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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과거사정리 모범 ‘제주4.3 죽이기’ 총공세(09.04.14)
보수단체, 과거사정리 모범 ‘제주4.3 죽이기’ 총공세(제주의소리)
[방송예고]독립협회장 이완용, 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나?[KBS1TV]
정미칠조약과 한일합방 대가로 받은 이완용의 은사금 금액은 25만원. 지금의 50억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각종 하사금 수령과 국유 임대지 무상 수령을 통해 엄청난 차익을 얻은 이완용. 1925년 당시 그의 재산은 600억원에 이른다. 그는 어떻게 이런 큰 부자가 되었을까? 경성제일의 현금 부호라 불렸던 이완용의 축재 과정을 밝혀본다. KBS1TV [제45회] 독립협회장 이완용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나? ▣방송 : 2008. 6. 14 (토) 20:10~21:00 (KBS 1TV)▣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연출 : 김정균 PD ▣글,구성 : 정종숙 작가 친일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그는 한때 독립협회장이었다. 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을까?을사조약에 서명하는 순간,그가 그린 조선의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매국의 이름으로 남은 이완용.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한국사 傳 3부작>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 제1부 내가 무너지면 조선도 무너진다 ( 4월 26일 토 20:10~21:00 KBS 1TV ) 제2부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 5월 3일 토 20:10~21:00 KBS 1TV ) 제3부 몸은 죽고, 나라는 살다 ( 5월 10일 토 20:10~21:00 KBS 1TV ) <한국사 傳>에서는 2008년 충무공 탄신일을 맞이하여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 3부작 특집>을 마련하였다. ‘영웅’의 이름 아래 가려진 ‘인간 이순신’의 새로운 면모. 새로 발견된 32일간의 을미년일기와 친필 난중일기에 입각해 철저하게 밝혀낸다. 제 1부는 임진왜란에 나서는 인간 이순신의 기록을 담는다. 전쟁 전, 병을 자주 앓았던 이순신. 그의 건강상태는 어떠했고,
“연극인생 35년…느낌 통하는 4050팬 많아 행복”(09.04.14)
“연극인생 35년…느낌 통하는 4050팬 많아 행복”(한국경제)
[방송예고]독립협회장 이완용, 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나?
KBS1TV [제45회] 독립협회장 이완용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나? ▣방송 : 2008. 6. 14 (토) 20:10~21:00 (KBS 1TV)▣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연출 : 김정균 PD ▣글,구성 : 정종숙 작가 친일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그는 한때 독립협회장이었다. 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을까?을사조약에 서명하는 순간,그가 그린 조선의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매국의 이름으로 남은 이완용.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한국사 傳 3부작>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 제1부 내가 무너지면 조선도 무너진다 ( 4월 26일 토 20:10~21:00 KBS 1TV ) 제2부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 5월 3일 토 20:10~21:00 KBS 1TV ) 제3부 몸은 죽고, 나라는 살다 ( 5월 10일 토 20:10~21:00 KBS 1TV ) <한국사 傳>에서는 2008년 충무공 탄신일을 맞이하여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 3부작 특집>을 마련하였다. ‘영웅’의 이름 아래 가려진 ‘인간 이순신’의 새로운 면모. 새로 발견된 32일간의 을미년일기와 친필 난중일기에 입각해 철저하게 밝혀낸다. 제 1부는 임진왜란에 나서는 인간 이순신의 기록을 담는다. 전쟁 전, 병을 자주 앓았던 이순신. 그의 건강상태는 어떠했고, 첫 출전을 계속 미룬 까닭은 무엇인지, 조선 육군이 연패하는 가운데 바다에서 전승을 올린 이순신의 승리 비법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2부에서는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의 행적을 찾아가 본다. 정유년 2월에 체포된 이순신은 백의종군하는 가운데 어머니마저 돌아가신다. 이순신이 빠진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군은 커다란 패배를 겪고, 이순신이 다시 전장에
안중근 이봉창, 독립의사 TV 드라마로 만난다(09.04.14)
안중근 이봉창, 독립의사 TV 드라마로 만난다(스타뉴스)
계속되는 ‘황당’ 인사… 보수는 ‘무뇌아’가 됐나?
오마이뉴스 김태경 기자 ▲ 대통령과 국민 갈라 놓은 ‘명박산성’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 학생들이 11일 새벽 서울 세종로네거리에서 컨테이너 바리케이트 설치를 비난하며 ‘소통의 정부, 이것이 MB식 소통인가’ 글이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바리케이트 너머 이명박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가 보이고 있다. ⓒ 유성호 극우 인사인 홍관희 박사가 통일교육원장에 사실상 내정된 상태다. 촛불시위 와중에 이 얘기를 하는 게 뜬금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홍 박사를 통일교육원장에 내정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위기의 근원이라고 지목되는 인사 문제가 심각하다 못해 얼마나 엉뚱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홍관희 통일교육원장 내정자 ⓒ 자료사진 잘 알려졌다시피 홍 박사는 “6·15 공동선언은 이적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남북 당국 간 대화를 끊었다. 대화 단절의 결정적인 이유는 남한 정부가 6·15와 10·4 선언을 홀대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계속 6·15와 10·4 선언의 이행을 주장하고 있고, 이 때문에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우리가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나마 태도를 바꿨다. 김 장관은 12일 6·15 8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할 계획이다. 정부·여당은 야당일 때는 ‘퍼주기’라고 비난하더니 이제는 북한에 옥수수 5만 톤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형국인데 비록 직접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은 아닐지라도 통일교육원 수장에 “6·15는 이적행위”라고 공언하는 인사가 들어올
절차 복잡한 신채호선생의 ‘가족관계등록부’(09.04.14)
절차 복잡한 신채호선생의 ‘가족관계등록부’(문화저널21)
계속되는 ‘황당’ 인사… 보수는 ‘무뇌아’가 됐나?
오마이뉴스 김태경 기자 ▲ 대통령과 국민 갈라 놓은 ‘명박산성’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 학생들이 11일 새벽 서울 세종로네거리에서 컨테이너 바리케이트 설치를 비난하며 ‘소통의 정부, 이것이 MB식 소통인가’ 글이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바리케이트 너머 이명박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가 보이고 있다. ⓒ 유성호 극우 인사인 홍관희 박사가 통일교육원장에 사실상 내정된 상태다. 촛불시위 와중에 이 얘기를 하는 게 뜬금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홍 박사를 통일교육원장에 내정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위기의 근원이라고 지목되는 인사 문제가 심각하다 못해 얼마나 엉뚱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홍관희 통일교육원장 내정자 ⓒ 자료사진 잘 알려졌다시피 홍 박사는 “6·15 공동선언은 이적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남북 당국 간 대화를 끊었다. 대화 단절의 결정적인 이유는 남한 정부가 6·15와 10·4 선언을 홀대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계속 6·15와 10·4 선언의 이행을 주장하고 있고, 이 때문에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우리가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나마 태도를 바꿨다. 김 장관은 12일 6·15 8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할 계획이다. 정부·여당은 야당일 때는 ‘퍼주기’라고 비난하더니 이제는 북한에 옥수수 5만 톤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형국인데 비록 직접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은 아닐지라도 통일교육원 수장에 “6·15는 이적행위”라고 공언하는 인사가 들어올
“삶의 희망을 관객에 전하고 싶어”(09.04.07)
“삶의 희망을 관객에 전하고 싶어”(세계일보)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항소심 제1차 공판 열려
민연수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책임일꾼) “재판관 여러분. 여러분은 정의에 의거한 판결을 내릴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약자의 편에 서서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원고 나아무개 할머니(80, 경기도 파주)는 이 발언을 끝으로 의견진술을 마쳤다. 지난 5월 28일「후지코시(주)」(본사·도야마현)를 상대로 한 제2차 후지코시 항소심 제1회 구두변론이 나고야 고등재판소 가나자와 지부에서 열렸다. 구두변론에 맞춰 방일한 나아무개 할머니는 23명의 원고와 후지코시 강제연행피해자 1,600 여명을 대표하여 의견진술을 하였다. ▲ 재판정까지 행진하는 모습 이날 법정에서 할머니는 당시 후지코시 입사식 때 찍은 단체사진을 가리키며, “우측에 길쭉하게 잘려져있는 부분에는 원래 ‘경상북도여자근로정신대’라고 쓰인 깃발이 있었는데 ‘정신대’라고 하면 위안부로 오해받을까봐 사진을 받자마자 그 부분을 잘라냈다”고 진술하였다. 이는 당시 많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증언이었다.나아무개 할머니처럼 어린 나이에 고향과 부모님 곁을 떠나 낯선 곳으로 끌려가 ‘근로정신대’란 미명 아래강제노역을 당하고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 한 채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했던 피해자는 해방 60년이 넘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오해받을까봐 강제 연행되었던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 한 채, 죄인마냥 오랜 세월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 살아야만 했다. ▲ 보고집회에서 사진설명중인 나아무개 할머니 하지만, 이 사실을 숨기는 일이야말로 일제의 죄상을 은폐하는 원치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반성 없는 일본정부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