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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경현 위령비 건립에 대한 우리의 입장
민족문제연구소 육군특별공격대원 탁경현과 사천 출신 태평양전쟁 희생자의 위령비인 ‘귀향기원비’가 일본 여배우인 구로다 후쿠미 씨의 노력으로 경상남도 사천군 서포면 하수종말처리장 일원에 건립되어 2008년 5월 10일 제막식을 거행하게 되었다.탁경현은 일본군의 기록에 의하면 경남 사천 출신으로 교토약학 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육군비행학교에서 견습사관으로 교육을 받은 후 육군항공부대로 배속되어 출격명령을 하달받고, 당시 24세의 나이로 출격, 1945년 5월 11일 오키나와 해상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탁경현은 철저한 황민화교육하에서 강요된 ‘지원’에 의해 동원되었으며, 거부할 수 없는 출격명령에 몸부림치다 젊은 나이에 비극적 삶을 마감하였다.그러나 탁경현은 황민화교육과 침략전쟁의 희생자인 한편, 무고한 오키나와현민이나 연합군의 관점에서는 가해자인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관련기사 ‘가미카제 특공대원 위령비’ 결국 철거(오마이뉴스, 08.05.16)‘가미카제 위령비’ 앞에 선 일본 여배우의 눈물(오마이뉴스, 08.05.10)경남 사천 시민단체 “가미카제 위령비 절대안돼!(연합뉴스, 08.05.10) “사천시장이 ‘가미카제’ 위령비 제막식 중단 밝혀”(오마이뉴스, 08.05.08)진주.사천 시민단체, 친일인물 기념 “안돼”(연합뉴스, 08.05.06)‘가미카제’ 전사자 위령비 한국에 세우다니(오마이뉴스, 08.05.05)관광공사, 가미카제 위령비 관광자원 활용(연합뉴스, 08.03.24)사천에 가미카제대원 추모비..日여배우(연합뉴스, 07.09.27) 우리는 일본인 구로다 후쿠미 씨가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탁경현과 사천 출신의 희생자를 위해 위령비를 건립하여 ‘전쟁의 비극과 평화의 존엄함을 차세대에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또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탁경현의 유족이 망자를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침략전쟁의 동조자 또는 협력자로서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 했던 고통스런 지난 세월에 대해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2008 민족문제연구소 여름 수련회
민족문제연구소 우리 연구소 여름 수련회가 5월 24일(토)~25일(일) 1박 2일 일정으로 경북 경산시에서 열립니다.올해 여름수련회는 대구지부 주관으로 진행됩니다. 8월 말로 다가온 친일인명사전의 성공적인 출간과 보급을 위해 회원들의 결의를 모으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튿날에는 6.25 발발 직후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현장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해방 직후 일제 잔재 청산의 실패가 민간인학살로 이어진 아픈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 때 : 2008년 5월 24일(토)∼25일(일) 1박 2일(24일 오후 6시까지 도착 바랍니다)▶ 곳 : 세종청소년수련원 (http://www.sejongyouth.co.kr)▶ 회비 : 어른 3만원 / 학생 2만 5천원 (단, 어린이는 회비 없음)▶ 오시는 길(찾아오시는 길 문의 : 053-851-9111,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25번지 / 수련원 누리집을 꼭 참고하십시오) ▶ 주요일정 24일(토)18:00-19:30 _ 집결, 숙소 배정, 저녁 식사19:30-20:30 _ 소장 인사, 지부장 환영사, 사무국 인사, 회원 소개, 모범지부 시상20:30-20:40 _ 휴식20:40-21:10 _ “친일인명사전, 이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21:10-21:20 _ 휴식21:20-24:00 _ 우리문화 한마당 겸 뒤풀이 25일(일) 08:00-09:00 _ 아침 식사09:00-09:30 _ 짐 정리, 기념 촬영09:30-10:00 _ 코발트 광산 학살지 이동 10:00-11:00 _ 코발트 광산 학살지 참배 후 해산 ▶ 경산코발트광산 학살지 위치(파티마재활요양병원 주차장으로 오시면 됩니다(경북 경산시 평산동 591-2번지). ▶ 경산코발트광산 학살이란?http://www.genocide.or.kr/database/data_02.asp?bcode=2&ccode=83 “민간인학살의 뿌리는 일제 잔재”한국전쟁 전후에 저질러진 민간인학살의 뿌리는 지난 36년간의 일본제국주의
駐러 초대 공사 이범진열사 기념사업 ‘스톱’
駐러 초대 공사 이범진열사 기념사업 ‘스톱’(연합뉴스, 09.08.10)
“유관순 역은 한지민, 안중근 역은 최수종”
“유관순 역은 한지민, 안중근 역은 최수종”(연합뉴스, 09.08.11)
임헌영 “MB의 ‘용서’, 상당한 충격 있을 것”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재훈 기자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자료사진) ⓒ2008 데일리서프라이즈 최수은 기자 “외교에서 포커(poker)를 할 때 자기 패를 공개해버린 셈인데 그게 과연 실용주의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을까.”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29일 “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 친일문제는 국민화합 차원에서 공과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라는 발언을 두고)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30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4776명의 명단을 공개한 것과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의 같은 날 발언에 대해 경제, 외교, 국민정서 등 세 가지 측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 소장은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를 통해 “역대 우리나라 국가원수로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용서라는 수(手)를 처음 써서 아마 상당히 충격이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뗐다. 뒤이어 임 소장은 “이명박 정권이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 말(용서)을 먼저 써버려서, 말하자면 외교에서 포커를 할 때 자기 패를 공개해버린 셈인데 그게 과연 실용주의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을까”라고 의문부호를 날린 뒤 “그것으로서 우리 국가이익에 얼마나 돌아올까라는 점에서 고찰해야 될 것 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어 임 소장은 “오늘의 일본 집권세력들이 우리나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은 용서가 아니다. 아마 상당히 모독적으로 들을 것”이라면서 “외교적인 의사를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일외교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에 무게감을 실은 대목이다. 또한 임 소장은 “우리 국민정서와 한일관계의
“과거에 대한 올바른 성찰과 반성이 중요”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오마이뉴스 윤창빈 기자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 윤창빈 임헌영 평생을 ‘자유인’으로 문학평론가와 민족문제연구소장 등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재야인사로 살아온 임헌영(67) 선생을 지난 4월 10일 언론재단 회의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남북통일의 문제, 한국 언론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한 견해와 과거사 청산 문제 및 친일인명사전 발행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임헌영 선생은 41년 경북 의성 출생으로 65년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기자와 월간 <다리> 주필 등으로 언론계에 재직했고, 74년과 79년 유신정권에 의해 투옥되는 등 고초를 당했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중앙대 국어국문과 겸임교수, 세계한민족작가연합 상임대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 선생님은 평생을 친일 및 민족 문제 연구와 통일 사업에 전념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관심의 배경은 무엇이고 최근 근황은 어떠신지요? "저는 평생 생계를 위한 안정되고 고정된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자유인’으로 살아왔습니다. 본업은 문학평론가라는 직함으로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고, 주로 재야 시민운동단체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지금 주력하고 있는 일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올해 8월 29일 국치일에 발간 예정인 ‘친일인명사전’ 작업과 지난 2월에 새로 발족한 ‘세계한민족작가연합’의 상임대표로 전 세계 1500여 동포문학인들을 포괄하는 한민족 문학의 이론적 모색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941년 경북 의성 출생인 저는 아홉 살 때 6·25전쟁을 맞았습니다. 해방공간과 전쟁을 통해 우리 가족은 엄청난 비극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46년 ‘대구 10·1사건’과 50년 전쟁 이후 ‘보도연맹’
아소 日 총리, 15일 전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 안해
아소 日 총리, 15일 전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 안해(뉴시스, 09.08.11)
다시 8.15 맞는 위안부 국제집회
<연합시론> 다시 8.15 맞는 위안부 국제집회(연합뉴스, 09.08.11)
“안익태-조두남-이원수-최승희 명단 추가친일인명사전 인명편 출간은 시작에 불과” /오마이뉴스“민족사의 정통성을 바로 잡는 일” /통일뉴스
▲조세열민족문제연구소사무총장은28일오후친일인명사전편찬과관련해”조사할자료의양이너무방대해진행될때마다수렁에빠져드는느낌이었다”고고백했다. 오마이뉴스 이경태 기자 ▲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28일 오후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관련해 "조사할 자료의 양이 너무 방대해 진행될 때마다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 이경태 친일인명사전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 가곡 ‘가고파’, ‘목련화’ 등을 작곡한 김동진,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 아동문학가 이원수, 시인이자 작사자인 윤해영, 무용 분야에서는 조택원, 최승희…. 재일조선인 권일, 만주에서 활동한 윤상필이나 윤익선 등이 포함된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친일 인사 4800명의 명단 발표 하루 전날인 28일 오후에 만난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의 말이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묻어있었다. 조 사무총장만이 아니라 민족문제연구소의 모두가 밤을 샌 듯 했다. 그러나 발표 하루 전인 만큼 사무실 안은 긴장감과 촉박함이 머무르고 있었다. 조 사무총장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29일 발표할 친일인명사전의 자구를 수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렵사리 자리를 마련해 그와 1시간 여 2차 명단발표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의미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안익태·최승희·김동진·조두남·이원수 등 2차 친일명단에 수록" –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구성된 이래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애초 5년 정도 계획이었는데? "사업계획이 방대했다. 지난 2001년 12월에 편찬위원회가 발족되고 2002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이 본격화됐으니깐 약 7년 동안이다. 모두들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리고 계속해서 기간이 연장되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도 이렇게 방대한 작업일 줄 몰랐다. 해나가면서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우선 1차 사료도 방대했고, 지방이나 해외에서 활동한 친일파의 경우에는 자료도
‘친일’을 반성하고 책임지려 한 사람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행위에 대한 참회와 반성, 그 실제 사례를 모았습니다.<편집자 주> 당사자들의 고백과 참회 학교장 이하 전 중등학교 직원 “조선 학도들과 사회에 사죄” 의미로 총사직 결의15일 「중등교육자대회」에서 조선임시중등교육자협회를 결성하고 앞으로 새 조선의 귀중한 역군을 길러내는데 중등교육자들의 대동단결을 꾀하여 헌신노력할 것을 맹서하였거니와 과거의 일본제국주의의 교육제도 아래서 교단생활을 하여 온 그 가슴 괴로운 심정을 삼천만 민중 앞에 사죄하고 또 그 책임을 져야 할 처지를 밝히고자 각 학교장 이하 전중등학교직원은 19일 총사직을 결행하기로 의결이 일치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정세에 비추어 교장 이외의 직원만은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어 그 문교당국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각자 직역에서 종사하기로 되었다. 다음에 그 성명을 소개하기로 한다. 聲明… 민족해방으로부터 인민본위의 신흥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성을 가진 것은 교육이므로 교육자 책임은 중대함을 느끼는 바이다. … 그러나 8月 15日 이전의 우리 교육계를 반성하여 볼 때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의 탄압과 착취아래 부득이 주구적인 교육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가장 양심적이며 산 실천과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교육자들로서 마땅히 교육자적 책임을 져야하겠다. 하야 총의를 결의코 朝鮮中等學校敎育者의 총사직을 이행하여서 사랑하는 조선학도들과 사회에 사죄하기로 하였다. 단 학교장 이외의 교직원은 생도의 현상을 감하여 정부가 수립되어 문교당국의 지시가 있을때까지 각기 지역에 종사하겠으니 인민제위의 감시와 편달이 있기를 바란다. 右 성명함. 1945年 9月 15日 朝鮮臨時敎育協會 (매일신보 1945.9.15) 현석호(玄錫虎)충남 광공부장 “고급관리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