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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이 대통령 독도 둘러싼 문부과학성 방침 ‘엄중한 대응’ 지시-아사히신문(08.05.19)

2008년 5월 20일 354

이 대통령 독도 둘러싼 문부과학성 방침 ‘엄중한 대응’ 지시(일본 아사히, 5.19, 2면, 마키노, 서울發)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개정학습지도요강의 해설서에 한국과 영유권을 둘러싸고 다툼이 있는 독도에 대해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명기할 방침을 굳힌 문제와 관련,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사실일 경우에는 엄중하게 대응하도록” 한국외교통상부에 지시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19일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일본대사를 외교통상부로 불러 전했다.한국정부의 설명에 의하면 유 외교통상부장관은 “보도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고유영토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침해하는 시도이다. 일본은 즉각 수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시게이에 대사는 “향후 방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장관이 표명한 입장을 즉각 일본정부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문부성, 중학교 지도요령 해설서 ‘독도는 일본령’ 명기 방침-마이니치신문(08.05.19)

2008년 5월 20일 333

일본 문부성, 중학교 지도요령 해설서 ‘독도는 일본령’ 명기 방침(일본 마이니치, 5.19, 26면 중톱) 한국과 영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있는 독도에 대해, 문부과학성은 중학교의 신 학습지도요령(2012년도 완전실시)의 해설서에 ‘일본 고유의 영토’라 명기할 방침을 굳혔다. 해설서는 학습지도요강과는 달리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교과서 회사는 해설서를 기준으로 교과서를 편집하고 있어, 학습 현장의 지도에서도 큰 영향을 미칠 듯하다.해설서는 지도요강 개정에 맞춰 문과성이 편집한다. 초․중․고의 각 교과 별로 작성하여 지도요강 내용을 보충한다. 중학교 분은 7월까지 발표할 예정.이제까지의 중학교 사회과 지도요강이나 해설서에는 북방영토에 대해 언급한 기술은 있었지만 한일관계에 대한 배려 등에서 독도와 관련된 기술은 없었다. 이 때문에 교과서회사의 대응에는 차이가 있었다.독도의 기술에 대해서는 2005년,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과상(당시)이 “지도요강에 명기해야 한다”고 국회에서 답변. 문과성은 검토를 거듭해왔으나 신 지도요강안의 공표는 올해 2월로, 한국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시기 등과 겹치는 점도 있어 지도요강에 기술하는 것을 보류해 왔다고 한다.

몰래 빼돌린 일본인 소유 토지 첫 발견

2009년 8월 14일 354

몰래 빼돌린 일본인 소유 토지 첫 발견(ytn, 09.08.13)

‘MB 독도발언 진실 밝히겠다’ 日신문 상대 소송전

2009년 8월 13일 374

‘MB 독도발언 진실 밝히겠다’ 日신문 상대 소송전(뉴시스, 09.08.13)

한국 각 정당, 일본 해설서 ‘독도’ 명기를 비판-도쿄신문(08.05.19)

2008년 5월 20일 320

한국 각 정당, 일본 해설서 ‘독도’ 명기를 비판(일본 도쿄, 5.19, 7면, 후쿠다, 서울發) 독도를 일본고유의 영토로서 중학교사회지도요강 해설서에 명기하는 문부과학성의 방침결정과 관련 한국의 각 정당은 18일 일제히 비판담화를 발표했다.여당한나라당은 “모처럼 열린 한일신시대가 왜곡된다면 신뢰구축과 미래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하고 “일본정부에 올바른 역사관과 미래지향적 자세를 요구한다”고 했다. 한편 야당은 비판의 화살을 이명박 대통령의 대일외교자세에 맞추었다. 통합민주당은 “애매한 역사인식이 일본의 도발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한반도나 대만 前 BC급 전범 보상안 의원 입법-아사히신문(08.05.18)

2008년 5월 20일 364

한반도나 대만 前 BC급 전범 보상안 의원 입법(일본 아사히, 5.18, 34면 톱) 처음으로 국회에‘일본인’으로서 처벌을 받았는데도 전후에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 온 한반도나 대만 출신의 前 BC급 전범. 아무런 보상도 없었던 그들에게 특별급부금을 지급하기 위한 의원입법안이 이번 국회에 처음으로 제출된다. 법정에 호소하여 패소한 후에도 이를 계속해온 관계자의 활동에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법안은 민주당의 이즈미 켄타 중의원의원(33) 등이 제출을 검토하고 있다. 한반도나 대만 출신의 전 BC급 전범이나 유족에게, ‘인도적 정신에 근거하여’ 일인당 300만 엔을 지급하는 것이 중심내용.일본인 전 BC급 전범이나 유족에게는 은급이나 원호법에 따른 급부금이 지급되었으나, 정부는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타 국적 전범 및 유족은 대상에서 제외해 왔다. 한국 및 조선인 전 BC급 전범자의 모임인 동진회의 이학래 회장(83) 등이 국가에 보상과 사죄를 호소해 왔다.이즈미 의원이 이학래 씨와 처음으로 만난 것은 2003년. 1장의 전단지가 눈에 띄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일본군 유골 수집에 참여한 적은 있었지만 그와 같은 존재는 몰랐었다. ‘국회는 정면으로 대응한 적이 없었다.’ 며 당파를 넘어 찬동자를 모으고 싶다고 한다.이학래 씨는 17세였던 1942년 여름에 한반도에서 징용되어 타이의 포로수용소에서 감시원을 맡았다. 의식주도 약품도 부족한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전후, 포로를 학대한 혐의로 현장감시원들이 연합국의 군사재판에 소추되어 이학래 씨도 사형판결을 받았다. 감형되어 도쿄의 스가모 형무소에서 석방된 것은 패전한 지 11년 후. 구제책도 없어

친일재산조사위, 1617억원 토지 국가귀속…軍警 등 53명 추가조사

2009년 8월 13일 365

친일재산조사위, 1617억원 토지 국가귀속…軍警 등 53명 추가조사(뉴시스, 09.08.13)

‘간도반환 소송가능시한 3주밖에 안남아“ 재미동포 피맺힌 절규

2009년 8월 13일 372

‘간도반환 소송가능시한 3주밖에 안남아“ 재미동포 피맺힌 절규(뉴시스, 09.08.13)

한국에서 교과서 대폭 수정방침, ‘역사’ 재고 움직임-도쿄신문(08.05.16)

2008년 5월 20일 337

한국에서 교과서 대폭 수정방침, ‘역사’ 재고 움직임 (일본 도쿄, 5.16, 6면, 후쿠다 서울發) 한국정부는 15일 사회변화에 맞춰 근현대사 등의 교과서를 예년보다 대폭 수정해 채택할 방침을 밝혔다. 10년만의 보수정부 탄생에 동반된 움직임으로 역사인식에 관한 부분이 포함될 것으로 보여 논의를 부를 것 같다.정부는 6월 중순까지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모아 수정계획을 작성. 12월에 새로운 교과서가 발행된다. 동아일보에 의하면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14일 “지금의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은 너무 좌측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발언, 진보정부시절의 역사교과서에 의문을 나타냈다.역사교육을 둘러싸고 보수계열의 전문가 그룹이 3월 일본의 식민지시절을 “근대문명을 학습, 실천함으로서 근대국가를 만드는 능력을 축척했다”며 어느 정도 평가를 한 ‘한국근현대사’를 출판했었다.

유엔인권이사회, 일본에 사형제도 폐지 및 ‘위안부’ 피해 여성 지원 촉구-로이터(08.05.15)

2008년 5월 20일 354

유엔인권이사회, 일본에 사형제도 폐지 및 ‘위안부’ 피해 여성 지원 촉구(Japan Urged End Death Penalty, Aid “Comfort Women”/미국 New York Times-영국 Reuters, 5.15, 요약번역) 유엔인권이사회 내 일본 지지자들 및 비판가들은 14일 일본에 사형제도 폐지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이에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와 후회를 표명하며 ‘성실하게’ 이 문제에 임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한편, 국민 여론을 이유로 사형제도는 폐지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위안부 문제’에 대한 비판은 한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으로부터 나왔다.북한은 이것이 ‘인도(人道)에 반한 죄’라며 일본이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희생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밝혔다.한국은 비난의 수위를 약간 낮춰 최근 몇 년간 유엔인권이사회가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좀 더 포괄적으로 다룰 것을 요구한데 대해 “진지하게 응할 것”을 주문했다.지난 해 미국 의회와 캐나다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일본은 1993년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강제 동원한데 정부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1995년 보상금을 제공하기 위해 기금을 만들었다.그러나 많은 이들은 일본 정부가 직접 보상해야 한다며 이 돈을 받길 거부했다. 일본 국수주의 단체들은 성노예는 없었으며 이 여성들이 매춘부였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