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세계일보] 역사·정치적 견해차에 건립·철거 반복… “사회적 합의 중요”

2024년 1월 30일 285

[기사원문] 세계일보(2024-01-29)☞ 역사·정치적 견해차에 건립·철거 반복… “사회적 합의 중요” [심층기획] 사회 갈등 ‘시한폭탄’ 동상 건립 최근 보훈부 이승만기념관 건립 추진 동상 철거 40년 만에 논란 가열 조짐 2023년 육사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시끌 동상화 된 인물 업적 놓고 평가 엇갈려 전문가 ‘공론화 통한 공감대 형성’ 강조 “‘만들고 보자’식의 건립 갈등 불씨 키워” —————– <중략> ——————– ◆“역사 퇴행”… 동상 건립 놓고 갈등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복원 문제는 찬반 논란이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존 동상이 철거된 지 40여년 만이다. 29일 인하대 총동창회 등에 따르면 이승만 동상은 1979년 인하대 교내에 높이 6.3m 규모로 건립됐으나 5년 만에 철거됐다. 당시 학생들은 독재와 친일 행적을 문제 삼으면서 민주화 시위 중 그의 동상을 밧줄로 묶어 끌어내렸다. —————– <중략> ——————– ◆이전·철거 놓고도 찬반 시끌 동상 이전과 철거도 갈등을 낳는다. 지난해 8월 육군사관학교는 독립군 홍범도 장군 흉상을 외부로 이전하는 문제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육사 교내에 있는 독립운동가 6명의 흉상 이전을 발표하면서다. 흉상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3·1절에 장병들이 사용한 탄피 300㎏을 녹여 제작했다. 육사는 소련 공산당 입당 전력 논란이 제기된 홍 장군의 흉상은 육사 교정 밖으로 옮기고 지청천·이범석·김좌진 장군 등의 흉상은 교내 육사박물관 등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상세는 기사원문>———————————————–

[오마이뉴스] ‘로비의 달인’의 노골적인 친일 구직

2024년 1월 29일 213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윤갑병 1919년 3·1운동은 일본을 멈칫하게 했다. 강압적인 무단통치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하게 만들었다. 3·1운동 뒤에 취임한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은 전임 총독들이 즐겨 쓰던 ‘동화’라는 용어의 사용도 극도로 절제했다. 1919년 8월 30일 자 <매일신보> ‘조선통치방침’에 따르면, 사이토 신임 총독은 “종래 조선 통치를 언론하난 자는 필히 내선인의 동화를 태급히 하난 고로 기처(其處)에 난관이 생하난도다”라고 말했다. 내지인과 조선인의 동화를 너무 급히 추진해 거기서 난관들이 생겼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러면서 “백년 후의 동화를 망(望)함이 근본적 통치이라”라고 말했다. 동화정책을 천천히 추진하겠다며 한국인들을 안심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를 세워 독립운동을 업그레이드시킨 반면, 친일파들은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 ‘포스트 3·1운동’에 대비해 나갔다. 이 시기 친일파들이 어떤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국민협회에 참여한 윤갑병의 사례다. 1919년 8월에 결성된 협성구락부를 모체로 1920년 1월 18일 설립된 것이 국민협회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제3-3권 국민협회 편에 따르면, 이 단체는 설립 취지문에서 “일본은 이미 옛날의 일본이 아니라 조선의 토지와 인민을 포괄하는 새로운 일본이 되었다”라며 “바꾸어 말하면 일본민족만의 일본이 아니라 일·선 양 민족의 일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나타난 신일본주의의 핵심 메시지는 일본과 더불어 한국도 주체가 되는 신일본이 형성돼 있으니 일본에 적개심을 품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위 취지문은 “우리는

[성명] 일제강제동원 소송 대법원 판결에 대한 성명_호쿠리쿠 연락회

2024년 1월 29일 347

[성명] [다운로드] 일제강제동원 소송 대법원 판결에 대한 성명_호쿠리쿠 연락회 한국 대법원은 오늘, 후지코시 강제 연행 소송에서 피고인 후지코시의 불법 행위를 인정하여, 원고들에게 배상할 것을 명했다. 이에 의하여, “일본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 과정에 적극적으로 편승한 반인도적인 행위이며, 피고는 실로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고 회피하고 있다”고 전범 기업 후지코시를 단죄한 2심 판결이 확정했다. 우리는, 원고단이 목숨을 걸고 싸운 투쟁에서 쟁취한 이 승리를 함께 환영한다. 2018년의 징용공 소송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정부는 징용공을 “구조선반도출신노동자”라고 이름을 바꾸어서 말하여, 전시 동원 문제를 1965년의 한일 조약으로 “모두 해결된 것”이라고 주장해 오고 있다. 침략· 식민지배의 역사 사실을 부정· 위조하며 스스로의 전쟁 범죄를 적반하장으로 오만하게도 한국에 굴복을 강요해 오고 있다. 그리고 식민지 지배하에, 한반도부터 어린 소녀들을 1000명 이상이나 동원한 후지코시는, 일본의 재판소도 인정한 역사적 사실을 맞서서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런 주장을 새삼스럽게 부정했던 것이다. 사실을 지울 수는 없다. 원고단을 비롯한 한국 민중의 투쟁에 의하여, 여기에 원고들이 승소 판결을 쟁취한 역사적 의의는 크다. 1992년부터 시작되는 후지코시 재판 투쟁은, 독립 운동으로 죽어 간 의사들의 뜻을 계승하여, 일본의 재침략을 막아 내는 투쟁이었다. 일본에서의 제1차 소송은 2000년에 승리하여 “화해”를 쟁취했고, 제2차 소송으로 인계되었다. 그러나, 일본 사법부는, 후지코시가 행한 감언에 의한 “권유”의 실태를 사실 인정하여, “공짜로

[새책소개] 『역사와 책임』 제13호 (통권 13호)

2024년 1월 23일 579

『역사와 책임』 제13호 보도자료 <다운로드> 바로가기 >>>☞ [도서구매]  영화 ‘서울의 봄’이 관람객 천만 명을 돌파하면서 올해 연말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흥행 성공도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 또한 놀랍다. 전체 관람객 중 이른바 MZ세대를 포함하여 20-30대의 비중이 매우 높다고 한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SNS를 통해 ‘N차 관람 인증샷’이니 ‘심박수 챌린지’니 하는 놀이를 공유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서울의 봄’ 상영 덕분에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관련 서적의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소식까지. 정말 예상치 못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왜일까? 우선 영화 자체의 요인으로는 스릴러로서 매 장면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는 짜임 있는 구성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이 영화의 스토리 또한 12‧12 쿠데타라는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아마도 일차적 분노 유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내의 사조직, 하나회의 행동에는 권력에 대한 욕망 외에 그 어떤 명분도 찾아 볼 수 없다. 1979년 10월 16일~19일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민항쟁(부마민주항쟁)이 있었고, 그 여파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한 10.26 사건으로 인해 7년간 유신정권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유신정권의 붕괴와 함께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민주화

[오마이뉴스] 약산 김원봉의 네 형제가 학살당한 발굴지를 향하여

2024년 1월 26일 336

[다시 만날 그날까지 21] 경남 밀양편 필자는 발굴사업이 있을 때는 발굴 다니고 그 외는 경남지역의 5권의 증언록을 토대로 18개 시∙군의 유족들 사연과 매장지 현장 답사해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민간인 학살지의 실태를 살펴보고 있다. 이번엔 경남 밀양 편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경남지역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지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밀양지역은 “국군이 방어에 성공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1950년 7월부터 8월까지 밀양지역 국민보도연맹원, 예비검속자들은 밀양경찰서 및 관할지서 경찰과 경남지구(CIC)에 의해 연행되거나 소집, 통보받고 자진 출두 후 옛 삼랑진 면사무소 건물, 삼랑진 지서, 삼랑진역 홍익회(전신 강생회)지하창고 등에 구금됐다가 1950년 8월 중하순경 삼랑진읍 미전고개, 안태리(동촌마을) 송지리(죽곡마을), 검세리(작원관지), 청도(곰티재) 등으로 끌려가서 고귀한 생명들이 억울하게 집단 학살을 당했다. 밀양지역은 대략 1차례부터 5차례 학살을 자행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학살지마다 상세히 조사해 보면 학살책임자들이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드문 일 중 하나다. 또한 학살책임자의 직책 중 눈에 띄는 단어가 나온다. “해군CIC, 해양공사, 해군헌병대” 등 해군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 의외이다. 아마도 낙동강 하류 “작원관지 수장” 피학살자가 많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필자가 밀양지역 여러 자료와 답사한 결과에 의하면 피학살자가 820여 명 이상 추정된다. “증언자 이정우는 삼랑진읍에 살았기 때문에 ‘전역 학살지’의 학살 인원을 가름하기 어렵지만 보도연맹원들 기차에 태워서 데리고 왔다면 인원이 적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밀양 사람뿐만 아니라, 덕산,

[프레시안] “하루 5명 해부했다”…독립군 ‘마루타’로 죽이고, ‘벼룩 폭탄’ 만든 악마들

2024년 1월 26일 779

[기사원문] 프레시안(2024-01-20)☞ “하루 5명 해부했다”…독립군 ‘마루타’로 죽이고, ‘벼룩 폭탄’ 만든 악마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5] 생체 실험과 세균 전쟁 ④ —————– <중략> ——————– 말뚝에 사람 묶고 탄저균 생체실험 일찍이 이시이 시로의 731부대는 문제의 탄저균 개발에 나섰다. 731부대가 ‘악마의 부대’라 비난을 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살상무기를 개발하면서 산 사람을 생체실험으로 희생시켰다는 사실이다. 아래에 옮긴 글은 만주 벌판의 야외시험장에서 이뤄졌던 탄저균 실험 상황이다. 이 글을 간추린 ‘전쟁과 의료윤리 검증추진회’는 이른바 ’15년 전쟁'(1931년 만주침공~1945년 패전) 동안 일본이 저질렀던 전쟁범죄와 책임을 규명하려는 양심적 의학자·의사들의 모임이다. [대부분은 사람을 말뚝에 묶고 헬멧을 씌우고 갑옷을 입혔다. 지상에서 고정해 폭발하는 것, 비행기에서 투하된 시한 기폭 장치가 설치된 것 등 각종 폭탄으로 실험했다. (한 실험에서) 10명 가운데 6명의 혈액에서 균이 발견됐고, 이 중 4명은 호흡기로부터 감염됐다고 추정했다. 4명 모두 사망했다. 이 4명과 일제히 폭발한 9개의 폭탄과의 거리는 25m였다](전쟁과 의료윤리 검증추진회, <731부대와 의사들>,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4, 32-33쪽). ———————————————-<상세는 기사원문>———————————————

[서울앤]강북구, 늦봄 문익환 30주기 특별전 ‘다시 오는 늦봄’ 개최

2024년 1월 26일 345

강북구가 7월말까지 근현대사기념관에서 늦봄 문익환 30주기 특별전 ‘다시 오는 늦봄’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늦봄 문익환 목사의 30주기를 맞아, 재야 민주 인사로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에 매진했던 그의 일생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늦봄 문익환 목사는 1918년 만주 북간도 명동촌 출생으로 1947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후 구약학자로 구약 성서 번역에 공헌했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계기로 재야 민주 인사로 변모해 ‘3·1민주구국선언’을 기초하면서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에 앞장섰으며, 통일 운동에도 매진해 재야 통일 관련 단체의 구심점이 됐다. 이런 활동들로 10여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1992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같은 해 제3회 4월혁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특별전은 문익환 목사의 일생을 시기별로 4부로 구성해 전시한다. △1부 ‘북간도의 아들(1918~1945)’은 북간도 명동촌의 수막새 기와와 민족시인 윤동주와 함께 찍었던 사진 등이 전시된다. △2부 ‘하느님 말씀에 충실한 신학자(1945~1976)’는 기독교 신앙인 신학자로서 구약 성서를 번역하기 위해 썼던 구약 성서 원고지 초고, 인쇄 교정본 등이 전시된다. △3부 ‘시대의 어둠을 밝힌 민중의 지도자(1976~1989)’는 수감 당시 입었던 수의와 국가지정기록물 제15호로 지정된 옥중편지, 이한열 장례식 영상 등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 유물들이 전시된다. △4부 ‘분단을 뛰어넘는 통일의 선구자(1989~1994)’는 1989년 문익환 목사 방북 시 북한과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된 4.2공동선언문, 방북 영상, 문익환 목사의 별세 전날 사진 등이 전시된다. 이외에도 문익환 목사가 발간한 다섯 권의

[노컷뉴스] 日 강제징용 최종 승소…피해자 “14살에 가서 90살 됐다”

2024년 1월 26일 269

[기사원문] 노컷뉴스(2024-01-25)☞ https://www.nocutnews.co.kr/news/6084934 변호사 “일본제철, 미쓰비시, 후지코시 판결금 지급해야” 피해자 “90살 넘도록 죽지 않고 이 세월을 기다려” “일본에서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보상해주길” 대법원은 고(故) 김옥순 할머니 등 여자정신근로대 5명이 일제강점기 때 군수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각 1억 원의 손해배상과 지연 이자를 청구한 소송 상고심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 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상세는 기사원문>—————————————- ※관련기사 ☞한겨레: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들 최종 승소…11년 동안 15명 세상 떠나 ☞MBC뉴스: 강제징용 판결에 일본 “유감”‥정부 “한일 간 긴밀 소통 중 ☞오마이뉴스: 일본 시민단체 “전범기업 ‘후지코시’ 한국 사법부 판결 따르라”

민족사랑 2024년 1월호

2024년 1월 25일 1031

[바로보기] * 왼쪽 바로보기로 들어가셔서 표지의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영상] 소설가 현기영에게 제주 4‧3항쟁을 묻다 | 현기영 소설가와의 대담

2024년 1월 25일 285

이 대담은 현기영 작가의 최근작 『제주도우다』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대담의 전문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술지 『역사와 책임』 13호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현기영 작가와의 대담> ☞ 영상 : 소설가 현기영에게 제주 4‧3항쟁을 묻다 | 현기영 소설가와의 대담 ☞ 새책소개 : 『역사와 책임』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