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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오마이뉴스]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2024년 9월 20일 440

주최 측 “기자회견 하루 전 일방 취소”…언론재단 ” 규정상 정치행사 불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20%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20일 시민사회 각계 1500명의 시국선언이 나왔다. 7개월째 이어지는 의료 대란과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문제가 무마된 점 등을 들어 정권 스스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강우일 전 천주교 제주교구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최승호 전 MBC 사장, 황석영·현기영 소설가, 정지영 영화감독, 황지우 시인, 정연주 전 KBS 사장, 임재경 한겨레신문 초대 편집인,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장, 문규현·문정현 신부, 권영길·단병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 이수호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시국선언 ‘우리 모두 일어나 나라를 지킵시다’ 제안·서명자들은 이날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 2년 반 만에 나라가 밑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라며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7개월 동안 대통령과 의료계의 대립으로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나고 의과대학 교육이 유급 파행을 거듭해도 ‘의대생 2000명 증원’이라는 대통령의 근거 없는 옹고집은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의료 대란 출구를 가로막고 있다”라면서 “응급실이 의료 인력 부족으로 문을 닫고 위급한 중증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는데 대통령의 아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하나”라고 했다. 황석영 “정권 2024년 넘기지 못할 것 같다” 또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을 받았다는 사실을 대통령 자신이 시인했지만 갖가지 궁색한 거짓

[오마이뉴스] 여수·순천 군인들 두 번 죽인 교과서… 두고두고 문제된다

2024년 9월 19일 240

[김종성의 히,스토리]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규정한 한국사 교과서, 바로잡지 않으면 반복된다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규정한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해 여수시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여수시의회는 12일 공동성명을 통해 반란 표기 삭제와 해당 교과서의 검정 취소를 촉구했다. 여수시민들은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 5종이 “반란군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으나 도주한 반란군의 일부는 지리산 등에 숨어 게릴라전을 하며 저항하였다”라는 식의 서술을 통해 사건 관련자들을 ‘반군’, ‘반란 폭도’, ‘반란세력’ 등으로 폄하한 것에 항의하고 있다. 2021년 개정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특별법)’ 제1조의2 제1항은 “5·18민주화운동이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이라고 정의했다. 광주 5·18을 전두환 신군부의 헌정질서 파괴에 맞선 의거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비해, 작년 8월 개정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여순사건 특별법)’ 제2조 제1호는 이렇게 정의한다. “여수·순천 10·19사건이란 정부수립의 초기 단계에 여수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인하여 1948년 10월 19일부터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 1일까지 여수·순천 지역을 비롯하여 전라남도·전북특별자치도·경상남도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혼란과 무력 충돌 및 이의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국군 제14연대가 4·3 진압명령을 거부한 것이 발단이 됐다고 했다. 이 거부가 옳았는지 아닌지에

[오마이뉴스] “일제 강점으로 일본인 된 적 없다는 게 헌법 정신”

2024년 9월 17일 307

최근 뉴라이트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물론 뉴라이트 논쟁은 꾸준히 있었지만, 최근 김형석 독립기념관 임명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면서 커졌다. 이후 역사 전쟁으로까지 비화되었고 심지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이었다는 망언까지 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문제와 뉴라이트에 대한 논쟁을 전문가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지난 12일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남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대일 외교 기본 원칙에서 후퇴” – 지난 8월 한 강연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해 문제가 많고 엉망이라고 진단하셨던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진단하신 건가요? “우선 한일 간에 가장 오래된 숙제인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그동안 견지해 왔던 중요한 원칙들에서 명백하게 후퇴하는 모습들을 보이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이 돼요. 그건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관련한 부분인데요. 저희는 그동안에 보수, 진보 관계없이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대일 외교에서 한국 정부 최소한의 원칙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서, 특히 작년 3월 6일 대법원 판결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입장으로 ‘제3자 대위 변제’라는 방식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나아가 3월 15일의 한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윤 대통령 스스로 일본 국민 앞에서 확인해 줌으로써, 우리가 대일 외교에서 기본 원칙을 일관되게

[오마이뉴스] 일본인도 경악한 친일파의 화려한 망명 생활

2024년 9월 19일 93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이두황 1년이 11개월밖에 없었던 해가 있다. 음력으로 을미년 11월 16일은 양력으로 1895년 12월 31일이다. 이 날을 마지막으로 조선에서 음력이 폐지되고 다음날부터 양력이 사용됐다. 음력에 익숙해 있었던 조선인들은 11월의 절반과 12월이 뚝 잘려 나가는 인식상의 대혼란을 겪게 됐다. 마지막 음력의 해인 그해 8월 대보름 직후였다. 이때 조선인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다. 음력으로 고종 32년 8월 20일 자(양력 1895.10.8) <고종실록>은 “왕후가 곤녕합에서 붕서했다”라고 알려준다. 44세의 명성황후는 일본인들이 자행한 을미사변의 결과로 세상을 떠났다. 왕후가 국모로 추앙되던 시절에 일본인들에 의해 그런 참극이 자행됐으니 당시 사람들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추석의 흥취가 아직 남아 있는 음력 8월 20일에 그런 불상사가 벌어지고, 그 여세를 몰아 일본이 제4차 김홍집 내각을 출범시키고 이른바 을미개혁을 시행해 단발령과 양력제 등을 발표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8월 보름달이 뜬 직후에 대중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고 음력 12월이 잘려 나가는 변고가 이어졌으니, 그해 추석 명절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낭만적으로 기억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을 도와 시해에 가담한 이두황(1858~1916) 같은 친일 군인들은 그것을 변고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한일 협력’을 위한 일이라고 자부했다. 일본을 견제하고자 ‘한러 협력’을 추진하는 고종 부부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고 합리화했던 것이다. 이두황과 함께 을미사변에 가담한 한국인 중 하나가 군부협판(국방차관) 이주회다. 1993년에 발행된 <친일파 99인> 제1권에 실린 강창일 배재대

[시민언론 민들레] 함세웅 신부 “사제단 50년, 또다른 50년의 시작”

2024년 9월 17일 293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50주년 기념 단독 인터뷰 “원해서가 아닌 시대의 요청 받고 태어난 사제단” “고난 있었지만 민주주의, 자유해방 일깨운 은총” “인혁당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가장 생각 나” “독재와 싸우기 어려웠지만 교회 내부도 어려움” “정치는 아름다운 건데 우리 스스로 거부하게 해” “성숙한 언어, 방법으로 여야 정치인들도 대화해야” “윤석열 정권, 아주 유아적이고 어린아이 같아 우려” “민들레, 이태원 명단공개로 십자가…사제단의 빚” “한국언론 바뀌려면 심장을 찢는 각오로 회개해야” “늘 나라를 바꾼 건 청년 학생…이제 일어서달라” [위클리 민들레] 독재와 싸워온 정의구현사제단 50년, 끝내 이기리라!. 2024.9.13. 1974년 9월 26일 창립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사제단은 오는 23일 명동성당에서 사제단 50주년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사제단은 한국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이다. 박정희 유신 체제와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한국현대사 한복판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50년 만에 정권이 처음 교체된 뒤에도, 2000년대에 들어 대통령이 처음 탄핵됐을 때에도 사제단은 시민의 편에 등불처럼 서 있었다. 지난해 3월엔 윤석열 정권의 폭정에 맞서 9년 만에 다시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1년 동안 전국 각지를 돌며 신자, 시민들과 기도회를 가졌다. 13일 <시민언론 민들레>는 사제단 창립 주역이자, ‘한국사회의 양심’ ‘행동하는 성직자’로 불리는 함세웅 신부(82)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촛불행동TV 스튜디오에서 만나 사제단 반세기 역사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역사의 산 증인인 함 신부는 사제단 50년에 대해 “사제단을

[오마이뉴스] 씨름 중 심판 때린 일본 배 선원… 한국인 가슴에 불 질렀다

2024년 9월 17일 219

[김종성의 히,스토리] [독립운동가외전] 제주서 일제 어업 침탈에 맞선 고은삼 일제는 토지와 임야 외에 어족자원도 침탈했다. 임오군란 이듬해인 1883년 7월 25일 조일통상장정(한일통상장정) 제41관은 “조선국 전라·경상·강원·함경의 4도”를 지정해 일본 어민의 어로 활동을 허용했다. 1910년 국권침탈보다 훨씬 이전에 바다가 뚫렸던 것이다. 일본 어민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조치에 더해, 한국 어민의 날개를 꺾는 조치도 있었다. 일제는 1911년 6월 공포한 어업령을 통해 어업권을 총독부 허가 사항으로 규정했다. 총독부는 어민들을 반강제적으로 어업조합에 가입시키고 이들의 어깨에 경제적 부담과 어로 활동의 제약을 얹었다. 이런 어업 침략은 사면이 바다인 제주에 가장 큰 타격이 됐다. 조일통상장정을 계기로 나가사키현 어민들이 제주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어가자, 이에 자극받은 일본 수산업자들이 너도나도 몰려왔다. 2008년에 <역사와 경계> 제68집에 게재된 박찬식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의 논문 ‘개항 이후(1870~1910) 일본 어업의 제주도 진출’은 “조일통상장정이 체결된 뒤 일본 어민의 제주어장 침탈은 급격히 증가”했다면서 “장기현(長崎縣) 어민들이 제주어장에 진출하여 막대한 수익을 거둔다는 사실이 알려져 일본 잠수기 어선의 제주 침투가 심해졌다”라고 설명한다. 일본인들 수중으로 공기를 보내는 잠수 도구까지 동원해 가며 제주 해역을 자신들의 해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제주 어민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항일투사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2022년에 <제주도연구> 제58집에 실린 강만익 제주제일고 교사의 논문 ‘일제강점기 제주도어업조합 설립과 운영’은 1911년 이후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제주 지역에 어업조합이 설립된 결과, 제주

[한겨레] “이름도 모르고 추도식 하나?”…시민단체, 사도광산 명부 공개 촉구

2024년 9월 12일 212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는 12일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명부를 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확보해 공개할 것을 촉구하는 시민 2404명의 서명을 받아 외교부에 전달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외교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조선인 강제동원을 외면한 채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해놓고는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노동자 희생자 추도식 개최를 약속했다’고 외교적 성과를 자찬하고 있다”며 “추모할 희생자의 이름도 모른 채 추도식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사도광산에는 조선인 약 1500명이 강제동원됐고, 현재 일본 니가타현립문서관에는 ‘1414번 자료’로 ‘반도 노무자 명부’가 마이크로 필름 형태로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니가타현과 사도광산을 운영하는 미쓰비시골든사도는 이 자료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에 정부를 향해 “일본이 숨기고 있는 피해자 명부 제공을 일본 정부에 요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저희가 파악한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분들에게 연락을 해봤더니 아직 (추도식 개최 등에 대해) 외교부에서 연락을 못받았다고 하고, 강제동원의 역사도 제대로 전시되지 않았는데 그런 식으로 추도제를 한다는 것에 불쾌함을 표시한 분도 계셨다”며 “일본이 하겠다는 추도식이라는 것도 일부 유족만 모시고 가서 생색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어 “한국 정부는 한-일관계가 개선돼 일본의 ‘전향적 조치’로 우키시마호 명부를 일본 정부로부터 입수할 수 있었다고 했다”며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 강제동원 조선인 명부도 일본 정부로부터 하루 빨리 확보해 공개하고, 진상이 밝혀질 때만이 추도식도 의미가

[청일전쟁130년·러일전쟁120년 기획전시] 일본이 그린 일본과 서양 열강의 세력다툼 「공원의 각 나라 아이들」

2024년 9월 11일 217

청일전쟁130년·러일전쟁120년 〈한반도 운명을 바꾼 그들의 전쟁〉 이 영상은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기획전시에 수록되어 있는 영상에 설명을 추가한 것입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으시다면 전시 보러오세요! 10월까지 특별해설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신청하기

[경향신문] 야당·민족문제연구소 “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검정 취소하라”

2024년 9월 11일 260

국회 교육위원회 야당 의원들과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친일 인사·이승만 정권 옹호 논란이 인 한국학력평가원(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1·2 교과서 검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교육위 의원들과 민족문제연구소,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과서 검정의 책임자인 교육부 장관이 이미 드러난 위법한 사항을 철저히 조사해 관련 규정에 따라 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을 취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교과서 검정 과정이 부실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학력평가원이 출판 실적을 위조해 역사 교과서 검정 자격을 얻어낸 사실, 현대사 부분의 집필자 중 한 명이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청년보좌역으로 역사 교과서 저작자 요건을 위반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2013년 교학사 교과서 검정 통과 때와 같이 검정 과정에서 정부의 노골적인 비호가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교과서 검정 신청 자격 기준을 보면 사회 과목의 경우 발행사는 최근 3년간 검정을 신청하는 교과와 관련된 도서를 한 권 이상 출판한 실적을 증빙하고 해당 교과를 전공한 편집 인력 한 명 이상을 둬야 한다. 학력평가원은 검정 실시 공고 6개월 뒤인 지난해 7월 ‘한국사2 적중 340제’라는 수능 기출 문제집을 냈다. 하지만 문제집 속지에 ‘2008 수능 완벽 대비서’라고 적힌 것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낸 문제집을 들춰보니 (2007년에 학력평가원이 출판한 문제집과) 문항 번호, 문항 내용이 똑같았다”며

[오마이뉴스]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현직 교사도 읽고 깜짝 놀랐다

2024년 9월 10일 454

[이게 이슈] ‘수준 미달’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극우 세력이 준동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진검승부’를 펼치게 될 줄 기대했건만 김이 제대로 새어버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시도가 반대 여론에 밀려 좌초된 후 뉴라이트 세력의 두 번째 ‘도발’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수준과 품격을 갖춘 교과서일 줄 알았다. 올해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한학평)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이야기다. 국사편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심지어 독립기념관장까지 역사 연구와 관련된 다수 국책기관의 수장이 뉴라이트 논란이 있는 인사로 채워진 상황에서 한학평의 교과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그들의 역사 인식과 의도, 수준 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여겨진 까닭이다. 최근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교육부의 검정을 통과한 모든 과목의 견본 교과서가 일선 학교로 배부됐다. 과목별 교사들이 개별적으로 검정 교과서를 살펴본 뒤 점수를 매겨 평가한 뒤 합산해 내년에 사용할 교과서를 선정하게 된다. 현재 학교마다 모든 교사가 많게는 십수 권의 교과서들을 일일이 검토하느라 경황이 없다. 그런데 모든 과목의 교과서가 일괄적으로 배부됐는데도 유독 한국사만 나흘 뒤로 미뤄졌다. 검정 과정에 잡음이 있거나, 교육부가 교사와 여론을 상대로 간을 보려는 행태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듯 한학평의 교과서는 학교로 배부되자마자 모든 이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되었고, 이는 장고 끝에 악수를 둔 형국이 됐다. 2022 개정 교육과정과는 전혀 무관한 아이들조차 찾아와 한학평 교과서를 구경할 수 없냐고 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