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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놈 총에 죽게 되었으니 그것이 한이로다-오마이뉴스(08.01.22)
왜놈 총에 죽게 되었으니 그것이 한이로다
약탈문화재, 이대로 둘 수 없다
이종호(과학국가박사) 과거는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현실 속에 다시 나타난다. 무단 정복, 강제 합병 등 제국주의의 식민통치 중에 일어났던 수많은 폐해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피식민국의 상황 변화에 따라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약탈 문화재이다.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가 모두 약탈된 것은 아니지만 강대국이 식민지나 약소국에서 방대한 유산을 약탈해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약탈 문화재는 제국주의 학자들에 의해 지식의 축적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되면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은 다시 식민지 또는 약소국을 지배하기 위한 무기로 이용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강대국이 약탈한 문화재가 지배자들에게 통치기술을 제공한 후에도 그들이 구가했던 과거의 영광을 지속케 해준다는 점이다. <약탈국의 오만> 문화재 약탈국은 피약탈국들이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해도 교묘한 논리로 이를 회피한다. 그들은 약탈 문화재를 본국으로 가져가 이를 과학적으로 연구를 하고 또 최선의 방법으로 보존해 왔으므로 오히려 피식민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면서 과(過)보다는 공(功)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특히 문화 발전의 대리인격인 박물관 등에서는 유물에 대한 지속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지식생산을 독려해 왔을 뿐만 아니라 문화재는 어떤 한 나라가 만들었더라도 그 나라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 예술에 대한 현대인들의 찬탄은 영국 및 프랑스 등이 그리스 문화재를 가져가서 연구해 이룩한 학문적 성과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그들에 따르면 이러한
“역사교과서 저자 동의없이 임의 수정 위법”
“역사교과서 저자 동의없이 임의 수정 위법”(한국일보, 09.09.02)
교과부·재계·뉴라이트 ‘합작품’
교과부·재계·뉴라이트 ‘합작품’(한겨레신문, 09.09.02)
끝나지 않은 ‘독도’․’죽도(다케시마)’ 분쟁; 일본, 정밀지도 제작-해방일보(08.01.19)
끝나지 않은 ‘독도’․’죽도(다케시마)’ 분쟁; 일본, 정밀지도 제작 (중국 해방일보, 1.19, 6면, 康娟) 韓日간 ‘독도’, ‘죽도(다케시마)’ 분쟁은 수십 년동안 지속해 왔고, 양측 모두 이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얼마 전, 일본 국토지리원은 독도(일본명 다케시마)의 상세한 형상을 2만5000분의 1 축적의 정밀지도로 제작했다.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2만5000분의 1 지도는 한 나라에서 사용되는 모든 지도의 바탕이 되는 기본지도이며, 일본은 한국이 실질적으로 독도를 통제하고 있어 기본지도 제작에 필요한 공중촬영과 현지측량이 불가능해 자국의 지구관측용 위성 ‘다이치’와 미국의 상업 위성 관측 자료를 활용했다고 보도했다.보도에 의하면, 이 지도에 표기된 서도(西岛)와 동도(东岛)의 고도는 각각 해발168m와 97m고, 복잡한 해안선과 등고선까지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화물운송 부두와 인공 구조물은 ‘불법 구조물’로 간주, 일절 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한국은 독도가 동해(일본명 일본해) 중앙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동서 2개 섬과 주변의 암초 32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면적은 0.186평방km고 두 섬 사이에는 폭 150m, 길이 330m의 터널이 놓여져 있다고 밝혔다.한일 양국이 이 섬의 귀속문제로 분쟁을 일으킨 지 오래됐다. 현재 한국은 실질적으로 이 도서를 통제하고 있으며 섬에 등대와 간이 부두를 건설하고 주둔 경찰을 파견했다. 일본은 1954년 이후 매년 한국 정부에 외교 항의서한을 보내 이 섬이 일본 고유영토로 한국이 이 섬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재확인했다. 양측의 입장이 확고하고 대립이 첨예하며 어느 누구도 영토문제에서
한국 차기대통령 “사죄 요구하지 않아도 성숙한 외교 할 수 있다”-아사히신문(08.01.18)
한국 차기대통령 “사죄 요구하지 않아도 성숙한 외교 할 수 있다” (일본 아사히, 1.18, 7면 중톱, 다카기, 서울發) 이명박 한국 차기대통령은 17일, 서울에서 해외언론들과 회견하고 한일의 역사문제에 대해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해 (한국에 대해) 사죄나 반성을 하라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지금의 일본은 그러한 요구를 하지 않아도 논의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한 외교가 가능하다”고 말해, 노무현정부하에서 정체된 한일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였다.이 차기대통령은 “일본은 한때 형식적인 사죄와 반성을 해서 한국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문제가 반복되었다”고 한 뒤에, “한일관계는 보다 미래지향으로 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일정상 간의 셔틀외교에 대해서도 후쿠다 총리와 재개에 합의했다며 다시금 정례화할 생각을 보였다.북한에 의한 일본인납치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에게는 중요한 문제”라며 조속한 해결에 이해를 보이는 한편, 한국인 납치문제의 존재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이러한 인도적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향을 보였다. 이 차기대통령은 2월 25일의 대통령 취임식에 대해 “공식적인 연락은 없었지만 북이 축하사절단을 보낸다면 환영하겠다”고 말했다.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는 “비핵화가 늦어지고 있으나 인내심을 가지고 대처하겠다. 6자회담 참가국과의 협력 체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한편, “핵포기가 북의 정권에도 주민에게도 기여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설득하겠다”고 표명. 핵포기에 대한 노력을 조건으로 북한에 경제협력을 실시해 나갈 생각을 보였다.통일부를 외교통상부에 흡수시키는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이 차기대통령은 “차기정권에서의 남북 교류확대와 통일을 염두에 두고 개편했다”며 남북관계의 경시는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김한종 교수 “정치적 고려로 교과서 수정 다시는 없어야”
김한종 교수 “정치적 고려로 교과서 수정 다시는 없어야”(한겨레신문, 09.09.02)
법원 “수정된 역사교과서 발행·판매 중단하라”
법원 “수정된 역사교과서 발행·판매 중단하라”(SBS, 09.09.02)
시후(西湖) 가의 “한국 독립운동 성지”-문화교류(08.01)
시후(西湖) 가의 “한국 독립운동 성지” (중국 문화교류, 1월호, 요약번역) 매일 아침 항저우(杭州) 시후(西湖) 가를 유유자적하게 거니는 관광객들 가운데 호수 가에 모여서 있는 나지막한 옛집들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이며, 75년 전 이곳 ‘후볜촌(湖边村)’ 23호 옛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어 보인다.2007년 11월의 마지막 날, 이곳은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장소가 되었다. 초겨울의 햇살과 따사로운 땅의 기운이 얼룩이 진 오래된 벽과 문에 흩뿌려지고 붉은 레드카펫이 갑작스럽게 그 중 두 집 앞에 펼쳐지자 져장(浙江)성과 항저우시 지도자들과 한중 양국의 우호인사들, 학자들이 연이어 왔고 지나가던 행인들과 관광객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협소하고 낡은 후볜촌으로 몰려들어 물 한 방울 셀 틈 없이 에워싼 채 바라보고 있었다.그 순간, 이곳에서는 성대하면서도 간결한 행사가 열렸는데, 왕궈핑(王国平) 중국 공산당 항저우시 서기와 김신 백범기념사업회 회장이 나란히 손을 잡고 레드카펫 위로 올라선 뒤 푸른 벽돌, 칠흑같이 어두운 대문에 꽃이 새겨진 한 민가로 들어섰다. 알고 보니 이 볼품없는 나지막한 옛집이 뜻밖에도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로, 오늘 이곳에서 열리는 행사가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의 개막식이었다. 이로써 상하이, 충칭(重庆), 쟈싱(嘉兴)에 이어 한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또 하나의 ‘일제침략 저항, 민족독립 쟁취’의 성지가 생겨난 것이다.져장성 외판 부처장인 루안지에(阮洁) 여사의 안내를 따라 이 평범한 2층 건물은 우리를 70여 년 전 전쟁의 세월로 데려다 주었으며 우리에게 “한국의 조상들이 조국독립을
일본 국토지리원, 독도 2만5천분의 1 정밀지도 제작-요미우리신문(08.01.17)
일본 국토지리원, 독도 2만5천분의 1 정밀지도 제작 (일본 요미우리 1.17석간, 1면) 일본 국토지리원은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시마네현의 독도(다케시마)의 2만 5천분의 1 지형도를 처음으로 제작했다. 2만 5천분의 1 지도는 도로나 관광지 등 모든 지도의 기초가 되는 기본도이다. 이로써 북방영토를 제외하고 일본 전국의 기본도가 정비됐다.지금까지 독도는 한국이 무력점거하고 있어 기본도 제작의 원칙이 되는 항공사진촬영과 현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이 때문에 정밀도가 낮은 위성사진 데이터를 기초로 제작된 20만분의 1 지도밖에 없었다.일본 국토지리원은 당초 전 세계의 기본도 제작을 주목적으로 한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의 육지지역 관측위성 ‘다이치’만으로 지도제작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높이에 관한 정보에 오차가 커, 높이에 관한 정보는 미국의 상업 위성데이터를 이용했다. 독도를 구성하는 서도(西島)와 동도(東島)의 표고를 각각 168미터, 97미터로 처음으로 표시했고 복잡한 해안선이나 고등선, 급사면의 ‘암벽’ 등 정밀한 지형을 재현시켰다. 한국이 설치한 접안시설이나 건물은 불법구조물로서 지도에 기재하지 않았다.독도의 지도제작은 2004년 시마네현 오키섬 1정3촌이 합병된 것을 계기로 주변지도의 경신과 함께 이루어져 작년 12월에 발표됐다. 이 때 동 지역 어민들이 사용하는 섬의 명칭인 남도(男島), 여도(女島)에서 서도, 동도로 변경됐다. 현지지역에서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만들어졌다”며 기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5천분의 1 지도가 판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