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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활동

국채보상운동 벌인 아버지,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아들

2018년 5월 19일 1954

너무나 초라한 서상돈의 무덤… 부자의 행적이 왜 이렇게 다를까 1904∼1905년 러일전쟁의 승리와 1905년 을사늑약 등으로 한반도에서의 정치적·군사적 지배권을 장악한 일본은 한국을 경제적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차관을 강요한다.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한 차관이 아니었다. 일본은 한국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소요되는 경비를 모두 한국 정부에 부담시켰고, 차관은 그 수단이었다. 강제로 빚을 우리나라에 떠안긴 일본 1907년 2월 21일 대구 광문사의 사장 김광제(金光濟, 1866.7.1.∼19 20.7.24.)와 부사장 서상돈(徐相敦, 1850.10.17~1913.6.30) 등이 앞장서서 국채보상운동을 본격화했다. 이 무렵 우리나라가 일본에 진 빚은 1300만 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1910년에는 일본에 갚아야 할 국가 부채가 440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1907년의 1300만 원은 당시 우리나라의 1년 예산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국가의 1년 예산과 견줘보는 것은 1300만 원과 4400만 원이 어느 정도 규모의 부채인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민간에서 시작된 나라빚 갚기 운동 금연을 해서 모은 돈으로 나라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자 호응이 뜨거웠다. 일제는 언론 중 가장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이끌어간 대한매일신보의 양기탁을 모금한 돈을 횡령했다고 누명을 씌워 1908년 7월 21일 구속했다. 양기탁은 9월 29일 무죄로 석방되지만 그 사이 국채보상운동은 활기를 잃고 시들어버렸다. 일제의 간교한 술책이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서상돈의 묘소는 수성구 범안로 120, 즉 범물동 산227-1의 천주교 모역 안에 있다. 본래 달성군에 있었는데 1974년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서상돈 가문이

1980년 5·18진압 적극 가담자 10명은 누구?

2018년 5월 17일 1425

민족문제연구소 광주 금남로에 현수막 17일 5·18 전야제가 열리는 광주 동구 금남로에 5·18 진압 적극 가담자 인명사전 현수막이 설치됐다. 5·18 시민난장 행사 중 하나로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설치한 현수막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해 10명의 사진과 당시 이력 등이 담겼다. 전 전 대통령의 경우 ‘하나회 회장, 육사 11기, 쿠데타 통수권자, 12·12 쿠데타 이후 중앙정보부장 서리, 5·18 당시 최고 명령권자로 광주를 짓밟고 권력 찬탈’이라고 작성돼 있다. 명단에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전차와 무장헬기를 동원해 광주를 진압한 황영시 육군참모 차장이 포함돼 있다. 또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학봉 보안사 대공처장, 박준병 20사단장, 최세창 3공수 여단장, 신우식 7공수여단장, 최웅 11공수여단장, 서의남 505보안부대 대공과장 등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시민들은 이를 지켜보면서 혀를 차기도 했고, 당시 상황을 떠올린 듯 화를 내는 모습도 보였다. 일부 시민들은 “빨리 5·18의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관계자는 “5·18의 진실을 알리고, 5·18을 잘 모르는 후세들이 당시 어떤 사람들에 의해 5·18이 벌어졌는지 교육하기 위해 현수막을 설치했다”며 “앞으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친일인명사전과 같이 꾸준한 조사를 통해 5·18 진압 적극 가담자 인명사전을 발간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junwon@ <2018-05-17> 뉴스1 ☞기사원문: 1980년 5·18진압 적극 가담자 10명은 누구? ※관련기사 ☞연합뉴스: ‘1980년 5월 그날’…주먹밥 나누고 아리랑 울려 퍼진 금남로 ☞뉴스프리존:

원시인 석상·순종 동상 철거 주장에 대구 지자체 속앓이

2018년 4월 5일 2208

“흉물스럽다”며 석상 철거 청원·순종 동상은 역사 왜곡 논란 (대구=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대구 기초자치단체가 도심에 설치한 대형 조형물에 비판 여론이 일어 속앓이를 하고 있다. 달서구는 최근 2억여원을 들여 깊이 잠든 원시인을 형상화한 길이 20m, 높이 6m 석상을 진천동 도로변에 설치했다. 달서구가 2016년부터 국가사적 제411호 진천동 입석이 있는 선사유적공원 일대를 ‘선사시대 테마거리’로 조성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다. 사업 기획과 디자인은 공익광고 전문가 이제석씨가 맡았다. 지난해에는 돌도끼로 도로안내판을 내려치거나 밝은 표정으로 운전자에게 손을 흔드는 원시인 모습을 담은 조형물과 표지판을 선보여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대형 석상을 두고 인근 주민 반응이 썩 좋지 않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고 겁난다”, “조형물이 너무 커 영업에 지장이 있다”는 여론과 함께 주민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석상 인근 상인은 2천197명 서명을 받아 달서구의회에 원시인 조형물 철거 청원을 했다. 석상 철거를 요구하는 집회도 열 계획이다. 달서구의회 복지문화위원회는 오는 26일 제254회 임시회에서 관련 내용을 검토해 본회의 상정 여부를 결정한다. 달서구 관계자는 “청원이 구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법적 강제성은 없다”며 “조명 설치 등 석상 주변 환경을 보완할 수 있지만, 철거는 어렵다”고 말했다. 중구가 다크 투어리즘(역사교훈 여행)을 내세워 달성공원 앞에 세운 순종 동상도 역사 왜곡 논란과 철거 주장에 시달린다. 중구는 2013년부터 70억원을 들여 수창동∼인교동 2.1㎞에 벽화 설치, 쉼터 조성 등 ‘순종어가길 조성사업’을 했다.

‘육삼정(六三亭) 의거’ 85주년 기념식, 제천 박달재 정상서 열려

2018년 3월 19일 1713

[중부매일 서병철 기자] 주중공사 유명길(아리요시 아카라) 암살 미수사건인 ‘육삼정(六三亭) 의거’ 85주년 기념식이 17일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 박달재 정상에서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지회장 리학효)는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항일의식을 심어준 ‘육삼정 의거’를 되새기기 위해 지난해부터 행사를 갖고 있다. 1933년 항일독립군을 공격하기 위해 유길명을 중심으로 한 비밀회의가 상하이에 있는 ‘육삼정’이라는 고급 음식점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이를 눈치 챈 흑색공포단은 암살을 시도하려 했지만, 밀정에 의해 정보가 유출되며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사건은 중국과 한국의 대일항전의 새로운 전기가 됐으며, 대일 항전기의 해외 3대 의거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검찰은 육삼정 의거 주역인 원심창·백정기 선생에게 사형을, 이강훈 선생에게 15년형을 구형했다. 육삼정 의거 현장에는 직접 투입되지 않았지만, 제천출신인 이용준 선생은 폭탄과 권총을 입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날 행사에서 리학효 민족문제연구소 제천지회장은 “85년 전 육삼정 의거가 모두에게 여전히 살아 있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준식 독립기념관장도 “의열투쟁은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지만, 우리의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을 세계 만방에 알렸고 해방으로 이어지게 했다”며 “우리는 독립운동과 의열투쟁에 나선 분들을 기억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제천 출신 독립운동가 이용태·이용준 선생과 충주 출신 류자명, 육삼정 의거 주역인 원심창(경기 평택)·백정기(전북 정읍)·이강훈(강원 철원), 연병호(충북 증평) 선생의 후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한편 행사가 열린 박달재 정상에는 이용태·이용준 선생의 흉상과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서병철 기자 bcsu113@jbnews.com <2018-03-09>중부매일 ☞기사원문: ‘육삼정(六三亭) 의거’ 85주년 기념식,

광주시 3·1절 기념행사서 친일노래 불려질뻔

2018년 3월 3일 1908

타종식 공연에 ‘친일파’ 조두남 작곡 ‘선구자’ 준비 작사가 윤해영도 친일 행적…연습 중 지적 받고 제외 제99주년 3·1절을 맞아 광주시가 진행한 민주의 종 타종행사 기념공연에 ‘친일노래’가 불려질뻔 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습 도중 문제제기를 받고 본 공연에선 제외했으나 행사를 준비한 광주시의 역사의식 부재를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광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광주시청에서 ‘제99주년 3·1절 기념식’ 후 5·18민주광장에서 민주의 종을 33번 타종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윤장현 시장, 이은방 광주시의회 의장,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후손 등이 참여했다. “3·1절 독립정신을 계승·발전시켜 시민대통합을 이루자”는 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행사였다. 그런데 이 행사가 자칫하면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훼손할뻔 했다. ‘일’은 행사 준비 과정에서 터졌다. 광주나비는 이날 낮 12시 5·18민주광장에서 3·1절 99주년을 기념해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11차 광주 수요시위’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타종식은 이 행사 10분 전인 오전 11시50분 진행이 됐는데, 수요시위 참석을 위해 5·18민주광장을 지나가던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이 기념공연 연습 과정을 보게 됐다. 공연자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는 김순흥 지부장의 귀를 의심케 했다. ‘친일가요’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곡 ‘선구자’를 부르고 있던 것이었다. 이 곡은 작사자와 작곡가 모두 친일행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데다 노래 자체도 ‘친일가요’로 알려져있다. 작곡가 조두남은 일본 중심의 국민음악 창조를 목적으로 한 ‘만주작곡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선구자’ 노랫말을 쓴 윤해영 역시 논쟁은

독립운동현장 울산 동구 보성학교, 보훈처와 지자체 ‘방치’

2018년 2월 27일 2241

시민모임 “항일운동터전 보성학교 국가현충시설로 지정해야”   지난해 울산 동구청이 동구 바닷가(방어진) 일제의 수탈 역사인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적산가옥(해방후 일본인들이 물러간 뒤 남겨놓고 간 집이나 건물)은 많은 예산을 들여 개발하려는 반면 인근에 있는 항일운동 본거지 보성학교는 방치해 비난이 일었다. (관련기사 : 항일학교는 방치하고 일본인 골목 복원한다는 울산 동구청) 이에 각계 주민들은 ‘항일운동터전 보성학교 복원을 위한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을 결성해 동구청(장)의 이런 행보를 “방어진 친일미화 역사사업”으로 규정하고 중단을 촉구하는 한편 보성학교 복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민모임은 3.1 독립만세운동 99주년을 맞아 “울산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항일운동터전 보성학교(터)를 국가현충시설로 지정할 것”을 국가보훈처와 울산자치단체에 촉구했다. 이들은 27일 오전 11시 30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잊힌 영웅으로 남겨두지 않겠다고 천명했다”고 상기했다. 또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도 취임사를 통해 변화와 혁신을 언급하며 불합리한 보훈제도의 개선을 약속한 바 있다”면서 “우리는 새 정부의 독립운동에 대한 보훈정책의 변화를 기대하며 일제강점기 울산의 항일운동 터전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보성학교(터)의 국가현충시설 지정을 요구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울산 동구 방어진 일제강점기 수탈 관문…이에 맞서 보성학교 세워 독립운동 울산은 일본과 육지거리가 가까운 곳으로 일제강점기 내내 주권침탈과 자원수탈의 관문이 됐다. 특히 동구 방어진은 일본인 수천 명이 이주 정착해 조선인의 어장을 침탈하고 막대한 부를 향유한 식민지 거점이었다. 시민모임에 따르면,

광주시민단체 “새마을장학금 지급 납득하기 어려워”

2018년 2월 27일 1258

‘새마을장학금 조례 폐지운동’ 착수 광주지역 시민단체가 광주시와 광주 지역 5개 자치구를 상대로 ‘새마을장학금 지원 조례 폐기’를 촉구하고 나선다. 또, 새마을회에 매년 관행적으로 수억원씩 지원되는 ‘혈세 특혜’도 철회할 것을 촉구 할 예정이다. 26일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등 9개 시민단체는 “새마을장학금은 매년 막대한 시민혈세를 단지 새마을지도자 자녀들이라는 이유로 특정 단체에 지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시와 5개 자치구, 전남도 22개 시·군은 매년 30억원 이상의 예산을 1986년 제정된 ‘광주시 새마을장학금 지급 조례’에 근거해 지역새마을회에 지급해 오고 있다. 새마을회 측은 이 중 70% 가량을 회원 자녀 장학금, 조직 운영비, 자체 행사비로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민단체는 “광주시와 5개 자치구, 전남도 22개 시·군이 새마을회에 운영비와 사업비를 지원하는 것도 모자라 매년 장학금까지 지급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새마을 특혜 장학금 시민회의’를 구성해 대표적인 특권 반칙 조례인 새마을장학금 조례 폐지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새마을 특혜 장학금 시민회의’는 오는 27일 오후 2시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지난 2014~2017년까지 4년간 지급된 새마을장학금 내역과 지급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nam@ <2018-02-26> 뉴스1 ☞기사원문: 광주시민단체 “새마을장학금 지급 납득하기 어려워” 

민족문제연구소 원주· 횡성지회 창립

2018년 2월 5일 1551

친일 청산·역사 바로세우기 활동 민족문제연구소가 원주와 횡성에 지회를 창립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 한일과거사 청산운동의 구심 역할을 해온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발기인 대회를 열고 원주·횡성지회(지회장 유창구) 창립총회를 가졌다. 원주·횡성지회는 친일청산 및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해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시민단체와의 교류를 추진한다.유창구 지회장은 “일제 식민 잔재를 청산하고 왜곡된 한국근현대사를 규명하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2018-02-02>강원도민일보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원주· 횡성지회 창립

경북대 인문학술원,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2017년 11월 22일 1577

대구의 식민지 역사를 돌아보고, 새로운 대구의 역사를 모색하는 학술세미나가 경북대에서 열린다. 경북대 인문학술원(원장 허정애)과 대구경북학회(회장 김영철), 대구경북연구원(원장 이주석)은 오는 24일 오후 2시 경북대 대학원동 학술회의실에서 ‘식민의 역사와 도시의 재현, 그리고 대구’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황보영조 경북대 인문대학장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세미나는 김일수 경운대 벽강교양대학 교수, 김경남 경북대 사학과 교수, 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 이정찬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사무국장 등이 발표자로 나서 식민지 시대 대구의 도시 재편 문제와 식민지 역사의 재구성, 그리고 도시 콘텐츠 문제 등 다양한 주제로 발표·토론할 예정이다. 이어 박승희 대구경북학회 부회장 사회로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 김석수 경북대 인문학술원 부원장, 이재필 대구경북연구원 대구경북학센터장, 조명근 영남대 역사학과 교수, 홍성덕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토론을 진행한다. 허정애 경북대 인문학술원장은 “대구의 식민지 연구는 대구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이번 학술세미나가 식민지 도시에 대한 성찰과 반성, 나아가 새로운 대구를 위한 토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2017-11-21> 뉴스민 ☞기사원문: 경북대 인문학술원,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관련기사 ☞KNS뉴스통신: 경북대,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대학저널: 경북대,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베리타스알파: 경북대 인문학술원 학술세미나 24일 ☞에듀동아: 경북대 인문학술원,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국제뉴스: 경북대 인문학술원,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이게 왜 여기에 서 있죠?”···일제잔재 제대로 알려야

2017년 9월 20일 3313

충주 관아공원 서회보 애민선정비 등 안내판 설치 여론 【충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일제강점기 친일세력을 칭송하는 공적비 등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19일 충북 충주시 성내동 옛 충주읍성인 관아공원 중원루 근처 은행나무 옆에는 가첨석(지붕돌)이 있는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비석 앞면에는 ‘行郡守徐候晦輔愛民善政碑(행군수서후회보애민선정비)’라고 새겨져 있다. 그럼 서회보(徐晦輔·1849~1919년)는 누구인가. 먼저 ‘디지털충주문화대전’에 보면, 서회보는 1849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충주군 남변면 남부리-‘조선신사대동보’)에서 태어났다. 1907년(조선 순종1) 12월에 영동군수로 재임하다가 충주군수로 전임했다. 1908년 3월 공립충주보통학교 교장을 겸한 그는 충주군수로 있을 때 시설을 만들고 보수해 지역주민의 칭송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1966~1978년)에 따르면 대한제국기 마지막 충주군수였던 서회보는 일제강점기 초대 군수로 계승해 1917년 1월까지 재임했다.  하지만 디지털충주문화대전 등에는 서회보가 친일파였음은 언급되지 않았다. 서회보는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과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모두 포함됐다. 서회보는 1912년 일제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고 1917년에는 중추원 부찬의에 임명됐다. 김희찬(비영리단체 충주아이들의하늘 간사)씨는 서회보가 중추원 부찬의가 된 것이 일제강점기 초대 충북도장관이었던 스즈키 다카시(領木隆·1910년 10월~1916년 3월 재임)의 신임이 두터워 가능했다고 봤다. 김씨는 “서회보와 관련해 꼭 기억할 것이 1913년 ‘시구개정(市區改正)’이라는 명분으로 충주군수 서회보의 책임 아래 충주읍성을 허물고 전국에서도 모범적으로 식민도시 충주 시가지를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관아공원 내 서회보 비석과 관련해서는 그의 친일 행적 등을 시민에게 알리도록 안내판을 세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