕 뉴스쿨 포 소셜 리서치(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전두환 정권이조작한 이른 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3년 2개월을 복역한 후 1998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된 대표적인 양심수 중 한명이었다. 현재는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으로 생명평화 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전남 영광에서 생태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 아래는 황대권 씨가 콘서트 당일 낭독한 자작 편지 전문이다. 선아, 오늘 이 자리는 부끄러운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리란다. 오늘 나는 네게, 나는 어떻게 이 부끄러운 역사를 살아왔는가를 말해주려 이 자리에 섰단다. 나는 1955년생이니까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꼭 7년 뒤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리고 아무런 의문 없이 이 나라의 공교육 12년과 대학교육 4년을 다 마치었으니 그야말로 순수한 대한민국 청년으로 자란 셈이지. 그런 내게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놀라운

[공고]독립투사 고(故) 조문기선생 겨레장

-0001년 11월 30일 554

    민족문제연구소   [공고]   독립투사 고(故) 조문기선생 겨레장  조국 독립과 민족사 광정(匡正)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조문기(趙文紀) 선생께서 2008년 2월 5일 오후 5시 향년 82세로 별세하셨습니다.     빈   소 : 서울대 병원(대학로) 장례식장 1호발  인 : 2008년 2월 11일(월) 오전 7시영결식 : 2008년 2월 11일(월) 오전 10시 성공회 본당안장식 : 2008년 2월 11일(월) 오후 3시 대전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3묘역   유  족 : 부인 장영심, 딸 조정화, 사위 김석화, 외손녀 슬아 슬샘, 양자 조강협호  상 : 조택기 류종하   연락처 : 빈소   (02) 2072-2091~2092           민족문제연구소 (02) 969-0226 / 누리집 www.minjok.or.kr     고인(故人)의 약력 1926         경기 화성 출생 1944          일본강관주식회사 파업 주도, 지명 수배 1945          대한애국청년당 결성 1945.7.24  부민관 폭파 의거 1948          단정반대 옥고 1951        <황금좌><고려> 등에서 극단 활동 1959          ‘이승만 대통령 암살, 정부전복음모 조작사건’으로 투옥 1982           건국포장 1983-1988   광복회 독립정신 홍보위원 1990            건국훈장 애국장 1991-1999   광복회 경기도지부 지부장  1999            (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2001        (현)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이사장       장례위원회 고문 : 강만길 강희남 구중서 고광돈 고은 고종훈 곽태영 구양근 권오헌 김국주 김상근  김우전  김자동  김창국  김채룡김태영 김호일 리영희 박문 박상유 박영석 박용길 박정기 박중기 박현서 박형규  백기완  백낙청  서영훈  석근영성대경 손장섭 송기인 송월주 신경림 신용하 염무웅 원동석

고 조문기 이사장님 생전의 모습

-0001년 11월 30일 681

    민족문제연구소       고 조문기 이사장님 생전의 모습                                                                                      

日징용 공탁금 정부상대 첫 소송

2009년 9월 8일 301

日징용 공탁금 정부상대 첫 소송(서울신문, 09.09.05)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정부지원금 비현실적”…訴제기

2009년 9월 8일 293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정부지원금 비현실적”…訴제기(뉴시스, 09.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