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보도자료] 3·1운동 김연방 선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보도자료] 3·1운동 김연방 선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민족문제연구소 발굴 사료로 공적 입증 3·1운동 96주년을 맞이하여 화성시 우정·장안지역 독립만세운동 과정에서 순절한 김연방(金然昉)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김연방 선생은 화성시에서 오백여년 간 세거해 온 무반(武班) 명가(名家) 해풍김씨 남양쌍부파의 종손으로, 당시 이 지역의 유지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일제의 우정·장안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탄압과정에서 배후자로 지목되어, 4월 13일 발안 거주 일본인 상인이자 제암리 학살사건에서 일본인 군대의 안내 역할을 했던 사사카(佐坂)에 의해 피살되고 종가 99칸이 전소되었다. 그동안 증언 외에 입증할 만한 자료가 없어 서훈을 받지 못하다가 2013년 6월 주일한국대사관 신축과정에서 발견된 3·1운동 피살자 명부에서 순절이 확인되었고, 화성시의 위탁을 받아 민족문제연구소가 수행한 ‘화성지역 독립운동 관련 역사콘텐츠 개발 사업’의 조사과정에서 1956년 우정면장(현 우정읍)이 선생의 항일투쟁 공적을 기리기 위해 수여한 감사장이 발굴되면서 서훈이 가능하게 되었다. 증손인 김주용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전공자이면서도 정작 선대의 독립운동 사실을 입증하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었는데 늦게나마 서훈이 되셔서 송구한 마음을 덜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화성은 3·1운동 당시 가장 치열하게 일제에 항거했던 지역으로 일본군에 의해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화성시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기념하기 위해 대대적인 독립운동 선양사업을 추진 중이다. ▲김연방 선생의 항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우정면장이 1956년 3?1절에 아들 김창규에게 수여한 감사장
[논평] 당 대표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이 고작 독재자 묘소 참배라니
[논평] 당 대표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이 고작 독재자 묘소 참배라니 지난 2월 8일 문재인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당선과 함께 야당 최고 책임자로서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 낸다면 저는 박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동지들과 함께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지켜낼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현충원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는 것으로 첫 공식일정을 시작하였다. 문 대표는 “두 전 대통령의 참배여부를 놓고 국민들이 갈등하고 그것으로 국론이 나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생각한다”며, 국민갈등 대신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기 위해 참배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표는 “진정한 국민통합은 역사의 가해자 측에서 지난 역사의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피해자들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진정으로 화해와 통합이 이루어진다”며, “박근혜 정부가 그런 진정한 화해와 통합의 길로 가기를 진심으로 촉구”했다. 그런데 문 대표는 박근혜 정권의 국민통합 역행으로 ‘극심한 인사 편중과 인사차별’ 즉 지역 차별철폐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을 시례로 적시했다. 이승만· 박정희 두 독재자가 남긴 부(負)의 유산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정권을 넘어서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후진성과 관련된 것임에도 문 대표는 독재자의 역사를 오로지 특정집단의 이해관계로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수호를 내세우면서 동시에 독재자를 참배하는 것이 어떻게 국론 분열의 갈등을 끝내는 것이겠는가?
[성명] 검찰은 극우세력의 해결사인가
[성명] 검찰은 극우세력의 해결사인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다큐 ‘백년전쟁’에 대한 검찰의 공안몰이가 한층 노골화하고 있다. 1월 29일자 국민일보 보도에 의하면 검찰이 ‘백년전쟁’ 제작 관계자들을 기소하기 위해 작정하고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고소인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하고 뉴라이트 계열 학회에 ‘백년전쟁’의 객관성 평가를 의뢰하는 등 상식 밖의 조치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알려졌듯이 이승만 측은 이인호(현 KBS 이사장) 씨의 “백년전쟁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유의하라”는 청와대 원로회동 발언에 힘입어 지난 2013년 5월 김지영 감독과 최진아 PD, 그리고 임헌영 연구소장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검찰은 이후 무려 21개월간에 걸쳐 피고소인과 참고인을 소환조사하면서 차일피일 결론을 미룬 채 어떻게든 혐의를 확정하기 위해 안간 힘을 써왔다. 기나긴 조사기간이 말해주듯 편파적인 검찰로서도 난감함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던 듯하다. 서울중앙지검이 조사 중인 명예훼손사건을 전례없이 형사부에서 공안부로 재배정한 것이나 이메일까지 압수수색을 강행한 것도 정치검찰의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유죄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강박증의 소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다시피 사자명예훼손은 친고죄로 개인의 사익을 위한 소송이다. 검찰은 ‘백년전쟁’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는지 그 내용이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는지를 가늠하여 기소여부를 결정하면 그만이다. 어느 일방의 해결사 노릇을 자임하며 사적 영역인 이메일까지 뒤지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이렇게 일탈을 감행하는 배경이 자못 궁금할 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검찰이 “역사학과 경제학, 행정학, 교육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로 구성된 국내의 한 역사학회에 ‘백년전쟁’의 객관성 평가를 최근 요청했으며,
[성명] 인권변호사에 대한 적반하장의 수사는 또 하나의 국가범죄이다
[성명] 인권변호사에 대한 적반하장의 수사는 또 하나의 국가범죄이다 검찰의 서슬이 시퍼렇다. 그 어떤 잘못도 용납할 수 없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호령한다. 법을 어겼으면 조목조목 따져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잘잘못을 가리기도 전에 수십억을 독식한 파렴치한으로 만들고 있다. 수사를 하기도 전에 여론재판부터 하는 이유는 이 변호사들이 우리 사회 인권의 보루였기 때문일 것이다. 70년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불의에 눈감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독재정권에 끌려가 모진 수사를 받고 재판정에 섰을 때,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외로울 때 곁을 지켜주고, 법적 지원을 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민변은 우리 사회 약자의 동반자였고, 독재정권과 그 하수인들에게는 가장 큰 저항세력이었다. 민변 소속 6인의 변호사에 대한 수사 명분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재직 당시 취급했던 사건과 관련된 민·형사 소송을 대리하고, 수임료를 받아 변호사법 위반을 했다는 혐의이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분노할 일이다. 먼저 이들 변호사들이 과거 관계한 사안이 무엇인지부터 되새겨보자. 두 위원회는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의문사위는 과거 정권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분명한 사건들을 조사하는 국가기구였다. 진화위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학살당한 민간인의 희생과 과거 정권에서의 의문사를 포함한 인권침해사건을 조사하였다. 여기서 인권침해사건은 조작 간첩사건, 납북어부 사건, 민주화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건 등 수많은
[보도자료] 일본 정부는 역사·영토문제 홍보예산 수천억원 증액, 한국 국회는 야스쿠니신사 반대운동 예산 3억원 전액 삭감
[보도자료] 일본 정부는 역사·영토문제 홍보예산 수천억원 증액 한국 국회는 야스쿠니신사 반대운동 예산 3억원 전액 삭감 일본 정부가 역사와 영토에 관한 자국의 주장을 국제사회에 전파하기 위해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대한민국 국회가 지난 연말 예산결산위원회에서 3억원(3년간 매년 1억원)에 불과한 야스쿠니신사 반대 홍보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한일양국의 외교 현안에 대한 상반된 대응이 비교가 되고 있다. 국내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2014년도(2014년 4월∼2015년 3월) 추경 예산안과 2015년도 예산안에서 ‘전략적 대외 발신’ 부문에 약 500억엔(약 4610억원)을 증액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전체 ‘전략적 대외 발신’ 예산의 일부로 영토나 역사에 관해 일본 정부가 생각하는 이른바 ‘올바른 모습’을 국제사회에 알리거나 일본의 매력을 홍보하고 외국에 친일·지일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사용된다. 일본 정부가 예산을 증액해가며 국제 홍보에 주력하는 것은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세계 여론의 비판과 남경대학살을 비롯한 일제만행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인 공세 등으로 일본이 역사문제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이 패전 70년을 맞아 과거사 반성에 진정성을 보이기는커녕 홍보·외교 예산을 확대하면서 국제방송 신설 추진 등 전면적인 여론전에 나섬에 따라 동북아의 갈등은 한층 고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근 일본 극우단체와 정부가 협력하여 미국 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 등 침략 관련 기술 내용을 조직적으로 왜곡하려 압력을 가하거나 로비에 착수하려는 움직임이 공개된 사실도 이 같은 전망에
[보도자료] ‘일베’ 회원, 박정희 혈서 조작설 유포 사과
‘일베’ 회원 박정희 혈서 조작설 유포 사과 일제강점기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혈서 지원을 미담으로 소개한 만주신문(1939. 3. 31) 기사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던 일간베스트(세칭 일베) 회원이 허위사실 유포를 인정하고 1월 2일 연구소로 사과문을 보내왔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박정희 혈서’가 민족문제연구소의 오랜 추적 끝에 사실로 확인되고 2009년 11월 발간된 『친일인명사전』 박정희 항목에 이 내용이 수록되자 박정희의 유족은 게시 및 배포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재판부가 “이유 없다”며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뒤에도 맹목적인 추종자들은 일본 국회도서관에 실재하고 있는 만주신문의 존재마저 외면하면서 지금까지도 무차별적으로 조작설을 전파하고 색깔론으로 연구소를 모욕하고 있다. 당초 연구소는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하고 이를 무시하였으나 종편과 인터넷 공간 등에서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아무런 근거 없이 연구소의 명예를 극단적으로 훼손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어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학술단체의 생명과 다를 바 없는 전문성과 객관성이 손상되어 신뢰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에 연구소는 2014년 8월 25일, 강용석 정미홍 등 악의적이고 반복적으로 허위사실을 퍼뜨린 11명에 대해 민형사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중 ‘포***’라는 닉네임으로 일베에서 활동하던 한 네티즌은 서울북부지검의 형사조정에 응해 자신의 주장이 허위임을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자필 사과문을 1월 2일 연구소로 보내왔다. 이 네티즌은 형사조정 과정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일베를 탈퇴하고 역사왜곡에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아무 생각
[논평] 장관이 나서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교육부를 규탄한다!
[논평] 장관이 나서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교육부를 규탄한다! 지난 8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한국방송기자 클럽이 주관한 토론회에서 얼마 전 수많은 오류와 역사왜곡으로 사회적 논란이 된 <국정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실험본>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엉뚱하게도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였다. 국정실험본 사회교과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사를 다루고 있으며, 이미 일선 학교 일부에서는 이 실험본으로 수업을 진행해 왔다. 이미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입맛에 맞춘 자격미달의 교학사판 고등학교 한국사검정교과서가 일선 학교에서 외면당하자,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바꾸어 교과서를 정치의 도구로 타락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제는 이것도 부족해 초등학교 5학년 사회과(한국사과정) 교과서마저 부실과 왜곡으로 가득찬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실상 유신독재 하의 국정교과서시대로의 회귀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국정실험본 사회교과서는 숱한 사실 오류와 황당한 역사 왜곡으로 가득 차 ‘초등학교판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라는 비난을 받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지난 달 23일에는 초등교사 1368명이 실명으로 교육부의 사과·문책을 요구하고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황 장관은 물의를 야기한데 대해 박근혜 정부의 첫 국정 사회 교과서 집필을 주관한 교육부 장관으로서, 잘못된 교과서로 수업한 16개 학교 5천명의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학교에 배포된 실험본은 전량 수거하여 폐기할 것이라고 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황 장관은 초등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횡설수설하면서 특유의 유체이탈화법으로 본질을
[보도자료]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 10개년 계획 확정
<보도자료>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 10개년 계획 확정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5주년인 11월 8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친일인명사전』 의 성과와 향후 과제를 점검하는 한편 해방 70주년인 내년부터 80주년인 2025년까지 10년간에 걸친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 2단계 계획을 확정했다. ▲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전체회의 (11월 8일 오후 2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 주간 연구소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 10개년 계획 착수 1차년도인 2015년 『조선총독부기구사전』과 『재일조선인단체사전』을 간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친일인명사전』 개정증보판을 내고 사업이 종료되는 2025년까지 각 분야별 주요 친일파를 집중 분석해 『열전 친일파』를 출판하는 것을 주요 사업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박수현 연구실장은 “『친일인명사전』 초판본 발간 당시에는 연구성과와 자료부족으로 인해 지역과 해외의 친일파 기술에 소루한 점이 적지 않았다”며 “그간 추가로 발굴된 사료들을 DB화하고 제보 등을 활용하여 경제 부문이나 지방과 해외 등 미흡했던 분야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와 보완작업에 착수하겠다”고 개정증보판 발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다큐멘터리 『열전 친일파』를 기획한 이준식 연구위원은 “『친일인명사전』이 문헌사료를 기초로 행적만을 기술하고 있어 친일파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친일문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비평적 측면을 담은 평전 형태의 대중서를 구상하게 됐다”라고 사업추진의 배경을 설명했다. 『열전 친일파』에는 조선귀족 관료 밀정 경찰 군 법조 경제 언론 교육·학술 문학 음악 미술 영화·연극 종교 등 부문별로
[성명] 친일화가가 그린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을 즉각 교체하라
<성명> 친일화가가 그린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을 즉각 교체하라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 ‘명량’의 누적관객 수가 1,800만명에 육박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의 신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연내 중국 전역 3,000여 개 극장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왜적의 침입에 맞서 국난을 극복한 이순신 장군과 당시 수군들의 활약상이 대국주의 의식이 강한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다고 하니 대단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이는 우리 국민들의 역사적 자긍심을 한층 드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국내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아산 현충사를 찾는 시민들이 부쩍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충사에서 모셔져 있는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을 볼 때마다 우리는 불편함을 참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영정의 작가가 다름 아닌 일제 시기 친일행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장우성(1912~2005)이기 때문이다. 장우성은 친일화가 김은호의 문하생으로, 조선총독부가 주최하는 조선미술전람회에 1941년부터 1944년까지 4회 연속으로 입선한 경력을 바탕으로 화단에 경력을 쌓아 나갔다. 특히 1943년 6월 15일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열린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 시상식에서는 조선인 수상자로는 최초로 답사를 하였는데 당시 시상식을 보도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43년 6월 16일자 기사는 장우성이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銃後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心魂을 경주하여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했다고 전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일제는 후방(총후)의 조선인들을 총동원하기 위해 문화예술인들의 선전·선동 역할을 특히 강조했는데 장우성은 바로 이러한 시책에 적극
[보도자료] ‘친일화가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을 즉각 교체하라’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지부장 이정학)와 천안아산지회(지회장 황운학)는 10월 26일(일) 오후 1시 아산 현충사 앞에서 ‘친일화가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을 즉각 교체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연다. 최근 영화 ‘명량’의 인기에 힘입어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현충사를 찾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현충사에서 봉안되어 있는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은 일제 시기 친일행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장우성(1912-2005)이 1953년에 제작한 것을 1973년 당시 문화공보부 산하 선현영정심의위원회가 표준 영정으로 지정한 것이다. 표준 영정이란 위인들의 초상이 작가마다 각양각색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국가가 직접 나서서 특정 영정을 표준으로 정한 것이다. 표준 영정이 정해지면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동상, 지폐, 우표 등도 제작해야 하며 교과서에도 사용된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93점의 표준 영정 중 약 15%인 14점이 장우성을 비롯한 김은호, 김기창 등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화가가 그린 것이다. (아래 표 참조) 민족문제연구소는 광복 60주년인 지난 2005년 처음으로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고 그 결과 2007년 장우성이 그린 유관순 열사의 표준 영정이 교체되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진주지역 시민단체들이 김은호가 그린 논개 영정을 교체해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도록 한 바 있다. 2012년에는 충남 예산의 매헌윤봉길월진회(회장 이우재)와 일부 종친들도 장우성이 그린 윤봉길 의사의 표준 영정 교체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조정식 의원(시흥을)이 친일화가들이 그린 표준영정에 대한 지정철회를 요구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작가의 친일 논란은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규정에서 규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