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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오마이뉴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의 첫 현장 행보, 위험하다

2023년 2월 2일 413

[김종성의 히,스토리]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조사… 정읍 두암교회 방문이 의미하는 것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조사를 위해 1일 전북 정읍시 두암교회를 방문했다. 극우적 역사관으로 논란을 빚은 김광동 신임 위원장이 이곳을 찾은 것. 이날 두암교회에는 여타 교회에서 발생한 학살 피해 유족들도 방문했다. 전북 김제시 만경교회, 전남 영광군 야월교회·법성교회, 전남 신안군 임자진리교회·증도교회, 충남 서천군 한성교회 학살 사건 유족들이 함께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광동 위원장은 유족들 앞에서 기독교인 학살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면밀한 조사를 거쳐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광동 위원장은 제주 4·3을 폭동으로 규정하거나 5·18 북한 개입설을 옹호하는 등의 퇴행적 역사 인식을 드러냈다. 또 한국 근대화를 일제 식민지배의 산물로 포장했다. 이 때문에 임명 전부터 논란이 컸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12월 9일 임명을 관철시켰다. 그런 김광동 위원장이 취임 후 첫 현장 행보로 호남 지역 기독교회를 찾아가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를 부각시켰다. 이 행보가 우연이 아니라는 점은 그의 16년 전 기고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11월호 월간 <북한>에 수록된 ‘6·25 전쟁 중 북한군과 좌익의 양민학살’에서 김 위원장은 “군인·경찰 등 공무원을 제외한다면 6·25전쟁 중 북한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의 또 다른 최대 피해자는 기독교도와 호남 지역이다”라고 한 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번영체제”를 위해 이 문제를 규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논문에서 기독교인 학살 현장으로 거명한 지역은 전남

[인천일보] [시론] 조병창 병원건물과 역사문화생태공원

2023년 2월 3일 894

요즘 인천의 화두 하나는 인천 육군조병창 병원건물 존치 여부다. 2년 전부터 조병창 병원건물의 문화유산 가치를 이유로 병원건물 철거를 반대해온 전문가와 시민들이 인천시에 병원건물 존치를 요구해왔는데, 최근 인천시가 국방부에 철거를 요청하자 급기야 존치를 주장하는 일본 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 단체가 부평 캠프마켓 정문에서 천막 농성을 하기에 이르렀다. 인천 육군조병창은 조선을 점령한 일본 제국주의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만주와 중국본토를 점령하고 나아가 동아시아를 일제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총과 칼, 탄환을 만들기 위해 부평에 설치한 무기공장이다. 일제는 일본 본토에 6개, 만주와 인천에 각 1개씩 총 8개의 조병창을 설치했는데,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후 일본 본토와 만주의 조병창은 없어지고 인천 육군조병창은 한국에 진주한 미군기지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조병창 시설과 건물이 상당수 보존되었다. 인천 육군조병창은 부평에 제1제조소, 평양에 제2제조소가 있었고, 매달 99식 소총 4000정, 총검 2만개, 탄환 70만발, 포탄 3만발 등을 생산할 정도로 규모가 큰 무기공장이었다. 부평 캠프마켓 내 부영공원에는 지하호 시설이 있는데, 그 출입구는 차량이 드나들 정도로 크고 지하호 내부는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고 비상구도 있어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하호는 조병창에서 만든 소총을 성능 시험하기도 하고 소총 등 무기를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인천 육군조병창 시설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다. 1948년 해방 후 조병창 사진을 보면 정중앙에 일직선으로 가로질러 있는 흰색 2층 건물이

[오마이뉴스] “시민 궁핍한데 1000억 써서 박정희 우상화? 말이 되나”

2023년 2월 1일 732

구미지역 시민단체, 시 숭모관 철회 요구… “전국민적 비난·조롱의 대상 될 것”, 주민투표 제안도 경북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사업으로 1000억 원을 들여 숭모관을 짓겠다고 밝히자 구미지역 시민단체들이 김장호 구미시장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치적쌓기에 불과하다며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관련 기사: 기념관 있는데… 1000억 들여 박정희 숭모관 건립한다는 구미시 https://omn.kr/22jci) 구미YMCA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59억 원을 들여 지난 2021년 9월 역사자료관을 개관한 지 2년 만에 또 박정희 추모사업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생가에 있는 추모관이 협소하고 비탈길에 있어 방문객들이 불편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시의 입장에 구미YMCA는 “돔 영상관, 모션클릭 모니터 등 당시 최신식 기술을 활용한 기존 전시실은 콘텐츠의 변화가 없거나 고장으로 인해 다른 전시물로 대체되고 있다”며 “오르막길이 문제가 아니라 전시 콘텐츠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운 시설을 지어도 방문객이 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곳이 순수한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추진되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시장이 당선될 때마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는 걸 시민들은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미YMCA는 “코로나 시기를 지나 최근 가스비, 기름값, 전기요금 등 줄줄이 인상되면서 시민들의 궁핍해지는 삶은 언제 나아질지 답답하다”면서 “숭모관을 거대하게 짓는다고 시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숭모관 건립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박정희 등굣길·체육관 있는데 또? 외지인 비웃음거리 될 것”

[한겨레] 2주 만에 재개된 한-일 국장급 협의…일쪽 사죄·배상 관련 이견 여전

2023년 2월 1일 337

한·일 외교당국이 30일 서울에서 국장급 협의를 열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이달 들어서만 두번째 협의 자리였지만, 핵심 쟁점인 일본 쪽의 사죄와 배상 참여 문제에 대한 양쪽 간 근본적인 입장 차를 좁히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국장급 협의를 열었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데 이어 불과 2주 만에 다시 열린 이날 협의는 예정 시간을 1시간 남짓 넘겨가며 3시간가량 이어졌다. 서 국장은 협의 뒤 기자들에게 “양국 정상 간 합의에 따라 조속한 현안 해결과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외교당국 간 협의를 가속화하는 차원에서 협의를 개최했다”며 “앞으로도 고위급을 포함한 양국 외교당국 간 긴밀한 소통을 지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협의에선 일본 쪽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니가타현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등 최근 불거진 양국 간 쟁점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시간이 부족해 다른 문제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고, 강제동원 배상 해법 문제만 집중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간 한달에 한번꼴로 열렸던 양국 국장급 협의가 최근 40여일 사이 세차례나 개최되면서 이날 협의가 중대 갈림길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협의에서도 그간 우리 쪽이 요구한 일본 쪽의 사죄와 배상 참여 등 이른바 ‘성의 있는 호응조치’에 대해선

[인천투데이] ‘부평 캠프마켓 조병창 병원 철거 반대’ 시민대행진 열려

2023년 2월 2일 524

1일 80여명, 부평 캠프마켓~인천시청 5.5km 행진 인천시민사회, 천막농성과 릴레이 단식 8일째 진행 인천투데이=이서인 기자│인천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시민들이 부평 캠프마켓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대행진을 진행했다. 부평평화복지연대와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등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 관계자 등 80여명은 1일 오후 2시 부평 캠프마켓에서 출발해 인천시청까지 5.5km 구간을 행진했다. 추진협은 인천시청에 도착해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를 반대하는 서한을 시장에게 전달하고 시장 면담을 요청했다. 추진협은 “인천시와 국방부는 조병창 병원 건물 등 일제강점기 침략전쟁과 강제동원의 증거를 철거하려고 한다”며 “아픈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 조병창을 지켜야한다. 인천시장은 당장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 중단을 국방부에 요청하고, 민관협의기구를 구성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추진협은 향후 ▲조병창 병원 철거 반대와 조병창 지키기 100만 국민서명운동 ▲시의 조병창 병원 건물 관련 법 해석 오류 등 감사 청구 ▲조병창 대책 전문가 토론회 ▲조병창 지키기 캠프마켓 토요행진 ▲캠프마켓 시민 현수막 달기 등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선 지난달 25일 추진협은 캠프마켓 공원 앞에서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 반대 천막농성과 릴레이 단식을 시작해 현재 8일째 진행하고 있다. 일본육군조병창은 1941년 일제가 대동아 침략전쟁을 위해 조선에 지은 무기제조 공장으로 현재 부평 캠프마켓 자리에 들어섰다. 당시 1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강제로 조병창 노역에 동원됐다. 강도 높은 노동에 다친 사람들이 조병창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때문에 조병창 병원 건물은 일제의 침략전쟁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1,000억 예산 박정희 숭모관 건립을 반대한다.

2023년 1월 31일 669

1,000억 예산 박정희 숭모관 건립을 반대한다. 구미 상모동 박정희 생가 일대에는 900억 원을 들여 조성한 새마을 테마공원, 50억 원의 세금으로 지은 민족중흥관, 그리고 최근 160억 원을 들여 지은 박정희 유물을 전시한 역사 자료관 등이 있다. 하지만 찾는 사람이 적어 현재도 운영 인력과 관리에 세금이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구미시는 박정희 우상화 사업에 또다시 1,000억 원대의 천문학적인 혈세를 쏟아부어 박정희 숭모관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구미에는 각종 박정희 생가 안내 도로표지판, 박정희체육관, 박정희 등굣길, 박정희 관련 시설물이 차고 넘쳐 이미 박정희 우상화 사업으로 도시 전체가 외지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실정이다. 박정희 관련 시설물을 유지관리하기 위해서만 한 해에 70억 원이 넘는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데도 또다시 1,000억 원대의 박정희 숭모관을 건립한다는 구미시의 계획 앞에서 우리는 할말을 잃는다. 친일 행적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로 박정희를 기억하는 국민들에게 구미시의 이 어처구니없는 계획은 또다시 전국민적인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떠오를 것을 우려해 마지않는다. 김장호 현 구미시장은 정녕코 박정희를 ‘반인반신’이라 부르며 우상화에 몰두했던 남유진 전 구미시장의 길을 뒤따르려는가? 기존 시설도 외면받고 있는 실정에 또다시 박정희 숭모관을 건립하겠다는 것은 아직도 박정희 향수에 젖어 있는 일부 구미지역 토호 세력들과 결탁하여 자신의 정치적 사익을 취하고자 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밖에 없다. 최근 고금리와 고물가, 경기둔화 등 국내 경제 상황이 위기로 치닫고 있고, 서민과 중산층은 난방비 폭탄에

[국회토론회]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을 진단한다 (1.26)

2023년 2월 1일 310

국회토론회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을 진단한다!’ 2023.1.26.(목) 주관 :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 국회의원 김홍걸 공동주최 : 국회의원 김상희/조정식/김경협/홍익표/박정/이재정/윤영덕/이수진(비) [토론회 자료집 PDF 다운로드]

[오마이뉴스] 믿었던 종교지도자의 변절… 91페이지에 달하는 폭로

2023년 1월 30일 447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최린 천도교는 기독교와 함께 3·1운동의 중추 세력이었다. 민족대표 33인 중에서 15명이 천도교인이었다. 16명인 기독교와 쌍벽을 이뤘다. 동학에서 기원한 이 교단의 전국적 조직망이 1919년 만세운동 폭발의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그 같은 천도교 3·1운동의 중심에 당시 41세인 민족대표 최린이 있었다. 보성고등보통학교(중학교) 교장인 그는 천도교를 대표해 기독교 대표 함태영과 협의해 만세운동을 조직했다. 문인 최남선에게 독립선언서 집필을 맡긴 것도 그였다. 그의 역할은 일제 법원의 재판 기록에도 나타난다. 국가보훈처의 전신인 원호처가 1972년에 펴낸 <독립운동사 자료집> 제5권에 수록된 재판 기록은 손병희·최린·권동진·오세창이 천도교 만세운동 계획을 수립한 뒤 “그 계획의 실행에 대하여는 최린으로 하여금 담당케” 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뒤 최린은 정반대 성향으로 변신했다. 대표적인 제국주의 부역자 중 하나로 우뚝 섰다. 단순히 일본을 돕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일제의 녹봉에 의존하는 생계형 친일파의 모습까지 보여줬다. 민족대표 타이틀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변했던 것이다. 1878년 함경도 함흥에서 출생한 최린은 한학 공부를 거쳐 24세 때인 1902년에 지방 통상 부서인 길주감리서의 주사로 취임했다. 그 뒤 대한제국 유학생이 되어 도쿄부립제일중학교 속성과에 들어가고,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 이듬해인 1906년 메이지대학 법과에 입학했다. 3년 뒤 졸업한 그는 국권침탈 직후인 1910년 10월 천도교 제3대 교조인 손병희의 권유로 교단에 입교했다. 이듬해부터는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장 등을 지내며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3·1운동 최일선에 서게 됐던 것이다. 만세운동 때문에

민족사랑 2023년 01월호

2023년 1월 30일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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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원봉 같은 영웅이 필요한 시대’… 밀양에 80명 모인 이유

2023년 1월 30일 813

약산김원봉과함께-민족문제연구소,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역사 기행”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망국의 치욕을 자기들의 피로써 능히 씻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실천했던” 그들을 찾아 나섰다. 약산 김원봉(1893~1958?) 장군을 비롯한 ‘의열단’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경남 밀양에서 열린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의열단 밀양 역사 기행”이 그것이다. 지난해 11월 창립한 ‘약산김원봉과함께'(공동대표 김언호 한길사 대표, 서중석 전 성균관대 교수, 안경환 전 서울대 교수)가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같이 28~29일 이틀 동안 밀양 곳곳을 누비며 “의열단 정신 계승하자”고 외쳤다. 조선혁명선언은 100년 전인 1923년 1월 28일, 의열단장인 김원봉 장군이 단재 신채호 선생한테 의뢰해 작성되었고, 독립운동의 이념과 함께 ‘민중 경제, 민중 사회를 건설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의열단(義烈團)은 1919년 11월,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인 김대지, 황상규, 김원봉, 윤세주 등 13명이 만든 항일비밀결사다. 이번 역사기행은 약산김원봉과함께가 창립 후 처음으로 마련한 행사였다. 김언호·서중석·안경환 공동대표뿐만 아니라 임헌영 소장,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을 지낸 송기인 신부(천주교), 양보경 전 성신여대 총장,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김원봉 평전을 쓴 이원규 소설가, 소설 <쌈짓골> <운심이> 등을 펴낸 김춘복 작가, 헌쇠 박중기(90) 선생이 참여했다. 의열단원의 친인척들도 함께 했다. 김원봉 장군의 오촌조카인 김재현(밀양) 선생과 의열단원인 독립운동가 초산 김상윤 의사의 장손자인 김기봉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부회장도 동행했다. 서울, 부산, 제천, 장흥, 진주, 대구뿐만 아니라 호주 시드니에서 온 참가자를 포함해 모두 80명이 모였다. 김언호 대표는 “약산 김원봉 장군과 관련해 전국 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