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보도자료] 골든사도에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노동 역사 전시 및 명부 공개 요청서 시민 의견 발송
[다운로드] [보도자료] l [요청서] l [요청서(일본어)] 사도광산 운영주체 골든사도에 조선인 강제동원 전시 및 ‘반도조선인명부’ 공개 요청서 시민 의견 발송 □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11월 7일 사도광산의 운영주체인 골든사도(미쓰비시 자회사)에 조선인 강제동원의 전시와 ‘반도조선인 명부’의 공개를 요청하는 서한을 메일로 발송했습니다. □ 지난 7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에 1,5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동원 되어 강제노동을 당한 현장입니다. 그러나 골든사도가 운영하는 사도광산의 전시에는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골든사도는 조선인 강제동원의 명백한 증거인 ‘반도노무자명부’의 공개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2015년 메이지산업혁명유산 등재 당시부터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에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해 왔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11월 7일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고 ‘반도노무자명부’의 공개를 요구하는 시민 50명의 의견을 골든사도에 전달한 데 이어, 11월 20일 52명의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앞으로도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정기적으로 골든사도에 발송할 예정입니다.
[보도자료] 제18회 ‘임종국상’ 시상식
[다운로드] ☞ [보도자료] l [자료집] 제18회 ‘임종국상’ 시상식 학술부문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 사회부문 민병래 자유기고가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임종국 선생(1929∼1989)은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고 있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하여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으며, 그 외에도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가 제정한 〈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실천적 삶을 오늘의 현실 속에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 200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나, 2008년과 2009년도는 사무국을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주력해야 했던 사정으로 시상이 잠시 중지되었으며, 올해가 18회째이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10건, 사회·언론 부문 5건 등 총 15건이 올라왔으며, 지난 9월 27일 열린 예심에서 각 부문 3건씩 6건을 후보자로 압축해 본심에 회부하였다. 10월 16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열린 심사위원회는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를, 사회부문에 자유기고가 민병래 선생을 제18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최종 결정하였다.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해 도면회 대전대 교수, 이지원 대림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는, 이데올로기적 억압과 국가폭력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관한
[보도자료] 김원봉 장군 재조명 학술회의 열려
[다운로드] ☞ [보도자료] l [자료집] 김원봉 장군 재조명 학술회의 열려 주최 : 김원봉과 함께 후원 : 민족문제연구소 ·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때 : 11월 8일(금) 오후 2시 곳 :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 약산 김원봉 장군(1898~1958?)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기념사업회 ‘약산 김원봉과 함께(상임대표 김언호)’는 11월 8일(금) 오후 2시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김원봉 장군을 재조명하는 〈약산 김원봉을 다시 본다〉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약산은 1919년 스물한 살의 나이로 의열단을 조직한 뒤 단장을 맡아 의열투쟁을 이끌었으며, 조선민족혁명당 총서기, 조선의용대 대장, 한국광복군 부사령,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비타협적 투쟁을 온몸으로 실천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광복 후에는 ‘신조선 건설’을 위해 앞장선 혁명가로 백범 김구와 쌍벽을 이룬 민족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고착화하면서 자주적인 통일민족국가를 수립하려는 독립운동가들의 꿈은 좌절되고 분단이라는 비극적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김원봉은 친일파가 득세한 남한에서 쫓겨나듯 월북하여 북한의 고위직도 역임했지만 결국은 숙청당해 ‘김원봉’이라는 이름 석 자는 남북 양쪽에서 금기어가 되고 말았다. 이번 학술회의는 남과 북에서 모두 외면당한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독립운동의 거목 김원봉의 생애와 활동을 재조명하여 김원봉 장군의 위상을 바로 세움으로써 잃어버린 독립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제대로 채워놓으려 하는 것이다. 제1주제인 〈약산 김원봉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및 한국광복군〉은 염인호 서울시립대 교수가 발제하고 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이 토론을 맡는다. 제2주제인 〈김원봉의 출신 배경과 초기 이력〉은 최필숙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부소장이 발제하고 김영범
[기자회견]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6년 강제집행 최종 판결 촉구 기자회견
☞ 다운로드: [기자회견문] “제2의 사법농단! 일본제철 매각명령 하루 빨리 판결하라!”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벌써 6년, 피해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추가소송 하급심 판결에 대한 강제집행 계획 발표 2018년 10월 30일은 “일본기업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역사적 대법원 판결이 난 날입니다. 그런데 6년이 다 되도록 판결 이행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대법원에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과 관련해 ▲일본제철이 보유한 피엔알(PNR) 주식(이춘식, 2023마5044) 등 일본 피고 기업 국내 자산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 상고심 사건이 계류돼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판결이 지연되는 이유는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고, 판결에 개입해 배상을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2의 사법농단입니다. 2012년 5월 24일 처음 강제동원 피해자 승소 판결이 나고 당시 박근혜 정부는 사법농단으로 이 판결을 뒤집으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승소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2022.7.26. 외교부가 일본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해 “외교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대법원에 소위 ‘의견서’를 보내 판결에 개입한 이후, 현재 상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2018년 10월 30일, 승소 판결이 나던 날 “나까지 네 사람인데 혼자 판결을 받은게 많이 아프고 눈물도 난다”고 했던 강제동원 피해자 원고 이춘식 할아버지는 올해로 벌써 104세입니다. 더 이상 피해자들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더 이상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훼손시키며 일본기업의
[기자회견] 주권·국익 포기! 윤석열 정권 대일 굴욕외교 규탄 기자회견 전문
☞ 다운로드: [기자회견문] 더불어민주당 역사와정의특별위원회,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는 윤석열 정권의 대일 굴욕외교를 규탄하며, 정부가 초래한 대한민국의 주권과 국익 훼손에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 우리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천명하고 있다. 구한말 의병운동으로부터 시작한 독립운동이 3.1운동을 거치며 국민주권을 찾는 치열한 항전이 됐고, 그 독립정신은 곧 대한민국의 뿌리가 된 것이다. 헌법 수호의 의무가 있는 대통령은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키고, 바로 세워야 함이 당연하다. 윤석열 정권은 이 책무를 잊고, 계속되는 뉴라이트 인사 참사와 굴욕외교로 우리 국민이 가진 자긍심마저 짓밟고 있다. 지난해 3월 우리 정부는 이미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피해자 중심 접근 방식’을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유엔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9일에는 유엔 공식 석상에서 일본 대표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근거 없다’며 부인했음에도 한국 대표는 침묵한 사실이 드러났다. 각축전이 벌어지는 국제무대에서 우리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가히 참담할 정도다. 우리 외교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유로 들었다. 한일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서로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비난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이다. 작년 9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미흡하며 ‘2015 한일합의’ 개정 권고를 할 당시에도 한국 정부는 ‘2015 한일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 인정”한다는 둥 망언을 일삼았다.
[보도자료]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 기획 학술토론회 〈위기의 동아시아, 어제와 오늘〉 개최
☞ 다운로드: [보도자료] l [자료집]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 기획 〈위기의 동아시아, 어제와 오늘〉 학술토론회 열려 주최 : 민족문제연구소 · 서울특별시 강북구 주관 : 근현대사기념관 후원 : 식민지역사박물관 때 : 10월 24일(목) 10:00~17:00 곳 : 서울역사박물관 아주개홀 민족문제연구소는 동학농민혁명 ·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지난 8월 2일부터 기획전시 〈한반도 운명을 바꾼 그들의 전쟁〉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10월 16일부터는 〈지도에 새긴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을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고 있다. 이어 10월 24일에는 서울역사박물관 아주개홀에서 올 한 해 기획사업을 결산하는 학술토론회를 가진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강북구가 공동주최하고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는 〈위기의 동아시아, 어제와 오늘〉 학술토론회는 청일·러일 두 제국주의 전쟁을 조선의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세기를 넘어 재현되고 있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격돌이라는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늠해 보는 의미 있는 논쟁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근대 동아시아 각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음은 물론, 국제 역학관계의 변화까지 가져온 세계사의 중대 사건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두 차례 전쟁의 결과, 조선은 식민지로 청국은 반식민지로 전락하는 단서가 열렸으며, 제정 러시아는 급격한 몰락의 길로 들어선 반면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오르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개된 양대 전쟁은 전장이 되었던 한반도에 막대한 물적·인적 손실을 끼쳤으며, 조선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청국, 러시아라는 대국과의 정면
[보도자료] 지도에 새긴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동학농민혁명
[보도자료] [다운로드] 지도에 새긴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동학농민혁명, 청일전쟁 130주년 특별전 근현대사기념관은 동학농민혁명, 청일전쟁 130주년을 맞아 오는 10월 16일부터 12월 31일까지 특별전시 ‘지도에 새긴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서울시 강북구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하고, 천도교중앙총부와 동농문화재단 강덕상자료센터의 후원으로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한다. 개막식은 16일 오후 2시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은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던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 순간이자,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를 뒤흔든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사건의 전개 과정을 대동여지도, 대한여지도, 일본 점령지 실측지도, 조선내란지도 등 19세기 후반 조선과 일본에서 제작된 다양한 지도를 통해 시각적으로 조명한다. 이와 함께 동학 경전인 『동경대전』의 최초 판본인 1880년 인제 경진판과 현존하는 『용담유사』 판본 중 가장 오래된 1893년 계사판, 그리고 동학농민혁명 당시 포고문, 임명장, 농민군 편지를 비롯해 2023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전시된다. 또한 청일전쟁 화보집, 사진, 일본 군인들이 사용하던 화투패와 같은 희귀 유물도 함께 소개된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국제 정세가 다시금 요동치는 상황에서, 1894년의 혁명과 전쟁이 남긴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사진 별도 첨부 포스터
[새책소개] 『식민지 비망록』 (전3권)
바로가기 >>>☞ [도서구매] 〈주요내용〉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식민지 비망록』 (전3권) 일제가 패망하여 이 땅에서 물러간 지 벌써 8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있다. 제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해방의 감격이 쉽게 잊힐 리야 없겠지만, 그만한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그 시절을 몸소 체험한 세대의 인구구성비율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바꿔 말하면 일제강점기의 일을 기억하는 방법이 그야말로 오롯이 간접체험이나 사료발굴에만 의존해야 하는 비율이 그만큼 더 높아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탓인지 일제강점기의 일이라고 하면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마치 남의 집 얘기인 듯 여기는 이들도 더러 있고, 일제침탈사와 관련한 잘못된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짚어 보지도 않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생기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그것이 일제잔재에 속하는 줄도 모르고 그러한 용어나 제도를 버젓이 사용하기도 하고, 설령 그것이 일제가 남겨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서둘러 이를 바로잡지 않는 상황이 무심코 이어지곤 하는 것이다. 이번에 『식민지 비망록』(전3권)이라는 이름으로 펴내는 이 책들은 부제(副題)에 밝혀놓았듯이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각권 24꼭지씩 도합 72꼭지(1,053쪽 분량)에 달하는 각각의 글은 컴컴한 망각의 문 안에 갇혀 있는 아스라한 기억 한 조각을 되살려 보려는 시도이다. 여기에는 참으로 고단했던 식민지의 일상, 혹독했던 전시체제기와 침략전쟁의 광풍, 그리고 이 땅에서 무수하게 벌어졌던 별스러운 일제침탈사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 실상을
[보도자료]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문제 많다 – “이런 교과서가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나?”
[보도자료] [다운로드] [사진 원본] [다운로드] “이런 교과서가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나?” 민족문제연구소, 학계·교육계 전문가들과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집중 분석 사실 오류 등 수백 건, 교과서로 사용 불가능할 정도로 수준 미달 Ⅰ. 검토 경위와 결론 1. 민족문제연구소는 학계 전문가와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현직 역사 교사 13명에게 의뢰해, 최근 친일·독재 미화와 일본군‘위안부’ 서술 축소 등 편향적 서술과 자격 요건 조작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 발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긴급 예비 검증을 실시했다. 문제가 된 이 교과서는 지난 8월 30일 교육부 검정을 최종 통과한 9종 가운데 하나로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을 반영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 검증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으니 교과서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 요건은 충족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3일간에 이루어진 긴급 검증만으로도 날림·불량 교과서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사태의 심각함을 강조했다. 3. 민족문제연구소가 전문가들의 1차 검증 의견을 취합한 결과, 우선 전반적인 시각에서도 문제가 많지만, 사실관계에서도 무려 300여 건이 넘는 오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얼핏 보면 집필 기준에 따른 무난한 서술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는지 의문이 들 만큼 수준 이하의 내용이라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었다. 드러난 실상은 참담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이다. 연도나 단체명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의 오류는 말할 것도 없고, 일관성 없는 용어 사용, 음력과 양력 표기 오류, 명백한 오타 등이
[보도자료] 경술국치 114년 기억 행사
[보도자료] [다운로드] [자료집] [다운로드] 경술국치 114년 기억 행사 1910년 8월 29일은 일제의 한국 병탄이 이루어진 경술국치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내는 물론 중국 연해주 미주 일본 등지의 해외동포 사회에서도 망국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해마다 국치일 추념식을 거행하였다. 국내에서는 곳곳에 ‘국치일을 잊지 말자’는 격문이 나붙었으며, 감옥의 독립투사들은 집단 단식으로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해외의 동포들은 대대적인 항일행사를 열고 이날 하루 단식으로 독립의 결의를 다졌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치일을 추념하는 국가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다만 달력에 ‘국치일’이 표시되는 정도였다. 부끄러운 역사인 ‘국치’를 기억하기보다 순국선열을 추도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일을 잊지 않아야 훗날의 가르침이 된다’(前事不忘 後事之師)는 의미에서 을사늑약 체결지인 중명전 복원 추진(2004년), 강제병합조약 체결지인 남산 옛 통감관저 터에 표석 건립(2010년), 국치일에 조기 게양 조례 제정 추진(2013년), 국치 관련 항일음악 발굴(2017년),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2018년) 등의 사업을 진행해 왔다. 경술국치 114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는 8월 29일(목) 오후 2시 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된 서울 중구 예장동 옛 통감관저 터에서 ‘경술국치 114년 기억 행사’를 개최한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시민 등 약 100여 명이 참여하는 이날 기억 행사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함세웅 이사장의 기념사에 이어 윤석열 정부의 ‘친일 7대 죄악’ 발표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각 정당 의원들이 국치일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 독립영웅 치우기 △ 친일·친독재 우상화 △ 강제동원 정부 해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