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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일본 ‘일어서라! 합창단’ 식민지역사박물관 방문’
☞ 쇼츠(Shorts): 일본 ‘일어서라! 합창단’ 식민지역사박물관 방문’
[브라보마이라이프] 할아버지의 친일을 사죄합니다
[기사원문] <2024-05-30> 브라보 마이 라이프☞ [카드뉴스] 할아버지의 친일을 사죄합니다 ·········<중략>·········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입니다. 선생님 글을 회보에 실어도 되겠습니까?” 가슴이 철렁했다. 그 말인즉 친일파 자손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하라는 뜻이다. 내가 쓴 글 제목은 이러했다. ‘저는 친일파의 손자입니다.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드립니다.’ 2011년,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한 내가 처음 받은 과제는 가족을 주제로 에세이 쓰기였다. 난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아버지가 늘 궁금했다. 1890년대 일본 유학을 다녀와 대한제국 농상공부 관리를 하고, 나중에 군수까지 했다는 나의 할아버지. 무척 영특했다던 사진 속 그를 찾아 나섰다. 할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한 건 도서관에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일인명사전을 꺼내 들었고 물음표는 느낌표가 됐다. 마음이 이상했다. 나라의 명운이 왔다 갔다 하던 때에 유학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석연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친일파이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해방 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은 것이 역사의 치명적 약점이라며 누구보다 분개하던 내가 그 후손이라니…!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첫 과제를 제출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도 회원 가입하고 숙제를 갈무리해서 회원만 볼 수 있게 올렸다. 얼마 뒤 사무국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넌지시 가족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우린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기로 결정했다. 세간은 잠시 난리가 났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고,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첫 과제를 내고 13년여가 흘러 일흔을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 치열하게 글을 배우고 또 썼다. 공저 포함 다섯 권 넘게 출간했고, 글쓰기
[오마이뉴스] 이승만 재평가? 그는 정말 반공을 잘했던 걸까
[좌파의 우파책 읽기] 연설집 <이승만 스피치 1948>를 읽어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 ‘우파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를 자주 궁금해하던 좌파의 정체성을 살려, 직접 우파 서적을 비판적으로 읽어보고자 합니다.[기자말] 최근 몇 년간 보수 진영의 ‘추앙’ 대상이 ‘경제의 박정희’에서 ‘건국의 이승만’으로 점점 옮겨가는 것 같다. 공무원, 언론사 직원 등을 동원했다는 논란은 있지만 100만 명 이상이 2월에 개봉한 〈건국전쟁〉을 관람했고, 이승만을 다룬 또 다른 영화 〈기적의 시작〉도 5월에 개봉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를 두고는 ‘이승만을 위한 포석’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식에서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무장독립운동을 벌인 투사들이 계셨고, 국제정치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세계 각국에서 외교독립운동에 나선 선각자들도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이승만의 외교독립운동 재평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1월에는 국가보훈부가 32년 만에 처음으로 이승만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전방위적인 ‘이승만 재평가’가 시도되는 셈이다. 1948~1949년 이승만 연설을 모은 〈이승만 스피치 1948〉도 그런 흐름에 놓인 책이다. 올해 3월에 나온 이 책은, 서문이나 추천사 등에서 직접 이승만을 찬양하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의 건국과 초기 발전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펼쳤던 비전과 지도력을 재조명하고 그의 정치‧사회‧경제적 공로를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에서 이승만을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난다. 최근의 ‘이승만 재평가’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기에 정말 이승만이 그렇게 대단한지를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해석이 아닌 이승만 본인의 말을 직접 듣고 판단하자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었다. 민주주의와
[한겨레] “피해자 어디에도 없는 ‘제3자 변제안’ 누가 봐도 이상해”
[짬]‘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 지원 모임’ 야마모토 나오요시 사무국장 “‘제3자 변제’라는 아이디어로 한·일 우호를 ‘연출’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방안 어느 곳에도 피해자가 없어요.” 25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만난 야마모토 나오요시(59)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장은 윤석열 정부가 대법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 해결책으로 밀어붙이는 ‘제3자 변제안’에 대해 “누가 봐도 이상한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이 방안은 가해 일본 기업이 아닌 한국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금을 대신 낸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20년 등을 기념해 열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5월24일~7월21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 그가 속한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은 일본제철에 강제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1995년에 결성된 일본 시민단체다. 그는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한국인들 이름을 빼기 위한 운동 그리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관련 외교문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대학 시절 차별받은 이들의 역사를 공부하다가 평화 운동에 참여했던 그와 한반도의 인연은 공무원 생활을 하던 1993년께 시작됐다. “재일 조선인 원자폭탄 피폭자들이 어제까지는 일본인 취급을 받다가, 전쟁이 끝나자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배척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일본) 식민지배의 잔혹함에 분노를 느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지원 활동이 3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그는
민족사랑 202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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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 시즌3] 영화 주제가로 보는 대중가요의 역사 8부_”1990년대 이후
☞ (05.28) ‘역발상’ 시즌 3: 영화 주제가로 보는 대중가요의 역사 8부_”1990년대 이후” 오늘의 이야기 : 영화 주제가로 보는 대중가요의 역사 8부_”1990년대 이후 초대손님 : 이영미(대중문화연구자) 이준희(옛가요 전문 연구자) <철의 노동자> 영화: 1990년 4월(?)에 공개된 <파업 전야>. 정식(?) 개봉은 2019년 5월. 이은기·이재구·장동홍·장윤현 연출, 강능원·고동업·김동범·박종철 등 출연 주제가: 1990년 안치환 노래. 안치환 작사·작곡 여전히 1980년대 말의 상황이 지속되던 양상을 보여주는 영화. 1987년 이후 진보적 예술운동의 역량이 크게 상승하면서, 드디어 몇 편의 장편영화가 비합법 영역에서 흥행 성공을 보여준 사례 <그대 안의 블루> 영화: 1992년 12월 피카디리극장·그랑프리극장에서 개봉. 이현승 연출, 강수연·안성기·최유라 등 출연 주제가: 1992년 김현철·이소라 노래. 이현승 작사, 김현철 작곡 <세상 밖으로> 영화: 1994년 5월 피카디리극장 등에서 개봉. 여균동 연출, 문성근·이경영·심혜진 등 출연 주제가: 1994년 김종서 노래. 정형진 작사, 김종서 작곡 <오늘도 참는다> 영화: 1999년 10월 서울극장 등에서 개봉한 <주유소 습격 사건>. 김상진 연출, 이성재·유지태·유오성·박영규 등 출연 주제가: 1999년 배기성 노래. 박정우 작사, 오석준 작곡 <꽃잎> 영화: 1996년 4월 단성사 등에서 개봉. 장선우 연출, 이정현·문성근·설경구·박철민 등 출연. 원작은 1988년 5월 <문학과 사회>에 발표된 최윤의 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주제가: 1996년 이정현 노래. 신중현 작사·작곡. 원곡은 1969년에 발표된 이정화의 노래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1998년 1월 피카디리 등에서 개봉. 허진호 감독. 한석규,
[JTBC] “인정하고 사과해야…” 30년째 피해자 돕는 ‘일본의 양심’
야노 히데키 “피해자들 살아계실 때 해결됐으면” [앵커] 정부의 이런 외교 행보,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벌써 30년 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싸움을 돕는 일본인, 야노 히데키 씨를 신진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도쿄 일본제철 본사 앞/2011년 7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 앞을 찾았습니다. 보안요원이 제지하자, 한 남성이 나섭니다. [{찍지 마세요.} 무슨 권한으로 이럽니까?] 야노 히데키입니다. 평범한 도쿄 공무원이었던 그의 인생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하고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야노 히데키 : 끔찍한 전투에 투입됐고, 그런 뒤 일본과 (남양군도에) 남겨졌습니다. 풀, 도마뱀, 뱀 같은 것을 먹으면서 (버텼습니다.)] ‘사람이라면 가만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1995년부터 피해자들의 소송을 도왔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힘을 보탠 게 30년입니다. 소송에서 계속 졌지만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전범기업이 배상하라’ 2018년 우리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왔습니다. 뛸 듯이 기뻤지만 그만큼 슬펐습니다. [야노 히데키 : 이춘식 할아버지가 그러더군요. 지금 여기에 (또 다른 피해자인) 여운택 씨, 신천수, 김규수 씨는 없다. 나만 남았다…] 아직까지 달라진 게 없어 더 그렇습니다. [야노 히데키 : 일본 정부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것을 강경하게 밀어붙이면서…] 일본은 정부며 기업 할 것 없이 버티고, 최근 우리 정부는, 우리 기업 출연금으로 배상하는 ‘제3자 변제안’을 내놨습니다. [야노 히데키 : 가해의 당사자가 제대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보상하고, 재발
[소년중앙] 식민지 조선인 생활 엿보고, 독립투사 묘역 참배…용산으로 떠나는 일제강점기 역사 여행
일제강점기,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한 3·1운동이나 봉오동·청산리 전투 같은 독립군의 활약, 조선총독부의 무자비한 탄압 등 많은 게 생각날 겁니다. 일제강점기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1910년 국권을 강탈당하며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 1945년 8‧15광복을 맞아 해방되기까지 35년간 식민통치를 받았던 시기입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인 일제강점기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서울 용산으로 떠났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찾은 서울시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와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 빛나는 항일투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 역사박물관입니다. 독도 강치 조각상 옆 문을 열고 2층에 올라가면 4가지 주제로 구성된 상설전을 관람할 수 있어요. 박서후·이윤슬·조현하·홍원교학생기자는 김종욱 사무국장을 따라 상설전시실로 향했죠. 네 사람은 ‘일제는 왜 한반도를 침략했을까’란 질문과 함께 전시 1부를 여는 영상을 유심히 봤습니다. 김 사무국장은 “소년중앙 학생기자단 여러분처럼 일본이 왜 우리나라를 침략했고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어떻게 약탈·지배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며 “박물관 등 국내 많은 전시공간이 있지만 그 부분을 전문적으로 자세히 다루는 곳은 없어 일제의 지배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을 시작했죠. 2024년 올해는 동학농민운동과 이를 빌미로 한 청일전쟁이 일어난 지 130주년이 됩니다. 먼저 화려한 색채로 청일전쟁을 묘사한 일본 판화 ‘니시키에’ 두 점이 눈에 띄었죠. 그 옆에는 우리나라 지도 모양의 주사위 놀이판이 있었어요.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에 완승한 일본은 승리를 축하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강력한
[보도자료] 윤석열·기시다 한일 정상회담 규탄행동 (5.26)
[보도자료] [바로가기]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보도자료 수신: 각 언론사 정치, 사회, NGO 담당 기자 문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사무국장 정은주 010-9458-9439 배포: 2024년 5월 26일(일) 윤석열-기시다 한일 정상회담 규탄행동 2024년 5월 26일(일) 16시, 용산 대통령실 앞(전쟁기념관 앞)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일협정 60년, 새로운 한일관계 선언’ 논의될 것으로 예상 대일 굴종외교로 일관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할 ‘새로운 한일관계 선언’, 안봐도 굴욕적 정의롭고 평화로운 한일관계 원하는 시민들 규탄행동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등 직접 참석 오늘 5월 26일(일),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방한한 기시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과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합니다.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작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동원 문제를 굴욕적으로 해결해 한일 정상회담을 구걸한 후 약 1년만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라인야후’ 사태, 그리고 내년 한일협정 60년을 맞아 발표할 새로운 한일관계 선언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1년,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해법 ‘제3자 변제’부터 시작해,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용인, 독도 침탈 야욕 묵인, 일본의 사도광산 역사왜곡 소극적 대응, 최근에는 ‘라인야후’까지 대일 굴욕외교, 굴종외교로 일관해왔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종외교로 한국은 역사, 영토, 기업까지 일본에 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1년, 윤석열 정권은 ‘한일 간 셔틀 외교 복원’을 성과로 내세워왔지만, 그 정확한 실체는 ‘일방적 대일 퍼주기’와 ‘국민적 굴욕감’뿐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올해에만 독도,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오마이뉴스] 히로히토 자리에 이승만을 놓은 친일파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백한성 이승만이 임시정부에서도 탄핵되고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쫓겨난 원인 중 하나는 사고방식과 직책의 부조화다. 군주제 사고방식을 가진 그가 민주공화국 임시 대통령과 대통령직에 앉은 것이 화근이다. 독립운동가 대부분은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되찾는 것뿐 아니라 일본과 판이한 정치체제를 세우는 것까지 열망했다. 그들이 1919년 3·1운동 직후에 대한’제’국 임시정부가 아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선포한 것이 그 실례다. 그들은 군주국 일본과 전혀 다른 민주공화국을 꿈꿨다. 신채호나 박열 같은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까지 꿈꿨다. 신채호는 1923년 1월에 김원봉의 의열단을 위해 써준 ‘의열단 선언’에서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라고 천명했다. 그 꿈을 위해 그들은 독립운동에 생을 걸었다. 그런데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했다면서도 사고방식이 독특했다. 1954년에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으로 종신집권의 길을 터놓은 것은 그가 민주공화정보다는 군주제에나 어울리는 인물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양녕대군 16대손인 그는 조선왕조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군주의 꿈을 펼쳤다. 일왕은 스스로를 신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인간의 나라에서 신을 자처하며 숭배를 받았다. 신이 아닌데도 신을 자처하는 모습은 일본 내에서는 진지하게 보일지 몰라도 제3자들의 눈에는 우스꽝스럽게 비쳐졌다. 이승만도 다를 바 없었다. 민주공화정이 선포된 나라에서 그는 군주의 길을 걸었다. 그런 이승만이 지지자들의 숭배를 받는 모습 역시 진지해 보이면서도 우스꽝스러웠다. 진지해 보이지만 우스꽝스러운 일왕 숭배와 이승만 숭배에 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