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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일본이 제공한 공짜여행, ‘귀족관광단’의 실체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이기용 엔화가 1달러당 150엔을 넘나들고 있다. 1990년 이후 33년 만의 역대급 엔저가 이어지면서 원화를 값싼 엔화로 바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1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인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11월 환전거래의 52.5%가 엔화 환전이었다. 한국인의 일본 관광도 증가하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11월 15일 발표한 추계치에 따르면, 지난 10월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은 251만 6500명이고 한국인은 25.1%인 63만 1100명이다. 전체 외국인 숫자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0월보다 0.8% 증가한 데 비해, 한국인 숫자는 무려 219.9% 증가했다. 엔저가 한국인들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는 최근 현상을 반영하는 통계치다. 역대급 엔저가 아닌 ‘역대급 한저(韓低)’가 한국인들을 현해탄 너머로 실어나르던 때가 있었다. 대한제국의 국운이 바닥을 칠 때인 1909년 4월 11일, 90여 명의 한국인들이 지금의 서울역인 남대문역에서 대대적인 환송을 받으며 일본 여행에 나섰다. 이토 히로부미가 만든 한국통감부 기관지를 모체로 하는 경성일보사가 모집한 제1회 일본관광단이었다. 일본관광단 2005년에 <동양학> 제37집에 실린 박양신 당시 단국대 연구교수의 논문 ‘일본의 한국병합을 즈음한 일본관광단과 그 성격’은 대한제국 멸망 4개월 전인 1910년 4월의 제2회 일본관광단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친일파 박기순이 히로시마 해군공장을 보고 나서 “혼백이 자빠지고 신(神)이 놀랄 만하다”며 감탄한 일을 소개한다. “이 관광단을 전후해서 관광단의 이름이 붙은 일본 관광은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졌다”고 논문은 말한다. ‘한저’에 편승해 일본이 부추긴 관광 붐은 대한제국 멸망 2개월 뒤인
[오마이뉴스] 불과 60미터… 친일판사와 애국지사의 불편한 동거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 민복기와 이초생, 상록회 4인이 함께 안장된 모순된 상황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 18호에 안장된 민복기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입니다. 민복기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데는 민족혁명당 활동으로 체포된 이초생의 재판과 강원도 춘천의 비밀결사 조직 상록회(常綠會) 사건 재판을 들고 있습니다. 독립운동 나선 이초생과 상록회 이재상으로도 불린 이초생은 1930년 상해로 건너간 후 1935년 12월에 문일민의 권유로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한 후 독립운동에 나섰습니다. 1938년에는 일본군에 밀려 중국 한구(漢口)에서 중경(重慶)으로 후퇴하는 도중, 사천성(四川省)에서 조선민족혁명당 당원 60여 명과 함께 3.1절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애국가를 불렀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유지를 계승해 분투를 역설하는 등 독립정신 계몽에 적극적으로 앞장섰습니다. 그러다 그해 10월, 일본군 점령 아래 있는 남경(南京)에 침투해 공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초생은 국내로 압송돼 1939년 12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상록회는 강원도 춘천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일제의 민족차별교육에 반대하며 1937년 3월에 조직한 항일 학생결사 조직이었습니다. 상록회의 활동은 월례회·토론회·독후감발표회 및 귀농운동 등으로, 주로 독서 활동을 통해 항일의식을 고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상록회 회원들은 졸업 후에도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각기의 정착지에서 새로운 상록회 조직을 결성하면서 춘천뿐 아니라 만주 등지에서도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38년 가을, 춘천에서 상록회의 조직과 활동이 일경에 발각돼 무려 137명이나 연행됐고, 그중 12명이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1939년 12월 27일에 진행된 선고 재판에서 남궁태,
[팟캐스트] 역발상 시즌2_대중가요의 역사 ‘가왕열전 8편 서태지와아이들’
☞ (11.14) ‘역발상’ 시즌 2: 대중가요의 역사 ‘가왕열전 8편 서태지와아이들’ 출연:이준희(옛가요 전문가) 이영미(대중문화 평론가) 오늘의 이야기:가왕 열전 8편 서태지와아이들 서태지 1972~. 서울 출생. 본명은 정현철 한국 대중음악 한 세기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인물 이전 가왕들과 비교하면 과연 가왕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있기도 한, 문제적 가왕. : 전성기가 너무 짧다. 1992~1995의 4년뿐. 1. 시나위와 이태원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비주류 영역이었던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에 베이스 연주로 참여. 역시 비주류 영역이었던 이태원 클럽 씬(‘아이들’의 놀이터)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태동 2. 사상 초유의 화려한 등장: <난 알아요>(서태지 사·곡, 1992년) 생경한 충격으로 첫 방송 이후 한 달 만에 대세로. 1992년이란 해에 주목할 필요. 대중예술사에서 1990년대의 시작은 1992년. 영화에서 프로듀서 주도의 제작과 로맨틱코미디의 시대가 열린 해(결혼이야기), TV드라마에서 16부작 미니시리즈의 트렌디드라마가 시작된 해(질투).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있던 해로 군인 출신 대통령의 시대가 끝나리라는 것이 명확해보였던 해. 따라서 ‘군부독재’ 운운하던 민주화운동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진 시대의 시작. 소련 붕괴로 양극체제의 냉전에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단극체제의 시작. 즉 포스트모더니즘, 페레스트로이카 등의 말이 날아다니던 해. 3. 노래의 왕이긴 한가?: (서태지 사·곡, 1995년) 가수의 기본 덕목이라 여겨졌던 ‘가창력’ 문제를 사뿐히 즈려밟고 등극한 가왕 표현과 전달에 초점을 맞춘 개성이 가창력에 우선. e.g. ‘정주영 랩’ : 스탠더드팝의 안정감, 포크의 순수함, 록의 반항적 비극성과 진지함, 발라드의
[한겨레] “협박·유혹에도 진리와 자유 위해 날았던 ‘고독한 독수리’”
[가신이의 발자취] 윤형두 범우사 창립자를 기리며 윤형두 회장님, 이렇게 인생무상을 상기시키며 기어이 떠나시는군요. 애칭이었던 고독한 독수리처럼 12월3일, 겨울의 찬 하늘로 훨훨 날아가시고 말았군요. 출판인이자 출판학 교수, 애서가이면서 장서가를 겸한 데다 범우출판문화재단을 설립, 출판 관련 전공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까지 쾌척해가며 출판문화의 창달에 앞장섰던 분, 서구 지향적인 출판 풍토에서 새 출구 모색으로 중국의 출판계와 각별한 관계를 맺어 마오쩌둥을 비롯해 덩샤오핑 등 여러 선집을 출간한 단행본 출판계의 맏형이었던 윤형두 회장님. 도서 출판 범우사의 사훈인 ‘진리와 자유를 위하여’에 걸맞게 독수리를 심벌로 삼았던 회장님. 회장님은 저명한 수필가에다, 산악인으로도 맹활약하셔서 세계 명산을 두루 올랐지요. 덕분에 노익장을 과시했건만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해 가던 중 형님 아우 사이였던 한승헌 변호사가 지난해 4월 작고하자 그 허전함을 못 견뎌 하며 저에게 “우리 죽기 전에 자주 만납시다”라더니 올해 들어 유독 인생무상을 절감하면서 점점 외출이 힘들어졌습니다. 위독 상태와 회복의 낭보를 거듭하면서 정신이 맑아지면 “우리 목소리라도 들읍시다”라는 전화를 무시로 하고, 곧 외출이 가능해지면 꼭 점심 함께하자는 다짐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그예 전화도 못 하신 채 떠나버리신 안타까움. ‘신세계’ 등 기자로 활동하며 김대중 등 야권 거물들과 인연 김상현과 월간 ‘다리’ 펴냈다가 필화 조작 사건 휘말리기도 출판 전공자에 장학금 쾌척하고 중국 선집 등 새 출구 모색한 단행본 출판계의 맏형 회장님의 부음을 듣는 순간, 제 뇌리에는
[YTN라디오] 하와이 이민 120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불온문서] 1, 2편
<YTN라디오 특집 다큐멘터리> ☞ 하와이 이민 120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불온문서] || 제1편 “돈립, 알로하!” ☞ 하와이 이민 120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불온문서] || 제2편 “응답하라! 1916” ☞ [불온문서] 애국창가 복원 프로젝트 || 라포엠 – 애국가 ☞ [불온문서] 애국창가 복원 프로젝트 || 안예은 – 대한혼 ☞ [불온문서] 애국창가 복원 프로젝트 || M.TySON – 정신가 ☞ [불온문서] 애국창가 복원 프로젝트 || 첼리스트 박상민 – 한반도가 ☞ [불온문서] 애국창가 복원 프로젝트 || 리본 합창단 – 국민군가
[한겨레] “학살자 전두환 잠들 곳 없다”…파주 민관정, 유해 안장 반대 한목소리
파주시 장산리 안장 움직임에 시민단체·지역구 의원 거센 반발 파주시장도 “결사적 반대” 밝혀 [기사 발췌] 전두환씨 등 신군부가 1979년 12월12일 주도한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12일째인 3일 관객 수 400만명을 넘긴 가운데, 최근 전씨 유해가 안장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경기 파주시는 시장이 앞장서 “결사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 학살로 대한민국 민주화의 봄을 철저히 짓밟고,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의 유해를 파주에 안장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시장은 “개인적으로, 또 정치인으로서 전두환 유해 파주 안장을 결사적으로 반대한다”며 “현재까지 시에 토지 사용에 대한 어떠한 문의가 오거나 행정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동향을 살피고 엄정하게 조처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중략…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파주 지역 시민단체 11곳은 지난달 30일 파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살자 전두환의 파주 매장을 반드시 막아내겠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장산리는 임진강과 북녘땅 개성이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조망을 갖춘 장소이자, 각종 평화통일 행사를 열어왔던 남북 화해의 상징적인 장소로 그 의미가 파주시민들에게 남다른 곳”이라며 “그런 장산리에 쿠데타, 광주학살, 군부독재, 민중 탄압의 상징인 전두환이 묻힐 자리는 없다. 나아가 파주 그 어디에도 학살자 전두환을 편히 잠들게 할 곳은 없다”고 주장했다. …중략…. 정치권도 유해 안장 움직임을 저지하고 나섰다. 파주를 지역구로 둔 윤후덕·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오마이뉴스] ‘서울의 봄’, 윤석열 정부 떠오르는 몇 장면에 소름
[이게 이슈] ‘검찰 공화국’이 된 현실을 떠올리게 한 영화 <서울의 봄> “저런 때려죽일 놈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옆에 앉아있던 한 관객이 내뱉은 말이다. 쿠데타 성공을 자축하는 반란군들의 파티 모습과 그들에 맞서 싸운 이들이 붙잡혀 고문당하는 모습이 교차하는 장면에서다. 군가 ‘전선을 간다’에 맞춰 12.12 군사 반란 이후 부와 권력을 독식한 신군부의 행적이 자막으로 흐르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영화 <서울의 봄>은 여러모로 ‘불편한’ 영화다. 오래되지 않은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인 탓도 있지만, 불의가 정의를 무참히 짓밟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게 고통스럽다. 오죽하면 관객들끼리 심장박동으로 스트레스 지수를 재는 챌린지까지 벌이겠는가. 개인적으로도 최근 가장 견디기 힘든 2시간 20분이었다. 내로라하는 초호화 캐스팅이지만, 배우들의 아우라가 느껴지진 않는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여서 그들의 연기보다 대사에 더 주목하게 된다. 더욱이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비가 극명해 보는 내내 숨 돌릴 겨를조차 없다. 근래 제작된 영화 중 이처럼 내용부터 인물에 이르기까지 선악의 이분법으로 확연하게 갈리는 작품은 드물다. 이태신 수경사령관(정우성 분)을 정의로운 군인의 표상으로 설정한 까닭에 반란군의 수괴인 전두광(황정민 분)의 악행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영화의 결말을 뻔히 아는데도, 관객들은 숨죽이며 이태신 사령관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아마도 사건 이후 이태신 사령관의 실제 모델이었던 장태완 장군의 아픈 가족사가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이 됐을 것이다. 주인공은 전두광이지만, 관객들의 뇌리에는 단연 이태신이 우뚝하다. 국방을 책임지는 장관조차 반란군의
[오마이뉴스] 유일하게 사형선고 받은 악질 친일파, 그의 ‘죄목’은…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김덕기 반민특위에 의한 친일 청산이 무산됐다지만, 단 한 명도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제3-1권은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에 근거한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정리하는 대목에서 “1951년 2월 2대 국회의 의결과 이승만 대통령의 공포에 의하여 반민법과 관련된 모든 판결을 무효화하는 법률이 제정되어 그 효력이 없어졌다”라고 기술한다. 그런데 친일 청산이 그렇게 무효가 되기 전까지 잠깐이나마 ‘옥고’를 치른 친일파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사형선고까지 받은 경우도 있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단 하나, 친일 경찰 김덕기다. 혼자서만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유일한 최악질 친일파였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김덕기가 사형을 선고받은 날은 1949년 7월 1일이다. 이 시점은 친일파 시위대가 국회 앞에서 시위하고(6.2) 반민특위를 공격하고(6.3)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6.6)하는 등의 흐름이 이어지던 때였다. 반민특위가 무력화된 뒤였기 때문에 최악질 친일파들을 추가로 체포하고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기가 힘든 시점이었다. 최악질 친일파들이 법의 심판대에 제대로 올려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김덕기가 유일하게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그의 죄질이 가장 나빴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반민특위가 무력화된,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 상태에서도 혼자서만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은 그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유일한 최악질’이라고는 말하기는 힘들어도 사형을 받을 만한 악질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1000명 이상 검거한 친일 경찰 김덕기는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조선을 장악하기 4년 전인 1890년에 강원도 양양에서 출생했다. 조선총독부 설치 이듬해인 1911년에 관립
[오마이뉴스]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유가족을 찾습니다
[사수만보] 항일운동가 이관술의 손녀딸 손옥희의 호소 ② 손옥희는 할아버지의 동경고등사범 사진에서 눈을 거두고 호소문을 이어서 써갔다. 쓰면서도 멈칫멈칫한다. 과연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구속자의 유족은 모일 수 있을까? 골령골 유족은 수천 명에 이르고 불법학살임이 분명하지만 정판사 피고인은 열명에 불과하고 경제사범, 파렴치범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70여년 가까이 꼭꼭 숨어 지냈을 터인데 과연 모일 수 있을까? 모인다고 제대로 힘을 낼 수 있을까? 손옥희는 그래도 모이면 힘이 날거야 자신을 달래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을 현장에 나오셔서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란 마지막 구절을 눌러썼다. 안재성 작가의 <1902~1905 이관술>이 나온 이후 손옥희의 발걸음은 더 바빠졌다. 그는 할아버지의 조그만 행적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어디든지 갔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며느리이면서 이관술이 동덕여고에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준 손응교를 성주 대가면 사도실마을을 찾아가 만났다. 거기서 수배중인 이관술이 “대구경찰서 앞에서 (일경의 동태를 살피려) 구두닦이를 했다”라는 회고를 들었다. 또 손응교는 이관술이 대전 골령골에서 7월 초순에 학살되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전에는 돌아가신 날을 몰라 생신날인 4월 26일을 기일로 해서 제사를 모셔오던 터였다. 또 박헌영의 아들로 평택의 만기사 주지였던 원경 스님을 만났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관술, 그의 누이 이순금과 경성콤그룹사람 손에 컸다고 회고를 한 바 있다. 나아가 1기 진화위에 진실규명을 요청했고 손해배상소송까지 진행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건 ‘위조지폐’ 사건의 주모자란 누명, ‘위조지폐’ 사건이 날조되었음을 밝히는 문제였다. 사실 이는
[굿모닝충청] [특별기획] “일제 잔재 청산은 시대 정신”…6년 성과 보니
[굿모닝충청-충남교육청 공동캠페인] ⑩-1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 최종보고회 [기사 발체] 충남교육청이 2018년부터 추진한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 사업 활동이 뚜렷한 성과를 내고 마무리됐다. …중략… 교육청은 30일 오후 천안시 소재 독립기념관 겨레누리관(컨벤션홀)에서 김지철 교육감과 한시준 독립기념관장, 박종덕 천안교육장, 학교장과 업무담당자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 사업 최종보고회를 개최했다. 보고회는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 유공 기관과 유공자 표창, 일제 잔재 청산 위원 감사패 증정, 교육감 인사말, 축사,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의 특강, 최충식 민주시민교육과 시민교육팀장의 경과보고 순으로 진행됐다. …중략… …중략… 교육청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1기, 2021년부터 2023년까지 2기로 나눠 사업을 추진했다. …중략… 일제 잔재 정리 범위를 송덕비, 동상 등 학교 시설물로 넓혀 조사를 실시했으며, 7월에는 일본 향나무(가이즈카)를 제거하기도 했다. 학교 희망을 받아 나무를 교체한 곳은 56개교에 달하며, 4개교는 머릿돌 철거 또는 안내문 설치 후 교육자료로 활용 중이다. …중략… *이 기사는 충남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2023-11-30> 굿모닝충청 ☞기사원문: [특별기획] “일제 잔재 청산은 시대 정신”…6년 성과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