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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MBC의 굴종’ 원하는 윤 대통령, 국가가 뿌리째 흔들린다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국가가 혼란스럽다. 다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을 강행하고, 이 위원장은 임명 당일 과천청사로 출근했다. 출근 당일 이 위원장은 전체회의를 소집, 방통위 2인 체제에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 ‘날치기’를 강행했다. 민주당 등 야당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정국은 꼬일 대로 꼬여가고 있다. 정국 꼬이게 만든 이진숙 임명 강행, 윤 대통령 책임 작금의 ‘국가적 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수억 원대 법인카드 유용 의혹으로 고발당하고, 이태원 참사 배후설에 동조하는 글을 올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 하나 정리하지 못하고, 방송통신위원회 정책적 청사진은 전혀 제시하지 못하던 이진숙 위원장 임명은 오롯이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의지였다. 강제징용 배상 대법 판결을 “법리 남용”이라고 비판해 ‘뉴라이트 사관’을 의심받는 김태규 부위원장(대통령 추천)도 같은 날 임명됐다. 이날 임명된 함량 미달 인사 2명은 곧장 전체회의를 열어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의결했다. 노골적인 목표는 ‘MBC 장악’이다. 여권 우위 구도로 재편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8월부터 임기를 시작하면 이들은 안형준 MBC 사장의 해임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그리고 새롭게 부임한 사장은 KBS, YTN이 그랬던 것처럼 ‘대국민사과’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순방 당시 ‘바이든/ 날리면’ 등 자신의 욕설 육성을 공개한 MBC를 장악해 끝끝내 사과를 받아내고 싶어 하는 것
[미디어오늘] 시민사회 이진숙 사퇴 요구 “위안부가 왜 논쟁적 사안이냐”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오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하자 시민사회에서 사퇴를 요구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야당 간사인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함께하는시민행동,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인사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위원장 임명을 비판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위안부에 대해 강제적인가 자발적인가라고 묻자 이진숙 후보는 논쟁적 사안, 개별적 사건에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일반군 위안부 문제에서 무엇이 논쟁적이고 어디가 개별적이냐,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논쟁적이거나 개별적 사안이 아니라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확인된 전쟁범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반인권적, 친일 편향적 역사관을 가진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어떤 공적인 자리에도 있어선 안 될 인물”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유족 단원고 2학년 5반 이창현씨 엄마 최순화씨는 “이진숙 후보의 자격 없음은 이미 10년 전 세월호 관련 보도에서 확인됐다”며 “이진숙 후보자가 MBC 보도본부장이던 2014년 MBC가 내보낸 세월호 관련 보도들은 자녀를 잃은 유가족에게 너무 가혹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격 미달인 이진숙 방통위원장에게 다시 한번 세월호에서 별이 된 304명의 이름으로 촉구한다”며 “방통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라”라고 했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성명 <윤 정권, 이진숙 방통위원장 임명은 노조 파괴 전쟁 선포다>를 내고 “윤(대통령)은 임기 시작하며 민주노총을 철천지 원수로 삼았고, 이진숙은 청문회에서 언론노조가 힘으로 지배한다며 적대시했다”며 “윤석열은 이진숙 노조파괴 최첨병을 앞세워 공영방송을 조종해 떨어진 지지율을 회복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이 위원장이 청문회에서 “언론노조의 권력을
[보도자료]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 기획전시 〈한반도 운명을 바꾼 그들의 전쟁〉 개막
[보도자료] [다운로드]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 기획전시 〈한반도 운명을 바꾼 그들의 전쟁〉 개막 주최 : 민족문제연구소 · 재단법인 역사와책임 기간 : 8월 2일(금)~12월 29일(일) 장소 : 식민지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이 되는 해를 맞아, 근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은 두 개의 전쟁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재단법인 역사와책임이 공동주최하는 기획전 〈한반도 운명을 바꾼 그들의 전쟁〉은 조선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두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재해석을 담고 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근대 동아시아의 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음은 물론, 국제 역학관계의 변화까지 가져온 세계사의 중대 사건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두 차례 전쟁의 결과, 조선은 식민지로 청국은 반식민지로 전락하는 단서가 열렸으며, 제정 러시아는 급격하게 몰락의 길로 들어선 반면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오르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개된 양대 전쟁은 전장이 되었던 한반도에 막대한 물적·인적 손실을 끼쳤으며, 조선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청국, 러시아라는 대국과의 정면 승부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를 계기로 천황제 군국주의를 확고히 하고, 1945년 패망할 때까지 반세기간 지속적으로 침략전쟁을 확산시켜나갔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조선은 주체가 아니었으나 가장 큰 피해를 당하며 궁극에는 국권상실이라는 비극적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한반도를 둘러싼 두 개의 전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타자가 아닌 우리의 인식’ 속에서 ‘부분이 아닌 전체’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
[성명] 일본정부와 한국정부는 사도광산에서 추도할 희생자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미쓰비시가 숨기는 사도광산의 조선인 명부 공개를 요청하라
[성명] [다운로드] 일본정부와 한국정부는 사도광산에서 추도할 희생자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미쓰비시가 숨기는 사도광산의 조선인 명부 공개를 요청하라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의 일본에 대한 굴욕 외교의 실상이 명확히 드러났다. 2015년 메이지 산업유산 등재 당시 조선인 강제노동을 인정한 일본 정부는 바로 다음 날 자신들이 인정한 것은 합법적인 식민지배에 따른 징용이라며 이는 국제법상 강제노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5년이나 지나 도쿄에 설치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전시로 채워졌다. 이에 대해 세계유산위원회가 전체 역사를 설명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본 정부에 ‘강력한 유감’을 밝혔지만, 지금도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은 계속되고 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은 헌법 정신에 따라 불법적인 식민지배,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되는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했다. 아베 총리는 2018년 11월 대법원판결을 부정하기 위해 식민지배는 합법이라며 기존의 ‘징용공’ 대신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고 모든 외교문서의 표현을 바꾸었다. 이는 모집, 관 알선뿐 아니라 징용령에 따른 강제동원조차도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일본 정부의 말 바꾸기 꼼수에 불과하다. 나아가 2021년 4월에는 ‘강제연행’, ‘강제노동’ 등의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각의 결정을 내려 교과서는 물론 모든 역사서술에서 이 표현을 삭제시켰다.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일본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성실이 이행할 것과 이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며 등재 결정에 동의해 버렸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선제조치로 평가한 ‘한국인 노동자에
[새책소개] 『역사와 책임』 14호 (통권 14호)
『역사와 책임』 제14호 소개 <다운로드> 바로가기 >>>☞ [도서구매] 차례 특집 │ 식민지시기 재조일본인과 전후 ‘재외재산’ 처리 문제 ○ 패전 직후의 재조일본인 인양과 조선통치인식 │ 기무라 겐지 ○ 통계자료로 본 식민지시기 대만 거주 일본인 현황 │ 중수민 ○ 『재외사유재산실태조사표』의 구성 및 수록내용 검토│ 김명환 ○ 『재외사유재산실태조사표』를 통해 본 재조일본인사회 – 오카야마현 ‘조사표’를 중심으로 │ 박수현 기획연재 │ 세계의 과거사 청산, 어디까지 왔나? ○ 브라질의 민주화와 이행기 정의 실천의 경험 │ 최용주 ○ 독일 현대사 연구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 – 팔레스타인 문제를 경시한 배경 │ 후지와라 다쓰시 현장소식 ○ 빨갱이 무덤 │ 구자환 ○ 노동자상의 모델이 일본인이다? – 김서경ㆍ김운성 대 이우연 사건 판결 소개 │ 이상희 기억과 예술 ○ 되살아나는 역사와 흔적들 – <되살아나는 목소리>(박수남/박마의 감독, 2023) │ 황미요조 자료소개 ○ 골령골 유해 발굴의 기록과 의미 │ 임재근 서평 ○ 집단 파괴의 자유만 있는 곳의 이방인에게 자유를 –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탄압에서 보는 민간인 집단학살의 뿌리 │ 김종철 지음, 『야만의 시간』, 진실의 힘, 2023 │ 신기철 여는 글 조경희 (『역사와 책임』 편집위원,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부교수) 올해 2024년은 훗날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될까. 뉴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은 그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고, 과거사 문제를 ‘걸림돌’로만 바라보는 그들의 반역사성은 이 사회의 집단지성을 서서히
[오마이뉴스] 독립운동 경력 스스로 부정했던 이승만 정권 2인자
[독립운동가외전] ‘독직사건’ 휘말렸던 초대 상공부 장관 임영신 대한민국 정부 초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름이 언급된 여성이 있다. 1948년 7월 20일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73세의 이승만은 24일 취임식 때 특정 여성의 이름을 언급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이날 이승만은 “여러 번 죽엇든 이 몸이 하나님 은혜와 동포의 애호로 지금까지 사러 있다가 오늘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밧는 나로는 뼈에 맺치는 눈물을 금하기 어려웁다”라는 첫 문장으로 취임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국제연합(유엔) 임시본부가 있는 뉴욕주 롱아일랜드섬 레이크석세스에 나가 있는 임영신(1899~1977)의 실명을 거론했다. “9월에 파리에서 개최하는 유엔 총회에 파견할 우리 대표단은 아직 공포는 아니하였으나 몇몇 고명한 인격으로 대략 내정되고 있으니 정부 조직 후에 조만간 완정 공포될 것이다. 한편, 우리의 대표로 레이그썩세스에 가서 많은 성적을 내고 있는 임영신 여사에게 대해서는 우리가 다 고맙게 생각하는 바이다.”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조선여자국민당 위원장이 된 임영신은 이듬해에 미군정 자문기관인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 의원이 되고 1947년에 중앙여자대학 학장이 됐다. 이 학교는 지금의 중앙대학교로 발전했다. 해방정국하에서 정치인과 교육자로 두각을 보이던 그가 대통령 취임사에서 거명되는, 이변이라면 이변인 사건의 주인공이 됐던 것이다. 취임식 뒤인 8월 4일, 임영신은 15일 출범할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상공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5일 자 <조선일보>는 기사 부제에 “상공에 임여사”라는 표현을 썼다. 취임사에서 거론된 데 이어 상공부장관으로도 임명된 ‘임 여사’는 이 시기 이승만 정권의 2인자로 부각됐다.
[한겨레] 민족문제연구소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는 윤 정부 외교의 실패”
한국인 ‘강제동원’ 빠져 민족문제연구소가 27일 일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과 관련해 “일본이 약속한 ‘전체 역사’에서 한국인 강제동원은 빠졌다“며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역사의 진실을 일본 정부에 양보한 외교 실패”라고 비판했다. 연구소는 이날 성명을 내어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기록하겠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며 “이는 2018년 한국 대법원에서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나온 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강제성’을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도광산이) 2015년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유산 등재 당시 조선인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노동’을 당했다는 일본 정부의 발언에서도 대폭 후퇴했다”며 “일본 정부가 역사부정론을 관철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일 정부의 합의로 니가타현 사도섬에 설치된 ‘조선인 전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연구소는 “전시에서 강제동원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고, 강제성을 숨긴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제목이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어떻게 외교 성과로 자랑한다는 것인지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인식을 심각하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일본 정부가 아무리 역사를 숨기려고 해도 한국인 강제동원의 역사는 결코 숨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2024-07-27> 한겨레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는 윤 정부 외교의 실패” [성명] 일본 정부의 강제동원 부정과 이를 용인한 한국 정부를 규탄한다 ※관련기사 ☞YTN: 민족문제연구소,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외교 실패”
[성명] 일본 정부의 강제동원 부정과 이를 용인한 한국 정부를 규탄한다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에서 빠진 한국인 ‘강제동원’ 일본 정부의 강제동원 부정과 이를 용인한 한국 정부를 규탄한다 7월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불법적인 식민지배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사도 광산으로 강제동원 되어 강제노동에 시달린 피해자의 역사를 일본 정부가 제대로 기록하도록 한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노력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https://www.minjok.or.kr/archives/140428) 오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대표는 등재 결정 발언을 통해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기록하겠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용어를 썼다.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용어는 2018년 10월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후 당시 아베 총리가 ‘강제성’을 부정하고 강제동원의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다. 일본 정부는 아베 정부의 역사부정론을 대표하는 이 용어를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쓰고 있다. 이는 2015년 메이지산업혁명유산 당시 조선인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노동”을 당했다는 일본 정부의 발언에서도 대폭 후퇴한 내용이며, 일본 정부가 역사부정론을 관철시킨 결과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역사부정론을 아무런 비판 없이 용인했다.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역사의 진실을 일본 정부에게 양보한 외교 실패가 아닌가. 한국인 노동자에 관한 전시공간도 사도광산의 최신 안내시설인 ‘키라리움 사도’가 아니라 사도광산에서 2Km 떨어진 기타자와지구(세계유산 제외)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의 한 구획에 설치된 것에 불과하다. 전시에서도 ‘강제동원’이 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으며,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다.
[보도자료] 사도광산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를 시민들의 영상 메시지로 호소
[보도자료] [다운로드]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대사에 사도광산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를 시민들의 영상 메시지로 호소 □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가 인도 뉴델리에서 7월 21일부터 열리고 있으며, 오는 27일 이 회의에서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논의할 예정입니다. □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사도광산에 대해 “전체 역사를 현장 수준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전시 전략을 책정해 시설·설비 등을 갖출 것”을 권고했습니다. 전체 역사에는 당연히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도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 사도광산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할 것을 바라는 시민들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모여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각국 대사에게 보낼 영상 메시지를 제작했습니다. □ 시민들이 직접 호소하는 메시지에는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해 전체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차별과 전쟁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사도광산이 한국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를 바란다.”, “식민주의 극복을 위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 시민들이 제작한 영상 메시지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각 대사에게 오늘(26일) 발송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이 사도광산을 비롯한 세계유산에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포함한 전체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도록 계속해서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붙임 1. 영상 메시지. 끝. □ 호소문 원문 바로보기 [영상메세지] [바로보기]
[오마이뉴스] 친일단체 회장이 불붙인 ‘대통령 추대설’… 정부가 발칵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윤시병 ‘대통령’이란 단어가 처음 나왔을 때는 생경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생경함을 떠나 당혹감이나 불쾌감을 느꼈을 인물도 있다. 종신 군주인 고종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신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신조어였을 수도 있다. 그 시절에 대통령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장면을 국사편찬위원회의 <고종시대사> 제4집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1899년 4월 24일 자 대한제국 고등재판소 판결문에 따르면, 직업이 훈장인 권형대는 고종 정권을 전복하고 대통령을 추대할 계획을 품었다. 1898년 상반기에 그는 충남 공주군 주점에서 전직 참봉인 44세의 장윤상에게 이런 말을 하며 거사 참여를 요청했다. “광무 3년 2월 중에 이준용이 만약 환국하면 대황제폐하는 존(尊)태상황위하고 이준용이가 대위(代位)를 하거나 대통령을 하거나 수기위지(隨機爲之)할 터이니” 다가오는 1899년 2월 중에 고종의 조카이자 흥선대원군의 장손인 이준용이 일본 망명을 끝내고 귀국하면 황제 고종을 태상황 위치로 올리고 이준용을 황제나 대통령으로 만드는 거사를 벌이겠다는 말이었다. 이준용에게 어떤 자리를 줄지는 상황을 봐가며 처리할 테니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전직 9급 공무원을 부추겼던 것이다. 안 그래도 고종은 이준용 때문에 가슴을 자주 쓸어내렸다. 고종이 청나라·일본과 영국·프랑스·미국 등이 무서워하는 러시아를 끌어들인 뒤 관계를 강화하는 조짐이 나타나자, 청나라의 조선 현지 책임자인 원세개(위안스카이)는 1886년에 응징 차원에서 이준용 옹립을 계획한 일이 있다. 동학혁명이 있었던 1894년에는 대원군이 동일한 계획을 추진한 일이 있다. 훈장 권형대는 이준용이 귀국하면 황제나 대통령으로 세우겠다며 사람들을 규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