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2020년 교사 직무연수 운영, <박물관에서 만나는 교과서 사료 읽기>
[초점] 2020년 교사 직무연수 운영, <박물관에서 만나는 교과서 사료 읽기> 식민지역사박물관은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직무연수, 〈박물관에서 만나는 교과서 사료읽기〉를 주관했다. 이번 연수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현대사 자료들 중에서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사료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편성됐다. 참여한 교사들은 모두 5차에 걸쳐 ‘니시키 에’, ‘일출신문조선쌍육’, ‘애국반회보’ 등 일제의 선전 자료와 친일, 강제동원으로 대표되는 과거사 청산 과제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10월 27일(화) 진행된 이번 연수의 첫 프로그램, 「니시키에로 본 청일전쟁과 지워진 역사」에서는 강효숙 원광대 교수가 강사로 나섰다. 니시키에(錦絵)는 근세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를 모태로 탄생한 회화 장르로, 18세기 후반부터 메이지 시기까지 유행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반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침략주의를 고취시키고 선전 미술로 활용되는 등 어두운 양면을 가진 예술이기도 하다. 강효숙 교수는 니시키에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에는 조선과 청나라를 ‘야만’으로 격하하고 제국주의적 침략을 본격화한 ‘청일전쟁’이 니시키에를 통해 다시금 조망됐다. 강의를 마친 후 수강생들은 박물관 상설전시실을 방문, 「조선안성도격전지도朝鮮安城渡激戰之圖」 등 청일전쟁 관련 니시키에를 관람했다. 아울러 박물관은 강연장 내에도 10여점의 니시키에를 별도 전시하여 수강생들의 학습과 체험을 도왔다. 이러한 실물 사료 체험에 대해 수강생들은 필요한 부분을 기록하고 때로는 설명을 청하기도 하며 높은 열의를 보였다. 박물관은 앞으로 이어질 연수에서도 사료를 실제로 감상하고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코로나 시대, 한일 시민들이 함께 외친 “야스쿠니 NO!”―야스쿠니문제 국제회의 온라인 화상회의로 열려
[초점] 코로나 시대, 한일 시민들이 함께 외친 “야스쿠니 NO!”―야스쿠니문제 국제회의 온라인 화상회의로 열려 10월 23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야스쿠니문제 국제회의가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되었다. 이 국제회의는 침략신사 야스쿠니의 본질을 폭로하고, 야스쿠니무단합사철폐소송의 현황을 점검하며, 국제사회에 야스쿠니문제의 해결을 호소하기 위해 2016년부터 매년 서울에서 열려왔는데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올해는 온라인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는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사무국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했으며, 동북아역사재단과 식민지역사박물관의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올해는 2006년부터 시작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15년을 맞이하여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15년, 성찰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에 함께 해온 야스쿠니합사철폐소송 원고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변호인단, 연구자, 활동가, 지원단, 시민 등이 참가하여 야스쿠니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가졌다. 특히 올해 국제회의를 준비하며 온라인 화상회의의 특징을 살려 인터넷 홍보를 통해 일반 참가자를 모집하였는데, 한국과 일본에서 30여 명의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참가하여 야스쿠니문제의 대중화라는 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 김영환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1부에서 이희자공동대표는 개회사를 통해 코로나 사태를 맞아 비록 직접 만 날 수는 없지만,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함께 싸워나갈 것을 강조하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모든 이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모임’ 사무국장은 스가 정권의 출범을 맞아 대일과거청산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전망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한일시민들의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야스쿠니 합사철폐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아사노 후미오(浅野史生), 오구치 아키히코(大口昭彦) 변호사
근현대사기념관, 독립전쟁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개최
[초점] 근현대사기념관, 독립전쟁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개최 10월 23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며, 강북구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가 후원하는 독립전쟁 선 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이 개최되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대한민국임시 정부의 독립전쟁선포 100주년이자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이 되는 올해 독립전쟁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에 부응하고자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3·1운동 이후 본격화한 만주 일대의 항일무장투쟁을 재조명하였다. 학술회의는 개회식을 시작으로 Ⅰ부에서 기조발제와 주제 발표 및 토론, Ⅱ부는 종합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임헌영 소장의 개회사와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환영사로 학술회의가 시작되었다.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학술회의 Ⅰ부는 심철기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실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기조발제를 맡은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는 ‘독립전쟁과 신흥무관학교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독립전쟁에서 신흥무관학교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 발표하였다. 제1주제 ‘1910년대 유교계의 독립운동과 신흥무관학교’는 서동일 국가보훈처 학예연구사가 발표하였다. 일제 강점 초기 만주에 정착한 유림들과 신흥무관학교의 관계를 중심으로 유교계의 독립운동기지 건설 참여에 대해 다루었다. 토론자로 나선 박성순 단국대학교 교수는 신흥무관학교와 유교계가 어느 정도로 관계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였다. 이어서 제2주제 ‘신흥무관학교 출신(자) 현황 분석과 독립운동’은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발표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구축한 신흥무관학교 인명 DB를 토대로 신흥무관학교 출신자들의 활동과 분화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토론자로 나선 숭실대학교 황민호교수는 신흥 무관학교와 관련이 있는 436명의 인물들을 직접관련 단체 9개와 간접관련 단체 5개로 구분하고 중요 인물들의 특징을 파악한 것은 엄청난 공력이
조선일보사 옥상 위에 올려놓은 비행기의 정체
[소장자료 톺아보기•21 ] 조선일보사 옥상 위에 올려놓은 비행기의 정체 <조선·동아 100년 기획전,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이 진행되는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의 쇼케이스에는 한 장의 빛바랜 옛 사진이 진열되어 있다. 비행기 한 대를 배경으로 삼고 3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체로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이들 가운데 두루마기 차림의 방응모(方應謨, 1884~?) 조선일보 사장이 앞줄에 자리한 것이 무엇보다도 퍼뜩 눈에 띈다. 그 주변에는 이훈구(李勳求) 부사장 겸 조광 주필을 비롯하여 함상훈(咸尙勳) 편집국장, 이상호(李相昊) 편집국차장, 송병휘(宋秉暉) 광고부장, 홍종인(洪鍾仁) 사회부장, 이석훈(李石薰) 조광 기자, 이갑섭(李甲燮) 정치부장, 함대훈(咸大勳) 조광 편집주임, 김기림(金起林) 학예부장 등의 모습이 확인되는데, 이로써 조선일보 사원들의 기념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함흥방송국에서 근무하던 이석훈이 조선일보사 발행 잡지인 <조광>으로 자리를 옮겨 일한 것이 1939년 5월에서 1940년 4월까지의 시기였으므로 이를 단서로 사진촬영시기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이 사진을 살펴보노라면 여기에 보이는 비행기가 자리한 곳이 도대체 어딘지가 자꾸 궁금해진다. 흔히 비행기가 등장하는 사진이라면 무슨 비행장 활주로나 격납고 앞일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을 알고 나면 대단히 의외의 공간이라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진촬영장소를 확인하는 첫 번째 단서는 비행기 뒤쪽에 솟아있는 건물이다. 일장기가 펄럭이고 싸이렌에다 송신탑 꼭대기가 보이는 곳은 1937년 11월 16일에 신축 이전된 경성소방서(京城消防署, 태평통 1정목 1번지)의 8층 높이에 달하는 망루 부분이다. 이곳의 길 건너편에 1935년 6월에 준공한 조선일보사(朝鮮日報社, 태평통 1정목 61번지)의
심판받을 김창룡 중장의 송공비(頌功碑)
[자료소개] 심판받을 김창룡 중장의 송공비(頌功碑) 신현복(申玄福) 이번 호에 소개하는 자료는 <실화(實話)> 1960년 12월호에 실린 「심판받을 김창룡 중장의 송공비」라는 기사이다. 일본군 헌병오장으로 소만국경지대에서 첩보활동에 종사했던 김창룡은 해방 후 남한으로 탈출해 국방경비대 정보장교로 두각을 나타냈고 이승만 정부 시절 ‘숙군과 타공’ 공작으로 이승만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중 1956년 1월 30일 출근길에 과거 부하였던 육군대령 허태영의 지시를 받은 특무부대 출신자들의 저격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일 육군중장으로 추서되고 2월 3일 최초의 국군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진 뒤 안양의 사설 묘역에 묻혔다. 묘비 앞면의 묘주명(墓主名)은 이승만 대통령이 썼으며, 묘갈명(墓碣銘)은 사학자 이병도가 지었다. 이 글은 4월혁명 이후 쓰여진 것이라 이승만의 실정(失政)과 특무대장 김창룡의 악행을 언급하며 이들에 대한 역사상의 평가를 다시 내릴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김창룡의 묘갈명과 관련하여 특기할 만한 사실은 김창룡 본인과 묘갈명을 지은 이병도, 묘지 조성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있던 정일권이 모두 친일파로 선정되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이 자료는 이순우 책임연구원이 제보해주었다. ― 편집자 역사의 심판은 내려지고 만다 “그 사람의 진가는 관뚜껑에 못을 박고 난 후라야 안다.”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관뚜껑에 못을 박고 난 뒤에도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러야만 비로소 인간의 공죄(功罪)가 밝혀지고 따라서 역사적인 평가가 내려지는 모양이다. 이게 말하자면 역사의 심판이라는 것인가 보다. 과거에도 그랬었지만 우리들은 지금 숱한 사람들이 이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을
단재 신채호 선생의 집터에 표석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삼청동(三淸洞)’ 집터의 실제 위치는 ‘팔판동(八判洞)’
[식민지 비망록 63] 단재 신채호 선생의 집터에 표석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삼청동(三淸洞)’ 집터의 실제 위치는 ‘팔판동(八判洞)’ 이순우 책임연구원 <조선총독부관보> 1910년 11월 19일자에 수록된 ‘경무총감부 고시 제72호’에는 안녕질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발매금지 및 압수대상 처분이 이뤄진 출판물의 목록에 신채호 선생의 저술인 『을지문덕(乙支文德)』과 『이태리건국삼걸전(利太利建國三傑傳)』이 포함된 것이 눈에 띈다. 김가진, 김경천, 김옥균, 김창숙, 남궁억, 노백린, 민영환, 백용성, 손병희, 송진우, 심훈, 여운형, 이동녕, 이상재, 이준, 이회영 6형제, 지석영, 지청천, 현상윤 …… . 여기에 나열한 명단은 현재 서울시에서 해당 인물의 생가(生家) 또는 집터에 표석을 설치한 19군데 사례들의 목록이다. 여기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 사장인 영국인 어네스트 베델(Ernest T. Bethell, 裵說)과 김수영, 박인환, 전영택, 현진건 등 문인(文人)들의 경우를 다 합치더라도이 숫자는 겨우 스물 몇 건 정도에 머문다. 우리 근현대사를 통틀어 그 집터를 기억하고 업적을 기릴만한 훌륭한 인물이 고작 이 정도뿐일까 마는 행적평가, 지명도, 형평성 등과 같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역사인물들에 대한 표석의 설치를 무작정 늘리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런데 설령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업적과 상당한 역사 문화적인 평가를 지닌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해 당 인물의 집터에 표석을 세울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 집터의 위치가 어디인지 도무지 확인을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 선생의 경우가 딱 그러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3월
4월혁명 60주년 기념 특별전 – 잔인한 사월 위대한 혁명
[지상중계] 4월혁명 60주년 기념 특별전 – 잔인한 사월 위대한 혁명 올해는 4월혁명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근현대사기념관과 민족문제연구소는 4월혁명이 일어난 원인과 전개, 5·16쿠데타로 인한 좌절, 4월혁명이 한국문학과 예술에 미친 영향 등 4월혁명을 다각적으로 재조명하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원래 4월 19일에 개막하려 했으나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9월 25일에야 겨우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전시회 구성은 제1부 우상의 시대 : ‘국부’가 된 독재자, 제2부 구호로 보는 사월혁명, 제3부 사월 그날 이후, 제4부 문학과 예술로 보는 4·19로 이루어져 있으며 8개의 패널과 이승만 관련 〈대한뉴스〉 영상, 신동엽 시인, 여중생이 죽기 전 남긴 편지 등 4개 영상, 그리고 4월혁명 관련 서적과 당시 격문, 음반, 영화포스터 등 다양한 실물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전시 자료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소장한 자료가 다수이나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아이엠피터 tv, 연세대학교박물관,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 한상언영화연구소로부터 귀중한 자료의 전시 협찬을 받았다. ‘잔인한 사월, 위대한 혁명’ 전시회 지상중계에서는 각 주제별 전시회 현장 사진과 주요 실물 자료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대통령에 리승만 박사 부통령에 이기붕 선생을 추대하며> 자유당, 1956.4. 근현대사기념관 소장 대통령후보 이승만박사 선거사무장 이재학, 부통령후보 이기붕선생 선거사무장 박영출, 자유당중앙위원 일동 명의의 자유당 제3대 정부통령선거 후보 추대 홍보물이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장기집권의 길을 연 자유당은 1956년 3월 5일 전당대회를 열고 이승만과 이기붕을 5·15 정부통령 선거 후보로 지명했다. ① <4·19>
‘가슴 뜨거워지는 한순간이 중요하다’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 개발자들
[인터뷰] ‘가슴 뜨거워지는 한순간이 중요하다’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 개발자들 인터뷰 김수빈 회원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의 개발자인 고용진(왼쪽)과 안겨레(오른쪽) 100년 전, 독립운동에 뛰어든 청년들은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들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목표도 가족을 지켜 내겠다는 책임감도 제국주의와 반민족행위자를 몰아내고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사명감도 봉건적 속박에서 억압받는 성을 해방하겠다는 처절함도 있었겠지만, 이런 생각들은 모두 저마다 ‘가슴 뜨거워지는 한 순간’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100년 후,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가슴엔 과연 어떤 ‘한순간’이자리 잡고 있을까? 그 뜨거움의 원천은 각기 다르겠지만, 그 한순간을 만났고, 이에 두려움도 무릅쓰고 한 발짝 내디딘 청년들이 있다.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을 개발한 고용성 개발자와 안겨레 개발자가 바로 그들이다. 10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 ‘난세의 영웅’ 개발자 두 분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문: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겨레 : 안녕하세요, 한림대 법학과 재학 중인 안겨레입니다. 한림대학교 내 창업교육센터에서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고용성 : 안녕하세요, 한림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고용성입니다. ‘난세의 영웅’ 개발과 저희 회사 경영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문 :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은 어떤 게임인가요? 안겨레 : ‘난세의 영웅’은 선사시대부터 건국 이후까지의 역사를 다룬 한국사 RPG입니다. 주인공은 3명이고, 시대가 진행될수록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저희 게임의 주요 콘텐츠 중에 하나가 캐릭터가 돌아다니며 NPC에게 말을 거는 방식인데요, NPC와의
기증자료
• 9월 3일 미노시마 마사루(箕島勝) 씨가 일본평화위원회에서 발행한 <평화운동>(1970년 1월호), <평화운동입문> (1964년), ‘용서하지 마라! 일미(日米)의 아시아 침략! 일한회담 분쇄’라고 적힌 피켓을 든 한일회담 반대 행진대의 모습이 담긴 사진, <류큐신문>(1975년 10월 4일자)등 총 13점을 기증했다. <류큐신문>에는 당시 도쿄 한국연구원 원장이던 최서면 씨가 「민비사건」의 전체상을 알 수 있는 새 자료를 발견해, 일본의 계획적인 범죄가 명확히 드러났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 9월 14일 가스야 켄이치(糟谷憲一) 씨가 올해 8월 30일에 출판한 저서 <조선반도를 일본이 영토로 한 시대> 기증했다. • 9월 29일 다니구치 요코(谷口洋子) 씨가 6월에 이어 강제동원, 한일교류 등의 기사가 실린 <적기>, <신부인>, <주간 금요일> 등의 자료 30점과 후원금 100만 엔을 기부했다. 특히 <주간 금요일>(2020년 8월 21일자)에는 올해 3월 도쿄에 개설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역사부정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 오카베 토시오(岡部壽郞) 씨가 9월에 발행된 <도쿄신문> 기사 등 총 20점을 스캔하여 데이터로 기증했다. 이번 기증받은 기사에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희생자 위령을 위한 법요, 추도식 등에 관한 특집 등이 있다. 올해 추도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소규모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 김진희 학예실 연구원 • 9월 23일 김충한 씨가 연구소에 소장 자료를 기증했다. 기증 자료는 일제강점기 ‘조선어연구회’에서 발행하고 ‘조선어연구회편집부’에서 집필한 <조선문조선어강의록> 제2회의 일부로 「日用朝鮮語六千語集」과 「常用漢字音別表」를 편철한 것이다. 본 자료를 발행한 ‘조선어연구회’는 ‘조선어학회’의 전신이 아니라 조선총독부가 조선사회 내에 형성된 교육
제13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 개최
[초점] 제13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 개최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이 주관하는 제13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이 10월 16일 금요일 오후 7시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열렸다. 강만길연구지원금은 신진 학자들의 도전적 탐구정신을 격려하고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2007년 제정되었다. 수여식은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지수걸 공주대 교수의 수령자 발표, 지원금 수여,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의 축사, 박윤재 경희대 교수의 격려사, 수령자 조수룡 박사의 소감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 심사대상은 2018년 8월과 2019년 2월에 수여된 21편의 한국근현대사 관련 박사학위 논문으로 3월 14일 예비심사를 거쳐 4월 23일 심사위원회에서 조수룡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의 「전후 북한의 사회주의 이행과 ‘자력갱생’ 경제의 형성」이 최종 선정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지수걸 공주대 교수를 비롯하여 이태훈 연세대 교수, 정용욱 서울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김윤희 전주대 교수, 이상록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정용서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학예실장, 조형열 동아대 교수가 예비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위원회는, 조수룡 박사의 「전후 북한의 사회주의 이행과 ‘자력갱생’ 경제의 형성」이 정치사, 경제사, 국제관계사를 넘나들며 1950년대 북한의 전후복구 및 사회주의 이행 전략이 ‘자력갱생’ 경제로 귀결되는 과정을 밝혀내어 북한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그 선정이유를 밝혔다. 특히 러시아의 방대한 북소관계 자료를 전면적으로 분석하여 북한사회의 내적 발전과정을 객관화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체제의 변화과정을 설명한 대목은 이 논문의 장점을 가장 잘 보여준 지점이라고 평가했다. • 김혜영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