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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역사에서 유난히 뜨거웠던 10월 26일…‘10·26 탕탕전’ 눈길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광주지역 작가들이 10·26에 맞춰 작품 전시회를 연다. ‘10·26탕탕전 행사위원회’는 30일 광주 동구 예술의거리 비에이시(BHC)갤러리에서 ‘친일청산하기 딱 좋은 날 10·26 탕탕’전을 연다. 이 행사는 사단법인 민족미술인협회 광주지회,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광주전남지부,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4·19문화원 등이 후원한다. 26일 저녁 7시부터 안중근 열사 ‘옥중가’를 노래로 부르고 분장놀이도 한다. 10월26일은 역사 속에서 유난히 큰 사건이 많았던 날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날이고, 1597년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에서 133척의 왜선을 격파했던 날이기도 하다. 또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날이며, 1920년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승리의 날도 10월26일이다. 노주일 작가는 “일제강점기 때가 내가 살았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전시회”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엔 김광례, 김규표, 김두성, 김서경, 김운성, 김화순, 노주일, 류기정, 박성우, 손향옥, 이사범, 이상호, 전정호, 전혜옥, 조현 등 15명이 1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상호 작가는 ‘안중근 의사 탄생 143주년 기념우표’를 출품한다. 그는 “독립운동가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정부에서 발행하는 지폐나 우표에 선정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전정호 작가는 ‘1920년 9월 28일 지하감옥에서의’라는 판화 작품과 관련해 “당시 서대문 형무소 지하 여자 감옥 고문실에서의 19살 소녀가 고문을 견디며 벽을 긁어 표현했던 ‘대한독립만셰’ ‘어머니 보고 싶어요’라는 글을 새겼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2022-10-24> 한겨레 ☞기사원문: 역사에서 유난히 뜨거웠던 10월 26일…‘10·26 탕탕전’ 눈길 ※관련기사 ☞광주in:
[보도자료] 한중수교 30주년 · 한중 문화교류의 해 기념 학술심포지엄
[보도자료] [내려받기] ㅣ [자료집] [다운로드] [보도자료] 한중수교 30주년 · 한중 문화교류의 해 기념 학술심포지엄 〈항일전쟁 시기 한중 공동전선의 전개〉 주최 : 서울특별시 강북구 / (사) 민족문제연구소 주관 : 근현대사기념관 후원 :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때 : 2022년 10월 28일(금) 10:00∼18:00 곳 :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다목적홀 한중수교 30주년과 한중 문화교류의 해를 기념하여 〈항일전쟁 시기 한중 공동전선의 전개〉를 주제로 한 학술심포지엄이 10월 28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다목적홀에서 개최된다. 서울시 강북구(구청장 이순희)와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가 공동주최하고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는 이번 심포지엄은 일제침략기 한중 항일세력의 협력과 공동대응을 시기별 지역별 분야별로 재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행사는 개회식과 기조발제에 이어 Ⅰ부 독립전쟁과 한중연대, Ⅱ부 문화예술로 보는 항일연대, 종합토론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번 학술발표는 그간 비중이 두어졌던 군사부문의 연대를 넘어 문화예술 분야로까지 시야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기조발제를 맡은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한국의 독립운동과 중국혁명」이란 제목으로 한중수교 이후 독립운동사 인식의 변화를 개관하고, 일제침략기 한중 항일세력 상호간의 연대와 영향을 분석했다. 특히 독립운동가들이 중국혁명에 참여한 것은 독립운동의 일환이었음을 강조하면서, 한중수교 30년에 걸맞은 한국정부의 인식 전환과 서훈 기준의 재정립을 촉구했다. 손염홍 건국대 교수는 「중국 공문서를 통해 본 한국광복군 창설과 한중협력」 발표에서 한국광복군 창설과정에서 일어난 교섭과 협력, 갈등을 중국 쪽 사료를 활용하여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손 교수는 한국 정당의 통일 문제, 임정 승인 문제, 국제관계가 한국광복군 정식 승인과 재정 지원에 장애요인으로
[공동 보도자료] 2022 재일동포 초청행사 ‘분단에 맞선 사람들, 재일동포와의 동행’
[보도자료] [다운로드] [공동 보도자료] 2022 재일동포 초청행사 ‘분단에 맞선 사람들, 재일동포와의 동행’ 1. 정론보도를 위해 애쓰시는 귀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조선학교와함께하는사람들 몽당연필, 포럼 진실과정의, KIN(지구촌동포연대)는 재일동포 초청행사 “분단에 맞선 사람들, 재일동포와의 동행”을 10월25~28일간 진행합니다. 3. 재일동포들과 오랫동안 연대하고 교류해온 단체들이 모여 재일동포의 인권 침해 역사를 살피고 성과와 과제를 확인하면서 동포들과 연대단체들 간의 친교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4. 자세한 내용은 별첨자료 참고바라며, 많은 관심과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2022년 10월 23일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포럼 진실과 정의, KIN(지구촌동포연대)
[오마이뉴스]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울려 퍼지는 기괴한 교가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김석원 홍사익은 일본제국 군대에서 육군 중장까지 진급했지만, 이는 전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1914년에 일본 육사를 졸업한 그는 주로 군사행정이나 대민사업 분야에 근무했다. 일제가 그를 부각시킨 것은 1919년 3·1운동의 충격 때문이었다. 식민지 한국인도 평등하게 대해준다는 이미지를 조성하고자 일제가 그를 계속 승진시켰던 것이다. 홍사익의 일본 육사 1기수 후배인 김석원은 홍사익보다 낮은 대좌(대령) 계급으로 제대했지만, 홍사익을 훨씬 능가하는 전공을 기록했다. 제20사단 제78연대 장교로 서울 용산에 근무하다가 1931년 만주사변에 투입된 대위 김석원은 제78연대 기관총대 대장으로 상당한 전과를 남겼다. “일본인보다 잘한다는 소릴” 듣고 싶었던 사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펴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 제4-2권에 인용된 김석원 자서전 <노병의 한>에 따르면, 만주로 파견된 그는 “기왕 군인이 된 바에야 무엇을 하더라도 일본인보다 잘한다는 소릴 들어야 한다”는 목표 하에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영화 같은 전투 현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심양·장춘을 거쳐서 치치하얼까지 전전하였는데, 당시 신문 기자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정말 빗발치듯 하는 탄우(彈雨) 속에 몸을 드러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한 뒤 “기관총대장으로서 나의 진두지휘는 그때 상당한 성가(聲價)를 얻은 결과로 일금 7백원이라고 하는 논공행상금을 받게 되었다”라고 회고했다. 친일파 박흥규(1888~1957)가 실권은 별로 없지만 오늘날의 국회의원에 상응하는 중추원 참의직을 수행하면서 만주사변 전년도인 1930년에 받은 연수당이 600원이다. 대위 김석원이 받은 상금의 가치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자서전에 언급된 그의 ‘성가’는 1937년
[뉴스토마토] 정진석 ‘친일’ 논란에 김무성·하태경·나경원·김문수 줄소환
역대 국회의원 ‘친일’ 발언 모아보니…친일 역사관으로 헌법정신 부정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국회가 ‘친일’ 논란으로 뜨겁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려져 망한 것이지,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발언, 논란에 불을 붙였다. 국회에서 친일 발언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리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잊을 만하면 친일 발언으로 헌법과 국기를 문란케 했다. 이번 정 위원장 발언에 각계 비판이 쏟아진 건 이런 맥락이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1948년 국회 개회 이래 국회의원 신분으로 친일 발언을 한 사례들을 모아봤다. 김무성 부친 김용주 “일본, 한국 학생들을 관대히 우대했다” 1948년 이후 언론보도를 쭉 훑어보면, 현직 국회의원 신분을 가지고 최초로 친일발언을 한 사람은 김용주 민주당 의원이다. 그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이기도 하다. 김용주 의원의 친일발언은 1961년 1월24일 벌어졌다. 당시는 일본 경제시찰단의 내한이 국내의 강력한 반대여론에 부딪혀 취소된 때였다. 광복을 맞이한 지 채 20년이 되지 않았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 등 대일감정이 좋지 않은 시기여서다. 일각에선 일본 경제시찰단의 방한엔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심까지 불거졌다. 김용주 의원은 당시 일본 경제시찰단 방한 환영위원장이었다. 그는 참의원 본회의에서 일본 경제시찰단의 방한을 해명하다가 “일본이 재일교포를 북송한 것은 교포들이 일본인의 감정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라며 “일본 정부는 밀항을 간
[오마이뉴스] 대전현충원에 묻힌 1920년생 두 사람의 대조적 삶
홍범도 장군부터 곽낙원 지사까지… 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된 제5회 평화둘레길 걷기 지난 2018년 처음 시작된 ‘이야기가 있는 대전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가 지난 16일 5회를 맞았다. 대전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묘를 찾아다니며 해설사로부터 그 묘역에 안장된 인물의 삶과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행사다. 평화둘레길 걷기에 앞서 진행된 개회식에서 박규용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공동대표는 “이번 행사를 통해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민족을 위해서 앞서 갔던 분들의 얼과 정신을 본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어 “독립운동을 나섰던 운동가들을 탄압하고 잡아갔던 이들 또한 묻혀 있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를 공동주최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도 “그 나라를 알고 싶으면 국립묘지를 가보라고 하는 말이 있다”며 “우리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지금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추도엽 유성겨레하나 공동대표는 국립묘지에 친일파가 안장되게 된 근본적인 이유로 미군정의 친일파 재등용을 꼽았다. 이외에도 유성지역연구소와 겨레한마음봉사단도 공동주최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제5회 대전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는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집중했다. 개회식이 진행된 장소가 독립유공자 제3묘역 홍범도장군 묘역 앞이었던 만큼 첫 번째로 소개된 인물은 홍범도(독립유공자 3-917)이었다. 1920년 6월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 1개 대대를 섬멸시킨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장군의 지휘 아래 독립전쟁의 첫 승리를 이룬 전투였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은 독립을 맞이하기 전인 1943년 10월 25일에 카자흐스탄에서 사망했고 그곳에 묻혔다.사망 후 78년 만인 지난해 8월에 그의
[한겨레] 친일이냐 종북이냐…그 끝없는 역사 전쟁
[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50 철학과 전략 사라진 통일·외교 정책 정부·여당, 한반도 정책 큰 그림 부재 윤 대통령, 통일·외교 문외한인데다 정진석 등 선 넘는 대북 강경 발언 민주도 ‘친일 국방’ 비난 등 자제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친일 국방’, ‘욱일기’, ‘안보 자해’ 등 잇단 공격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아무래도 현 집권 세력의 무척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최근 정가에서 벌어지는 친일 논란은 단순한 정치 공방이 아닙니다. 그 배경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체성과 이념을 둘러싼 대논쟁이 깔려 있습니다. 이번 친일 논란의 역사적 배경을 짚어보고 이 논쟁을 어떻게 정리해 가는 것이 좋을지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친일 논란은 종북 논란과 분리하기 어려운 쌍생아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친일파는 해방 이후 반공을 기치로 내세워 부와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분단과 전쟁이 친일파의 기득권을 보장해준 것입니다. 친일 기득권 세력의 전위였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죽이고 가뒀습니다. 무고한 재일동포 유학생과 어민들을 잡아다가 고문해서 간첩으로 조작했습니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 같은 중도 보수 성향의 야당 정치인들을 ‘빨갱이’, ‘친북’, ‘용공’, ‘종북’으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정파 관계없는 과제였던 ‘남북관계’ 오랫동안 계속된 기득권 세력의 종북몰이로 친일 논란은 비집고 나올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독재 정권을
[경향신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옥순 할머니 별세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로 전범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던 김옥순 할머니가 별세했다. 향년 93세. 민족문제연구소는 “16일 새벽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옥순 할머니께서 별세하셨다”고 17일 밝혔다. 1929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국민학교 6학년이던 1945년 4월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전범기업인 후지코시 공장에서 항공기 부품·탄피 등을 만드는 일을 하다 같은 해 11월 귀국했다. 김 할머니는 2015년 4월부터 가해자인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국과 일본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이어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소를 제기할 때 할머니는 ‘억울하고 분하다는 것은 한도 없고 끝도 없지마는, 지금 이제 생각하니까 눈물만 자꾸 앞서네. 그때 고생한 생각하니까’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2019년 1월18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후지코시 측이 상고해 3년8개월째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김 할머니는 2016년 9월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9부(부장판사 이정민) 심리로 열린 후지코시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4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어릴 때 일본에 가서 고생한 사람들 용돈이라도 많이 챙겨주시지 왜 모른 체 하십니까들”이라고 물었다. 그는 “1945년 2월경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했다. 그 중 당첨된 50명이 일본으로 가게 됐다”며 “일본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월급은 10원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를 비롯해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1~3차 소송의 원고(피해 당사자) 23명 중 13명이 별세했다. 생존자는 10명으로 줄었다. 김진영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저희가 2013년 1차 소를 제기하고 보도되니 김옥순 할머니가 수소문해 연락을 주셨다.
[오마이뉴스] 독립운동가 묘소는 왜 이 건축물들에 포위되었나
[답사기] 효창공원이 보여주는 오늘의 현실 만시지탄이지만, 지난 2019년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효창공원을 ‘독립운동 기념 공원’으로 재단장하기로 의결했다. 운영 주체가 서울시에서 국가보훈처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머지않아 동네의 근린공원처럼 인식되던 곳이 내로라하는 역사 유적이자 성역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현재 독립운동가들은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과 대구의 신암선열공원 등에 모셔져 있다. 임시정부 요인 묘역과 독립유공자 묘역을 따로 조성해 군인과 경찰, 사회유공자들이 안장된 곳과는 공간을 분리했다. 묘역의 면적과 봉분의 크기도 여느 묘소보다 넓고 크다. 모셔진 독립운동가는 몇 분 안 되지만, 역사적 위상과 명망으로 치면 여느 묘역에 비할 바 아니다.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해, 윤봉길과 이봉창, 백정기 등 세 분의 의사와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등 세 분의 임시정부 핵심 요인이 잠들어 있다. 아울러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세 분의 의사 곁에 조성되어 있다.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를 포함해 효창공원에 잠든 여덟 분의 독립운동가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조차 누가 된다. 그들을 빼놓고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를 단 한 줄도 서술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구와 윤봉길의 인지도에 다른 분들이 왜소해 보일지언정 그들의 이름을 생소해할 대한민국 국민은 드물다. 그런데도 묘가 조성된 지 7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효창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건, 거칠게 말해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욕보이는 짓이다. 역사적 위상을 공인받아 1989년 사적 제330호로 지정됐다면, 마땅히 이름부터 손봐야
[민중의소리] ‘식민사관’ 정진석에 쏟아진 일갈…“윤 대통령 친일 망동에 깨춤”
전국민중행동 등 “당당한 태도에 국민 경악”…발언 배경 된 한미일 연합훈련 우려 목소리도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친일 발언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 주장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짙은 친일 성향을 보여온 정 위원장을 향해 ‘확신범’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범’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목된다. 일제 침략 역사를 무시한 채 한일 군사협력 강화를 꾀하고, 남북 군사 대립을 조장하는 정부의 외교·대남 정책을 지지하는 과정에서 정 위원장의 문제 발언이 잇따랐다는 것이다. 전국민중행동(민중행동)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평화행동)은 1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 위원장의 친일 발언을 규탄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일제 제국주의 식민사관은 일본 침략을 미화하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매국사상”이라며 “창피한 줄 모르고 식민사관을 당당히 드러내는 정 위원장 태도에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장에서는 ‘식민사관 친일 망언 국민에게 사죄하라’, ‘민중 저항의 역사 무시한 정진석은 사퇴하라’, ‘한반도 전쟁 부르는 매국적 굴욕외교 중단하라’ 등 구호가 퍼졌다. 앞서 정 위원장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며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적었다. 또한 “조선 왕조는 무능하고 무지했다. 백성의 고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다가 망했다”면서 “일본은 국운을 걸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무력으로 제압했고, 쓰러져가는 조선 왕조를 집어삼켰다”고도 했다. 조선 봉건왕조의 부패와 무능으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일제치하 민중 학살을 왜곡하는 역사인식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