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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일본에 대한 충성이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송병준 일진회는 대표적인 친일 조직이었다. 이 단체를 이끈 송병준은 일종의 극우파였다. 지금의 극우와 똑같지는 않지만, 기득권 진영이자 우파 진영인 제국주의 세력을 극단적으로 지지했다는 점에서 극우파였다. 일본의 한국 진출을 극단적으로 찬동했다는 점에서도 오늘날의 극우와 흡사했다. 외교권을 넘기는 1905년 을사늑약에 찬성한 을사오적,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의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에 찬성한 정미칠적, 국권을 넘기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 찬성한 경술국적은 임금과 조정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일제의 한국 침략을 도왔다. 정미칠적의 일원인 송병준은 그런 방식 외에 대중을 움직이는 방법으로도 일본을 도왔다. 그가 라이벌이자 협력자인 이용구와 함께 운영한 일진회는 일본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확산시키는 조직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1966년부터 1978년까지 펴낸 <일제침략하 한국 36년사> 제1권에 인용된 1910년 9월 29일 자 <매일신보>에 따르면, 당시 일진회 회원은 총 14만 725명이었다. 구한말의 극우파가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일본이 후원하고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지 않았다면 애당초 불가능했을 일이다. 을사오적·정미칠적·경술국적은 일본의 한국 침략에서 결정타를 날리는 역할을 한 데 비해, 일진회는 분위기나 여론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친일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주로 전자에 치우쳐 있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후자도 꽤 요긴했다. 송병준은 두 가지를 다 소화해 낸 친일파였다. 송병준이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태어난 해는 철종 임금 때인 1858년 8월 20일이다. 조선총독부가 1910년 12월에 발행한 <조선귀족열전> 송병준 편은 그를 우암 송시열의 후예로 소개했다. 하지만 구한말 정치평론가인 황현의
[경향신문] 은평구, 내달 5일부터 민족문제연구소와 ‘강제동원 사진전’
(경향신문, 2023.8.25) 기사원문보기 ☞ 은평구, 내달 5일부터 민족문제연구소와 ‘강제동원 사진전’ 발췌. —— 서울 은평구는 다음달 5일부터 24일까지 은평한옥마을 너나들이센터에서 ‘강제동원 관련 사진전’을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사)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여는 이번 사진전은 ‘또 다른 강제동원의 현장, 사도광산-세계유산에서 기억해야 할 강제동원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은평구민과 학생들에게 지역의 자부심과 독립운동, 평화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은평구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은평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을 위해 독립정신 선양사업 추진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를 올해 2월부터 분기별로 지원하고 있다. 이성희 기자 ※관련기사 ☞한겨레 서울&: 은평구, ‘강제동원의 역사’ 사진전 개최
[한겨레] ‘대한민국 반체제 인물’ 이승만 기념관이라니
(한겨레, 2023.8.25) 기사원문보기 ☞ ‘대한민국 반체제 인물’ 이승만 기념관이라니 [기고] 오수창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발췌. —— 대한민국 정부가 이승만기념관을 세운다고 한다. 이승만 정부는 전국에서 조직적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하고 민주주의 복원을 요구하는 시민을 향해 수도 한복판에서 발포 명령을 내려 국민을 대거 살해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그가 어떤 공로를 세웠는지 학계 논란을 제쳐놓고, 6·25 당시 서울시민을 상대로 한 기만과 적반하장 등 국민 배신 행적을 묻지 않고,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 헌법을 덮어둬도, 대규모 선거 부정과 국민 총격의 책임만으로도 그는 대한민국의 체제에 거역한 죄인이다. 누구보다도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이들이 그 파괴자인 이승만의 기념관을 건립하고자 하는 모순은 우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은 감출 길 없는 자기모순 앞에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치켜세우고 나라를 세운 공로가 후대의 과를 덮는다고 주장한다. 그럴 수 있을까? 긴긴 세월 버려둔 자식이 고통 속에 죽어간 자리에 나타나 그가 피땀 흘려 모은 유산을 가져가겠다고 우기는 부모의 근거가 바로 낳아준 공이다. 자식은 부모가 자기를 죽이려 해도 지극정성으로 섬겨서 낳아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원리는 흘러간 시대 유교의 가르침이다. 아니, 그것으로도 이승만의 죄를 덮지 못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나라의 아버지가 아니며, 국민은 그의 자식이 아니다.——윤석열 대통령은 엊그제도 미국·일본 정상과 함께한 자리에서 세계를 향해 자유·인권·법치를 외쳤다. 이승만은 제 나라 국민을 상대로 자유·인권·법치를 짓밟은 반체제 인물이다. 끊임없이 자유민주주의와
[경향신문] 안창호 선생 외손자 안커디씨 “이승만기념관 건립은 잘못된 일”
(경향신문, 2023.8.20) 기사원문보기 ☞ 안창호 선생 외손자 안커디씨 “이승만기념관 건립은 잘못된 일” “도산의 가장 큰 실수는 이승만 지지 지지한 것 공적 높이려 과 가리면 역사 수정주의적 행태” 한국말에 서툴지만 한국 역사를 한국인보다 많이 아는 미국인 필립 안 커디씨(Philip Ahn Cuddy·68)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외손자다.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독립운동과 후세 양성에 힘쓴 도산의 정신이 커디씨에게도 유산처럼 그대로 대물림된 듯했다. …(중략)… 커디씨의 외할아버지인 도산과 외할머니 이혜련 선생, 어머니 안수산 선생은 모두 독립유공자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간 도산은 생계와 독립운동 자금을 위해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면서 영어를 공부하고자 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한 일화가 유명하다. 도산의 배우자 이혜련 선생은 도산이 상하이 임시정부 활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난 뒤 홀로 5남매를 길렀다. 이 선생은 일터에 나간 커디씨의 부모를 대신해 도산의 사진과 글들을 보여주며 도산의 인생 궤적을 가르쳤다. 도산의 5남매 중 셋째이자 장녀인 안수산 선생은 미 해군에 입대한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여성 최초 포격술 장교이자 태평양 전쟁에서는 암호해독가로 활약했다. 해군에서 같이 암호해독가로 일한 아일랜드계 미국인과 결혼해 커디씨를 낳았다. 커디씨가 태어난 1955년 메릴랜드주에서는 인종 간 결혼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커디씨 남매는 일반 병원이 아닌 군 병원에서 태어났다. …(중략)… 한국 정부는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예산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4월 국가보훈부는 기념관 건립 사업에 3년간 약 46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커디씨는 이
[성명]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 시도, 당장 철회하라!
[성명]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 시도, 당장 철회하라! 어제(24일)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세워진 독립전쟁의 영웅 흉상을 철거해 독립기념관에 옮겨 전시 또는 보관이 가능한지 육군사관학교로부터 검토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독립기념관 관계자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국군의 기원인 독립전쟁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매우 심각하고 엄중한 문제입니다. 멀쩡하게 세워진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서 철거하고 기념관으로 옮기라는 지시는 누구의 지시입니까? 육군사관학교 교장입니까? 국방부 장관입니까? 국가보훈부 장관입니까? 아니면 더 윗선의 지시가 있었습니까?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철거를 지시한 이유를 국민께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관련자는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며 임시정부의 군제(軍制)가 바로 국군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러한 시도를 강행한다면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反헌법적 처사이며,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용납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독립전쟁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지원했습니다. 1920년대 만주 지역에서 일어난 봉오동·청산리전투 모두, 우리 독립군과 일제가 당당하게 무력으로 맞붙어 싸운 자랑스러운 우리의 독립전쟁이었습니다. 이후 만주는 독립운동의 최전선이 되었으며, 만주 독립군 청년들은 1940년 한국광복군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광복은 선조들이 ‘최후의 일각’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일제에 맞서 피흘리며 싸워 이뤄낸 결과입니다. 대한제국 군대해산 이후 의병운동부터 한국 광복군과 미국 OSS특수부대가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다 해방을 맞을 때까지 ‘독립전쟁 시기’로 봐야 마땅합니다. 독립전쟁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계승작업은 대한민국 헌법정신과 국군의 역사적 뿌리를
[오마이뉴스] 거센 빗속 경찰 해산 종용에도 “일본은 학살 인정하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관동 대학살 100주기 기자회견’… 핵오염수 방류 반대 시위도 2023년 8월 23일 11시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간토 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주최하는 ‘대일역사정의실현, 간토 학살 100주기 기자회견’이 열렸다.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에서도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회견에서 첫 발언자는 6.15 남측위원회 김삼열 상임대표였다. 그는 “간토 학살 100주년이 되었지만 일본은 참혹했던 집단학살에 대하여 사실을 은폐, 왜곡하고 있으며 사죄와 반성은커녕 우리 민족을 우롱하고 있다”라고 규탄하며 진실한 사죄를 받아낼 때까지 싸워나가자고 말했다. 두 번째 발언자인 한국진보연대 한충목 대표는 “청산하지 못한 역사, 반성하지 않는 역사가 어찌 미래를 만들 수 있겠냐”며 “지금 윤석열 정부가 한일군사협력을 밀어붙여 욱일기가 한국 땅에 상륙하는 이 끔찍한 현실에 맞서 국민과 종교인이 일어나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일본대사관 앞은 수요집회가 열리는 날인 데다가 진보당 강성희 의원을 포함한 당원 20여 명 그리고 정의당 국회의원의 핵오염수 방류 반대 시위까지 겹쳐 열기가 뜨거웠다.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정의당과 진보당 당원을 향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를 위반했다며 거듭 해산을 종용했다. 이들이 국민의 염원을 담아 일본을 규탄하고 일본대사관에 항의 편지를 전달하겠다는 뜻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였다. 경찰은 ‘추진위원회’의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조선인 학살 인정하라!”라는 구호를 외쳐 집시법을 위반했으니 해산하라고 압박했다. 추진위원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 우비를 입고 참석한 유기홍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관악구갑)은
[동영상] 일본은 강제동원 역사를 밝히고 기억하라
2015년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의 장소라 일컬어지는 야하타 제철소, 나가사키 조선소, 다카시마 하시마 탄광(군함도), 미이케 탄광 등 일본의 산업 유산 23개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그 중 5군데가 조선인 강제 동원과 연관된 곳이다。그런데 일본은 인정을 하지 않고 세계유산 설명서에서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2023년 2월 또다시 사도 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천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했다。 이곳 또한 조선인이 1,500명 정도가 강제 동원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광복회 광명시지회 주최, 민족문제연구소 주관, 광명시 후원의 특별전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ㆍ기간 : 2023.8.14~8.31 ㆍ장소 : 광명동굴 동편입구(와인동굴 입구) ※관련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일본 전범기업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6년 – 일본 정부의 역사조작과 민족문제연구소의 기나긴 투쟁 ☞민족문제연구소: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든 세계유산 가이드북 “일본의 메이지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노동”
민족사랑 202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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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신흥무관학교의 숨겨진 영웅, ‘원병상’을 아십니까
“내래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야!” 영화 속 그 인물… 교관 활약했던 ‘원병상 회고록’ 발간 “내래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야!” 영화 〈암살〉에서 배우 조진웅이 분한 ‘속사포’의 대사이다. 이 영화가 관람 연인원 1300만 명 가까운 대기록을 세우면서 뜻하지 않게 신흥무관학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조진웅은 이 배역을 맡은 인연으로 이후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의 홍보대사가 되었다. 1910년 8월 29일 강제병합으로 나라를 빼앗기자 뜻있는 이들은 가산을 처분한 뒤 일가를 이끌고 만주로 망명했다. 국외에서 독립군기지를 건설해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결단이었다. 국망 이후 국외 최초의 독립군기지인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이시영 6형제, 이상룡, 김대락, 김동삼 등 기라성 같은 민족지도자들이 힘을 합쳐 이룩한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독립지사들의 심신 훈련소, 신흥무관학교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6월 10일 서간도 류허현 삼원포에서 신흥강습소란 이름으로 첫걸음을 떼었으며, 점차 규모를 확대해 갔다. 이동녕·윤기섭·김창환·남상복·이장녕·이세영·여준 등 명망 있는 독립지사들이 교장과 교관으로 복무하며 생도들의 정신무장과 군사훈련을 지도했다. 신흥무관학교는 3·1운동 직후 애국 청장년들이 대거 망명해 입교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 일본군 중위로 복무하다 탈출한 지청천과 김경천, 중국 윈난 육군강무학교를 수석 졸업한 이범석 등이 신흥무관학교로 찾아와 교관으로 합류했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의 탄압과 연이은 사고로 1920년 가을 폐교하기 전까지, 약 3500여 명에 이르는 독립전사를 배출했다. 학교는 비록 문을 닫았으나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봉오동·청산리·대전자령 전투 등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의열단·한국광복군 등 항일무장투쟁의 핵심으로 불멸의 업적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상당수 구성원들이 항일투쟁의 도상에서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장렬한
[한겨레] 나는 프락치가 됐고, 그들은 부역자가 됐다 [본헌터⑰]
[역사 논픽션 : 본헌터⑰] 잊혀진 아산의 거물 고향의 대학살 비극을 닮은, 끝내 재기하지 못한 어느 정치인의 이야기 *편집자 주: ‘본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내 이름은 서용길 ······················· (중간생략) 나는 보선을 꺾고 서른 여섯에 제헌의회 국회의원이라는 영광을 얻었으나, 이후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형극의 길을 걷고 무너졌다. 비운의 정치인이자 잊힌 거물이 되었다. ························(중간생략) 나는 무소속 소장파 의원으로서 치열하게 정치 활동을 했다. 그 중 하나는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특별검찰관으로 ························(중간생략)반민특위는 1차로 적극적 친일 기업인 흥식을 검거했다. 이때 알았어야 했다. 승만과 친일세력은 이를 방해할 뿐 아니라 때려잡을 것임을. ························(중간생략) 1949년 6월6일 나는 을지로의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한 서울시경찰국 산하 중부경찰서 경찰관들에 의해 무장해제됐다. 6월26일엔 ‘외군(외국군) 철퇴 요청에 관한 긴급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 문제가 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그리고 이른바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엮인다. 연희전문 때부터 교회 유년부 주일학교 부장을 하며 기독교 신앙을 키워온 내가 남로당 프락치라니. 외국 군대 철수 주장은 북한의 지령이 아니라 민족독립의 원칙으로서 주장한 거였다. 프락치 사건으로 소장파 의원들이 궤멸되고 반민특위는 와해된다. ··············(중간생략) “ (한겨레, 2023.8.21) 원문링크 ☞ 나는 프락치가 됐고, 그들은 부역자가 됐다 [본헌터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