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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일본군 헌병, 김구 암살 배후자… 그가 대전현충원에 있다

2022년 6월 8일 1278

[살아있는 역사교과서 대전현충원 49] 이승만 대통령의 오른팔, 김창룡 1947년 4월 13일 소위 임관(조선경비사관학교 제3기 졸업)→1948년 1월 1일 중위 진급→1948년 8월 15일 대위 진급→1949년 1월 15일 소령 진급→1949년 7월 15일 중령 진급→1950년 10월 21일 대령 진급→1953년 5월 4일 준장 진급→1955년 1월 17일 소장 진급→1956년 2월 3일 중장 추서. 일제 강점기 일본군 헌병 출신이었지만, 광복 후 국군에 입대해 소위에서 대령까지 1년에 2번 꼴로 진급한 사람. 1956년 1월 30일 부하에게 암살당했고, 대한민국 최초 국군장으로 장례가 치러진 사람. 그리고 대통령에 의해 중장으로 추서된 사람. 바로 이승만 대통령의 오른팔, 김창룡(1920~1956) 이야기다. 1956년 1월 30일, 당시 육군 특무대장 김창룡 소장은 출근 도중 오전 7시 30분경 노상에서 괴한들에게 피살되었다. 김창룡의 나이 37세 때다. 이승만은 김창룡의 피살 소식을 듣자마자 그의 유해가 안치된 적십자병원을 찾아가 유해를 살펴본 뒤, 바로 김창룡을 육군 중장으로 추서했다. 2월 3일 김창룡의 장례는 대한민국 최초 국군장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장례일 하루 동안 전 육‧해‧공군 부대가 조기를 게양했고, 장병들에게는 음주가무가 금지되었다. 이승만은 “김 중장은 나라를 위해 순국한 것이며 충령의 공을 세운 것”이라는 비문을 직접 써서 보낸 후, 범인 체포를 독촉하였다. 군은 전국에 비상경계망을 펴고 수사에 착수했으며, 전 군장병에게 휴가 및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육군 특무대는 사건 발생 20여 일 만에 과거 특무대에서 김창룡의 부하로 근무했던 허태영 대령을

[팟캐스트] 역발상 시즌1_조선재즈의 왕은 누구? 김해송과 손목인_식민지시대 사람들 10편

2022년 6월 8일 683

☞ (06.07) ‘역발상’ 시즌 1: 조선재즈의 왕은 누구? 김해송과 손목인_식민지시대 사람들 10편 오늘의 이야기:조선 재즈의 쌍두마차 김해송과 손목인 하지만 누가 과연 조선재즈의 왕인가? 출연:이준희(옛가요 전문가)이영미(대중문화평론가) 1. <싱싱싱> 같은 음반회사 소속으로 음반과 무대에서 치열할 경쟁을 펼쳤던 김해송과 손목인. 나이는 김해송이 두 살 많았지만, 데뷔는 손목인이 두 해 빨랐던, 참으로 애매한 관계. 2. <청춘계급> 작곡가로, 연주가로, 밴드마스터로 다채로운 활약을 선보인 두 사람이었지만, 가수 활동의 흔적은 김해송이 손목인보다 훨씬 더 많은 편. 3.<항구의 붉은 소매> <목포의 눈물>, <해조곡> 등으로 가수 이난영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작곡가 손목인. 손목인이 이난영에 대해 어떤 감정을 어느 정도 품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난영이 김해송과 결혼한 것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이 있기는 했던 듯. 4.<고향> 반듯하고 잘 짜인 느낌을 주는 곡이 많은 손목인과 달리, 김해송 곡들에는 독특한 착상과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 편. 개인적인 성향 차이일 수도 있고, 제도권 음악교육 경험 유무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데, 1940년대 들어서는 대중성 면에서 김해송의 근소 우위가 보이기도. 5.<선죽교> 1940년대 악극 전성기가 펼쳐지면서 탁월한 기획력으로 최고의 무대를 선보인 김해송. 손목인 역시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이 시기 김해송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그야말로 넘버원. 6. <가스바의 연인> 전쟁 발발과 함께 납북된 김해송은 이제 금기의 인물. 그런데 손목인 역시 일시 사라진 인물이 됨. 1952년 일본으로 밀항한 손목인은 일본에서 계속 활동을

[보도자료]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 공식 방한 맞이 인권시민사회단체 보고서 발표

2022년 6월 7일 848

[보도자료] [다운로드] 1. 유엔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of truth, justice, reparation and guarantees of non-recurrence, 이하 ‘진실정의 특별보고관’) 파비안 살비올리(Mr. Fabian Salvioli)가 오는 2022. 6. 8. ~ 15. 한국 사회의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의 권리 보장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한국을 공식 방문할 예정이다. 방한 기간 동안 특별보고관은 과거사 관련 정부 부처, 피해자 및 시민사회단체 등을 면담하고 선감학원, 대전 골령골 등 대표적인 과거사 현장도 방문한다. 2. 파비안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의 이번 공식 방한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고려한 방문으로 보인다. 그 동안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은 2019년,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을 초청하여 <국제 인권 기준에서 본 한국의 과거사 청산>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지속적으로 한국의 과거사 문제 해결에 있어서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특별보고관에게 전달해 왔다. 3. 특별보고관의 이번 방한에 앞서 국내 1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 방한 대응 인권시민사회모임”은 한국의 과거사 관련 법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더불어 일제감정기, 한국전쟁 시기, 권위주의 정권 시기 등에 발생한 과거사 사건들의 현황과 과제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해당보고서에 언급된 주요 사건으로는 일본군성노예제, 일제 강제동원, 사할린 한인 강제동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제주4‧3, 인혁당 재건위 사건,

[KBS NEWS]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기 추모 특별전 9일 개막

2022년 6월 7일 502

의암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기를 맞아 마련된 추모 특별전 ‘3·1운동을 이끈 민족지도자, 의암 손병희’가 오는 9일(목)부터 9월 30일까지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립니다. 전시에는 천도교중앙총부가 소장한 동학과 천도교 경전, 동학 농민군 포고문과 고시, 손병희 선생이 독립운동에 대비해 봉황각에서 일곱 차례에 걸친 49일 수련회를 개최할 때 사용한 가마솥과 독, 3·1운동 민족대표 48인의 판결문, 손병희 선생의 명함과 낙관 등의 유물과 손병희 선생 가족 사진과 장례식 사진 등 자료가 공개됩니다. 이 밖에도 민족문제연구소, 독립기념관, 고려대 박물관, 동덕여대 박물관 등이 소장한 3·1운동 당시의 각종 선언문과 사진, 보성전문학교·동덕여학교 관련 사진과 문서 등 흥미 있는 자료들도 함께 전시됩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을 이끈 민족지도자 의암 손병희 선생의 일생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종교인을 넘어 사상가이자 혁명가로서 시대를 이끌었던 선생의 참뜻을 되새기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습니다. 김석 기자 stone21@kbs.co.kr <2022-06-07> KBS NEWS ☞기사원문: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기 추모 특별전 9일 개막 ※관련기사 ☞연합뉴스: 강북구,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기 추모 특별전 개최 ☞통일뉴스: ‘의암 손병희’전 근현대사기념관서 6월9일 개막 ☞천지일보: ‘민족대표 33인’ 의암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기 특별전 ☞시사일보: 강북구,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기 추모 특별전 개최 ☞아시아경제: 강북구,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기 추모 특별전 개최

[통일뉴스] 20년 넘도록 현충일 맞아 진행된 국립묘지법 개정 운동

2022년 6월 7일 602

올해 대전현충원에서 더불어민주당사 앞으로 옮긴 이유 대전지역 단체들이 매년 현충일을 맞아 요구해왔던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김창룡 등 묘 이장 촉구 운동이 올해에는 대전현충원이 아닌 더불어민주당대전시당사로 자리를 옮겼다.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와 대전민중의힘은 6일 오후 2시,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하루빨리 국립묘지법 개정을 통하여 김창룡, 백선엽, 유학성 등 친일 반민족·반민주 행위자의 묘를 국립묘지 밖으로 즉각 이장하라!”고 촉구했다. 20년이 넘도록 대전현충원에서 진행해온 이들의 운동이 올해에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이유는 국립묘지법 개정 여론이 높고,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도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묘지법 개정에 미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홍경표 사무국장은 “특히 대전지역은 7석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움직이지 않아 이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 인사말에 나선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은 “22년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의) 묘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을 줄기차게 정치권에 요구해 왔지만, 국가의 정통성과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정치권은 그야말로 무관심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현대사에서 적폐의 뿌리,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다시 한 번 통렬히 절감하지 않았냐”며, “무엇 때문에 주저하고 망설이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창근 대전충청5.18민주유공자회 회장도 “적폐세력들을 국립묘지에서 몰아냈더라면 민주당이 이렇게 이번에 참패했겠냐”고 물으며, “이 모습을 보면서 지난 5년 동안 우리가 민주당에게 요구하고 바랐던 것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민주당이야말로 새로운

[경향신문] 역사와 현실 – 종묘에 모셔질 뻔한 이완용

2022년 6월 7일 805

그렇다. 우리 모두가 아는 을사오적 이완용. 순종의 위패를 종묘에 모시려던 1928년, 이 사람이 순종 시대에 공을 세운 신하로 뽑혀 종묘에 함께 모셔질 뻔했다. 나라 팔아먹은 자에게 준엄한 질타를 하진 못할망정, 공신이라니! 하마터면 이완용이 조선 종묘의 제삿밥을 받아먹는 꼴을 볼 뻔한 것이다. 1928년 5월, 원로대신과 종친들은 총 10명의 공신 후보자를 놓고 투표하여 문헌공 송근수, 충문공 김병시, 충숙공 이경직, 효문공 서정순 등 4명을 뽑아 이왕직에 보고했다. 이왕직은 일제시기에 조선 왕실 사무를 담당한 곳이다. 그러나 정작 이왕직의 장관은 최고점인 김병시, 이경직을 보류하고 이완용을 넣어 3명으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이완용은 원래 후보도 아니었는데 장관의 강요에 후보로 올랐으나 1표밖에 못 얻은 터였다. 투표에 참여한 원로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다. 더구나 이는 이왕직의 기존 원칙과도 어긋났다. 고종의 공신에 최익현을 넣자는 얘기에, 최익현이 ‘○○공’ 같은 시호가 없다며 막아선 게 이왕직이거늘, 이번엔 시호도 없는 이완용을 넣자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이왕직은 장관이 이완용계 사람이요, 실세는 이완용의 둘째 아들과 그와 친한 일본인 차관이었으니 어떤 배경으로 일이 진행된 건지 짐작할 만하다. 이렇듯 시끌시끌했던 순종의 배향공신 문제는 송근수와 서정순만 배향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렇게 넣고 싶어 한 이완용을 못 넣었으니 이왕직은 실패한 것인가? 한발 더 들어가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김병시와 이경직을 배제하는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충’ 자 돌림 시호를

[JTBC 뉴스] 일본에서 열린 ‘기이한 혐한 재판’…극우단체 손들어줘

2022년 6월 7일 595

[앵커] 4년 전 일본에서 위안부 관련 영화 상영회를 방해했던 한 극우단체가 오히려 자신들이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오늘(3일) 일본 법원의 판결이 나왔는데, 상영회 측 관계자들에게 벌금형이 내려졌습니다. 자세한 내용, 김현예 특파원입니다. [기자] 요코하마에 있는 법원입니다. 이곳에서 위안부 피해 영화를 상영했던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사건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8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재일동포 2세인 박수남 감독이 위안부문제를 다룬 영화 ‘침묵’을 상영했습니다. 그러자 일본 극우단체 관계자들이 몰려와 방해를 시작합니다. 최근 풍선모형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전시회를 열었던 일본제일당 관계자들입니다. 혐한 단체를 영화 상영회 측 관계자들이 막다가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극우단체가 ‘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해프닝으로 보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일본 검찰은 2년 뒤, 영화 상영회 측 관계자 2명을 폭행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일본 법원은 오늘 극우단체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극우단체의 상영장 난입을 막은 영화 상영회 측 활동가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겁니다. [감바라 하지메/위안부 영화 상영회 측 변호사 : (계단에서) 어쩌다가 굴렀는지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87세인 박수남 감독은 이 재판을 ‘기이한 혐한 재판’이라고 했습니다. [박수남/영화 ‘침묵’ 감독 : 억울한 판결인데요. 마지막까지 우리들은 싸우겠습니다.] 극우단체들이 위안부 관련 전시회나 영화 상영을 방해하는데도 일본 정부가 방치하면서 혐한활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화면제공 : 유튜브 ‘아리랑 노래 제작위원회’) 김현예 / 국제외교안보부

[한겨레]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말

2022년 6월 20일 454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36)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의사 오연상·부검의 황적준 등 박종철 죽음 사실대로 기록해 경찰의 고문살인 조작 드러나 87년 6월항쟁 도화선으로…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만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마태오 7,15-16)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마태오 10, 26) 1986년 하반기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애학투련 사건으로 뒤숭숭하고 암울했습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딘지 모르게 끝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자마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바로 박종철군 고문살인 사건입니다. 경찰이 취조하던 학생을 고문하고 급기야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었지만, 이를 은폐하고 조작하기 위하여 국가 권력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다는 사실은 마치 둔기로 머리를 심하게 맞은 듯한 충격이었습니다. 당시는 5공 시절로 정부의 공포 분위기와 언론 말살적 보도지침 하에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했던 정의의 수호자들 덕분입니다. “공개하면 전두환 정권이 가만두겠는가” 첫 번째 주인공은 당시 중앙대학교 부속 용산병원에 근무하던 의사 오연상입니다. 그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왕진을 갔을 때 박종철군은 이미 사망 상태였다고 합니다. 박종철 군의 시신이나 현장은 누가 봐도 이상했습니다. 오연상은 용산병원으로 박군을 옮기라는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보도자료] “3·1운동을 이끈 민족지도자, 의암 손병희”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기 추모 특별전 개최

2022년 6월 5일 1118

[보도자료] [다운로드] 3·1운동을 이끈 민족지도자, 의암 손병희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기 추모 특별전 개최 의암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기를 맞아 오는 6월 9일부터 9월 30일까지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추모 특별전 ‘3·1운동을 이끈 민족지도자, 의암 손병희’가 열린다. 전시는 서울시 강북구와 천도교중앙총부가 공동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 후원으로 민족문제연구소와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여 개최한다. 전시 개막식은 9일 오후 2시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진행된다. 전시에는 천도교중앙총부가 소장하고 있는 동학과 천도교 경전, 동학 농민군 포고문과 고시, 손병희 선생이 독립운동에 대비하여 봉황각에서 7차례에 걸친 49일 수련회를 개최할 때 사용한 가마솥과 독, 3·1운동 민족대표 48인의 판결문, 손병희 선생의 명함과 낙관 등의 유물과 손병희 선생 가족 사진과 장례식 사진 등을 비롯한 다수의 귀한 자료들이 공개된다. 이외에도 민족문제연구소, 독립기념관, 고려대 박물관, 동덕여대 박물관 등이 소장하고 있는 3·1운동 당시의 각종 선언문과 사진, 보성전문학교·동덕여학교 관련 사진과 문서 등 흥미 있는 자료들이 함께 전시된다.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을 이끈 민족지도자 의암 손병희 선생의 일생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종교인을 넘어 사상가이자 혁명가로서 시대를 이끌었던 선생의 참뜻을 되새기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의암 손병희 선생은 1861년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나 22세 때 동학에 입도하여 동학농민혁명 당시 호서동학군 통령으로 임명되어 전봉준과 함께 농민군을 이끌었다. 일본군의 개입으로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패배한 후 최시형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고 동학 3대 교주가 되었다. 1901년 일본으로 망명하여 국정 혁신과 사회

[오마이뉴스] 연예인급 주목받은 여성 친일파, 왜 ‘요녀’로 불렸나

2022년 6월 10일 784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배정자 연예인 이상의 주목을 끈 친일파가 있다. 사회적 지탄도 받았지만, 그 이상의 관심을 끌었다. 1966년에 배우 김지미가 그를 연기했고, 2012년에 배우 한채아가 그를 연상시키는 배역을 연기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이 ‘요녀’로 지칭한 배정자가 바로 그다. 김지미 영화인 <요화 배정자>는 요화로 불렀지만, 임시정부 기관지는 요녀로 불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선언에 따라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하고 있고, 임시정부의 기관지는 그를 요녀로 지칭했다. ‘요녀’로 불린 친일파 본명이 배분남인 배정자는 고종 임금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을 실각시키고 실질적 군주가 되기 3년 전인 1870년 경남 김해에서 출생했다. 김해 아전 배지홍의 딸인 그는 네 살 때 아버지가 역모죄로 처형되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역모죄인이 된 것은 흥선대원군과 연줄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구한말 역사서인 황현의 <매천야록>은 “운현궁 쪽 사람으로 지목되면 풀 베듯 잘라버렸다”고 전한다. 흥선대원군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광풍 속에서 배정자의 아버지가 역모죄에 걸렸던 것이다. 가족이 역모죄인 되면 나머지 가족은 원칙상 관노비가 돼야 했다. 그의 어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달아났고, 9년 뒤인 1883년 배정자를 경남 양산 통도사에 맡겼다. 승려가 되기 싫었던 13세 소녀 배정자는 1년 뒤 도주해 주점에서 일하다 경남 밀양에서 체포됐다. 관노비가 될 처지에 놓였던 그는 아버지의 지인인 밀양부사 정병하의 도움으로 달아날 수 있게 됐다. 정병하는 일본 상인이자 첩보원인 마쓰노 히코노스케(松尾彦之助)에게 배정자를 부탁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