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활동
[전남일보] “5·18 광주 진압 가해자 ‘인명사전’ 만들자”
5·18, 이제는 정리 작업 필요할 때 친일인명사전처럼 가해자 알려야 “반민주·독재자의 역사 기록해야” 42년 전 5·18 광주 진압 가해자들의 ‘인명사전’을 제작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기준을 세우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가해자의 만행을 적극 알려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전두환·노태우 씨가 광주 학살의 진실을 끝내 밝히지 않은 채 사망하면서 이대로 두면 가해자들의 만행이 조용히 묻혀버릴 것이라는 우려에서부터 출발했다. 지난해 10월26일 노태우 씨 사망에 이어 같은 해 11월23일 전두환 씨도 사망했다. 두 사람은 12·12 쿠데타 과정에서 내란죄·내란목적살인죄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결국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은 묻지 못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참회나 사과 등 의 뉘우침조차 없었다. 더욱이 두 사람을 포함한 신군부 세력 14명 가운데 현재 6명이 죽고, 8명만 남았다. 살아있는 이들 또한 고령이어서 언제 사망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전씨가 사망한 지난해 11월 광주시공공기관협의회는 “광주학살의 철저한 진실규명을 위해 우리도 함께 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5월 학살 주범과 잔당, 부역자들의 인명사전을 제작하자고 제언했다. 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공범 노태우에 이어 주범 전두환까지 죽었지만 잔당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더 이상 손을 놓고 있다가는 그들 역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친일파를 단죄하는 ‘친일인명사전’처럼 5·18 광주학살의 공범과 잔당, 부역자들의 인명사전을 만들어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 단죄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5·18민주화운동은 발생 직후 42년동안 광주시민들에게 분노와
[오마이뉴스] 아산 염치읍 학살지에서 탄피 대신 낫이 출토된 이유
7일 오후 유해 매장 확인… 수십여 구 추정 충남 아산 염치읍에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경찰에 의해 집단 희생된 민간인 유해가 추가 발굴됐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아산유족회(이하 아산유족회)에서는 이곳에서만 최소 8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산유족회는 7일 오후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에 있는 새지기 일원에서 집단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아산시와 아산유족회는 아산시 일대에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유해매장추정지에 대한 유해 매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시굴 조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날 유해가 확인된 새지기 일원에서의 집단희생은 1950년 9월 26일 새벽부터 3일 동안 마을 내 우익성향의 청년들과 치안대 등이 마을 내 좌익활동 관련자들을 마을 공회당에 구금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이들은 구금자들을 새지기 공동묘지로 끌고 가 집단 살해했다. 증언에 의하면 살해 도구는 총이 아니었다. 쇠몽둥이와 낫, 쇠스랑 같은 농기구였다. 농기구를 마구 휘둘려 상처를 낸 다음 사람들을 미리 파놓은 구덩이(가로세로 약 8m)에 몰아 놓고 그대로 생매장했다. 이날 시굴 조사에서는 희생자의 두개골과 다리뼈 등 유해와 함께 고무신 등 유품 다수가 나왔다. 다른 집단희생지에서 함께 출토되는 탄피와 탄두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증언을 뒷받침하듯 살해 도구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녹슨 낫이 발굴됐다. 2019년 발굴에서 유해 7구 발굴… 두 명은 형제 이곳에서는 지난 2019년 아산시가 주도한 발굴에서도 유해 7구가 발굴된 바 있다. 이 중 두 명은 서로 친형제였다. 유품으로는 단추,
[콩나물신문] 2018년, 부천의 일제 잔재 청산이 시작되다 – 친일 문인 작품의 철거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설립과 활동 4 친일반민족행위자(줄여서 ‘친일파’)를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에 의해 해방을 맞이하였으나 미국과 소련으로 대변되는 강대국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일파들은 미군정에 의해 다시 등용되었으며, 해외에서 오랜 세월 독립운동을 했던 임시정부 대표 김구,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한 여운형, 조선공산당의 박헌영 등에 비해 국내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이승만은 친일파와 손을 잡았습니다. 해방 후 친일파를 처벌하자던 사회적 열기는 뜨거웠으나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결과 청산되었어야 할 친일파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며 기득권층이 되었으며, 반성과 자숙을 해야 할 친일파들은 오히려 권력을 통해 독립운동가분들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등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발생하였습니다. 도덕적 불감증에 걸린 친일파들은 권력과 힘이 정의라고 호도하며 친일한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 항변하며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조까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 이익과 권력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파들은 우리 사회의 상식과 정의를 철저하게 파괴하였으며 이로 인해 우리의 민족정기와 가치는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미래로 그리고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상동 ‘시와 꽃이 있는 거리’의 친일 문인 작품을 철거하다 우리 부천에서는 2018년 상동의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 설치된 친일 문인 3인의 4개 작품에 의해 청산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동천」, 주요한의 「샘물이 혼자서」,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가 그것입니다. 세 사람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고양신문]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온라인 교육사이트’ 오픈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 제작 3·1운동 당시 전국 유일의 선상 항쟁 사료 및 재현행사 관련 자료 한곳에 [고양신문] 고양시의 대표적인 3·1운동 역사인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교육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사)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지부장 백창환)는 “3·1운동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양에서 펼쳐졌던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를 온라인에서 재현한 비대면 교육사이트 ‘독립행주’(dokriphaengju.com)를 오픈했다”고 밝혔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3·1운동 당시 고양군에서도 신도면·벽제면·지도면 일대에서 3월 11일, 24일, 28일 세 차례에 걸쳐 수백 명의 군중이 만세를 불렀다. 특히 3월 11일 밤 등불을 신호로 야간시위를 강행한 지도면 행주내리와 행주외리 주민들은 일제 경찰이 뒤쫓아오자 한강에 배를 띄우고 선상에서까지 만세를 불렀다. 고양땅에서 펼쳐진 자랑스러운 항일역사를 조명하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는 광복 70주년인 2015년부터 매년 고양시민, 학생들과 함께 선상만세시위를 재현하는 행사를 진행해 큰 호응을 받아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과 2021년은 아쉽게도 재현 행사를 열지 못했다. 이에 행주나루 선상만세시위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3·1운동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재현 비대면 교육사이트’(dokriphaengju.com)를 제작해 오픈한 것. 고양시 후원으로 제작된 이 사이트는 21개 메뉴와 31개 콘텐츠가 게시돼 선상만세시위에 대한 역사적 사료는 물론 여러 차례 진행한 재현 행사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사)민족문제연구소는 민간통일운동을 통해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최근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백창환 고양파주지부장은 “그동안 서울 중심으로 진행된 3·1운동 기념행사는 경직되고 천편일률적 행사라는 지적이
[더팩트] 잊혀진 독립운동가 장재성·장매성을 기억하다
광주 동구, 독립운동가 장재성·장매성 남매가 생전 거주했던 집터에 안내판 설치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광주 동구는 27일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장재성, 장매성 남매가 생전 거주했던 집터에 안내판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번 안내판은 4번째 작업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장재성, 장매성 남매가 살았던 금동 97번지(옛 금계리 97번지) 집터에 안내판을 설치한 것이다. 당시 남매가 살았던 집은 사라지고 현재 벽돌 건물의 주택이 들어서 있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출발한 기차가 나주역에 도착했을 때 개찰구에서 일본인 학생 3명이 광주여고보를 다니던 여학생들을 밀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박준채가 일본인 학생을 꾸짖으면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의 마찰이 생긴게 광주학생운동의 시작이다. 장재성(1908~1950)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 5학년이었던 1926년 왕재일 등과 함께 비밀단체 ‘성진회’를 조직한 인물이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하자 학생시위를 주도했고 이로 인해 관련자 중 가장 무거운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일제에 맞서 싸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지만 해방 후 사회주의 활동을 이유로 현재까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지 못했다. 장재성의 누이인 장매성(1911~1993) 또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독서회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검거돼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장재성과는 달리 1990년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하지만 광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이 두 독립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최근 지역 연구자들 사이에서 장재성과 장매성의 이름을 바로 세우고 업적을 알리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독립운동가 김재동, 김한동 형제도 비슷한 경우다. 김재동은 독립유공자로 국가에서
[보도자료] 고양 ‘행주나루 선상만세시위’ 교육 사이트 개설
[보도자료] [다운로드] 고양 ‘행주나루 선상만세시위’ 교육 사이트 개설 3·1운동 당시 경기도 고양군(현 고양시)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대일항쟁이었던 ‘행주나루 선상만세시위’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교육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지부장 백창환)는 ‘3·1운동 기념 행주나루 선상만세시위 재현 비대면 교육사이트’를 오픈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한 만세시위는 전국으로 들불과 같이 번져나갔다. 당시 고양군에서도 만세운동이 치열하게 일어났는데 신도면·벽제면·지도면 일대에서 3월 11일, 24일, 28일 세 차례에 걸쳐 수백 명의 군중들이 운집해 독립만세를 외쳤다. 특히 3월 11일 밤에는 지도면 행주내리와 행주외리 주민들이 등불을 신호로 야간시위를 감행했다. 일제 경찰이 추격해오자 시위대는 강에 배를 띄우고 선상시위를 전개하며 끝까지 저항했다. 고양파주지부는 광복 70주년인 2015년부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선상만세시위를 시민, 학생들과 함께 재현하는 행사를 매년 진행하여 호평을 받아왔으나,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감염증 사태의 확산으로 개최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행주나루 선상만세시위’를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3·1운동 기념 행주나루 선상 만세시위 재현 비대면 교육사이트’(dokriphaengju.com)를 개설하게 됐다. 고양시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이 사이트는 21개 메뉴와 31개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으며, 선상 만세시위에 대한 상세한 역사 자료와 함께 역대 재현 행사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백창환 지부장은 “그동안 3·1운동 기념행사는 서울 중심으로 경직되고 천편일률적인 행사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러한 기념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념사업의 지역화와 대중화를 지향하는 차원에서 이번 교육 사이트를 개발하였다.”면서 “내년에는 다시 행주나루터
[인천인] 인천지역 사민사회단체, 인천 자유공원에서 ‘한성임시정부 103주년 기념식’ 개최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지부장·김재용)를 비롯한 인천지역 15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일 인천시 중구 자유공원 광장에서 한성임시정부 103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103년 전인 1919년 4월 2일, 자유공원(옛 만국공원)에 모여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했던 ‘13도 대표자 회의’를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시민단체 대표와 회원, 자유공원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주최 측에서 나눠준 태극기를 흔들며 일제 식민 지배를 뚫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겼다. 이성재 인천자주평화연대 상임대표는 기념식 취지에 대한 설명을 통해 “103년 전 13도 대표자들은 만국공원에 모여 국민대회에 필요한 취지서와 선포문, 약법 등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4월 23일 서울에서 한성임시정부를 선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결성된 한성임시정부는 그해 9월 통합한 상해임시정부에 그 법통이 녹아있다”며 “이런 역사적 의미를 가진 한성임시정부가 인천에서 첫 깃발을 올렸는데 우리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상임대표는 “오늘을 기점으로 한성임시정부의 의미를 인천지역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내고 상해임시정부 8대 국무령과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만오 홍진 선생을 인천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알려 나가자”고 호소했다.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전국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순서에서는 국민대회 취지서와 약법, 한성임시정부 선포문이 낭독됐다. 시민단체 대표 13명은 13도 대표자 회의에 참석한 각 지역 대표자와 종교계 대표들을 상징하는 검은색 한복 두루마기를 갖춰 입고 103년 전 대표자 회의 상황을 재현했다. 이어 원학운 인천시민의힘 상임대표가 낭독한 ‘인천시민들께
[부천타임즈]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역곡안동네 박제봉 고택 ‘친일파’안내판 설치하라
[부천타임즈:양주승 대표기자] (사)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지부장 박종선)에서 부천시는 역곡안동네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오래된 집이 일제 잔재라고 지적하면서 지역에 남아 있는 일제잔재에 대해 전수조사하고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안내판을 설치할 것을 촉구했다. 민문연 부천지부는 22일 성명을 통해 “2021년 역곡안동네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오래된 집(역곡동 165번지)이 부천시향토문화재 심사에서 탈락되었으며, 경기도와 부천의 ‘일제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에 의해 일제잔재가 되었음에도 그 어떤 행정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부천도시공사가 역곡 안동네 아카이브즈 구축 보도자료를 내면서 친일파 박제봉의 집 사진을 실었다”고 지적하면서 ” 이는 부천시와 부천시의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함에 따라 나온 결과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에서는 2020년에는 경기도에서 추진하는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공모사업에 지원하여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삶_웹툰 ‘한 시대, 다른 삶‘을 제작하여 부천지부 홈페이지(minjok21.kr)에 게시하고 경기도 관내 2400여개 초중고에 도록을 보급하였으며, 2021년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추진 공모사업(후원-경기문화재단)에 선정되어 <생활 속 항일음악 음원제작>을 완료하여 부천지부 홈페이지(minjok21.kr)에 게시하고 경기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를 통해 각 교육지청과 초중고에 보급하는 등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민족문제연구소 성명서 전문 부천시는 지역에 남아 있는 일제잔재에 대해 전수조사하고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안내판을 설치하라 우리는 과거 100년 동안 일제침탈, 식민지배, 독립․항일운동, 해방, 분단, 6.25전쟁 등 수많은 어려움을 거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여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해방이후 일제에 부역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