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일왕의 신민으로서 일본제국주의에 충성을 바친 간도특설대의 황군 장교 백선엽
[특별기고] 일왕의 신민으로서 일본제국주의에 충성을 바친 간도특설대의 황군 장교 백선엽 이용창 연구위원 대한민국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독립운동 관련 연구와 선양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기념관이 ‘○○’기념관이 되려나 보다. 8월 6일자로 독립기념관 13대 관장에 임명된 김형석 씨가 8일 취임 기자 간담회에서 했다는 말을 보니 ‘독립’에는 관심이 없고 『친일인명사전』의‘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니 말이다. 2018년 10월 국회에서 열린 국회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이날 국정감사에서는 1만 5000여 명의 「독립유공자 공적 정보」(공훈전자사료관 제공)와 『독립유공자 공훈록』(책자)에서확인되는수많은오류를어떻게바로잡을것인지에대한질의가있었다.이에 대해 당시 국가보훈처장은 ‘(가칭)독립유공자 공적 검증위’를 구성해 ‘보훈처와 독립기념관, 민족문제연구소가 참여하는 전수조사 실무 TF팀’을 구성하고 2019년 1월부터 2023년까지 전수조사를 마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밝혔다(「오마이뉴스」, 2018.10.25). 민족문제연구소는 수년간 독립유공 서훈자 중 친일 행위자, 동일인에게 이중으로 한 중복 서훈, 심지어 타인의 공적을 탈취해 세탁한 가짜 독립운동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안해 왔으나 전혀 반응이 없다가 민족문제연구소와는 전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해버렸다. 의문의 ‘1승’인지, ‘1패’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 임명된 ‘독립’기념관장이 ‘친일’ 문제를 언급하면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을 언급해 이 또한 의문의 ‘2승’째인지, ‘2패’째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친일인명사전』의 가치를 인정하고 개정·보증을 위해 예산을 지원하는게 좋지 않을까? 김형석씨는 관장 임명 전부터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안익태와 백선엽의 ‘친일 행적’이 잘못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보자. 안익태가 ““동양 3국이 서로 화합하고 개화·진보하면서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진력하자”고 외치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반대 활동
[초점]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반대 활동 휴가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을 앞둔 8월 6일 저녁 전격적으로 뉴라이트 김형석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했다. 우리 연구소는 김형석의 저서인 『끝나야 할 역사전쟁』(2022)과 2023년 5월 김형석이 발표한 ‘대한민국역사와 미래 학술세미나’ 자료집을 긴급 입수하여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8월 10일에는 독립기념관 분수광장에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윤석열 정권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김형석 관장 임명 후 첫 다중 집회로 우리 연구소 회원들을 비롯해 천안민주단체연대회의, 광복회원 그리고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정의당 등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김성장 세종손글씨 연구소장과 김미화 작가는 ‘뉴라이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철회하라’는 내용의 붓글씨를 써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용길 천안역사문화연구회장을 시작으로 이정문, 이재관, 김준혁, 황운하, 정혜경 국회의원 등이 잇따라 강도 높게 김형석 관장 임명을 비판했다. 발언을 마친 뒤 참석자들은 관장실이 있는 겨레누리관까지 행진한 뒤 집회를 마쳤다. 한편 이날 집회 전인 8월 8일 우리 연구소 충남지역위원회는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위원회를 마련해 지속적으로 김형석 관장 퇴진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연구소는 독립기념관 집회부터 정부 주최 광복절 기념식 불참은 물론 시민사회단체들가 함께 ‘진짜’ 광복절 기념식을 효창원 삼의사묘역에서 개최할 것으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11일 오후 광복회가 정부 주최 광복절 불참을 공식 선언한 후 우리 연구소는 효창원에서의 행사를 ‘국민과 함께하는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 야간 개장 ‘한여름 밤의 작당모의’
[초점]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작당하자! 식민지역사박물관 야간 개장 ‘한여름 밤의 작당모의’ 7월 24일 저녁 7시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야간 개장을 진행했다. ‘한여름 밤의 작당모의’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야간 개장 행사는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각 대사에게 사도광산이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를 바라는 시민들이 함께했다. 이 행사에서는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의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 해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사도광산 미공개 다큐, 김승은 학예실장의 사도광산 특별해설, 작당모의 순서로 진행했다. 마지막 순서로 진행한 작당모의는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각 대사에게 사도광산이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를 요구하는 영상 메시지를 촬영했다. 행사에 참여한 20여 명의 시민들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각 대사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직접 작성했다. 시민들이 직접 작성한 메시지에는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해 전체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차별과 전쟁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사도광산이 한국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를 바란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시민들이 촬영한 영상 메시지는 사도광산 등재 전인 7월 26일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의 각 대사에게 전달했다. 한 참가자는 야간 개장에 대해 “사도광산에 대해 배우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좋았다.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의 각 대사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니 전체 역사를 기록하도록 앞으로도 행동하고자 한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7월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한국 외교부는 “전체 역사를 사도광산 현장에 반영하라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일본이 성실히 이행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를 할 것을
‘부민관 폭파 의거’ 79주년 기념식
[초점] 끝까지 다른 길을 걸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삶 ‘부민관 폭파 의거’ 79주년 기념식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 ‘부민관 폭파 의거’ 79주년 기념식이 7월 20일(토) 서울시청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렸다. 이날 함세웅 이사장을 비롯하여 임헌영 소장, 김용만 민주당 의원, 서울시의회 성흠제 의원, 윤대성 광복회 화성지회장과 연구소 회원 등 50여 명이 참석하여 부민관 폭파 의거를 기리고 독립정신을 되새겼다. 조문기(민족문제연구소 제2대 이사장), 유만수, 강윤국 세 애국지사가 대의당 당수 박춘금 등 친일파 수괴들과 총독부 고위 관료들의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리던 부민관을 폭파하여 대회를 무산시킨 날은 해방을 얼마 앞두지 않은 1945년 7월 24일이었다. 일제에 마지막까지 충성을 맹세하고 결사 항전을 다짐했던 박춘금과 독립을 위해 마지막까지 투쟁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이토록 다른 모습으로 해방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념식 이후 답사는 옛 부민관 자리에 세워진 서울시의회 본관을 시작으로 사이토 총독이 쓴 정초석이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정미의병 발상지, 신민회 근거지 상동교회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쓴 정초석이 있는 한국은행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답사에서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삶이 두드러지게 대조되었다. 특히 박춘금은 간토대지진 당시 일제가 민심을 수습하고 조선인을 탄압할 목적으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조선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데 일조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 조선인 희생자의 시체 처리와 복구 작업을 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파 박춘금이 살아온 길과 다르게 군대 해산을 거부하고 의병에 나선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정미의병 발상지이다.
[광복절 기념사] 제2의 역사쿠데타를 막아주십시오!
[광복절 기념사] 제2의 역사쿠데타를 막아주십시오! 오늘 광복 79주년을 맞아 죄인의 심경으로 선열들 앞에 섰습니다. 마땅히 경축해야 할 ‘해방의 날’이지만 부끄럽게도 친일·친독재 세력이 활개 치는 세상이 다시 왔기 때문입니다. 이 정권은 제 나라도 제 민족도 안중에 없는 사대매국 집단이요 국민을 기만하는 사익 추구세력입니다. 불과 2년이 좀 넘는 기간에 모든 분야를 이렇게 망쳐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외교·안보, 민생·경제, 국민통합, 남북관계 등 어느 한 곳 멀쩡한 데가 없을 지경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가 정녕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선열들은 국제평화와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문화대국, 작지만 당당한 나라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굴욕외교를 거듭하며 일본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습니다. 강제동원피해 제3자보상안으로 대법원을 능욕하고 삼권분립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사도광산 강제동원 명시를 거절당하고도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하더니 자료까지 조작하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습니다. 독도를 일본의 의도대로 분쟁지역화하는 데 한국 정부가 거들고 있습니다. “유사시에 자위대가 한반도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국가안보실 차장 자리에 앉아 외교·안보를 떡 주무르듯 합니다. 중국·러시아와는 적대하고 미·일·한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남북대결과 전쟁 위기를 조장하면서 국익은 내팽개치고 퍼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것이 나라냐?’는 한탄이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무엇보다도 이 정권이 자행한 가장 무도한 짓은 독립정신과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입니다. 육사 교정에 세워진 홍범도 장군 등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뜯어내겠다고 설치며 얼토당토않은 색깔론을 내세웠습니다. 피어린 4·19민주혁명의 현장에 이승만기념관을 짓겠다는 망발을 서슴지
⌈신안정로전국쌍육⌋
[소장자료 톺아보기 61] 침략전쟁의 선전 도구로 이용된 쌍육 놀이 : 러일전쟁 ⌈신안정로전국쌍육⌋(1904.1) 1904년 2월 러일전쟁 개전 후 일본군은 5월초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진격하여 일사천리로 구련성, 금주 등을 점령했다. 여세를 몰아 일본군은 8월부터 러일전쟁의 최대 승부처인 여순항 공략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간 맥없이 패주하던 러시아군도 여순항에 배수의 진을 치고 격렬히 저항하여 장장 5개월간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양군에서 십수 만의 사상자를 낸 끝에 1905년 1월 2일 일본군이 여순항을 함락시켰다. 당시 일본 언론 매체들은 일본군의 승전보를 실시간 중계하듯 보도하였고 특히 러일전쟁의 전황만을 다루는 잡지와 사진화보집을 경쟁적으로 발간하였다. 『일로전쟁실기(日露戰爭實記)』라는잡지를 발행하고 있던 박문관(博文館)은 『일로전쟁실기』1905년 신년호의 판매부수 증대를 위해 사진화보부(寫眞畫報部)가 기획하고 일본화의 중진 화가였던 오타케 곳칸(尾竹國觀)이 그림을 맡은, 러일전쟁 승전을 테마로 한 쌍육판 「신안정로전국쌍육」을 부록으로 제작하였다. 1905년 1월 시점에서 일본의 승전을 상정하고 제작한 이 쌍육판은 기존의 쌍육 놀이와 차별화하기 위해 실제 러일전쟁에 참전한 일본 군단과 사령관을 게임 속에 구현하였다. 즉 플레이어는 일본군 6개의 군단―구로키 대장(黑木大將)의 제1군, 오쿠 대장(奧大將)의 제2군, 노기 대장(乃木大將)의 제3군, 노즈 대장(野津大將)의 제4군, 도고 대장(東鄕大將)의 도고 함대, 우에무라 중장(上村中將)의 우에무라 함대― 중 하나의 군단을 선택해서 그 군단(말)을 움직이는데 군단의 이동 방법은 각 칸의 지시에 따른다. 출발 칸인 ‘출정’을 보면 제1군부터 우에무라 함대까지 각 군단에 숫자마다 이동할 칸이 정해져 있다. 가령 플레이어가 제1군을 택했을 경우 주사위를
평화에 도달하기 위한 기억 프로젝트, 영화 ‘판문점’을 보고 난 후
[후원회원마당] 평화에 도달하기 위한 기억 프로젝트, 영화 ‘판문점’을 보고 난 후 사지원 중앙대학교 물리학과 2018년 학교가 끝나고 밥을 먹던 중, TV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뉴스는 나를 오랜 꿈으로 이끌었다. 차를 타고 금강산 언저리에 주차한 다음, 등산길에 올라 벅찬 그 풍경을 그저 바라보는 것, 분단선을 넘어, 열차를 타고 유럽 대륙 끝을 목적지로 하여 중간마다 정박하며 가보는 것. 꿈에 그리던 것들이 더 이상 꿈이 아니라, 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국’인 이기에 북한에 갈 수 없다.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한민족이지만 유일하게 서로 오갈 수 없다. 그저 분계선 근처에서 바라볼 뿐이다. 전주 한옥 마을을 가듯, 평양에 관광을 가서 평양냉면을 먹고, 박물관에서 고구려 유적지를 볼 수 있는, 그렇게 일상 및 ‘당연함’의 모습의 반경을 넓히고 시야를 가지게 해주는 것, 북한의 미사일이나 서로 간의 군사적 도발을 더 이상 일상의 뉴스로 받아들이지 않는 일상, 서로 간 오가는 확성기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 폭력과 무력이 아닌 진정한 ‘평화’가 비로소 일상과 ‘당연함’이 되는 날을 꿈꾼다. 가족임에도 보지 못하는 이산가족은 한국 전쟁의 비극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아픔은 점점 더 잊혀간다. 그렇게 폭력의 아픔은 서서히 일상으로 침투하여 무감각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위기가 지속되고, 실제적 폭력이 전 세계로 확산하여 간다. 이 전쟁은 국경을 넘어서 연결되어
디저트보다 더 달콤한 기부
[소감문] 디저트보다 더 달콤한 기부 여현정 일본학연구소 연구보조원 안녕하세요.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의 연구보조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현정입니다. 저희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는 6월 27일, 대학교 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해 크로플과 에이드를 판매한 수익금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 후원하였습니다. 축제에서 일본학연구소 연구보조원으로서 후원 활동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부스 운영 준비 과정부터 식민지역사박물관 후원 활동 결과까지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일본학연구소에서 격주로 진행하는 ‘목요회’라는 독서토론 활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저희는 히토쓰바시대학의 가토 게이키 교수님 세미나에서 활동한 학생들과 졸업생이 쓴 『확산되는 ‘한일’의 답답함과 우리들(ひろがる「日韓」のモヤモヤとわたしたち)』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 대학생의 시선으로 한일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고 현재의 한일관계를 고찰하며 올바른 역사관과 깊은 이해를 촉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의 가해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일본 학생들의 적극적인 자세를 보며 저 또한 올해 10월에 마무리되는 일본학연구소 연구보조원으로서 의미 있는 결실을 맺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서 일본학연구소 소속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을 고민하던 중, 마침 5월에 한림대학교 대동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뜻을 함께하는 팀원들을 모집해 부스 운영을 통한 모금 활동을 추진하였습니다. 부스 운영을 기획하면서 팀원들과 여러 아이디어를 모았습니다. 지난 2월 일본 대학생 친구들과의 교류회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방문했던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인상 깊게 남아 있었고, 역사정의실천이라는 저희의 목적과도 일치해
척화비(斥和碑), 위정척사의 상징 혹은 박해와 순교의 증거물
[특집] 척화비(斥和碑), 위정척사의 상징 혹은 박해와 순교의 증거물 이순우 특임연구원 서울 용산구 청파동2가에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나란히 이웃하는 자리에 터를 잡고 있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韓國殉敎福者修女會, 1946.4.21일 개성에서 설립 이후 1950.3.9일 서울 청파동으로 이전)에는 드물게 구경할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 한 점이 보관되어 있다. 지난 2022년 10월 13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 화재 제534호로 지정된 ‘척화비’가 바로 그것이다. 문화재지정을 위한 사전조사자료에 따르면, 이 비석의 원래 위치는 “강원도 횡성읍 읍상리 횡성성당 정문 앞 개울에 버려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이 비석은 엄밀하게 말하여 ‘횡성 척화비’로 명명되는 것이 더 합당한 일이 아닌가도 싶다. 이곳의 척화비가 정확하게 어느 시기에 한국순교복자수녀회로 수습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자세히 탐문해보지 못하였으나, 우선 아주 오래전 세종문화회관 대전시실에서 열린 가톨릭조선교구설정 150돌 기념 가톨릭미술전 및 교회사자료전(1981.9.6~9.12)에 전시유물로 출품된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고종시대사 1』(1967)을 보면, 571쪽 부분에 ‘도판 제21도 척화비’ 사진자료로 종로 척화비(경복궁 근정전 회랑)와 더불어 ‘횡성 척화비(장소미상의 실내공간)’의 모습이 나란히 수록된 것이 확인된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 보면 이 척화비는 이미 반세기 훨씬 이전에 서울로 옮겨진 상태였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전국 각처에 흩어져 있는 옛 척화비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수량은 대략 36 기(基; 복제품은 제외)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 가운데 현재 지방문화재(향토유적 포함)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것이 21기이며, 나머지는 모두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한 〈항일음악 330곡집〉 분석
[기고]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한 〈항일음악 330곡집〉 분석 방학진 기획실장 해방 이후 정부가 손놓은 상황에서 2017년 『항일음악330곡집』(민족문제연구소기획, 노동은 책임 집필)이 발간되어 서울, 충남, 제주 등 일부 교육청을 통해 학교 현장에 보급되었다. 2022년에는 『다시 부르는 독립의 함성 : 항일노래 600곡』(반혜성, 김수현, 김명섭, 노복순)도 출간되어 항일음악 연구의 토대가 더욱 확장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발굴·정리된 항일음악들이 삼일절, 광복절 등 기념일은 물론 역사, 음악 시간에 활용되고 있는 사례는 드물다. 항일음악이 ‘일제침략을 반대하며 국권회복과 독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라고 할 때 그 노래의 가사와 선율 속에는 독립운동의 정신이 깃들어 있음은 불문가지이다. 특히 항일음악에 담긴 가사는 독립운동 관련 선언문, 신문, 잡지, 저서, 연설문, 편지와 마찬가지로 텍스트로 존재하지만 수많은 텍스트는 개념과 연결되고 다시 그 개념은 사상으로 발전한다. 예를 들어 한국광복군 창설 이후인 1942년 만들어진 <광복군가1>(이두산 작사·작곡)의 마지막 가사는 “독립 독립 조국 광복 민주 국가 세워보자”이다. 여기에서 ‘독립’ ‘조국’ ‘광복’ ‘민주’ ‘국가’는 각각 별개의 텍스트지만 ‘독립’ ‘조국광복’ ‘민주국가’ 개념으로 발전하고 다시 ‘독립투쟁을 통한 광복 그리고 광복 후 민주국가 건설’이라는 사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향후 항일음악 연구의 다양한 접근을 바라면서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기법으로 『항일 음악 330곡집』에 수록된 모든 곡의 가사를 분석했다. 분석은 텍스톰(textom.co.kr)을 이용하여 정제 작업(‘때’, ‘너’, ‘일’, ‘날’, ‘피’ 등 한 음절 단어 삭제 등)을 거친 후 텍스트 마이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