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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식민지 비망록 17, 친일파 기념공간으로 변질된 베델의 집터 – 홍난파 가옥에 가려진 항일의 역사

2016년 9월 26일 5219

이순우 책임연구원 서울에서 가장 먼저 봄꽃이 피는 곳이 어딘지를 묻는다면 대개는 말문이 막히기 십상이지만, 그 정답은 송월동 언덕마루에 있는 서울기상관측소이다. 이곳에는 관측표준목(觀測標準木)이라는 꽃나무들이 있어서 이를 기준으로 개화 여부를 가늠하는 탓이다. 따라서 우리 집 마당에 또는 근린체육공원에 개나리가 먼저 피었네 마네 하더라도 그것이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첫눈이 내리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우리 동네에 아무리 함박눈이 내렸더라도 이곳 서울기상관측소에 싸라기눈조차 오지 않았다면 그날 서울지역의 강설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서울기상관측소가 있는 곳을 ‘송월동’이라고 지칭하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 자리는 서울도성이 지나는 구간으로 경희궁(신문로 2가) 구역도 함께 걸쳐있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11월 1일에 경성측후소(京城測候所)가 서울도성을 헐어낸 자리에 신축 이전하였고, 해방 이후에도 중앙관상대(1948년 8월), 중앙기상대(1982년 1월), 기상청(1990년 12월) 시절을 거쳐 기상청이 신대방동 보라매공원 신축청사로 이전(1998년 12월)한 뒤로도 옛 측후소 건물은 그대로 남아 서울기상관측소로 사용되고 있는 상태이다. <일본지리풍속대계> 제17권(1930)에 수록된 송월동 월암바위와 홍파동 베델 집터 주변의 옛 전경 사진 원래 송월동(松月洞)이라는 것도 일제가 1914년에 송정동(松亭洞)과 월암동(月巖洞)을 합치면서 어거지로 만들어낸 명칭이다. 일찍이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문집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돈의문밖 서성(西城) 아래에 바위가 있어 깜깜한 밤에도 오히려 밝은 빛이 난다”고 적었는데, 이것이 월암(月巖) 즉, ‘달바위’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는 멀리서 봐도 매우 밝은 느낌이 나는 암질로 구성된 바위들이 두루 눈에 띄며, 특히 ‘월암동(月巖洞)’이라고 새긴 바위글씨(서울시 문화재자료 제60호, 2014년 6월 26일 지정)도

[기고] 친일문학가들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2016년 11월 28일 2716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발간 5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이 수상・제정되는 근원을 짚은 홍기돈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에도 게재됐다. -엮은이 친일문학가들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친일문학론』발간 50주년, 우리 시대의 자화상 홍기돈 가톨릭대학교 교수, 문학비평가 지난 해 재일교포 작가 김석범의 장편소설 『화산도』(보고사)가 완역됐다. 2백자 원고지 3만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소설을 단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해방 후 친일파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해 권력을 재장악하는 데 성공했으며, 제주의 4·3은 그 과정에서 왜곡되고 이용당했다.” 이러한 내용의 소설이니, 〈화산도〉에 친일파의 면면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중 춘원 이광수의 창씨개명에 관한 부분을 여기 소개한다. “2천6백 년 전에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즉위한 곳이 나라(奈良)의 가시하라(橿原)라는 곳이다. 그곳에 가구야마(香久山)라는 산이 있는데, 자신은 유서 깊은 이 산의 이름을 따서 성을 ‘가야마(香山)’라고 하고, ‘광수(光洙)’의 ‘광(光)’ 자를 따고, ‘수(洙)’는 ‘내지(內地)’ 식으로 하면 ‘랑(郞)’이 되기 때문에,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했다. 송구스럽지만 읽는 법도 천황폐하처럼 일본식 이름을 갖는 것이 조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고, 자신도 자신의 자손도 천황폐하의 일부로 살아가는 길” – 김석범의 『화산도』 12권 248쪽 ″우리는 반드시 20년 후 돌아온다” 해방 이후,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미국과 손잡은 그들은 1949년 6월 6일 민족주의자들로 결성된 반민특위를 ‘역청산’하기에 이른다. 반민특위 해체 20일 후 경교장(2013년 3월 복원, 강북삼성병원 내 위치-편집자 주)에서 일어난 김구 암살

‘파이팅’은 일제잔재인가?

2016년 11월 22일 18127

지금의 국립국어원이 ‘국립국어연구원’으로 불리던 시절인 지난 2004년 9월, 일상용어의 하나로 깊이 자리매김한 ‘파이팅(화이팅)’에 대한 우리말 대체어를 공모한 결과 ‘아자’라는 말을 사용할 것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한때나마 여러 매체를 통해 ‘아자 아자’라는 표현이 크게 부각되기도 했으나, 그나마도 최근에 와서는 ‘아자 아자 파이팅’의 형태로 회귀하는 바람에 이 시도는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한번 굳어진 언어습성을 고치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한다. 이 당시 ‘파이팅’이라는 말을 고치려고 했던 것은 그것이 당최 국적불명의 용어였던 탓이었다. 영어권에서는 대개 응원구호로 “고 포 잇(Go for it!)”이라거나 “킵 잇 업(Keep it up!)” 정도의 말을 사용하며, 일본과 같은 경우에도 “간바레(がんばれ)” 또는 기껏 “화이토(ファイト; Fight)”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알려진다. 따라서 “파이팅(Fighting!)”이라고 하는 경우에는 비록 영어식 표현이기는 하나 그 어느 나라에서도 그 뜻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이 용어가 일제잔재라는 얘기도 종종 제기된 바 있었다. 이를 테면 카미카제특공대가 최후 출격을 앞두고 외치는 구호가 바로 ‘파이팅’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뜻도 모르고 함부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사실여부에 대한 고증이 미흡하여 정말 그러했던 것인지를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그렇다면 이 파이팅이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그것이 일제잔재와 결부된 결과물이라는 지적은 과연 사실일까? 이에 관한 흔적을 뒤져보면 독립신문 영문판인 <디 인디펜던트(The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통한 자료 기증 잇달아

2016년 11월 22일 1489

심정섭 지도위원 제47차 자료기증, 도서류 총 23점 보내와 9월 23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47번째로 자료를 정리해 보내왔다. <한국신문, 잡지총목록>(1966), <이조오백년사>(1914), <유네스코한국총람>(1957) 등 총 23권의 도서이다. 소중한 자료를 기증해 주신 심정섭 위원께 감사드린다. 오쿠무라 리쓰코(奥村律子)씨, 세번째 자료 기증 오쿠무라 씨가 <조선의 풍모朝鮮の風貌> 1점을 기증했다. 이번이 세 번째 자료기증이다. 이 책은 1940년 조선총독부철도국에서 발행한 것으로, 경성 부여 경주 등 주요관광지를 소개하고 있다. 일제는 효율적인 식민통치, 원활한 자원 수탈 그리고 대륙침략을 위한 신속한 운송수단의 확보를 목적으로 철도를 계속 확장해 나갔다. 1940년 철도 지도와 함께 일제가 장악한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시모지마 요시스케(下嶌義輔)씨, 강제징용의 한 서린 침목 기증 일본 기후현 ‘일제하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의 회원인 시모지마 요시스케 씨가 침목(枕木) 1점을 기증했다. 침목은 비행기 엔진을 제작하는 나고야 미쓰비시 제4제작소를 이전하기 위해 만든 구구리(久久利) 남산 지하공장 터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에는 약 2,000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동원 되었고, 1944년 12월 하순부터 공사에 투입되었다. 지난 10월 23일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씨가 연구소를 방문해 전달해주었다. 하라다 히로코(原田廣子)씨, 재조(在朝) 일본인 자료 기증 10월 11일 도쿄에서 열린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집회에서 고려박물관의 하라다 교코 이사장이 친척인 하라다 히로코씨의 소장자료를 기증해주었다. 대구공립고등여학교 교사였던 일본인 가키나가 켄이치(垣永憲一)의 일본 귀환 증명서, 이력서, 귀환 전 한국인에게 토지를 매도한 계약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고려박물관은

저항에서 친일로 – 일진회 회장 이용구

2016년 11월 22일 13875

열전 친일파·9 김덕영 선임연구원 “우리는 참 바보짓을 했어요. 혹시 처음부터 속았던 것은 아닐까요.” 1912년 일본 스마(須磨)에서 일진회(一進會) 회장 이용구(李容九)는 병문안을 온 일본의 우익낭인 우치다 료헤이(內田良平)에게 이 말을 남기고, 얼마 후 병환으로 사망합니다. 1905년 일본에 외교권 위임을 청원한 「일진회 선언서」를 1909년 「한일합방청원서」를 주도한 친일파의 거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치고는 회한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이용구는 186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명(初名)은 우필(愚弼)이었으나 후에 상옥(祥玉)으로 개명했고, 청일전쟁 이후에 다시 만식(萬植)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용구는 1904년 진보회(進步會) 결성 직전에 개명한 이름입니다. 동학에 투신하다 이용구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때 학문에 뜻을 두었지만 13세에 아버지를 여의였으니, 당연히 형편이 허락하질 않았습니다. 농사로 근근이 삶을 이어나가던 이용구는 동학(東學)을 만나게 됩니다. 1890년 그가 23살 때의 일입니다. 이런 그에게 동학은 희망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열심히 일했음에도 논리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고단한 삶을 사는 이에게 종교는 그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동학은 조선말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인해 불안한 사회상 속에서 태동한 종교였습니다. 동학이라는 이름도 서교(西敎) 즉 천주교를 대신해 동쪽 나라인 조선의 도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으로,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이 대단히 강한 종교였습니다. 초대 교주 최제우(崔濟愚)가 내세운 보국안민(輔國安民), 광제창생(廣濟蒼生)에 이어 이용구가 입도할 당시인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은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한다(事人如天)”를 비롯해 “인간뿐 아니라 모든 자연의 산천초목에 이르기까지 한울이 내재해 있다(物物天事事天)” 등 범천론적인

일본 히로시마에서 청각 장애인 분들을 대신하여 자료를 기증합니다

2016년 11월 22일 1259

기타무라 메구미 회원 / 수화 통역자 야스쿠니 신사와 ‘황군’의 사진, 도고신사 엽서와 종군화가가 그린 엽서, 점령지 한글 가쇄 우표와 편지, 칙유집(勅諭集), 성칙초(聖勅抄), ‘천황’ 사진 저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수화 통역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 수화는 현대 수화에 비해 시대적으로 낡은 수화입니다. 연세가 많으신 청각 장애인 분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족 분들과도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청각 장애인 분들 집에서 청소(물품 정리)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냥 청소를 하거나 창고에서 살림 도구를 다루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편지나 서적 등을 정리해드립니다. 제 취미가 독서인 것을 아시고 옛날 서적을 물려주시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 한일협정 50년을 맞이하여 한일 시민이 공동으로 추진한 ‘한일관계 재설정 캠페인’에 이어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관계로 장애인 분들 집에서 청소할 때 “식민지 역사에 관한 물품이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식민지 역사와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이라고 하시면서 저에게 자료를 맡기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와 황군의 사진’을 소장하셨던 분과 저는 그 분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청각 장애인으로 일본어를 할 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발음이 좋다고 칭찬 받았다”면서 “귀가 안 들려서 전쟁터에 나갈 수 없는 비국민이라는 말을 듣고 억울해서 지원했어. 전쟁 중에 총알받이로 이용당하고 중국에서 포로가 되어 군사재판을 받았지만 재판에서는 (일본어의) 수화 통역이 있어서 놀랐어. 귀가 안 들려서 좋을 대로 이용당했을

대중 속에 다시 울려퍼진 독립군가

2016년 11월 22일 1719

사진으로 보는 연구소 소사·18 안익태가 작곡한 지금의 애국가가 불리기 전에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선율에 맞춰 애국가를 불렀다. 올드 랭 사인은 우리들에게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로 시작하는 송년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이 국권 회복을 꿈꾸며 노래했던 이 애국가는 작년 가수 김장훈 씨가 세월호 집회 현장에서 자주 부르면서 청년들에게도 조금은 익숙한 곡이 되었다. 그런데 김장훈 씨가 부른 그 애국가의 음원이 2005년 우리 연구소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005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강만길, 이해찬)’를 출범시켜 대대적으로 기념사업을 벌였다. 연구소는 ‘일제문화잔재 바로잡기’ 등 사업에 적극 동참했으며 그 밖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위원회에 제공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독립군가 리메이크였다. 즉 일제강점기에 독립군들이 불렀던 군가를 신세대풍으로 편곡해 보급하자는 취지로 당초 국방부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려 했으나 연구소를 찾아온 국가보훈처 직원이 적극적으로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혀 결국 ‘독립군가 편곡․제작 보급 및 공연’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보훈처가 주관하게 되었다. 실제 가수 섭외와 음반 제작은 연구소 회원인 에그뮤직 박경훈 대표가 맡았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음반이 바로 〈광복60년 다시 부르는 노래〉다. 이 앨범에는 ‘한반도가’ ‘독립군가’ ‘압록강행진곡’ 등 13곡이 락 발라드 힙합 팝페라 퓨전국악 등으로 편곡돼 수록됐으며, 장사익 김장훈 안치환 크라잉넛 하하 노브레인 조관우 서문탁 BMK 등 유명 가수들이

각 지부, 고 백남기 농민 빈소 지킴이 나서

2016년 11월 22일 1195

작년 11월 14일 민중 총궐기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317일 간의 투병 끝에 지난 9월 25일 운명을 달리한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 이후 전국적으로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살인정권 규탄 투쟁본부’가 조직되고 자발적으로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연구소 각 지부, 지회는 투쟁본부에 적극 참여해 분향소를 운영하는 등 많은 활동을 벌였다. 분향소 운영에 대전지부(시청 북문 앞), 광주지부(옛 전남도청 광장), 경기북부지부(의정부역 동부광장), 성남광주지부(옛 시청 앞), 부천지부(마루 광장), 울산지부(삼산 롯데백화점 앞), 천안지회(천안터미널 앞), 아산지회(온양온천역 광장), 논산지회(논산오거리 소공원), 포천지회(포천자원봉사센터 앞), 세종지회(준)(정부청사 시외버스터미널 옆) 등이 참여했다. 연구소는 경찰의 무리한 부검에 대비해 밤새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 응급 보온포 500개를 백남기투쟁본부에 전달했으며, 상근자들도 10월 1일부터 매주 범국민대회에 참여하는 한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지킴이로 활동했다. ∷ 방학진 기획실장

사이비 정권의 사이비 교과서 즉각 폐기해야 국정화저지넷 ‘역사교과서 국정화 무효선언’

2016년 11월 22일 1012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사무국 민족문제연구소, 이하 국정화저지넷)는 지난 11월 2일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무효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박정희 출생 100주년에 맞춰 발간되는 국정교과서를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교과서”라고 규정하고 “역사교육의 공공성을 저해하는 국정교과서 정책을 당장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국정화저지넷은 박근혜 정부가 작년 11월 3일 역사 교과서 국정제를 확정 고시한지 만 1년 되었지만 그동안 국정교과서와 관련해서는 오로지 ‘복면집필’과 ‘비밀주의’로 일관했던 교육부가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 박근혜표 국정교과서를 28일에 공개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은 대국민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한상권 국정화저지넷 상임대표는 “건국절 사관이 반영된 국정교과서는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면서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고 정당성도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족사교과서는 즉각 폐기돼야한다”고 말했다. 국정화저지넷은 작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자리에서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을 때 “교과서를 무속 신앙의 주술서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발언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최순실의 국정 농단 과정을 보면서 이제 전후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가운데 국정교과서를 추진했던 청와대 핵심참모가 최순실 씨의 최측근 차은택 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인 것으로 드러나 “국정교과서 추진에도 최 씨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고유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수석부회장은 “대통령이 온 국민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하는 시국을 만들고 역사에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 국정교과서로 자랑스러운 역사를

야스쿠니 문제의 UN 인권기구 제소를 위한 국제회의 열려

2016년 11월 22일 1297

지난 10월 24일 국회에서는 침략신사 야스쿠니의 문제를 보편적인 국제 인권의 시점에서 조명하는 국제회의가 열렸다. ‘국제인권의 시점에서 야스쿠니를 보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국제회의는 야스쿠니 문제를 UN 인권기구에 제소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로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와 국회 강창일 의원이 주최하고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와 연구소 공동주관으로 진행되었다. 강창일 의원, 이해학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 공동대표, 기무라 요고(木村庸五) 아베수상야스쿠니참배위헌소송 변호단장의 개회사에 이어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을 제안하고 이끌어온 서승 리츠메이칸대학 교수가 ‘국제인권의 시각에서 야스쿠니를 본다’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였다. 이어서 한일 양국의 야스쿠니문제 전문가들이 주제발표를 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에다 아키라(前田朗) 도쿄조형대학 교수-‘금이 간 아름다운 나라, 이행기 정의의 관점에서 본 식민지주의’,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근현대연구실장-‘야스쿠니신사 문제의 국제화를 위한 제언’, 아사노 후미오(浅野文生) 야스쿠니합사철회소송변호단 변호사-‘국제인권의 시점에서 본 야스쿠니 소송’, 즈시 미노루(辻子実)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촛불행동 공동대표-‘야스쿠니반대운동의 현황과 과제,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일본국헌법 개정과 야스쿠니’, 김영환 야스쿠니반대 공동행동한국위원회 사무국장-‘한국의 야스쿠니반대운동, 그 성과와 과제’ 등 모두 6명의 발표 뒤에 종합토론이 이루어졌다. 이번 회의에는 야스쿠니에 가족이 합사되어 있는 한국의 유족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연구자, 변호사, 활동가 등 80여 명이 참가하였다. 참가자들은 이번 회의를 통해 야스쿠니 문제를 UN 인권기구에 제소하기 위한 절차를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국제사회에 보다 설득력 있게 호소할 수있는 논리의 개발을 위해 관련 연구를 심화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야스쿠니에 부당하게 합사된 가족의 이름을 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