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친일’ 장지연, 도로명 바꾸고 표지판도 없애

2008년 6월 5일 558

‘을사늑약’ 체결을 통박한 ‘시일야방성대곡’으로 널리 알려진 장지연은 1916년 하세가와 총독의 부임을 환영하는 한시를 지어 매일신보에 발표하는 등 뚜렷한 친일행적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으며 이에 따라 친일인명사전 수록이 확정적인 인물이다. 경남 마산시가 결국 여론에 굴복하여 그의 이름을 딴 도로명을 바꾸고 표지판을 철거하는 등 후속조치를 단행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어 다른 지자체의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을사늑약’ 체결을 통박한 ‘시일야방성대곡’으로 널리 알려진 장지연은 1916년 하세가와 총독의 부임을 환영하는 한시를 지어 매일신보에 발표하는 등 뚜렷한 친일행적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으며 이에 따라 친일인명사전 수록이 확정적인 인물이다. 경남 마산시가 결국 여론에 굴복하여 그의 이름을 딴 도로명을 바꾸고 표지판을 철거하는 등 후속조치를 단행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어 다른 지자체의 결정에도 영향을 끼칠지 귀추가 주목된다.<편집자 주>     ‘친일’ 장지연, 도로명 바꾸고 표지판도 없애(오마이뉴스, 08.06.04)     관련기사 조두남·장지연 친일명단 포함(CNBNEWS, 08.04.30)"친일 장지연·이원수·조두남 등 기념사업 중단해야"(오마이뉴스, 08.04.30)자칫 ‘친일파 공원’ 될라?(오마이뉴스, 07.08.24)시일야방성대곡’ 장지연도 ‘친일’(미디어오늘, 05.08.24)       

사할린 아들은 없지만 고향마을에 위문잔치 열려

2009년 5월 13일 669

안산시 어버이날 한마당 잔치… 사할린에 남은 자녀들과 생이별 아픔도 아래 글은 <맛깔스런 우리 문화 속풀이 31가지>의 저자인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회원이 쓴 행사 후기로 인터넷신문 ‘대자보’에도 게재한 것이다. – 엮은이 김영조 ▲ 행사에서 주최자와 내빈이 함께 어르신들에게 어머님은혜를 부른다.    ⓒ 김영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한 많은 남화태(남사할린섬) 징용 왔네   철막 장벽은 높아만 가고정겨운 고향길 막연하다”  위 노래는 러시아 사할린 동포 1세들이 즐겨 부르는 “사할린 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사할린은 원래 러시아가 죄수들을 보내 정착하도록 했던 땅이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이 섬을 “슬픔의 틈새”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사할린은 슬픔과 고통의 땅이다.   이 사할린에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1939년부터 많은 조선 사람을 징용으로 끌어갔다. 탄광이나 군수공장에서 혹사당하던 이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해방을 맞았어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후손들을 포함 4만여 명이 무국적자로 한을 삭이며 살았다.  ▲ 안산시 고향마을에서 열린 어버이날 한마당 나눔잔치에 참가한 사할린 동포 어르신들     ⓒ 김영조    ▲ 행사에 참석한 내빈들(오른쪽부터 박주원 안산시장, 김동규 안산시의원, 안산시 고향마을 영주귀국자 노인회 고창남 회장, 하나 건너 민족문제연구소 이윤옥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 김영조 이에 한국 정부는 1992년부터 영주귀국 사업을 벌이고, 그 가운데 경기도 안산시 고향마을에 동포 900여 명이 정착해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동포는 평균 나이 76살인데 자녀를 사할린에 놓고 온 생이별을 한 사람들이어서 명절이나 어버이날만

‘친일’ 장지연, 도로명 바꾸고 표지판도 없애

2008년 6월 5일 744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을사늑약’ 체결을 통박한 ‘시일야방성대곡’으로 널리 알려진 장지연은 1916년 하세가와 총독의 부임을 환영하는 한시를 지어 매일신보에 발표하는 등 뚜렷한 친일행적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으며 이에 따라 친일인명사전 수록이 확정적인 인물이다. 경남 마산시가 결국 여론에 굴복하여 그의 이름을 딴 도로명을 바꾸고 표지판을 철거하는 등 후속조치를 단행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어 다른 지자체의 결정에도 영향을 끼칠지 귀추가 주목된다.<편집자 주>     ‘친일’ 장지연, 도로명 바꾸고 표지판도 없애(오마이뉴스, 08.06.04)     관련기사 조두남·장지연 친일명단 포함(CNBNEWS, 08.04.30)“친일 장지연·이원수·조두남 등 기념사업 중단해야”(오마이뉴스, 08.04.30)자칫 ‘친일파 공원’ 될라?(오마이뉴스, 07.08.24)시일야방성대곡’ 장지연도 ‘친일’(미디어오늘, 05.08.24)       

이승만 총애 받고 ‘친일 군경’ 무럭무럭

2009년 5월 13일 657

정경모재일통일운동가 그러나 상징적인 일례로, 이 대통으로부터 지극한 총애를 받았던 사람 중의 하나가 특무대장 김창룡이었는데, 이 자가 ‘빨갱이’를 다루는 솜씨가 하도 잔인무도한 까닭에 미국 사람들조차 그를 ‘스네이크 김’(Snake Kim)으로 불렀다더군요. 김창룡은 함경도 출신으로 만주 관동군 헌병 오장(伍長)이었다가, 해방 뒤 친일파를 일소하던 이북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으러 가던 도중 도망쳐서 남쪽으로 빠져나온 인물이외다. ‘빨갱이’ 다루는 이 자의 솜씨에 홀딱 반한 이 대통령이 특무대를 설치하.. <기사 발췌> [길을찾아서] 이승만 총애 받고 ‘친일 군경’ 무럭무럭(한겨레신문, 09.05.12)

[제민포럼]과거를 몰각하는 자에게는 미래도 없다

2008년 6월 5일 702

그는 취임 후 일본을 향하여 “바람직한 미래로 나가기 위해 과거의 일을 묻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사람들의 명단이 발표되자 그네들을 두둔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람직한 미래로 나가자는 데야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과거를 말소한다고 해서 바람직한 미래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정직하게 응시하고 바로잡아 나갈 때 바람직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홍기돈 가톨릭대 교수   프로이드의 저작을 읽다보면 ‘억압된 것의 귀환’이란 용어를 만나게 된다. 쉽게 정리하자면, 유년기에 받았던 정신적인 외상(外傷)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인이 돼도 그 상처는 내면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되돌아온다. 그러니 건강한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상처의 기원을 찾아 풀어줘야만 한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 해서 가만히 놔두면 그 상처가 의식을 갉아먹고 만다. 어디 개인만 그러할까. 어떤 가문에서도 귀환하는 억압이 있을 수 있으며, 지역이나 민족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리라.이명박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 심히 우려스러운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는 취임 후 일본을 향하여 "바람직한 미래로 나가기 위해 과거의 일을 묻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사람들의 명단이 발표되자 그네들을 두둔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람직한 미래로 나가자는 데야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과거를 말소한다고 해서 바람직한 미래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정직하게 응시하고 바로잡아

베트남 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2009년 5월 12일 1351

‘우리는 영원토록 뼛속 깊이 새길 것’ 이규봉(대전지부장배재대 교수) 이규봉 대전지부장은 시민단체 ‘나와우리’ 후원 회원자격으로 4월 6일부터 12일까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된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Quang Ngai)성을 다녀왔다. 이 글은 답사를 마치고 쓴 것으로 오마이뉴스에도 실렸다. – 엮은이 베트남 꽝응아이(Quang Ngai)성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만행을 기록한 비문이 여러 개 있다. 이 중 한 증오비(또는 죄악증거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런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들을 깨끗이 불태웠다. 1966년 12월 5일 정확히 새벽 5시, 출라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남조선 청룡여단 1개 대대가 이곳으로 행군을 해왔다. 그들은 36명을 쯩빈 폭탄구덩이에 넣고 쏘아 죽였다. 다음날인 12월 6일, 그들은 계속해서 꺼우안푹 마을로 밀고 들어가 273명의 양민을 모아놓고 각종 무기로 학살했다. 모두가 참혹한 모습으로 죽었고 겨우 14명만이 살아남았다. 미제국주의와 남조선 군대가 저지른 죄악을 우리는 영원토록 뼛속 깊이 새기고 인민들의 마음을 진동토록 할 것이다. 그들은 비단 양민학살 뿐만 아니라 온갖 야만적인 수단들을 사용했다. 그들은 불도저를 갖고 들어와 모든 생태계를 말살했고, 모든 집을 깨끗이 불태웠고, 우리 조상들의 묘지까지 갈아엎었다. 건강불굴의 이 땅을 그들은 폭탄과 고엽제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불모지로 만들었다. 베트남 중부 지역은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에

[제민포럼]과거를 몰각하는 자에게는 미래도 없다

2008년 6월 5일 683

홍기돈 가톨릭대 교수 프로이드의 저작을 읽다보면 ‘억압된 것의 귀환’이란 용어를 만나게 된다. 쉽게 정리하자면, 유년기에 받았던 정신적인 외상(外傷)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인이 돼도 그 상처는 내면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되돌아온다. 그러니 건강한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상처의 기원을 찾아 풀어줘야만 한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 해서 가만히 놔두면 그 상처가 의식을 갉아먹고 만다. 어디 개인만 그러할까. 어떤 가문에서도 귀환하는 억압이 있을 수 있으며, 지역이나 민족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리라.이명박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 심히 우려스러운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는 취임 후 일본을 향하여 “바람직한 미래로 나가기 위해 과거의 일을 묻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사람들의 명단이 발표되자 그네들을 두둔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람직한 미래로 나가자는 데야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과거를 말소한다고 해서 바람직한 미래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정직하게 응시하고 바로잡아 나갈 때 바람직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억압된 상처가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상처는 유령처럼 우리 사회 곳곳을 떠돌면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제고 무거운 현실로 귀환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사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사실 과거를 되돌아본다는 행위는 단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머무르지는 않는다. 가령 친일문학을 공부해 보면, 누구누구가 이러저러한 친일 작품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국은행, ‘안중근의사 기념주화’ 발행거부 소식外

2009년 5월 12일 996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은행, ‘안중근의사 기념주화’ 발행 거부우정사업본부도 기념우표 발행에 묵묵부답 안중근의사 의거·순국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_공동사무국 민족문제연구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3월 25일 ‘안중근의사 기념주화’ 발행 요청 공문을 한국은행에 보냈다. 그러나 한 국은행은 4월 7일 회신 공문을 통해 ‘광복 50주년 기념주화’(10,000원화)에 안중근 의사를 도안인물로 사용한 바 있다는 이유를 들어 기념주화 발행이 어렵다는 뜻을 밝혀 왔다.한편 추진위는 이에 앞서 우정사업본부에도 공문을 보내 안의사 순국 100주년인 내년에 맞춰 ‘안중근의사 기 념우표’ 발행을 요청해 놓은 상태지만 아직까지 회신이 없는 상태이다. 관계 당국의 소극적인 태도는 과거사 문제에 소극적인 현 정부의 방침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백선엽 간도특설대 경력, 위키백과 일본어판에 더 자세히 올라있다 간도특설부대원 출신 백선엽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는 국방부의 방침에 대해 비난 여론이 높은 가운데, 위키백과 한국어판에 비해 일본어판에는 백선엽의 만주군 경력은 물론 간도특설대에 대한 설명도 주요인물과 토벌대상까지 잘 설명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대법원 “박정희기념관 국고보조금 지급은 적법” 대법원1부(주심 차한성)은 4월 23일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지원을 위한 국고보조금 지급을 취소한 행정안전부(취소 당시 행정자치부)와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김정렴 : 박정희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의 소송에서 행전안전부의 상고를 기각,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박정희기념관 건립 사업은 ‘국민의 정부’시절인 1999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와의 화해’라는 명분으로 박정희기념관 건립 지원을 약속하고 국고보조금 200억원을 지급했고 이어서 서울시(당시 고건 시장)가 상암동에 기념관 건립 부지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해 200여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40여곳 사실관계 틀려

2008년 6월 5일 658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지난 3월 출간한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40여곳 이상에서 사실과 다른 기술을 하고 있으며 이승만, 박정희를 지나치게 영웅시하는 등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런 지적은 한국 근현대사를 기술한 역사교과서라면서도 한국사 전공자는 단 한명도 집필에 참여하지 않은 탓에 내용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이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편집자 주>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40여곳 사실관계 틀려”(한겨레신문, 08.05.28)   관련기사 “워낙 부실한 교과서라 충격 적을 것”(한겨레신문, 08.05.28)민주 “박근혜 교과서 전율은 보수위기 때문”(고뉴스, 08.05.27)박근혜의 ‘전율’에 민주 “朴의 역사관에 전율”(데일리서프, 08.05.27)‘뉴라이트 교과서’ 극찬한 박근혜의 역사관(뷰스앤뉴스, 08.05.27)박근혜 “왜곡된 역사교육에 전율…걱정 덜었다”(한겨레신문, 08.05.26)[사설]재계의 역사교과서 수정안 황당하다(경향신문, 08.05.22)  

[경향과의 만남]“日 지유샤판 역사교과서 기본적 팩트조차 못갖춰”

2009년 5월 8일 552

[경향과의 만남]“日 지유샤판 역사교과서 기본적 팩트조차 못갖춰”(경향신문, 09.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