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길이름으로 남깁시다
[후원회원마당] 길이름으로 남깁시다 김순흥 광주지부장 불의에 저항하고 부당한 폭력에 항거하면서 모든 사람이 항꾸네 하는 대동세상을 일궈낸 광주정신 널리 알리고 길이길이 전해야 합니다. 국가기념일도 만들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올리고 연극도 하고 뮤지컬도 하고 해마다 국제행사도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아무 때나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언제나 우리가 보고싶고 함께하고 싶을 때는 가서 보고 느끼고 다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광주의 구석구석 길에, 건물에, 광장에 이름을 붙입시다. 모두 훌륭한 분들이라서 붙였겠지만, 수백년 전 천수백년 전 고려시대 조선시대 사람들만,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도 잘 모르는, 그분들이 광주와 무슨 상관이 있고, 광주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만 광주의 길이름에 남기지 말고 우리의 소중한 분들의 이름도 길에, 건물에, 광장에, 마을에 붙여놓고 일상에서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합시다. 조비오 길을 만들고 윤상원 광장을 만듭시다. 힌츠페터 길을 만들고 안병하 치안감 길을 만들고 김사복 길도 만들고 차명숙 방송로도 만듭시다. 이한열배은심 길도 만들고 백남기 길도 만들고 대동시민로도 만들고 민주택시로도 만듭시다. 오월어머니광장도 만듭시다. 광주의 역사에 남는 사람들이 태어났거나 살았던 마을에 마을 이름으로 붙입시다. 윤상원마을 이한열마을 … 백범로도 만들고 윤봉길로도 만들고 우당 이회영길도 만듭시다. 비슷한 아픔과 슬픔을 가진 제주4·3로도
“금을 나라에 팔자”, 황금광 시대에도 금 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식민지 비망록 91] “금을 나라에 팔자”, 황금광 시대에도 금 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일제는 왜 금헌납과 금매각 독려에 그렇게 열을 올렸나? 이순우 책임연구원 흔히 ‘금 모으기 운동’이라고 하면 1997년 외환위기와 관련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신청 때의 그 시절을 퍼뜩 떠올리는 이들이 당연히 많을 줄로 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찍이 80여년 전쯤에도 이 땅에서 이러한 금 모으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진 적이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매일신보』 1939년 6월 13일자에 수록된 「전선 관공리(全鮮 官公吏)의 적성(赤誠), ‘금헌(金獻)’ 10만 원(萬圓) 돌파(突破), 민중(民衆)의 선두(先頭)에서 시범성적양호(示範成績良好)」 제하의 기사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금을 나라에 바치자!”고 한 헌금운동(獻金運動)은 시국의 장기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는데 조선서는 이 헌금운동의 시범(示範)을 하자고 하여 지난 3월 15일부 정무총감(政務總監)의 명의로 전조선 관공리들의 헌금운동을 통첩(通牒)하였다. 이 통첩에 대하여 총독부 각국 과장과 직원들은 물론 각 도청, 군청, 영림서(營林署), 각 지방법원, 복심법원, 보호관찰소, 각 학교 등 ‘관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전부 금을 바치는 적성을 표하였는데 이 헌금운동의 보고서가 요즈음에야 총독부 문서과로 모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 보고에 대하여 문서과에서는 숫자적으로 집계를 하는 중인데 의외에도 각 관공청에서 표한 헌금운동의 적성은 상당히 좋은 성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전라남도 같은 곳의 보고를 보면 금을 판 돈 만 팔천여 원의 다수에 달한 것 외에 웬만한 관청이면 3, 4천 원어치는 의례히 되어
고종황제 강제퇴위와 의병전쟁
[연구실 글방 5] 고종황제 강제퇴위와 의병전쟁 심철기 연구실장 1. 고종황제 강제퇴위 반대운동 1907년 8월 1일 서울 주둔 시위대 군인들의 봉기가 의병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지만 그 시작은 헤이그특사사건의 처리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헤이그특사사건을 계기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하여 식민지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는 『통감부문서』 5권에 수록된 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1907년 7월 3일 하야시 외무대신에게 보낸 전보에 잘 나타나 있다. 과연 칙명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우리 정부도 이때 대한제국에 대해 국면을 일변케 하는 행동을 취할 수 있는 호기라고 믿는다. 이전 음모가 확실해지는 즉시 세권(稅權), 병권(兵權) 또는 재판권을 우리가 거두는 데 있어 좋은 기회를 주는 것으로 인식한다. 즉, 헤이그특사사건을 이용하여 대한제국의 조세권, 군권, 재판권마저 빼앗고자 하였다. 일본내각도 내각회의에서 「헤이그밀사사건처리방침」을 결정하여 1907년 7월 12일 이토 통감에게 타전하였다. 그 내용은 『고종시대사』 6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일본정부(日本政府)는 이번 헤이그밀사사건을 기회로 한국내정(韓國內政)에 관한 전권(全權)을 장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이의 실천방법으로서 첫째 한국황제(韓國皇帝)로 하여금 황태자(皇太子)에게 양위(讓位)하게 할 것, 둘째 한국정부의 행정은 통감(統監)의 동의를 얻어 실행하게 할 것, 셋째 대신(大臣)·차관(次官) 이하 중요 관리를 일본인으로 임명하거나 또는 통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게 할 것 등”이었다.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통감 주도하에 일본인 관리를 임명하는 차관정치를 실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이토 통감은 고종황제의 양위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직접 나서 양위문제를 제기할 경우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30년 만에 되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한일시민의 연대
[사도광산 현지조사 보고] 30년 만에 되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한일시민의 연대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한일관계를 둘러싼 핵심적인 의제로 떠오른 강제동원과 관련한 문제에는 2018년 대법원판결의 이행 문제 이외에도 야스쿠니신사 한국인 합사철폐 문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봉환 문제, 강제동원 관련 기록 확보 등의 문제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시설에서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문제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5년 ‘군함도’로 잘 알려진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의 등재 당시부터 일본의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와 함께 유네스코 산업유산에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할 것을 일본 정부에 지속해서 요구해 왔다. 2015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인, 중국인, 연합군 포로 등이 고통을 당한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지만, 아직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해 강한 유감을 밝히고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강제동원의 역사를 숨기려는 일본 정부에 압박을 가해 강제동원의 진실을 밝히려는 한일 시민들의 연대는 날로 힘을 더해가고 있다. 2022년 일본 정부는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 섬의 금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의 추천 시기를 에도시기의 금 생산으로 한정하여 사도 광산의 역사 전체를 제시하지 않고, 에도 시대의 일본 민중의 강제노동, 일본의 침략전쟁 당시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도 숨기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의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와 함께 실시한 사도
올곧은 시대인식과 역사의식을 품자!
[시론] 올곧은 시대인식과 역사의식을 품자! 윤경로 식민지역사박물관 관장, 전 한성대 총장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처음 출발 때부터 기대보다는 우려와 걱정의 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한 해를 넘긴 작금, 그 정도가 더욱 넓어지고 높아지는 것만 같아 우려스럽다. ‘검사공화국’을 넘어 ‘검사제국’을 향하는 제반 정치·사회 현 상황에 대해 많은 시민과 국민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광복 이후 역대 여러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정치권력 유형을 지켜보았고 경험해 왔지만 이런 형태의 ‘검사공화국’을 넘어 ‘검사제국’과 같은 유형의 정권과 정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면 그에 따라 앞서의 정권이 시행해온 정책에 변화가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정치현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시적 정권 차원을 넘어서는 예컨대 역사문제와 민족문제와 같은 거족적이며 거시적인 대내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역사문제라 하겠다. 1945년 광복 이후 역대 정권의 정치적 성향과 성격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적어도 대일본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진보를 뛰어넘어 한 목소리로 대일정책을 펼쳐온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중하고도 역사적 무게감이 깊은 대일정책을 윤석열 정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허물고 있다. 작금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관계에 큰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과의 문제는 그렇게 칼로 무 썰듯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비근한 사례로 독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개최
[초점]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개최 6월 9일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부가 후원한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의정원홀에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개최되었다.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의 개회사로 시작된 학술회의는 세 차례의 주제발표, 종합토론 순서로 진행되었다. 제1 주제는 조규태 한성대학교 인문학부 교수의 「조선혁명선언의 연원과 북경 ‘반임정 그룹’」이었다. 조규태 교수는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의 ‘위임통치론’ 주장에 대한 반발로 ‘반임정 그룹’이 성립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 그룹의 구성원들과 그들의 정치사회관을 개괄적으로 분석했다. 반임정 그룹의 주요 세력은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박용만을 옹위하는 미주세력, 신숙 등의 천도교 집단, 윤해와 원세훈 등 대한국민의회, 김창숙과 신채호 등 유림 집단, 의열투쟁을 중시한 김원봉의 의열단 세력, 성준용, 송호 등 서간도의 서로군정서 집단, 조정구와 이회영 등 친왕 세력 등이었다. 이들 중 조선혁명선언과 직접 관련한 신채호와 의열단 계통의 인물들은 사회주의적 또는 아나키즘적 사회관을 갖고 있었다. 특히 신채호는 일제가 무력과 폭압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유와 권익을 빼앗은 것에 대해 투쟁으로 되찾고자 하였고 상호부조론에 입각하여 구성원 모두가 균등하게 잘 사는 사회의 실현을 염원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제2 주제로 김영범 대구대 명예교수가 「조선혁명선언의 혁명사상과 의열단(계)의 실천경로」를 발표하였다. 김영범 교수는 조선혁명선언에서 신채호가 “민족사회·경제·문화의 완전 변혁에 의한 ‘이상적 조선’의 건설을 꿈꾸었으며 그 결과로 생성된 조선혁명의 성격은 민족혁명임과 동시에 사회혁명이고 주체로 보면 민중혁명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의열단은 조선혁명선언을 즉시 인쇄하여 조선 국내뿐 아니라
“일본산업유산과 사라지는 목소리들: 기억·인권·연대” 개최
[초점] <일본산업유산과 사라지는 목소리들: 기억·인권·연대> 개최 국제학술회의 〈일본산업유산과 사라지는 목소리들: 기억·인권·연대〉가 6월 9일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수행된 일본 산업유산을 둘러싼 연구와 활동을 공유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시 산업현장의 실태를 살펴보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했고 민족문제연구소가 협력기관으로 참여해 학술회의의 기획 및 구성뿐 아니라 발표, 사회, 토론에도 적극 나섰다. 연구소는 2015년 일본 메이지산업혁명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부터 다양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2022년 11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의 〈사라지는 목소리들: 석탄과 철에 은폐된 역사 그리고 희생자들의 이야기〉 전시회에 이어 올해 6월 8일부터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사라지는 목소리들: 전쟁과 산업유산, 잊힌 희생자 이야기〉라는 주제의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국제학술회의에는 그동안 각국에서 수행되었던 일본산업유산 관련 연구 및 활동의 성과와 〈사라지는 목소리들〉 전시회의 문제의식을 학술적으로 공유하고, 산업유산에 담긴 다양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함으로써, 일본산업유산을 둘러싼 갈등의 현황과 원인을 여러 측면에서 검토하여 보고 적절한 해결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국제학술회의는 4개의 소주제와 종합토론으로 구성되었다. 제1부 ‘세계유산과 기억·인권·연대’에서는 앤드류 고든(하버드대), 서현주(동북아역사재단), 김민철(국사편찬위원회)의 발표를 통해 일본산업유산의 문제점을 점검하였다. 제2부 ‘일본산업유산과 쟁점’에서는 니콜라이 욘센(런던대) 및 노기 카오리(민족문제연구소)가 일본산업유산 등재를 둘러싼 일본 내 인식의 문제점 및 일본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의 한계점을 분석하였다. 제3부 ‘일본산업유산과 다양한 목소리들’에서는 김승은(민족문제연구소), 신카이 도모히로(나가사키중국인강제연행재판을지원하는모임), 데이비드 파머(맬버른대) 등이 각각 한국인, 중국인, 연합군 포로 등 각각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일본산업유산의
강제동원 증언 특별전 <사라지는 목소리들>, 부산에 이어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려
[초점] 강제동원 증언 특별전 <사라지는 목소리들>, 부산에 이어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려 6월 8일부터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사라지는 목소리들-전쟁과 산업유산, 잊힌 희생자 이야기〉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작년 11월 1일부터 12월 16일까지 부산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열린 전시의 성과에 힘입어 서울 전시로 이어졌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주최하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후원하였으며,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그간 강제동원 구술사업과 산업유산 대응활동 과정에서 축적해온 기록과 영상, 소장자료를 제공했다. ‘전쟁기념관’이 ‘강제동원’ 문제와는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강제동원 피해자야말로 식민지배의 피해자이자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희생자이다. 일본 산업유산의 각 시설들은 그 침략전쟁을 뒷받침한 전시 강제노동의 현장이었던 점 또한 기억해야 한다. 1945년 창립한 유네스코 역시 인류가 저지른 두 차례 세계대전을 반성하고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전쟁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세계유산 특히 산업유산 속 ‘전쟁’의 기억과 전시 강제노동 희생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하였다. 1부는 ‘일본의 산업유산의 현장과 사라지는 목소리들’, 2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기억의 계승’, 3부는 ‘또 하나의 현장, 사도광산’이다. 귀 기울여야 하는 ‘사라지는 목소리들’은 한국인·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와 연합군 포로, 사도광산 피해자와 유족까지 포함해 29건의 에피소드를 5편의 영상으로 엮어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14,5세 어린나이에 가족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배급이 끊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일본의 탄광과 제철소로 끌려갔다. 그 곳에서 한국인들이 겪은 기아와 고통은 중국인, 연합군 포로들이
정한론자를 존경하는 인사는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 자격 없다
[초점] 정한론자를 존경하는 인사는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 자격 없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사장 김학홍 행정부지사)은 5월 12일 경북도청 회의실에서 2023년 제2차 이사회를 개최해 제4대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으로 검사 출신인 한희원 동국대 일반대학원장을 내정했다. 그러자 한희원 원장의 과거 대중 강연 발언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한 원장은 2022년 3월 23일 서울 강동구 피스센터에서 한반도통일지도자총연합 주최로 열린 ‘2022 통일지도자 특별세미나’에서 ‘초일류 자유대한민국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라는 주제의 특강 중에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빈털터리 나라 경제 가운데 경쟁을 도입해 국가부흥의 초석을 다졌다”면서 “경쟁을 현실화시키는데 필요한 자유를 건국 가치로 삼았다”고 했다. 또한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미래를 이끌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면서 “오늘의 일본이 세계 강국이 된 원인은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인재를 길러낸 쇼카손주쿠(松下村塾) 설립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쇼카손주쿠는 서양 외세가 일본을 점령한 것을 본 요시다 쇼인이 그의 숙부가 세운 의숙을 실질적으로 다진 인물”이라며 “(요시다 쇼인은) 서양이 나빠서 일본을 점령한 게 아니라, 일본 힘이 약했기 때문에 인재 100명을 길러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표적인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라며 “그 인재들이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켜 오늘의 일본을 만든 초석을 다졌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올바른 인재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2022년 5월 3일 경북도가 주최한 ‘158회 화공 굿모닝 특강’에서도 한 원장은 “인간 실패를 막고 초일류 국가를 만들려면 교육만이 해법”이라며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요시다
이승만기념관 건립 반대 기자회견 열어
[초점] 이승만기념관 건립 반대 기자회견 열어 연구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윤미향 국회의원과 함께 5월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이승만기념관 건립 시도와 예산 편성의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김숙연 열린사회희망연대 공동대표, 김웅진 제헌의원 후손인 김옥자 반민특위·국회프락치기억연대 이사, 김용일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충남유족연합회 회장, 방학진 기획실장, 백경진 제주4·3범국민위원회 이사장, 안병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전덕용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최우영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이사가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회견문을 통해 “이승만은 192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때 탄핵을 당했고 1960년 4·19혁명으로 쫓겨난 인물”로 “역사 속에서 긴 잠을 자던 이승만을 깨운 이들은 1994년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의 화해 분위기에 화들짝 놀란 반공정치세력들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이승만기념관 건립은 역사 퇴행을 넘어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함’을 명시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마저 정면으로 짓밟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5월 22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이승만기념관 건립 중기사업계획을 세워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면서도 “현재 시점에서는 정해진 게 하나도 없으나 이승만기념관 건립 사업에 대해 제 개인적 소신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승만기념관 건립이 알려지자 4월 19일 국회에서 ‘긴급토론회 : 이승만 우상화 무엇이 문제인가’ 주최를 시작으로 언론 기고, 관련 자료집 제작·보급 등으로 반대운동을 진행했다. 올해 말 국가보훈부 예산에 이승만기념관 관련 예산이 편성되지 못하도록 예의 주시할 것이다. • 방학진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