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잊혀진 ‘뭉우리돌’을 찾아 나선
[인터뷰] 잊혀진 ‘뭉우리돌’을 찾아 나선 -김동우 작가 인터뷰 : 방학진 기획실장 정리 : 김혜영 선임연구원 ‘뭉우리돌’의 사전적 의미는 ‘모난 데가 없이 둥글둥글하게 생긴 큼지막한 돌’이다. <백범일지>에서 차용한 이 단어는 독립운동 정신을 상징한다.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김구 선생은 일본 순사가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자신을 협박하자 이 말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며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답했다. 올곧은 일에 생을 바치고자 했던 뭉우리돌들, 전 세계 곳곳에 굳건히 박혀 대한 독립을 일궈낸 뭉우리돌의 역사. 독립기념관 자료를 샅샅이 뒤져 주소 한 줄, 사진 한 장으로만 남은 국외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니며 사라져가는 역사의 현장과 그곳에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을 사진과 글로 남긴 김동우 작가를 만나보았다. 김동우 작가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신문사 기자로 일했으며 세계 60 여개국을 여행했다. 중국, 인도, 멕시코 등 10 여개국의 우리 독립운동 사적지 200여 곳을 직접 방문, 카메라로 기록해 2019년 사진집 <뭉우리돌을 찾아서>를 출간했다. 그 후 독립운동사적지와 그곳에 사는 후손을 찍은 사진을 전시하는 개인전과 단체전을 여러 차례 개최했다. 지난 5월 18일부터 강북구의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쿠바 한인 이주 100주년 기념 특별 사진전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를 열고 있으며, 최근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의 우리 독립운동 유적지를 다룬 <뭉우리돌의 바다>를 펴냈다. ●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전시 중인 ‘기억, 잃어버린
광저우기의열사능원(廣州起義烈士陵園)
[후원회원 마당] 광저우기의열사능원(廣州起義烈士陵園) 김유 중국 광동지부장 슬픈 노래 그리고 마침 비가 오는지라 높게 이는 연못물이 아득하고 구슬퍼서 물결을 가르고 또한 헤집는 듯하였다. 우산을 펴고 희생자 분향탑을 지나 뒤쪽으로 막 층계를 내려간 순간 보이는 크나큰 호수 그리고 갑자기 들려오는 음악소리, “저 음악은 1년 365일을 끊이지 않고 울립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끊임이 없습니다.” 안내해주는 분의 설명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음악소리는 공원에서 시시때때 틀어놓고 듣는 그런 소리는 아니었다. 해금을 닮은 깽깽이 소리가 구슬프게 하늘을 맴돌고 한동안 이어지다가 끊어지자 다시금 온갖 악기들이 어우러지면서 구곡을 끊어내는 듯 한꺼번에 울어내는 소리가 허공에 사무쳤다. 오늘 아침에 광저우기의열사능원을 간다고 하였을 때 그곳은 그저 과거의 지나간 한때였으며 혁명의 와중에 흔히 있는 싸움과 희생 그리고 후세의 승리자들에 의해 선별되어진 유적들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서 음악을 듣는 순간 달라졌다. 공원은 월수구(越秀區) 안에 있다.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로 혁명을 찬양한 기념비와 조각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곳은 광저우 코뮨의 3일 천하로 끝난 아쉬움, 사람이 많이 죽은 아픔으로 충만하다. 공원의 한가운데에는 당시 코뮨 때에 희생된 5천여 명이 넘는 시신이 모셔진 커다란 봉분이 있다. 그 봉분에는 150여 구의 조선인 시신도 있다고 한다. 1920년대의 광저우는 혁명의 중심지였다. 약 800명에 달하는 조선의 젊은이들이 조국광복을 위해 만주나 러시아, 일본 등에서 왔으며, 그들은 이웃나라 혁명의 성공이 조국독립의 선결조건이라고
친일파 열전, 화제의 신간으로 독자들의 호응 높아
[초점] 친일파 열전, 화제의 신간으로 독자들의 호응 높아 • 방학진 기획실장 연구소 창립 30주 년 특별 기획으로 역 사만화 <친일파 열전> 이 나왔다. 지난해 8 월 <35년>(전 7권) 을 완간한 박시백 화 백이 정확히 1년 만 에 친일파만을 다룬 <친일파 열전>을 펴 낸 것이다. 올초 연구 소의 제안을 받은 박 시백 화백이 다른 작 업을 일시 중지하고 반년 동안 <친일파 열전> 작업에 집중한 결과이다. 박 화백은 1984년 고 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전두환 독재에 맞 서 1986년 건대 항쟁과 1988년 미문화원 점거 투쟁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이후 박재동 화백의 뒤를 이어 <한겨레>에서 만평 을 그렸고 2001년 퇴사 후 12년 동안 <조선왕조 실록> 전 20권 완간해 이름을 알렸다. 2020년에 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35년> 전7권을 완간하 여 제14회 임종국상(문화부문)을 수상하였다. 8월 9일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출판 보 고회에서 박시백 화백은 “친일파들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한 상황에서 ‘친일청산’이란 무엇일 까. 그들의 친일행위 자체를 제대로 알리는 것 이 이 시대의 친일청산이 아닐까 싶다. <친일 파 열전>이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이라 고 소회를 밝혔다. <친일파 열전>은 <35>년의 후속작 성격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4,389명 중 연구소 연구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해방 이후까지 크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각 분야의 친일파 153명의 행적을 담았다. 정식 출간 전 예약 판매 때부터 예스24,
근현대사기념관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특강 진행
[초점] 근현대사기념관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특강 진행 • 근현대사기념관 홍정희 학예연구원 2021년은 일제강점기 비밀결사단체인 광복회 총사령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의 순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근현대사기념관은 1910년대 전국 지부에 연락 거점을 마련하여 군자금을 조성하고 독립전쟁을 위해 독립군을 양성하였던 광복회와 총사령 박상진을 조명해보는 특별강좌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을 진행하였다. 특강은 8월 7일 토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에 근현대사기념관 2층 강의실에서 현장수강과 함께 온라인 수강을 위한 촬영을 병행하였다. 촬영된 강의영상은 8월 11일 박상진 의사 순국일에 맞춰 홈페이지에 게시하였다. 첫 번째 강의는 박상진 의사의 증손인 박중훈 고헌학당 이사장이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의열투쟁의 선구자 박상진의 삶과 사상”이란 주제로 강의하였다. 박상진 의사가 추구했던 독립운동의 방향은 단순한 의열투쟁이나 해외 독립운동단체의 지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독립전쟁론의 실질적인 실천으로 볼 수 있다. 박상진 의사는 광복회의 결성으로 그 뜻을 이루고자 하였지만 군자금 모집 과정에서 체포되어 대구감옥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비록 박상진 의사의 삶은 힘들고 고되었지만 그의 사상은 많은 독립운동가에게 영향을 준 고귀한 희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강의였다. 두 번째 강의 “1910년대 국내 최대 비밀단체 광복회와 총사령 박상진”은 충남대학교 이성우 교수가 강의하였다. 한말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이 독립전쟁론으로 결합되는 과정과 이러한 연합으로 조직된 1910년대 국내 최대 비밀 단체인 광복회와 총사령 박상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강의였다. 광복회의
식민지역사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후원회원 마당] 식민지역사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김선태 효창공원에서 백범묘소, 삼의사 묘소와 임정요원 묘소까지 둘러보면서 참배도 하고나자, 이제 우리 일행을 식민지역사박물관으로 안내하였다. 우리 역사의 아픈 매듭이자 가장 슬픈 역사가 되어야 할 일제침탈의 역사를 살피고 그 아픔을 새겨 민족의 앞날을 밝히자는 뜻의 박물관이지만, 참으로 슬픈 ‘식민지’라는 이름이 미리 그 아픔을 전달하고 있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은 대로변도 아닌 이곳 청파동 골목길 중에서 중앙이라 할 숙대앞길에서 다시 골목길로 들어서서도 한참이나 더 들어가야 하였다. 슬픈 이름의 박물관이 위치까지도 ‘이건 아닌데…’하는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멀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이란 간판을 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눈길을 사로잡은 동판에는 이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데 도움을 주신분들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모두 10개 안팎이나 걸려서 여기 이름을 올리지 못한 나에게 ‘부끄러워하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아서 위압감을 주었다. 박물관으로 들어서기 전에 입구 한 켠에 ‘반민특위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전시되어 있었다. 너무 뜻밖이어서 의아하였는데, 본래 있던 자리에 새로 호텔건물을 짓고 있는데, 그래도 다행스럽게 공사장에서 연락해주어서 여기에라도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며, 호텔이 완성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싶지만 과연 받아줄 것인지 의문이란다. 호텔이라면 외국 손님들이 드나들게 되고 거기엔 일본사람들도 있을 텐데 호텔 측에서 리스크를 안고 이 표지석을 세워주려 할는지 걱정이란다. 국가에서 지정하여 세우면 모르지만 학술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그럴만한 힘이 없어서 걱정이란다. “보훈처나 문광부 같은 정부기관에서
기증자료
[기증자료] 김종철 후원회원 7월 28일, 김종철 후원회원(대전지부)이 연구소를 방문해 소장자료 43점을 기증했다. 이번이 벌써 4회차 기증이다. 주요 자료는 초등지리, 보통학교 국사, 신편 고등조선어 및 한문독본 등 일제 강점기 교과서류, 호적, <인물계> 등 해방 후 잡지류와 토지관계문서 등이다. 7월 20일, 정주수 전 연구위원이 저서 포함해 법원판례공보, 법무여록, 일제강점기 창씨개명 해설, 일제강점기 호적, 기류 일제조사 연구 등 총 167권을 기증했다.
국치國恥 식민지조선 방방곡곡에 펄럭이는 일장기
소장자료 톺아보기 39 국치國恥 식민지조선 방방곡곡에 펄럭이는 일장기 • 강동민 자료팀장 조선군사령부 정문에 걸려 있는 일장기, <사단대항연습사진첩>, 1931 제19사단사령부 정문, <조선사진화보>, 1916 1880년 일본공사관이 개설되자 공사관 수비를 위해 한국에 첫발을 들여놓은 일본군은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한국주차군사령부를 설치했다. 1910 년 강제병합 후 조선주차군으로 재편한 후 독립운동을 집중적으로 탄압하였으며 1918년 한반도에 상주하는 병력을 배치하여 제19, 20사단을 통할 하는 조선군사령부가 만들어졌다. 기원 2600년 기념일에 겸이포에서 열린 축하행사에 동원되어 일장기를 흔들고 있는 수많은 조선인들, <광영록>, 1941 조선총독부에서 진행된 기원 2600년 기념식에 걸린 일장기, <광영록>, 1941 일장기가 새겨진 국기함 전라남도 함평남공립소학교에서 교내에 봉안전 (奉安殿)을 건립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 작한 것이다. 장기를 내건 삼척수비대 앞에서 양반유생에 대한 은사금 수여식이 이뤄 지고 있는 광경, <애뉴얼리포트>, 1911 일제는 한국을 강제 병합한 직후,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한 회유책의 하나로 친일귀족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은사금을 광범위하게 살포하였다. 경복궁 근정전에 걸린 일장기, <역사사진> 33호, 1915 경술국치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근정전 일장기’ 사진은 1915년 물산공진회 당시 촬영된 것이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2021년 8월, 도쿄 상공에 태극기가 펄럭였다.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2020 도쿄올림픽에서 선전한 우리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린 보상이었다. 100여 년 전 일본의 힘에 짓눌려 굴욕적인 강제조약을 맺고 대한제국의 하늘에 나부끼는 일장기를 떠올리면 믿기 어려운 광경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상반기 연구소 교원연수 <‘일제잔재’의 사례와 수업 활용> 실시
[초점] 상반기 연구소 교원연수 <‘일제잔재’의 사례와 수업 활용> 실시 •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초·중·고 현직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직무연수가 8.10~12일 사이에 민족문제연구소 강의장에서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진행되었다. 연구소는 2019년부터 경기도의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용역을 수행하며 방대한 보고서를 발간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기초로 하여 지역사회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의 교사용 학습 부교재 <우리 지역 일제잔재를 찾아라>를 출간하였다. 이번 연수는 교육현장에서 이런 결과물을 활용하고 역사의식의 제고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선생님들의 바람이 반영된 프로그램이었다. 역사 등 사회과 과목을 주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참여하여 일제잔재와 친일문제를 이론과 실제 양 측면에서 접근 분석하고 효과적인 교수법 수립에 도움을 주고자 기획된 것이다. 내용은 1강 일제잔재란 무엇인가?(조재곤서강대 교수), 2강 경기지역 일제잔재의 현황과 수업 활용(신대광 모락중학교 교사), 3강 서울 지역의 일제잔재-기념물(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4강 오욕의 역사, 금단의 땅 용산(현지 답사, 이순우), 5강 친일 관련 사료 검색과 디지털 아카이브 활용법(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6강 박물관 유물과 자료로 본 친일의 역사(김승은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이었다. 실습, 답사, 관람, 토론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현장 연수를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 방역단계가 4단계로 격상되어 모두 온라인 비대면 원격 강의로 진행하였다. 특히 용산지역 답사는 현장을 동영상으로 담아와 보여주고, 박물관 관람은 자료이미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방학중이라 3일간 15시간으로 이뤄진 강행군 강의였지만, 참가 선생님들은 3일 내내 엄청난 열의를 쏟아내며 호응해주었다. 선생님들의 반응은 “더 많은 동료 교사들이 함께하면 좋겠다”며, 연구소의 연수
일제패망기의 학교운동장이 고무공 천지로 변한 까닭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본인들이 ‘대동아전쟁’이라 부른 태평양전쟁을 도발했고 전쟁 초에는 일본군이 연전연승한다고 야단이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대동아전쟁이 아시아를 유럽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라고 했다. 조선과 만주와 대만을 저들의 가혹한 식민통치 아래 둔 채 도발한 대동아전쟁이 아시아인의 해방을 위한 전쟁이라 떠벌린 것이다. 하와이 진주만 기습작전에서 전사했다는 9명인가를 군신(軍神)으로 찬양한 노래를 배우기도 했던 것 같고, 일본군이 고무가 많이 생산되는 (당시는 말레이시아의 일부이던) 씽가포르를 함락한 기념으로 초등학생들에게 고무공을 하나씩 주어 학교 운동장이 온통 고무공 천지였고, 말레이시아 고무로 만들었다는 운동화가 학생들에게 지급되기도 했다. 이것은 1933년 경남 마산 태생인 강만길(姜萬吉, 고려대 명예교수) 선생이 남긴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 2010), 41쪽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가 기억하는 고무공 천지로 변한 학교운동장이 도대체 어떠한 상황으로 생겨난 것이었는지가 궁금하여 관련 자료 몇 가지를 뒤져보았더니, <매일신보> 1942년 7월 8일자에 수록된 「빛나는 남방 선물(南方 膳物), 금일(今日) 고무공 첫 배급(配給)」 제하의 기사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군인 아저씨, 참으로 고맙습니다. 대동아전쟁의 혁혁한 전과에 의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고무산지인 마레이 보르네오가 우리 세력 범위 안에 들어온 오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무를 제일 많이 가진 나라가 되었고 그 대신 동아의 천지에서 쫓겨난 미국과 영국은 지금 고무가 없어서 쩔쩔 매고 있는 형편이다. 관계 당국에서는 이와 같은 승리의 선물을 하루바삐 국내로 들여다가 총후에서 싸우고 있는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준비를 바삐 하고 있는데 위선 전첩축하기념
일제잔재 청산 조례를 앞장서 발의한 김영진 경남도의원
[인터뷰] 일제잔재 청산 조례를 앞장서 발의한 김영진 경남도의원 인터뷰 : 방학진 기획실장 전국적으로 친일 및 일제잔재 청산을 위한 지자체의 조례는 18개로 모두 3·1운동 100주년이었던 2019년 이후 제정되었다. 광역단체로는 서울, 부산, 광주, 울산, 경기, 경남, 전남, 충남, 충북, 제주이며 기초단체로는 경기 고양, 경남 김해이다. 이는 일제잔재 청산운동의 전국적 확산이라는 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례는 민간 차원을 넘어 지방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여 실제 사업을 집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이다. 또한 지방 의회의 논의 과정을 거쳐 제정되어 주민들의 공감대가 일정하게 반영되기 때문에 친일청산운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경남의 경우 2020년 12월 31일 「경상남도 일제잔재 청산 등에 관한 조례」 제정에 이어 2021년 6월 3일 「경상남도교육청 일제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었다. 지자체와 교육청 모두 관련 조례를 제정한 지역은 경남 외에도 서울, 광주, 충남, 전남, 제주가 있다. 이번 달 민족사랑에서는 「경상남도 일제잔재 청산 등에 관한 조례」와 「경상남도교육청 일제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를 모두 대표 발의하여 통과시킨 김영진 경남도의원(창원)을 소개한다. 김영진 의원은 2018년 창원 용지동·봉림동에 출마하여 창원 최고 득표율(58.1%)로 당선되었다. ● 도의원이 되시기 전에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해오셨는지요? ● 홍준표 경남도지사 시절, 경남의 학생 무상급식 중단과 진주의료원 강제폐쇄 등 지역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처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