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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 시즌3] 드라마로 보는 대중가요사 6부 “TV 드라마 주제가 (3)”
☞ (11.19) ‘역발상’ 시즌 3: 드라마로 보는 대중가요사 6부 “TV 드라마 주제가 (3)” 출연:이준희,이영미 오늘 이야기 : TV 드라마 주제가 3편 ■ 티비 드라마 3 2000년대 이후 1. 새로운 드라마를 이끄는 견인 채널의 변화 : 드라마 왕국 MBC가 저물고, SBS를 거쳐 TVN, JTBC. 이후 넷플릭스 등 OTT : 방송사 채널에서는 주로 주중 밤 10시대 드라마가 새로운 경향을 주도. 주말 8시, 일일 8시20분, 아침 드라마 등의 격차가 커짐. 2.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짐 : 특정 시간대 TV 수상기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채널 다툼을 하는 시대는 갔다. 각자 자신의 단말기로 시청. : 컴퓨터로 방송사 사이트에 접속해서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 -> IP TV로 다시보기 -> OTT로 언제 어디서든 시청 -> 유튜브의 ‘짤’로 소비. 3. 드라마 한류를 넘어 K드라마의 시대가 됐다. 0. 미나 (=<지금처럼만>. 2000, 권혜진 작사, 자비스 램 작곡. 2000.4.26~7.6 MBC 수목 밤 9시 55분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 삽입곡. 진선미 테마 1), 류 <처음부터 지금까지>(2002, 류 작사, 오해준·유석준 작곡. 2002.1.14~3.19 KBS 2 월화 밤 9시 50분 드라마 <겨울연가>) 0. 김범수 <나타나>(2010, 김이나 작사, 윤일상 작곡. 2010.11.13~2011.1.16 SBS 주말 밤 9시 50분 드라마 <시크릿 가든> 중) : 멋진 캐리어우먼을 꿈꾸는 신데렐라는 현실 속에서 사라지기 시작. : 누추한 현실을 인정하는 경향. 옥탑방에서 마늘 까기 알바로
[오마이뉴스] 법은 ‘살인 무기’, 재판은 흉내만 냈는데
한국전쟁기 군법회의 판결문으로 진실 규명 뒤집는 진화위 서울시 중구 충무로3가 60-1 남산스퀘어빌딩. 이곳은 옛 일신국민학교 자리이다. 일신국민학교는 1950년 9⸱28 수복 전후 백인엽이 지휘하던 국군 17연대 주둔지 중 하나였다. 1950년 7~8월에 남하하는 전선을 따라 전투를 벌이면서 연기, 공주, 합천, 고령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던 17연대는 9월 중순에는 미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고, 9⸱28 전후에 서울로 들어온 뒤 수도 경비 업무를 하면서 부역 혐의자를 학살했다. 1기 진실화해위 보고서를 보면, 17연대 군인들은 한강 다리 폭파로 인민군 점령기에 서울에 남았던 시민 중 부역 혐의자로 보이는 사람을 끌고 간 뒤 군 주둔지에서 고문하거나 학살하고 부근의 남산에 암매장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17연대의 한 장교는 “얼굴이 하얗고 수염이 긴 자는 피난 못 가고 숨어 있던 자로 봤다.”, “당시 분대장 이상에게 총살권이 주어져 적색분자라고 하면 총살했다.”라고 증언했다. 옛 학살터에 자리 잡은 진화위에 지금 무슨 일이 우연일까, 운명일까.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 지금은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11월 19일 진실화해위 제91차 전체위원회에 기존에 진실규명 결정을 했던 것을 취소하는 안건이 상정된다고 한다. 충남 서천에서 살던 백락정(1919년생)이 그 희생자다. 2기 진실화해위는 백락정이 1950년 7월에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됐다고 지난해 11월 28일에 진실규명 결정했다. 그런데 뒤늦게 군법회의 판결문이 발견됐고 거기에 ‘사형’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는 이유로 1년 만에 진실규명 결정을 취소하려 하고 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에게 군사재판을
[경남도민일보] 친일파 무덤으로 바뀐 사천 단종태실지 환수하나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소재 경상남도기념물 충북지역 단체들, 친일재산 국가귀속 신청 추진 경남지역도 환수 참여 논의 진행 예정 친일파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사천 단종 태실지(경상남도기념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충북지역 시민단체가 친일파 재산 환수운동을 본격화했는데, 그중에 사천 단종 태실지가 있다. 단종 태실지는 훼손된 채 방치돼 있고, 친일파 무덤이 들어서 있다. 최연국(1885∼1951)은 정부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파로 규정한 인물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그는 사천 출신 ‘땅 부자’ 유지였다. 일제강점기 경남평의원과 조선전람회 평의원, 11년 동안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등을 지냈으며, 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단종 태실지에 친일파 무덤이 = 지리산 줄기가 뻗은 사천과 하동의 경계, 사천시 곤명면 서북쪽에 있는 은사리는 예부터 ‘천하명당’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왕실은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태(胎·태반이나 탯줄과 같이 태아를 둘러싼 조직)도 신체와 동등하게 여겨 전국 최고 길지를 찾아 묻는 태실을 조성했다. 사천시 은사리 작은 동산에는 조선 4대 왕 세종과 6대 왕 단종의 태실이 있다. 두 태실은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주민들은 이 두 곳을 태봉(胎峯)산으로 불렀다. 일제강점기 1929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왕조 정기를 끊으려고 모든 왕의 태실을 부수고, 태실에 봉안된 태 항아리를 경기도 양주로 옮겼다. 또한, 태실이 있던 땅을 개인에게 팔았는데 사천 단종 태실지는 최연국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최연국 후손들은 단종 태실지에 그의 무덤을 만들었다. 태실을 알렸던 비석과 석조물은 깨지고, 훼손돼 방치된지 오래다. 무덤 옆에는 최연국과 자손들 공적을
[오마이뉴스] 오물 맞은 대학설립자, 그의 문제적 과거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조동식 일본제국주의가 표방한 교육원칙 중 하나는 내선공학(內鮮共學)이다. 내지인과 조선인이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다는 이 원칙은 1922년 2차 조선교육령에서도 표방됐지만,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제3차 교육령 시행을 앞두고 일종의 전국장학사회의에 참석하고 임지로 돌아간 다케다 평안남도시학관(視學官)은 개정 교육령의 핵심을 지역 언론인에게 브리핑했다. 1937년 12월 2일 자 <조선일보> 4면 좌중간은 브리핑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금후의 교육에 대한 방침은 황국신민으로서의 교육, 내선일체, 인고의 단련 등 세 가지를 주로 한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소학교·중학교·고등녀학교 등은 명년 신학기부터 내선공학으로 하게 되엇스나 급속히는 할 수 업고 순전히 공학을 하기까지에는 학교조합 관계도 잇서 구체화될 때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터이다.” 한국인과 일본인뿐 아니라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공부하는 장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다케다 시학관의 말에서도 나타나듯이 일본은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선공학 전환을 추진했다. 내선공학의 전제조건인 내선평등이 요원한 상황에서 내선공학 전환부터 본격화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두른 것은 군국주의적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본이 1931년 만주사변에 이어 1937년 중일전쟁까지 도발한 것은 중국을 독식하겠다는 의지 표현이었다. 이는 일본과 서양제국주의 간에 존재했던 협조체제를 금가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미국 및 유럽과 충돌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에 직면한 일제는 ‘당신들도 대일본제국 신민이다’라며 한국인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시작했다. 내선공학 본격화는 이런 흐름에서 추진됐다. 일제의 ‘내선공학’ 정책 찬성한 교육자 내선공학이 교육적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연합뉴스] 임종국상에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민병래 씨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제18회 임종국상을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와 자유기고가 민병래 씨에게 수여했다고 15일 밝혔다. 학술 부문 수상자인 김동춘 교수는 이데올로기에 따른 억압과 국가폭력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관한 연구로 주목받아온 중견 사회학자다. 수상 저서인 ‘권력과 사상통제’는 2000년 출간한 ‘전쟁과 사회’에 이어지는 책으로, 냉전과 분단 체제가 어떻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저해했는지를 규명했다.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설 한국학진흥사업단이 20세기 한국사의 명암을 다루는 ’20세기 한국학술총서’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집필됐다. 사회 부문 수상자인 민병래 씨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군 의문사 피해자, 인권운동가 등을 추적 발굴해 알려왔다. 임종국(1929∼1989) 선생은 1965년 한일 협정이 체결된 이후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는 등 친일 문제 연구와 과거사 청산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받는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는 2005년부터 친일 청산, 역사 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뜻과 실천적 삶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개인과 단체에 임종국상을 수여하고 있다. 김예나 기자 yes@yna.co.kr <2024-11-15> 연합뉴스 ☞기사원문: 임종국상에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민병래 씨 ※관련기사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제18회 ‘임종국상’ 시상식 ☞한국NGO신문: 임종국상에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민병래 자유기고가 ☞서울신문: 임종국상에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민병래 씨 ☞뉴스투데이: 제18회 임종국상 사회부문 수상자로 시민운동가 민병래씨 선정돼 ☞오마이뉴스: “윤석열의 행태를 보니 이들의 삶이 한층 뜻깊게 다가옵니다” ※관련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집] 제18회 ‘임종국상’ 시상식
[MBC뉴스] ‘독립군 토벌’ 백선엽‥’국가유산’급 띄우기?
앵커 4년 전 숨진 백선엽 장군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독립운동하던 한국인을 토벌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보훈부는 백선엽 장군 동상에 억대의 국비를 쓰는 등 우상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덕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경북 칠곡의 다부동전적기념관. 지난해 이곳에 4.2미터 높이 백선엽 장군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비용 5억 원 가운데 1억 5천만 원을 보훈부가 국비로 냈습니다. 내년부터 보훈부는 문체부와 손잡고 이 동상이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을 안보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입니다. 이곳을 포함해 38선돌파기념비 등 전국 20곳의 전적지 관광을 활성화해 ‘안보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취지입니다. 여기에 내년에만 예산 5억 7천만 원이 들어갑니다. 게다가 보훈부는 현충시설이 50년을 넘으면 국가유산으로 등재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경북 칠곡의 백선엽 장군 호국구민비, 백선엽 장군 전적비가 이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백선엽 장군 기념물을, 경복궁이나 숭례문과 같은 국가유산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 50년이 안 됐어도 현충시설이라면 예비 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면 지난해 세워진 백선엽 장군 동상도 국가유산 후보군이 됩니다. 백선엽 장군은 회고록에서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도 사실”이라며 자신이 광복군을 토벌했음을 밝힌 사람입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도 그를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선 달라졌습니다. 민간단체 주도의 백 장군 추모식은 지난해부터 육군이 직접 주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육군이 의장대를 동원하고 행사 예산까지 지원합니다. [이인영 의원/국회 정무위원회] “국가보훈부가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각은 외면하고
[오마이뉴스] 가성비 친일파, ‘매국’하다가 인사동에서 당한 일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권중현 권중현은 이름에 들어간 무거울 중(重) 및 드러날 현(顯)과 달리, 이완용·박제순에 가려져 비중이 적어 보이는 을사오적이다. 그러나 일본이 볼 때는 가성비가 꽤 높은 친일파였다. 그의 팔십 생은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을 위한 사전 서비스와 사후 서비스로 구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종 임금 때인 1854년에 지금의 충북 영동군에서 출생한 그의 원래 이름은 사전적 의미가 ‘균형을 유지한다’인 권재형(在衡)이다. 이름을 바꾼 것은 49세 때인 1903년 5월이다. 을사늑약 2년 전이었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제4-1권 권중현 편에 따르면, 그의 첫 관직은 고종 때인 1883년에 받은 부산감리서(동래감리서) 서기관이다. 29세 나이로 일본과 가까운 곳에서 개항장 사무를 처리하게 된 그는 그 뒤 주로 대일 사무에서 경력을 쌓았다. 1885년에는 대외관계를 처리하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주사가 됐고 1888년에는 일본을 시찰하게 됐다. 1890년에 전보국 주사로 옮겼다가 청나라 상인들의 기운이 강한 인천항의 방판(幇辦)이 된 그는 얼마 안 있어 일본으로 건너가 주일서기관이 되고 주일판사가 됐다. 1882년에 군대를 파견해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나라가 1894년까지 전무후무한 내정간섭을 실시했기 때문에, 이 12년간의 친일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친일과 성격을 다르게 보기도 한다. 1884년에 일본군의 힘을 빌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을 친일파로 분류하기 힘든 것은 그의 거사가 청나라의 내정간섭을 무너트리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에 권중현은 일본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그래서 1894년까지의 행적은 그의 친일 이력에 넣을 수 없지만,
[한겨레] “일본 ‘잃어버린 30년’, 한국도 같은 실패 겪을 건가”
[짬] 데루오카 이쓰코 사이타마대 명예교수 “한국에 처음 방문합니다. 한국분들께 일본의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 며칠이나 고민했습니다. 일본 경제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실패를 통해 한국인들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경제가 여전히 ‘거품’의 달콤함에 취해 있던 1989년, 데루오카 이쓰코(96)라는 이름의 여성 경제학자(사이타마대 명예교수)가 내놓은 ‘풍요로움이란 무엇인가’(한국판 제목 ‘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라는 제목의 작은 책(이와나미서점 신서)이 일본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세계적 학자인 에즐라 보겔이 10년 전 내놓은 ‘재팬 애즈 넘버 원’(1979)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던 시대에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정반대의 얘기를 쏟아낸 것이다. 데루오카 명예교수는 이 책에서 “일본의 풍요로움이란 것은 실은 뿌리가 없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에 살고 있는 일본 시민들은 정작 전혀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하며 사회에서 언제 배제당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책은 77만부가 팔려나가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일본 사회는 이 책이 던진 질문에 답을 찾는 데 실패하며 이후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에 빠지고 말았다. 데루오카 명예교수는 5일 서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된 ‘일본 경제’를 주제로 열린 특별강연에서 “한국도 요새 비슷한 문제에 빠져 있지 않으냐”라고 물었다. 1989년 출간 ‘풍요로움이란 무엇인가’서 ‘거품 경제’ 지적해 일본사회에 충격 “한국도 요새 비슷한 문제에 빠진 듯” 일본의 실패 경험, 한국인과 공유하고 연대 가능성
[머니투데이] 정치·언론인도 피하지 못했다…4389명 친일인사 ‘역사적 청산’ [뉴스속오늘]
[기사원문] <2024-11-08> 머니투데이☞ 정치·언론인도 피하지 못했다…4389명 친일인사 ‘역사적 청산’ [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09년 11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수년간 준비해온 ‘친일인명사전’이 마침내 발간했다. 사전은 총 3권에 분량은 3000쪽에 달한다. 여기에는 일제 식민 통치와 전쟁에 협력한 4000여명의 주요 행각과 광복 이후 행적 등이 담겼다. 수록된 인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장면 전 국무총리,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 작곡가 홍난파, 언론인 장지연 등이 포함됐다. 친일 인사 4389명…선정 기준 두고 논란 이 사전은 오른 ‘친일 인사’는 4389명이다. 1948년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규정한 688명의 약 6배에 달한다. 노무현 정부하에 설치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1005명에 비해서도 4배 많다. 당시 민족문제연구소는 “죄질이 무거운 반민족행위자만을 선정한 반민특위와 달리 친일인명사전은 부일협력자까지 대상에 포함했다”며 “친일인명사전은 처벌이 아니라 역사적 청산과 학문적 정리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략>········· 일부 유족들 소송까지 갔지만, 모두 패소 친일 인물로 지목된 이들 반발도 거셌다.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지만씨는 사전이 발간되기 전 서울북부지법에 발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당시 지만씨는 “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위해 행한 행적을 무시하고 무조건 친일 인사로 확정 짓는 것은 사자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 지만씨뿐만 아니라 화가 장우성과 법조인 엄상섭의 후손, 언론인 장지연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도 모두
[보도자료] 제18회 ‘임종국상’ 시상식
[다운로드] ☞ [보도자료] l [자료집] 제18회 ‘임종국상’ 시상식 학술부문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 사회부문 민병래 자유기고가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임종국 선생(1929∼1989)은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고 있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하여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으며, 그 외에도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가 제정한 〈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실천적 삶을 오늘의 현실 속에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 200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나, 2008년과 2009년도는 사무국을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주력해야 했던 사정으로 시상이 잠시 중지되었으며, 올해가 18회째이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10건, 사회·언론 부문 5건 등 총 15건이 올라왔으며, 지난 9월 27일 열린 예심에서 각 부문 3건씩 6건을 후보자로 압축해 본심에 회부하였다. 10월 16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열린 심사위원회는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를, 사회부문에 자유기고가 민병래 선생을 제18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최종 결정하였다.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해 도면회 대전대 교수, 이지원 대림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는, 이데올로기적 억압과 국가폭력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