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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죽음보다도 무서운 망각…우리 주변의 ‘일제’ 잔재 [책&생각]
식민지 비망록 1~3: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이순우 지음 l 민족문제연구소 l 각 권 1만8000원 이 땅에서 ‘일제’(일본제국주의)는 과거이면서도 현재다. 각종 일본 문화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젊은이들에게 식민지 시절은 아주 옛날이다. 실제 일제 통치가 종식되고 강산이 여덟 번이나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현 정부의 ‘덮어놓고 친교’ 정책에 분개하는 이들도 많다. 일제강점기와 그들이 패퇴한 날에 대한 평가, 심지어 당시 조선 사람들의 국적을 두고서까지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시의 현실을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20여년간 한반도에 산재한 근대 역사의 흔적들을 탐구해온 저자의 문제의식이자 질문이다. 군인에게 하는 덕담인 ‘무운장구’(武運長久·무인으로서 운이 길고 오래가다)와 연무대(논산훈련소)·계룡대(육·해·공군본부)처럼 군부대에 붙는 ‘○○대(臺)’라는 용어가 일제 침략전쟁과 맞닿아 있단다. 공간은 또 어떤가. “이순신 장군이 무과시험 때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자 버드나무 껍질을 덧대어 동여매고” 달렸다는 현장(훈련원터)에서 대한제국 군대 해산이 이뤄졌으며, 동대문운동장(동대문역사문화공원·동대문디자인플라자)은 훈련도감 분원(하도감) 자리에 일본 황태자 아키히토의 결혼식을 기념해 지은 것이란다. 택시 합승과 우량아 선발대회, 금 모으기 운동도 일제 전시 동원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고, 금 생산을 늘리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암석에 구멍을 내고 발파하는 전문인력 양성소를 세워 인왕산 산세를 크게 훼손시켰다. 소개된 일제 잔재나 침탈사의 흔적을 보노라면, 국민학생(초등학생) 시절 ‘죽음보다도 굶주림보다도 늙음보다도 무서운 것이 망각’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오마이뉴스] ‘반국가세력’ 운운한 전향 친일파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김한경 일제강점기 말기는 ‘선전의 과잉 시대’였다. 일제가 부쩍 말을 많이 한 때다. 일본과 한국이 왜 하나인지, 내(內)와 선(鮮)이 왜 일체인지, 한국인이 일왕(천황)에게 왜 충성해야 하는지 등등을 귀가 따갑도록 선전한 시기다. 우리에게 충성하라는 잔소리가 심해졌으니 이것도 체제 위기의 증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렵에 일제의 대변자가 되어 언론 기고, 방송, 강연, 좌담 등의 기회에 나팔수 역할을 한 핵심 세력이 전향한 운동권 출신들이다. 민족주의운동이나 항일운동을 했던 이들이 친일 우파로 전향해 그런 활동을 했다. 1990년을 전후한 세계적 탈냉전으로 냉전체제의 권위가 약해지자, 기존의 반공 이론가들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퇴조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와 비슷하게 1919년 3·1운동 이후에도 원조 친일파 혹은 1세대 친일파들이 한층 강해진 대중의 분노 앞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하는 경향이 이어졌다. 이처럼 영향력이 약해지는 데다가 이들이 나이를 더 먹었기 때문에,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등이 있었던 1930년대에 일제는 새롭게 수혈한 친일파들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원조 친일파와 달리 2세대 친일파들은 메시지가 너무 많고 현란했다. 한국과 일본은 왜 하나인지, 한일은 왜 협력해야 하는지 등등을 화려한 언어로 선전했다. 1930년대 중후반 이후에 집중적으로 등장한 2세대 친일파들이 너도나도 미사여구를 동원해 징용·위안부·징병 호응을 독려하는 일들이 1940년 전후에는 하나의 현상이 됐다. 1910년 대한제국 멸망을 이뤄낸 1세대 친일파들은 웬만한 일이 아니면 대중 앞에 가급적 나서지 않았다.
[경향신문] 대만 문화부는 장제스 동상을 없애는데···한국에선 뉴라이트에 의해 부활
전직 대통령 동상 전수조사 해보니 (하) “장제스 동상은 권위주의의 상징, 목표는 개인숭배의 근절.” 대만 문화부는 최근 장제스 전 총통 동상 철거를 추진하는 이유에 대한 경향신문의 서면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그의 이름을 딴 거대한 기념관과 그 앞에서 엄숙하게 행해지는 의장대 교대식, 대만 전역에 설치된 수많은 동상이 막강한 그의 위세를 상징했지만 이제는 구시대의 잔재로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국의 전직 대통령 동상 57개 중 84%가 2009년 이후 지어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동상 3개가 지어졌고 9개의 동상 건립이 더 추진 중이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대부분이다. 주변국과의 비교, 조형적 특징, 역사적 배경을 종합하면 동상 건립은 특정인의 우상화와 권위주의 확산을 의도한다. 일각에서는 동상 건립 열풍을 윤석열 정부에서 뉴라이트의 부활과 결부시키기도 한다. 관련 법이나 조례가 미비한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마저 부재한 동상 건립은 이데올로기 대결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대만 문화부 “장제스 동상은 지도자 숭배 지속 목적이었다” 대만 문화부에 따르면 장제스 동상 철거 등의 조치는 급작스럽게 이뤄진 것이 아니다. 2016년 민주진보당(민진당)으로 대만의 정권이 교체 이후 실시되고 있는 권위주의 독재 청산, 진실 복원 계획의 일환이다. 대만 문화부는 경향신문에 보낸 답변서에서 “2018년 5월 변혁정의촉진위원회를 설치하고 진상규명, 권위주의 상징물 처분 등을 수행하고 있다”며 “문화부는 현 단계에서 목표를 개인숭배·권위주의 숭배 근절로 삼고 중정기념당 개조를 추진한다. 2024년 7월15일부터
[MBC 뉴스] [단독] 기습적으로 끼워넣은 ‘제2 독립기념관’ 예산 245억 원‥누가 그랬을까?
앵커 세수부족으로 온 나라가 비상이지만 국가보훈부는 3년간 245억 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에 제2 독립기념관을 짓기로 했었죠. 그런데 2백억 원이 넘는 이 큰 예산이 보훈부가 내년 예산 계획을 사실상 마무리한 이후, 며칠 만에 갑자기 추가됐다는 사실이 MBC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조희형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8월 말 국회에 제출한 국가보훈부의 내년도 예산안. 기획재정부와 사실상 협의가 마무리된 이 시점까지도 국내민족독립운동기념관, 이른바 제2 독립기념관 예산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인 9월 초, 최종예산안에 이와 관련한 예산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245억 원 규모의 사업이 불과 열흘 만에 생겨난 것입니다. 보훈부는 무장투쟁에 비해 국내 교육·문화 분야 독립운동의 인지도가 낮다며 대통령의 지난 3.1절 기념사가 추진 배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지난 3.1절 기념식)] “이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역사가 대대손손 올바르게 전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당시 대통령실은 과거 정부가 무장독립운동만 평가하고 나머지 독립운동을 친일파로 몰아간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없던 예산이 갑자기 생겨났습니다. [김현정 의원/국회 정무위원회] “대통령실에서 강한 요청이 들어와서 급작스럽게 는 것 아닌가라는 게 저의 예상인데 그렇다고 하면 더 큰 문제인 거죠.” 예산이 급조된 만큼 계획도 부실했습니다. 부지, 즉 땅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도 계획에 없었습니다. 보훈부는 이곳 송현동 부지를 비롯해 서울시 일대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는 아직 결정된 건 없다고 밝혔습니다. [손종필/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공간
[오마이뉴스] 몰락했던 뉴라이트의 부활, 어떻게 가능했나
[분석] 1994년 남북정상회담 반대로 집결한 후 점차 진화… 뿌리는 반공 수구세력 지난 8월 6일 휴가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형석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함으로써 막장 인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로써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에 이어 독립기념관까지 주요 역사 관련 기관을 모두 뉴라이트 인사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 국민들 수준은 1940년대 영국 국민보다 못하다”는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일제가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출한 것”이라는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라면서 “친일인명사전을 손보겠다”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한마디로 인사가 아니라 가장 부적격한 인물을 배치한 ‘망사’라 할 만했다. 김형석 씨는 8월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대한민국이) 1945년에 광복됐다는 것을 인정하는지 관장 자격으로 이야기해 달라’는 국회의원의 질의에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광복절을 광복절이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독립기념관장이라니. 독립기념관법에는 독립기념관의 목적이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전시·조사·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독립기념관의 목적이 이러함에도 윤 정부는 거꾸로 정반대 성향의 인물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관장으로 임명하였다. 이쯤 되면 국민 여론은 안중에도 없는 ‘오만과 탈선’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역사 관련 주요 기관장을 무리하게 뉴라이트 일색으로 채운 데에는 분명
[한겨레] 묘비 없이 수풀 밑 집단 매장…일 시민들, 조선인 기리는 박물관 세웠다
사사노보효, 일본 첫 민간 강제동원 박물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노동자들의 묘비도 없이 조릿대 밑에 묻혔다는 곳은 어디인가요?” 지난 28일 일본 홋카이도 호로카나이초 슈마리나이에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추도묘’를 찾은 이들 사이에서 질문이 나왔다. 이날 안내를 맡은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무덤 뒤편으로 조릿대들이 흔히 보이죠? 이 인근이 전부 당시 강제동원됐던 조선인과 일본인 하층 노동자들이 숨졌을 때, 무덤도 없이 묻혔던 매장지로 추정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우류댐 공사, 신메이선 철도 공사 희생자들이 매장된 땅’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덩그런 무덤 하나가 서 있다. 앞에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간단체 ‘평화 디딤돌’이 이런 비명을 새겨놨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 중 홋카이도 슈마리나이(우류)댐과 신메이선 철도 공사에는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혹독한 강제노역으로 45명이 희생되었다. 가족들조차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유해들은 이역 땅 조릿대 수풀 밑에 묻혀서 잊혀져갔다.” 일제강점기 참혹한 조선인 강제노동의 현장이던 슈마리나이에 이날만큼은 모처럼 박수 소리와 웃음이 퍼졌다. 이날 홋카이도 우류군 호로카나이에 일제강점기 슈마리나이에 일본 정부가 전쟁을 치르기 위해 강제동원했다가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한 ‘사사노보효 강제노동박물관’이 개관했다. 두 줄로 마주 본 어른들이 양팔을 들어 올려 ‘손 터널’을 만들자,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유골함을 든 학생들이 그 사이를 지나 박물관에 유골을 안치했다. 사물놀이패가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고, 박물관 앞 행사장을 가득 채운 150여명의 한·일 시민들이 함께 기뻐했다. 일본에는
[오마이뉴스] ‘윤석열표’ 새 독립기념관 추진… 이 정권의 진짜 속내?
[김종성의 히,스토리] ‘국내 독립운동 조명’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 윤석열 정부가 천안 독립기념관과 별도로 가칭 국내민족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금년 3·1절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이 독립운동 재평가를 강조한 것과 관련된 일이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를 함께 돌아보았으면 합니다”라며 “3·1운동을 기점으로 국내외에서 여러 형태의 독립운동이 펼쳐졌습니다”라고 한 뒤 이런 말을 했다.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무장독립운동을 벌인 투사들이 계셨습니다. 국제정치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세계 각국에서 외교독립운동에 나선 선각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과 문화독립운동에 나선 실천가들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그는 독립운동가들을 투사·선각자·실천가로 분류한 뒤, ‘선각자’와 뜻이 통하는 ‘선구적 노력’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렇게 강조했다. “제국주의 패망 이후 우리의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선구적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투사·선각자·실천가의 활동을 종합하는 대목에서 ‘독립은 선구적 노력의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이승만 등이 활동한 외교 분야에 좀 더 방점을 찍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뒤 “저는 이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역사가 대대손손 올바르게 전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무장투쟁보다 외교 분야 독립운동가들이 윤석열 정권의 남은 임기 중에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되리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는 발언이다. 한일 협력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권이 무장항일투쟁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3·1절 기념사가 발표된 직후에 나온 대통령실 관계자의 언론
[오마이뉴스] “윤석열, 역사에 대한 백지 상태에서 뉴라이트 씌워져”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28일 마산YMCA “한국뉴라이트 기원과 역사전쟁” 강연 “윤석열 머리 속에 역사 관련해서는 백지였다. 이명박‧박근혜조차 서울시장이거나 정치인으로 있으면서 삼일절‧광복절 기념식에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검사나 검찰총장은 그런 자리에 갈 의무가 없었다. 독립운동 관련한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역사에 대한 백지상태에서 뉴라이트가 씌워진 것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이 28일 오전 마산YMCA가 마련한 106회 아침논단에서 “한국뉴라이트 기원과 역사전쟁”이란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한 말이다. 충남‧경기교육청 역사교육위원을 지내기도 한 방학진 실장은 헌법을 부정하면서까지 일본의 역사왜곡을 그대로 받아쓰기하듯 보여주는 행보들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전쟁에 대해 설명했다. 헌법부터 설명한 그는 “130조를 다 외우지 않아도 되는데 전문은 알아야 한다”라며 “독립정신, 민주정신, 평화통일정신을 천명해 놓았다. 헌법 전문은 모든 법령 해석의 기준이다. 헌법이 구현되는 게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방 실장은 “독립운동과 민주정신을 가르쳐야 하고, 통일도 평화통일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다”라며 “그런데 지금 뉴라이트 쪽 사람들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말만 하고 있다. 헌법은 장식이 아니라 공직자라면 지켜야 한다. 윤석열정부 인사청문회에서 들어봐서 알겠지만 헌법을 어기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했다. 한국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에 이어 독립기념관장도 뉴라이트 인사가 기용된 사실을 언급한 그는 “설마 국민들과 직접 관련이 있는 독립기념관장까지 뉴라이트로 하겠느냐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 그렇게 했다”라며 “김형석씨가 윤석열이 취임하던 2022년에 펴낸 <끝나야 할 역사전쟁>이라는 책이 있다. 연구하기 위해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오마이뉴스] 아들 잃은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남긴 놀라운 ‘가훈’
[독립운동가외전] 아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고통받은 항일투사 채충식 ‘대구 10월 폭동’으로 많이 불렸던 사건이 지금 대구광역시에서는 ’10월 항쟁’으로 불린다. 2022년 10월 11일 개정된 ‘대구광역시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는 입법 목적을 설명하는 제1조에서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시기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를 추모함으로써 지역에서 발생하였던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인권증진 및 평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한다. 그 사건이 폭동이 아니었다는 점은 대구시는 물론이고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인정된다. 이명박 정부 때 발행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제4권은 이렇게 말한다. “대구10월사건은 해방 직후 미군정이 친일 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공출을 강압적으로 시행하는 것 등에 불만을 가진 민간인들과 일부 좌익세력이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서 발생한 사건이다.” 미군정이 친일청산을 방해하고 토지개혁을 지연시키며 식량 사정을 악화시키는 것에 맞서 대구 지역민들이 미군정 경찰과 행정당국을 상대로 일으킨 것이 10월 항쟁이다. 항쟁으로 부를 만한 이유가 충분한 사건이었다. 이것이 대구항쟁으로 불리는 것은 대구에서만 벌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구에서 시작했다는 의미다. 또 10월 항쟁으로 불리는 것은 10월 한 달간 벌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10월에 시작했다는 의미다. “10월 6일까지 경북 지역으로 번졌고 12월 중순까지 남한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는 말한다. 대구에서부터, 10월부터 시작된 이 항쟁은 해방 이후에 폭발한 최초의 전국적 의거다. 이것은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