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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서 문> 이 책을 구술한 허은 여사는 1915년 아홉 살 어린 나이에, 만주로 망명한 허씨 일문을 따라 만주 영안현으로 이주했다. 열여섯 살이던 1922년 고성 이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1932년 시조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서거로 귀국할 때까지, 석주 선생과 시아버지 동구 이준형 선생, 그리고 남편 이병화를 뒷바라지하며 만주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온갖 고난을 함께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생생한 회고담을 남겨 1995년 7월『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라는 제목으로 초간되었다. 이 책에는 매년 8월 29일 국치일에 학교 운동장에 모여 망국을 주제로 한 연극을 보고 국치일 노래를 목 놓아 불렀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열여섯 나이에 영안현 철령허에서 화전현 완령허까지 아버지와 시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함께 이천팔백 리를 꼬박 열이틀 걸려 시댁에 도착한 일, 이청천 신숙 황학수 이범석 등 당대의 지사들이 참석한 서로군정서 회의에 대한 목격담, 석주 선생이 임시정부 국무령을 사임하고 상해에서 돌아올 때 변복·변장하여 왜경의 감시망을 뚫고 무사히 도착한 일화, 석주 선생 서거 후 귀향길에 중국군 패잔병들에게 갖은 곤욕을 치른 끝에 선생의 유해를 화전현에 가매장하고 밤길을 타고 어렵게 귀환한 비사 등 독립운동 명가의 역경을 짐작하게 해주는 눈물겨운 증언들이 낱낱이 담겨있다. 1932년 허은 여사는 ‘고택제향(古宅祭香)에 호화반석(豪華磐石)’ 같은 고성 이씨 가문의 종부(宗婦)로서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다가 안동 임청각으로 귀향했지만, 가산은 독립운동에 이미 소진한 뒤라 시부모 봉양에도 어려움을 겪을
역사와 책임 2호
<역사와책임2호> 주요내용 창간호 <특집>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을 평가하는 글을 실었는데, 이번 호에서는 그 두 번째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비롯한 3개 위원회의 활동을 평가하는 글을 실었다. 김성길 전 조사2과장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성과와 한계, 남은 과제들을 서술하였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진 4년 동안,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개별 사건의 진실규명에 있어 일정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명예회복 등 후속조치가 미흡했고,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대해서는 실효성 있는 결과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안김정애 전 조사2과장은 국방부의 과거사 청산의 활동과 성과를 평가하였다. 법으로 설립한 기구가 아니라 국방부장관의 자문기구 형식으로 출발한 국방부과거사위원회는 전두환 정권 당시의 ‘녹화사업’ 등 8개 사건을 선정하여 조사하였다. 이들 조사의 성과로 허상수 제주4·3연구소 이사는, 좌익무장폭동으로 규정되었던 제주4·3사건이 사실은 냉전이 막 시작되던 미군정하의 분단 상황에서 당국의 무리한 진압으로 많은 민간인이 학살된 비극적인 사건으로 재조명된 것을 제주4·3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희가 거둔 중요한 성과의 하나로 꼽는다.노무현 대통령은 제주4·3 희생자를 비롯한 제주도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함으로써 피해 구제와 명예회복의 길을 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잔재가 가시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제주4·3사건의 진상 규명 과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 호 <논문>으로 네 편의 글을 받았다. 친일 문제와 관련된 이번 호 <논문>들 중에서 인하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김진석 교수의 “친일반민족행위에서 책임의 중층성”은 친일반민족행위와 관련한 남다른 사유의 산물로 보인다. 그가 친일문제에 대해 책임을 묻는 근거로 근대 국민국가 형성을
역사와 책임 1호
<역사와 책임> 창간호 발간 1. 민족문제연구소와 포럼 진실과정의가 공동으로 ‘과거청산’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 <역사와 책임>(반연간) 창간호를 발간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2. 잡지 발간의 목적과 특징 1) 과거청산과 관련해서 활동했던 국가기구의 성과와 한계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진상규명과 과거청산운동을 계속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잡지 발행(과거청산의 지속과 사회화) 2) 국내외 과거청산 관련 단체와 연구자, 활동가들이 참여해서 함께 간행위원회를 구성하여 만든 잡지(연대의 정신) 3) 잡지는 ① 자료의 지속적인 발굴과 공개(동학, 친일, 강제동원 피해, 민간인 학살, 의문사 등) ② 피해회복을 위한 법적 노력(재판) 소개 ③ 관련 운동의 소개와 홍보(일본까지 포함) ④ 연구자 발굴과 참여 공간으로서 학술논문 등으로 구성 ※ 창간호의 주요 내용 <특집과 논문> 중에서 ①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 규명과 재산 환수(김민철․장완익) 한국의 ‘과거청산운동’에서 친일문제는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규명과 정치적․역사적 책임 추궁을 통해 사회윤리적 가치를 정립한다는 측면에서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 진상규명과 피해자 구제(명예회복, 배상․보상 등) 등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과거청산문제와 성격을 달리 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중 일부의 재산을 국가귀속하기 위해 제정된 두 개의 특별법은 편찬과 관련한 예산의 전액 삭감, 부패한 지배계급에 대한 환멸, 이완용․송병준으로 대표되는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땅 찾기에 대한 국민적 분노, 그리고 노무현대통령의 과거청산 의지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2005년 5월 31일 출범해서 2009년 11월 30일까지 활동한 반민규명위원회는 총 1,052명의 조사대상자를 심의하여, 두 차례에 걸친 이의신청을
평화통신사, 야스쿠니에 가다
■ 이 책의 차례 1장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2장 야스쿠니신사는 어떤 곳일까 3장 야스쿠니신사와 얽힌 사람들 4장 8월 15일 패전 기념일의 야스쿠니신사 [부록] ◎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결성선언문 ◎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활동 및 야스쿠니신사 관련 소송 일지 ◎ 일본 내의 야스쿠니 관련 소송 전 일본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재임기간 2001년 4월~2006년 9월)는 재임 첫해인 2001년 8월 13일을 시작으로 하여 해마다 패전일을 전후하여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하여 야스쿠니의 제신(祭神)을 참배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의도적인 야스쿠니 참배는 한일간, 중일간 외교분쟁을 초래했으며 한중 시민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얼핏 생각하면 ‘일본 총리가 자국의 전사자를 모신 곳에 가서 참배하는 것-우리식으로 말하면 대통령이 국립현충원을 방문하여 분향 헌화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의 과거 침략사와 야스쿠니신사의 역사적 맥락을 염두에 두면 이는 곧 독일 대통령이 히틀러나 나치 친위대를 기리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야스쿠니신사는 단순히 전몰자의 현충시설이 아니라 과거의 ‘대일본제국’을 재건하고자 하는 일본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상징이자 이를 확산시키는 숙주이다. 이 책은 한일 과거사 문제의 커다란 화두로 되어 있는 야스쿠니문제를 청소년뿐 아니라 일반인이 알기 쉽게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간되었다. 필자인 김바다 씨는 2006년 8월 13일부터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위원장 : 이해학 목사 / 사무국 : 민족문제연구소)가 마련한 도쿄촛불집회에 동참하여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하는 일본 우익의 훼방에 맞서 ‘야스쿠니 반대, 환워주링(還我祖靈 : ‘내 조상의 영혼을
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
전시총동원체제기(1937년~45년)를 중심으로 일제의 ‘전시파시즘미술’을 개관하고,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 찬양한 ‘친일미술’의 실상을 반성적 의미에서 드러냈다. 식민통치기 민중의 삶과 관련된 회화, 광고, 포스터, 엽서, 우표, 화폐, 지도 등 생활용품과 등화관제용 갓, 천인침, 방독면 등 전싱용품을 망라한 자료집으로서 사료적 가치도 높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 수요시위 17년… 그러나 변함없는 일본 정부와 성의없는 한국 정부 1992년 1월 8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시작한 지 17년. 800회가 넘도록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들의 한결같은 외침에도 일본정부는 요지부동이 다. 더욱이 피해 당사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문제해결의 실마리라도 찾고자 하는 희망은 대일과거사문제에 소극적인 이명박정부와 뉴라이트의 등장으로 더욱 요원해 지고 있다. 얼마 전 3월 1일에는 서대문 독 립공원 한켠에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착공식이 조촐하게 열렸다. 살아있는 역사인 일본군 ‘위안부’ 할 머니들이 우리 곁을 모두 떠나기 전에 이 박물관을 세워,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키고 다시는 인 류역사에 이와 같은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교육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자칭 독립정신을 계승한다는 광복 회 회원들의 몰려나와 착공식을 반대하는 소동이 벌어져 할머니들의 가슴에 또 한번 못을 박았다. – 조국에선 홀대받고 외국 에선 주목받는 위안부 문제 이처럼 해방된 조국에서 홀대를 면치 못하는 위안부 문제는 오히려 외국의 양심세력들의 지속적인 연대로 말미암아 여전히 일본의 전쟁책임을 끊임없이 묻고 있다. 지 난 2007년 7월 30일 일본계 혼다 의원의 발의로 미연방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결의를 하였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지난 2000년 9월 18일 한국, 중국, 필리핀, 대만 아시아 4개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5명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미국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일본군에 의하여 성적 노예로 희생당한 것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이수병 평전
책소개 이수병은 민족을 위한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경희대 재학 중 4월 항쟁을 맞이해 민족통일운동을 선구적으로 이끌었으나, 5/16 군사쿠데타로 꿈이 좌절되었다. 7년의 옥고를 치르고 변혁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하던 그는 1975년 4월 9일, 서른 여덟 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쳤다. 이 책은 이수병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죽기까지의 삶을 다루었다. 저자의 가치관과 정치관, 그리고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책 중간중간 관련 사진을 실어 두었다. 목차 제1장 어린 시절 제2장 새로운 도전 제3장 4월 항쟁, 통일운동의 불꽃 제4장 젊은 날, 감옥의 시련 제5장 시련을 딛고서 제6장 어둠 속의 횃불 제7장 부활과 해방의 길목에서 부록
『내일을 여는 역사』 2016년 여름 63호
※ 바로가기 ☞ 『내일을 여는 역사 2016년 여름 63호』 구매하기 ▲ 저자: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 l 출판사: 민연 l 15,000원 ㅣ335page l 발행일: 2016.6.13. l ISSN 1228-8802 l 9771228880200-62 <내일을 여는 역사>는 2000년 창간해 현재까지 17년 동안 역사대중화를 위해 힘써온 잡지입니다. 올해부터는 ‘내일을여는역사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가 함께 힘을 합치기로 했습니다. 친일·독재 비호세력들이 어줍지 않게 국민들의 일상과 정신세계마저 지배하려는 이때, 우리들은 힘을 합쳐 관제 역사의 전파를 막는 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가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면서,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특집1> 유신체제는 왜 몰락했나? – 공안사찰: 감시와 자기검열의 일상화 / 김원 – 공장새마을운동과 민주노조운동 / 유경순 – 제도언론의 정착, 민중언론의 태동 / 김한종 – 교육 통제와 학교 교육 / 김한종 – 대중문화 통제: 감성까지 국정화하려는 오만 / 이하나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던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벌써 3년하고도 반이 지났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내걸었던 복지 중심 공약을 실천한 것이 거의 없다. 지난 4.13총선에서 현 정부의 실정을 꾸짖는 준엄한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고도 국회가 정부 발목을 잡아서 아무 것도 못 했다고 남의 탓만 하여 청와대에 모였던 전국 언론사 국장들을 아연하게 했다. 국회가 여소야대 국면에
[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16년 봄 62호』
※ 바로가기 ☞ 『내일을 여는 역사 2016년 봄 62호』 구매하기 ▲ 저자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 l 출판사: 민연 l 15,000원 ㅣ326page l 발행일: 2016.3.11. l ISSN 1228-8802 l 9771228880200-61 해방과 분단 70년을 맞은 지난 한 해, 대한민국은 느닷없는 ‘역사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고 말았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는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평지풍파와도 같은 도발이었지만 수구세력에게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외통수와 같은 선택이었다. 그들이 통탄해마지 않는 ‘잃어버린 10년’ 즉 민주정부 집권기간 국민들은 미답의 경지를 경험했다. 국정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삼권분립에서부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에 이르기까지 헌법정신이 그나마 이만치라도 발현된 때를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이 시기 국가의 도덕적 책무라는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분야는 과거사 청산이다. 비록 시민사회의 압박이 선행하긴 하였지만, 정부도 전에 없이 진정성을 가지고 해결에 나섰다. 친일문제, 강제동원피해, 민간인 학살, 의문사, 인권침해 등 그간 금기시되어 왔던 근현대사의 묵은 과제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올랐으며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 재조명되었다. 그리하여 통제되지 않은 부당한 권력이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왔던 숱한 죄상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기득권세력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굴욕이었으며 이를 수용하는 일 자체가 자기부정과 다를 바 없었다. 정권을 되찾은 구세력이 첫 번째 과제로 과거사 위원회 폐지를 언명한 데서도 ‘정직한 역사’에 대한 그들의 본능적인 거부감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이승만 박정희 시대로 모든 것을 되돌리고자 안간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