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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식민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식민지 조선의 풍경(2)

2023년 7월 20일 564

[소장자료 톺아보기 51] 식민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식민지 조선의 풍경(2) – 『제1회 조선시찰기념사진첩』(1924) 『제1회 조선시찰기념사진첩』에 실린 사진으로 추정해 볼 때 이키군 조선시찰단이 방문한 곳은 크게 4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신사나 충혼비: 부산 용두산신사, 평양신사, 안동현 진강산 표충비 둘째 주요 관공서: 용산총독관저, 서울 전화국, 부산상업회의소 셋째 명승고적: 서울 광화문, 남대문, 창경원, 평양 을밀대와 시가지 넷째 주요 시찰지: 동대문소학교, 한강 수원지, 한강 인도교, 인천 축항, 인천 역무정미소, 압록강 철교 일본인 시찰단은 조선총독부의 관광 방침에 따라 신사나 충혼비 참배로 애국심을 고취하고, 인천 축항과 압록강 철교에서 보듯이 일본의 과학기술로 제작된 근대문물을 견학하고 일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양했던 것이다. 한편 스치듯 지나가며 찍은 듯한 조선인 가옥이나 시가지, 혹은 배경으로 찍힌 조선인들이 아주 초라하고 낙후된 모습을 띠고 있는데 여기서 식민지 조선을 전근대적으로만 바라보는 편협한 ‘식민자의 시선’을 인식할 수 있다. 박광종 특임연구원

민족사랑 2023년 7월호

2023년 7월 19일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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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삼총사 회원 – 홍지영, 노연미, 임희선

2023년 6월 23일 329

[후원회원마당]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삼총사 회원 – 홍지영, 노연미, 임희선 저희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25년째 친구로 지내며 뜻이 맞아 작은 활동들을 지금까지 계속 같이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민족문제연구소를 가입하게 된 계기는 – 홍지영 :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참여하지 못한 무거운 마음을 늘 지니고 있다가 조정래 선생님의 책 『황홀한 글감옥』 을 읽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시민단체 참여에 대한 말씀을 듣고 바로 민족문제연구소를 떠올리고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 노연미 : 친구(홍지영)에게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평소 실천하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살아온 삶에 반성하며, 첫 아이의 출산에 맞추어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가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임희선 : 친구들과 지인분들이 민족문제연구소에 많이 참여하고 계셨고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너무 화가 나고 있었는데, 올해 3·1절을 맞아 뜻깊게 참가하고 싶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10월부터 2023년 5월 현재까지 전북지역 시민 개개인이 모여 매월 셋째 주 서울전국집중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참에 올해 4월 밀양에서 방학진 기획실장님을 만나 뵙게 되는 기회가 있었는데 실장님께서 전주촛불시민들이 전국집중집회에 참가하러 올 때, 집회 전 식민지역사박물관 관람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기간 동안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건립 모금에 관한 문자를 받고 삼총사 모두 기부에 참여하였으나, 코로나 확산과 지방에 거주하다 보니 관람 기회를 갖지 못한 터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2023년 5월 20일, 서울 전국집중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집회 시작 전에

형평사 100주년 기념 답사로 진주에 다녀오다

2023년 6월 23일 288

[후원회원마당] 형평사 100주년 기념 답사로 진주에 다녀오다 강동욱후원회원(부산외고 교사) 지난 5월 13일~14일 아름다운 진주에서 1박 2일 동안 형평사 운동 100주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가 주관하고 연구소 본부가 후원한 행사로 제가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최초로 떠나는 1박 일정의 답사라 기대가 참 컸습니다. 참가자는 변량근 부산지역위원장님을 포함해서 10명(이상국, 강호준, 탁경완, 이정은, 성윤재, 정재훈, 김혜정, 정성임)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차량 3대로 출발하였고 운전은 변량근, 정재훈 회원님 그리고 제가 맡았습니다. 출발할 때 계획으로는 정재훈, 김혜정, 정성임 회원님은 당일 일정으로 참가하였지만 진주지회의 열렬한 환영 분위기에 취해 1박 2일을 오롯이 함께하였습니다. 첫날 일정은 부산 사상역 앞에서 만나 중간에 함안휴게소에서 쉬고 변량근 위원장의 정확한 시간 계획 덕분에, 진주성 공북문 앞에서 진행하는 수문장 교대식의 처음과 끝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 진주 3·1운동기념탑 참배와 촉석루를 거쳐 약속한 답사 시작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본격적인 형평사 100주년 기념 답사는 진주 석류공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진주지회 강호광 지회장님과 함께 여러 진주지회 분들과 방학진 실장님과 김무성 회원팀 부팀장님도 함께했습니다. 첫 방문지는 형평운동의 시작이었던 강상호 선생의 묘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진주지회의 노력으로 묘소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진주시가 사유지라는 이유로 강상호 선생 묘소 일대를 형평사 운동의 상징적인 성지로서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이를 뒤로 하고 다음 일정은 경남문화예술회관 앞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여러 이유로 원래 위치에서 이곳까지 옮겨지는 안타까운

길이름으로 남깁시다

2023년 6월 22일 369

[후원회원마당] 길이름으로 남깁시다 김순흥 광주지부장 불의에 저항하고 부당한 폭력에 항거하면서 모든 사람이 항꾸네 하는 대동세상을 일궈낸 광주정신 널리 알리고 길이길이 전해야 합니다. 국가기념일도 만들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올리고 연극도 하고 뮤지컬도 하고 해마다 국제행사도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아무 때나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언제나 우리가 보고싶고 함께하고 싶을 때는 가서 보고 느끼고 다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광주의 구석구석 길에, 건물에, 광장에 이름을 붙입시다. 모두 훌륭한 분들이라서 붙였겠지만, 수백년 전 천수백년 전 고려시대 조선시대 사람들만,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도 잘 모르는, 그분들이 광주와 무슨 상관이 있고, 광주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만 광주의 길이름에 남기지 말고 우리의 소중한 분들의 이름도 길에, 건물에, 광장에, 마을에 붙여놓고 일상에서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합시다. 조비오 길을 만들고 윤상원 광장을 만듭시다. 힌츠페터 길을 만들고 안병하 치안감 길을 만들고 김사복 길도 만들고 차명숙 방송로도 만듭시다. 이한열배은심 길도 만들고 백남기 길도 만들고 대동시민로도 만들고 민주택시로도 만듭시다. 오월어머니광장도 만듭시다. 광주의 역사에 남는 사람들이 태어났거나 살았던 마을에 마을 이름으로 붙입시다. 윤상원마을 이한열마을 … 백범로도 만들고 윤봉길로도 만들고 우당 이회영길도 만듭시다. 비슷한 아픔과 슬픔을 가진 제주4·3로도

“금을 나라에 팔자”, 황금광 시대에도 금 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2023년 6월 22일 502

[식민지 비망록 91] “금을 나라에 팔자”, 황금광 시대에도 금 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일제는 왜 금헌납과 금매각 독려에 그렇게 열을 올렸나? 이순우 책임연구원 흔히 ‘금 모으기 운동’이라고 하면 1997년 외환위기와 관련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신청 때의 그 시절을 퍼뜩 떠올리는 이들이 당연히 많을 줄로 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찍이 80여년 전쯤에도 이 땅에서 이러한 금 모으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진 적이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매일신보』 1939년 6월 13일자에 수록된 「전선 관공리(全鮮 官公吏)의 적성(赤誠), ‘금헌(金獻)’ 10만 원(萬圓) 돌파(突破), 민중(民衆)의 선두(先頭)에서 시범성적양호(示範成績良好)」 제하의 기사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금을 나라에 바치자!”고 한 헌금운동(獻金運動)은 시국의 장기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는데 조선서는 이 헌금운동의 시범(示範)을 하자고 하여 지난 3월 15일부 정무총감(政務總監)의 명의로 전조선 관공리들의 헌금운동을 통첩(通牒)하였다. 이 통첩에 대하여 총독부 각국 과장과 직원들은 물론 각 도청, 군청, 영림서(營林署), 각 지방법원, 복심법원, 보호관찰소, 각 학교 등 ‘관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전부 금을 바치는 적성을 표하였는데 이 헌금운동의 보고서가 요즈음에야 총독부 문서과로 모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 보고에 대하여 문서과에서는 숫자적으로 집계를 하는 중인데 의외에도 각 관공청에서 표한 헌금운동의 적성은 상당히 좋은 성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전라남도 같은 곳의 보고를 보면 금을 판 돈 만 팔천여 원의 다수에 달한 것 외에 웬만한 관청이면 3, 4천 원어치는 의례히 되어

고종황제 강제퇴위와 의병전쟁

2023년 6월 22일 1160

[연구실 글방 5] 고종황제 강제퇴위와 의병전쟁 심철기 연구실장 1. 고종황제 강제퇴위 반대운동 1907년 8월 1일 서울 주둔 시위대 군인들의 봉기가 의병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지만 그 시작은 헤이그특사사건의 처리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헤이그특사사건을 계기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하여 식민지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는 『통감부문서』 5권에 수록된 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1907년 7월 3일 하야시 외무대신에게 보낸 전보에 잘 나타나 있다. 과연 칙명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우리 정부도 이때 대한제국에 대해 국면을 일변케 하는 행동을 취할 수 있는 호기라고 믿는다. 이전 음모가 확실해지는 즉시 세권(稅權), 병권(兵權) 또는 재판권을 우리가 거두는 데 있어 좋은 기회를 주는 것으로 인식한다. 즉, 헤이그특사사건을 이용하여 대한제국의 조세권, 군권, 재판권마저 빼앗고자 하였다. 일본내각도 내각회의에서 「헤이그밀사사건처리방침」을 결정하여 1907년 7월 12일 이토 통감에게 타전하였다. 그 내용은 『고종시대사』 6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일본정부(日本政府)는 이번 헤이그밀사사건을 기회로 한국내정(韓國內政)에 관한 전권(全權)을 장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이의 실천방법으로서 첫째 한국황제(韓國皇帝)로 하여금 황태자(皇太子)에게 양위(讓位)하게 할 것, 둘째 한국정부의 행정은 통감(統監)의 동의를 얻어 실행하게 할 것, 셋째 대신(大臣)·차관(次官) 이하 중요 관리를 일본인으로 임명하거나 또는 통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게 할 것 등”이었다.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통감 주도하에 일본인 관리를 임명하는 차관정치를 실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이토 통감은 고종황제의 양위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직접 나서 양위문제를 제기할 경우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30년 만에 되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한일시민의 연대

2023년 6월 21일 303

[사도광산 현지조사 보고] 30년 만에 되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한일시민의 연대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한일관계를 둘러싼 핵심적인 의제로 떠오른 강제동원과 관련한 문제에는 2018년 대법원판결의 이행 문제 이외에도 야스쿠니신사 한국인 합사철폐 문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봉환 문제, 강제동원 관련 기록 확보 등의 문제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시설에서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문제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5년 ‘군함도’로 잘 알려진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의 등재 당시부터 일본의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와 함께 유네스코 산업유산에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할 것을 일본 정부에 지속해서 요구해 왔다. 2015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인, 중국인, 연합군 포로 등이 고통을 당한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지만, 아직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해 강한 유감을 밝히고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강제동원의 역사를 숨기려는 일본 정부에 압박을 가해 강제동원의 진실을 밝히려는 한일 시민들의 연대는 날로 힘을 더해가고 있다. 2022년 일본 정부는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 섬의 금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의 추천 시기를 에도시기의 금 생산으로 한정하여 사도 광산의 역사 전체를 제시하지 않고, 에도 시대의 일본 민중의 강제노동, 일본의 침략전쟁 당시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도 숨기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의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와 함께 실시한 사도

올곧은 시대인식과 역사의식을 품자!

2023년 6월 21일 237

[시론] 올곧은 시대인식과 역사의식을 품자! 윤경로 식민지역사박물관 관장, 전 한성대 총장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처음 출발 때부터 기대보다는 우려와 걱정의 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한 해를 넘긴 작금, 그 정도가 더욱 넓어지고 높아지는 것만 같아 우려스럽다. ‘검사공화국’을 넘어 ‘검사제국’을 향하는 제반 정치·사회 현 상황에 대해 많은 시민과 국민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광복 이후 역대 여러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정치권력 유형을 지켜보았고 경험해 왔지만 이런 형태의 ‘검사공화국’을 넘어 ‘검사제국’과 같은 유형의 정권과 정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면 그에 따라 앞서의 정권이 시행해온 정책에 변화가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정치현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시적 정권 차원을 넘어서는 예컨대 역사문제와 민족문제와 같은 거족적이며 거시적인 대내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역사문제라 하겠다. 1945년 광복 이후 역대 정권의 정치적 성향과 성격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적어도 대일본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진보를 뛰어넘어 한 목소리로 대일정책을 펼쳐온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중하고도 역사적 무게감이 깊은 대일정책을 윤석열 정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허물고 있다. 작금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관계에 큰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과의 문제는 그렇게 칼로 무 썰듯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비근한 사례로 독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개최

2023년 6월 21일 198

[초점]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개최 6월 9일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부가 후원한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의정원홀에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개최되었다.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의 개회사로 시작된 학술회의는 세 차례의 주제발표, 종합토론 순서로 진행되었다. 제1 주제는 조규태 한성대학교 인문학부 교수의 「조선혁명선언의 연원과 북경 ‘반임정 그룹’」이었다. 조규태 교수는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의 ‘위임통치론’ 주장에 대한 반발로 ‘반임정 그룹’이 성립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 그룹의 구성원들과 그들의 정치사회관을 개괄적으로 분석했다. 반임정 그룹의 주요 세력은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박용만을 옹위하는 미주세력, 신숙 등의 천도교 집단, 윤해와 원세훈 등 대한국민의회, 김창숙과 신채호 등 유림 집단, 의열투쟁을 중시한 김원봉의 의열단 세력, 성준용, 송호 등 서간도의 서로군정서 집단, 조정구와 이회영 등 친왕 세력 등이었다. 이들 중 조선혁명선언과 직접 관련한 신채호와 의열단 계통의 인물들은 사회주의적 또는 아나키즘적 사회관을 갖고 있었다. 특히 신채호는 일제가 무력과 폭압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유와 권익을 빼앗은 것에 대해 투쟁으로 되찾고자 하였고 상호부조론에 입각하여 구성원 모두가 균등하게 잘 사는 사회의 실현을 염원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제2 주제로 김영범 대구대 명예교수가 「조선혁명선언의 혁명사상과 의열단(계)의 실천경로」를 발표하였다. 김영범 교수는 조선혁명선언에서 신채호가 “민족사회·경제·문화의 완전 변혁에 의한 ‘이상적 조선’의 건설을 꿈꾸었으며 그 결과로 생성된 조선혁명의 성격은 민족혁명임과 동시에 사회혁명이고 주체로 보면 민중혁명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의열단은 조선혁명선언을 즉시 인쇄하여 조선 국내뿐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