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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친일사전 발행금지가처분 모두 기각(09.02.22)

2009년 2월 23일 816

친일사전 발행금지가처분 모두 기각(헤럴드경제)

청와대 비서관, “친일·반일 애매”(09.03.01)

2009년 3월 2일 907

청와대 비서관, “친일·반일 애매”(YTN)

[길을 찾아서] ‘유신 철폐’ 앞장선 기독교(09.02.16)

2009년 2월 23일 866

[길을 찾아서] ‘유신 철폐’ 앞장선 기독교(한겨레신문)

“아직도 日제삿밥 먹는 아버지…”

2009년 3월 2일 865

‘야스쿠니 신사 합사취하’ 소송 이희자씨 법정서 눈물 서울신문 이재연 기자 “아버지 자식으로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는 게 제 인생에 남은 과제고 소원입니다. 바로 제 아버지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빼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강제징용된 뒤 생사여부도 끊어진 아버지를 찾아 헤맨 지 올해로 20년째. 이씨는 1997년에야 중국 광시성 유장(柳江)현 전투 중 사망한 아버지 이사현씨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장돼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2002년 소송을 시작했지만 2006년..<기사 발췌> “아직도 日제삿밥 먹는 아버지…”(서울신문, 09.02.28) 관련기사 日 야스쿠니 한국인명부 일부 없앤다(서울신문, 09.02.28)야스쿠니 명부 삭제 소송 기각(부산일보, 09.02.28)日야스쿠니 합사 취소訴 기각(서울신문, 09.02.27)日 야스쿠니 전몰자 명부 삭제 소송 기각(한국일보, 09.02.26)

[길을 찾아서] 문인들 겁주려 ‘간첩 조작’(09.02.19)

2009년 2월 23일 793

[길을 찾아서] 문인들 겁주려 ‘간첩 조작’(한겨레신문)

일제의 침략전쟁에 끌려간 조선청년들, 시베리아 억류, 통한(痛恨)의 역사를 재조명한 전시회 열려

2009년 3월 1일 1160

민족문제연구소개막식 사진 내려받기  2월 27일부터 국회도서관 2층 로비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피해자 가운데 시베리아 억류라는 이중피해를 겪은 이들의 한 서린 체험을 증언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강제징집이나 징용, 강제연행일본군위안부 피해 사례는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직도 세상의 무관심 속에 묻혀 외면당하고 있는 비극적 사연의 주인공은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태평양전쟁 말기 징병징용으로 일본 군대에 끌려가 만주사할린쿠릴열도 등지에서 소련군에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일대 포로수용소에서 수년간 강제노동에 복역했다.일본군 신분으로 시베리아에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포로들은 패전국 일본과 승전국 소련, 그리고 연합군사령부간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 속에 철저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해방을 맞이한 상황에서도 시베리아에 강제 억류되어 가혹한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귀환 후에도 남북분단이라는 이데올로기 대치 상황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중첩된 고통을 당했다.소련군에 의해 일본군으로 분류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간 조선인 청년들은, 해방을 맞아서도 자기 뜻대로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포로 신분으로 수용소에 강제 억류되었다. 소련 당국에 우리는 조선인이고,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독립국가가 수립되기 전이어서 교섭대상이 없다는 이유로 귀환을 거부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당시 미군정도 이들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1949년 경 겨우 귀국선을 타게 된 이들은 이미 분단되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던 삼팔선을 넘어 귀환하다 총격을 당해 일부가 숨지는 참극을 겪기도 했다. 살아서 삼팔선을 넘은 이들도 다시 수용소에 억류되었으며, 석방 뒤에도 사찰 대상으로 시달림을 당하는 냉전시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60년

함께 부른 기억하세요?(09.02.20)

2009년 2월 20일 808

함께 부른 <압록강 행진곡> 기억하세요?(오마이뉴스)

“100명 초본 떼와라” 외교부,반일 민간단체에 황당한 요구 물의

2009년 2월 20일 1067

국민일보 김상기 기자 외교통상부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민간단체의 등록 신청을 받으면서 황당하리만치 비상식적인 요구를 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저자세 대일 외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야스쿠니 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이하 야스쿠니 반대위원회)는 19일 “외교부가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신청을 접수하면서 100명 회원들의 주민등록초본을 모두 떼어오라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기사 발췌> “100명 초본 떼와라” 외교부,반일 민간단체에 황당한 요구 물의(국민일보, 09.02.20) 관련기사 법원 “야스쿠니 반대단체 등록거부는 부당”(세계일보, 09.01.02)“외교부 야스쿠니 반대단체 등록거부 부당”(아시아경제, 09.01.02)“야스쿠니 신사 반대 단체… 외교부, 등록거부는 부당”(한국일보, 09.01.02)법원 “외교부, 야스쿠니 반대 단체 등록신청 거부 부당”(한겨레신문, 09.01.02)“야스쿠니 신사 반대 단체 등록 거부 부당”(YTN, 09.01.01)법원 “야스쿠니 반대단체 등록거부 부당”(연합뉴스, 09.01.01) 

시베리아 억류 희생자, 첫 위령제 열려

2009년 3월 1일 962

민족문제연구소 3.1절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28일, 연천 전곡리 38선 기념탑 앞에서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을 되새겨보는 조촐하지만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부축을 받아야 거동할 수 있는 고령의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예사롭지 않은 이 날 행사는, 일제말기 징병으로 끌려갔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소련군에 포로가 된 후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4년 가까이 강제노역에 혹사당하다 불귀의 객이 된 희생자들과 귀환 도중 3.8선에서 남한 경비대의 총격으로 사망한 원혼을 달래는 60년만의 위령제였다.침묵을 강요당했던 굴절된 역사의 이면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이 날 행사도 언론의 주목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진행되었다. 오히려 NHK의 다큐멘터리 특집 제작팀과 동양통신 기자가 동행 취재하여 일본 쪽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일제강제동원피해자 유족들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등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베리아 억류 생환자 8명은 일제의 침략전쟁과 시베리아의 강제노역으로 죽어간 동지들에게 60년 만에 첫 술잔을 올렸다. 다리가 불편해 혼자 걷지도 못하는 몸을 이끌고 참석한 생존자들은 “이제라도 이런 자리가 마련되어 여한이 없다”며 고마움을 표시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 위령제가 열린 연천 전곡리 38선 기념탑 ▲ 귀환과정을 회상하고 있는 생환자들. 왼쪽부터 황희성 이후녕 이병주 박수복씨, 맨 끝은 키쿠치 도시오씨 ▲일본측 참관인단. 왼쪽부터 키쿠치 도시오, 이케다 고우이치, 마쯔바라 쯔네오 씨  시베리아 억류 희생자들은 그 흔한 추모위령 시설조차 없어, 1949년 2월 생환자들이 38선을 넘어 온 지점 가운데 하나를 택해

이상목 청와대 비서관의 망언에 대한 논평

2009년 3월 1일 1095

  【긴급논평】 이상목 청와대민원제도개선비서관의 망언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논평이명박 정부의 역사 탈선을 우려한다  ▲ 이상목  비서관  이명박 정부의 몰가치적인 역사인식이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다. 민족의 기념일인 삼일절에, 그것도 독립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자가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쏟아 냈다.독립운동을 폄훼하고 친일세력 독재정권을 옹호해온 이 정권의 역사왜곡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이렇게 막가파식으로 친일 불가피론을 공공연히 발설하며 식민지근대화론을 미화하는 작태는 결코 용서할수 없는 망발이 아닐 수 없다. 관련기사 靑비서관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 발언 논란(서울신문, 09.03.02)민주 “선열 욕되게 한 靑비서관, 즉각 사퇴하라”(뷰스앤뉴스, 09.03.01)靑 비서관, 독립기념관가서 ‘친일 불가피’ 주장(프레시안, 09.03.01)靑비서관 ‘식민지근대화론 두둔’ 논란(아시아투데이, 09.03.01)청와대 비서관, “친일·반일 애매”(YTN, 09.03.01)靑비서관 ‘식민지근대화론 두둔’ 논란(연합뉴스, 09.03.01)이상목 靑비서관 “친일파 불가피한 부분 있었다” 논란(경향신문, 09.03.01)靑 이상목 비서관,식민지근대화론 두둔 논란(쿠키뉴스, 09.03.01)이상목 靑비서관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쿠키뉴스, 09.03.01)靑 비서관 ‘식민지 근대화론’ 발언 논란 일파만파(폴리뉴스, 09.03.01) 우리 근현대사에 있어서 문제는, 항일과 친일의 경계가 모호했던 점이 아니라 친일파가 득세하여 독립운동세력을 거세한, 거꾸로 된 역사적 현실이다.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남의 나라 국부를 모독하기까지 하는가. 간디가 방직기의 효율성을 몰라서 내친 것인가. 제국주의와 그에 협력한 매판자본에 저항하여 손수 물레를 짓는 비폭력 저항운동을 전개한 것일 뿐이다. 무지한 자가 간디를 거론한 저의는 명백하지만 참으로 천박한 역사인식이요 국제적 망신거리가 아닐 수 없다.또 무엇이 그렇게 모호하단 말인가.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