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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과거에 대한 성찰, 미래를 위한 역사쓰기; 친일인명사전의 성과와 과제”

2011년 11월 29일 1430

※자료집 내려받기 [보도자료] “과거에 대한 성찰, 미래를 위한 역사쓰기; 친일인명사전의 성과와 과제” – 친일인명사전 발간 2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열려- 11월 25일(금)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2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된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2009년 11월에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의 의미와 성과,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 보기 위해 마련한 학술행사다. 친일인명사전은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와 성원 그리고 연구자들의 오랜 기간에 걸친 노력이 결합하여 탄생했고, 그 지난한 편찬과정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파장 또한 컸다. ‘과거에 대한 성찰, 미래를 위한 역사쓰기’라는 주제가 말해주듯 편찬사업을 주도한 이들은 친일인명사전이 단순히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식의 폭로성 작업이 아니라고 본 듯하다. 즉 특정인들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민족 내부의 자성이며, 건강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가치관의 정립과정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번 토론의 자리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지니는 역사성을 처음으로 조명하는 학술대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최근 역사교과서 개악을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와 보수 학자들의 친일·독재 미화를 중심으로 한 과거 회기적 역사인식과 극명한 대척점을 이루는 대표적 상징이 친일인명사전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역사적 의의”라는 기조강연에서 해방 이후 친일청산과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배경과 당위성을 주장하고, 친일인명사전이 우리 사회에 미친 파급 효과가 의외로 컸음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지적한다. 또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계기로 “친일의 과오에 대해 이제 사회

[보도자료] ‘이주호 교과부 장관 사퇴 촉구’ 기자회견 및 일인시위

2011년 11월 23일 1294

–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영방송과 수구언론들의 노골적인 친일·독재 찬양, 친일·독재부역세력들의 이승만·박정희·백승엽 동상건립, 민주적 절차와 상식을 무시한 교과서 개악 등 수구세력의 역사파괴에 맞서기 위해 425개 단체가 참여해 지난 11월 14일 발족했습니다.   – 최근 대한민국 역사를 날조하는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이 발표 돼 학계는 물론 국민들의 강한 저항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학계의 일치된 연구결과나 정해진 절차마저 유린하며 현 정권 임기 내에 역사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꾸려는 데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 이 장관은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이배용 위원장을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장에 앉혀 집필기준 연구위원 임명권을 주고, 집필기준을 검열하게 하는 월권을 행사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교육과정 연구위원회와 심의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결정한 내용을 제멋대로 바꿔버렸습니다. 특히 공청회나 추진위에서도 논의된 적이 없는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오로지 뉴라이트 계열 친정부 학자들의 요구에 따라 고시 단계에서 일방적으로 바꿔버려 학계의 절대다수 의견을 짓밟았습니다. 교과서 개악 이후 학계의 항의를 모두 외면하거나 묵살했음은 물론입니다.   –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우리나라 미래 세대의 역사관 확립에 가장 중요한 역사교과서를 대한민국 헌법정신, 학문적 성과, 교육적 양심이 아니라, 정치적, 이념적으로 만든 이주호 장관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이에 오는 24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일인시위와 서명운동을 통해 이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여나갈 예정입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 사퇴 촉구’ 기자회견 및 일인시위“역사왜곡·교과서 개악 주범 이주호 교과부

[보도자료]‘한일회담’ 무엇이 문제였나

2011년 11월 2일 1668

<보도자료> ‘한일회담’ 무엇이 문제였나 『한일회담 공개문서와 식민주의 청산문제』국제학술회의 열려   ‘일본군위안부’와 원폭피해자 관련 헌법소원에 대해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한일회담을 재조명하는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된다. 11월 4일 오후 1시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한일회담 공개문서와 식민주의 청산 문제』학술회의는 그간 한일 양국에서 공개된 한일회담 외교문서를 비교 분석하고 ‘일본군위안부’와 원폭피해자 문제를 일본정부에 적극 제기하지 않은 ‘정부의 행정부작위가 위헌’이라는 헌재 판결 등 여러 현안을 점검하는 자리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고 동북아역사재단이 후원한다.지난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일회담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술회의의 발표자들은 사전에 배포된 발제문에서 한 목소리로 한일회담이 남긴 미해결 과제에 대한 한국과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고 있다.일본과 강제동원피해자들 간의 분쟁 해결을 촉구하는 헌법소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장완익 변호사는 발표문에서 지난 1998년 재일한인 군속 부상자들이 같은 취지로 제기했던 헌법소원이 2000년에는 기각되었지만 11년이 지난 지금 ‘위헌’ 판결이 내려진 배경에 주목했다. 2005년 8월 26일 한일회담 문서 공개 후 한국정부는 종래 입장을 바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책임을 인정했고,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외교협의를 통해 피해자 지원조치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피해자 구제 조치는 미흡하게나마 이행하면서도 일본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오늘의 결과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헌재 판결 이후 정부가 방침을 바꿔 적극적인 외교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보도자료]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

2011년 8월 8일 1114

[보도자료]  일제강점기 최대 독립전쟁 기지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 열려 항일무장투쟁의 금자탑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시회가 8월 9일부터 10월 9일까지 두 달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옥사에서 개최된다.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고 숨져간 역사의 현장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신흥무관학교의 설립 정신과 독립운동사에 끼친 영향을, 일기,훈련교본,군자금영수증 등 당시의 자료와 유물을 통해 생생하게 재조명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신흥무관학교는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 다음 해인 1911년, 이회영 이동녕 이상룡 등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에 맞서 항일무장투쟁 전사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한 최초의 독립군 간부 양성기관이다. 신흥무관학교는 처음 만주 지린성 추가가 삼원포에서 신흥강습소란 이름으로 개교한 뒤 거듭 교세를 확장하여 1920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할 때까지, 무려 3,500여명에 이르는 독 립투사를 배출한 일제강점기 최대의 항일무장투쟁 기지로 평가받고 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1920년 발족한 통합 군사조직인 서로군정서의 주축이 되었으며, 이들은 청산리 대첩의 주역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후에도 신흥 출신 독립운동세력은 의열단, 광복군 등 항일무장투쟁은 물론 여러 독립운동단체와 교육 사회 등 각 부문에서 민족운동을 선도하는 활약상을 보여 주었다. 이번 전시는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등 관련단체가 공동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며, 개막식은 8월 9일 오후 4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다. 개막식에는 신흥무관학교 관련 애국지사들의 후손과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을 비롯하여 다수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8월 9일, 14일, 15일, 21일에는 전국시사만화작가협회(회장 최민) 소속 만화가들이 전시회 부대행사로 관람객들을 위한 무료

[보도자료] 이해승의 수작행위에 대한 역사학계의 의견

2011년 6월 20일 1705

친일파 이해승 후손을 상대로 한 부당이득금반환 청구소송에 민족문제연구소 등 역사학계 14개 단체 공동 의견서 법정 제출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이해승의 후손을 상대로 국가(원고 법무부장관)가 친일 대가로 획득한 재산을 매각한 것을 다시 반환하라는 부당이득금반환소송에 역사학계가 공동으로 의견서를 6월 21일 제출할 예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해 한국역사연구회 등 한국사는 물론 동서양사 학회를 포함한 14개 학회·연구소는 공동의견서를 통해 “입법의 취지와 역사학계의 일반적 견해 그리고 무엇보다 당대의 통념상 수작자와 습작자는 가장 심각한 당연범적 반민족행위자로 간주”하고 있다고 의견을 피력하고,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입법의 본지를 떠난 자구해석으로 인해 무산되지 않도록, 역사정의에 부합하는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결이 내려지기를” 강력히 요청했다.  이미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각각 2010년 5월과 10월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7호에 적시된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라는 조문을, 작위를 받았더라도 그 이전에 ‘한일합병의 공’이 있음을 입증해야 친일반민족행위로 인정한다고 해석해, 이해승의 수작행위를 ‘종친의 자격’으로만 작위를 받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국가가 환수한 이해승의 재산을 다시 후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판결에 대해 역사학계는 수작행위 자체가 식민지 지배를 용인하는 심대한 반민족행위이며, 해방 후 각종 친일파 처리규정도 이러한 취지에서 수작자를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음을 지적하면서 이번 이해승 후손을 상대로 한 부당이득금반환소송에 공동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다. 한편 국회는 관련 법조문 가운데

[보도자료]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2011년 5월 12일 1639

  잊혀진 독립전쟁기지 – 신흥무관학교 재조명 설립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항일무장독립운동’ 오는 6월 10일은 항일무장투쟁의 금자탑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돌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5월 13일 오후 2시 국회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신흥무관학교가 독립운동사에 차지하는 위상을 재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주최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열린다. 신흥무관학교는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 다음 해인 1911년 만주 길림성 추가가 삼원포에서 신흥강습소란 이름으로 개교한 뒤, 교세 확장을 거듭하여 1920년까지 3천 5백 여 명에 이르는 독립군 간부를 배출한 일제강점기 최대의 항일무장투쟁 기지이다. 이번 학술회의에는 독립운동사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해,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신흥무관학교의 활동상을 조명하고 역사적 의미를 재해석한다.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의 저자로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 교수는 학술회의에 앞서 배포한 기조강연문을 통해 신흥무관학교는 “대한제국 무관학교와 의병의 맥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도 민족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하면서, 전세계 독립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전쟁인 청산리대첩도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주도하였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 군은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문제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사관학교의 경우 대한제국무관학교, 신흥무관학교의 맥을 이어받고 독립운동사, 독립군사를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군의 역사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와 신흥무관학교’를 주제로 다룬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양자의 연관성을 교육과정과 군사간부 양성을 중심으로 살폈다. 즉,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국권 상실 후 곧바로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독립군

[보도자료] 한일과거사 시민단체, 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공동모금 전개

2011년 3월 21일 1918

<보도자료> –한일과거사관련 시민단체들, 일본대지진 피해 복구를 지원하기 위한 공동모금 전개- 한일과거사 청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일본의 재해 극복을 돕기 위해 공동 모금을 전개한다. 3월 15일 재해를 입은 일본사회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공동모금에 착수한 것이다. 한일과거사 관련 단체들이 공동모금에 나선 것에 대해 모금 관계자들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일 과거사는 잊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그 길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한일 우호의 출발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입어 고통을 겪었기에 이번 일본의 피해에 대해 누구보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일과거사 청산이 인간의 생명과 인권의 존엄성에 기초했기에, 이제 일본 시민들과 재일동포를 비롯한 재일외국인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적극 돕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직접적인 도움의 손을 우리가 내밀 차례입니다.” 모금에 참가한 단체들은 열흘에서 보름 정도 모금운동을 전개해 일본에서 한일과거사 청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시민단체를 통해 이재민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1923년 일본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강제동원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문제, 독도문제, 일본교과서문제, 재일동포와 사할린동포문제, 친일파문제 등의 분야에서 한일과거사 청산운동의 최전선에 서있는 시민단체들이 일본의 피해 복구와 구호를 위해 공동모금을 전개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이번 공동모금은 작년 1월에 50여 개의 일본 시민단체들이 참가해 조직한 강제병합100년 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와 연계해 한일시민의 모범적 연대로 전개하는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한편 일본실행위원회의 야노 사무국장은 “과거

[보도자료] 인권평화운동가 서승 교수 출판기념회 및 퇴임식 안내

2011년 3월 18일 2171

[보도자료] 인권평화운동가 서승 교수 정년퇴임식 겸 『서승과 함께 하는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출판기념회 – 2011년 3월 26일(토) 오후 4시, 남산 서울유스호스텔 강당 –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인권, 평화운동가의 한 사람인 재일동포 서승 리츠메이칸대(일본 교토) 교수가 정년을 맞아 오는 3월 26일 고국에서 퇴임식 겸 출판기념회를 가진다. 주최측은 군사독재정권 시기의 암울했던 지난날을 되새겨본다는 의미에서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살인적 고문을 당한 현장인 남산 옛 안기부 청사(현 서울유스호스텔 대강당)를 행사장으로 정했다.     ▶ 서승 리츠메이칸대 교수 (출처- 한겨레) 1945년 4월 교토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난 서승 교수는 1968년 일본 도쿄교육대학을 졸업한 뒤 모국의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로 유학했다. 그러나 1971년 박정희 정권의 보안사령부에 연행되어 형언하기 힘든 반인륜적 고문 속에 용공조작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듬해 이른바 ‘재일교포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같은 해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수감 중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에 의해 ‘1974년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은 그였지만, 특별사면으로 석방되는 1990년 2월까지 무려 ‘19년의 청춘’을 차가운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는 1994년(한국어판 1999년) 지울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오랜 인고의 세월을 담아『옥중 19년』이란 회고담을 펴냈다. 석방 이듬해인 1991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University of California-Berkeley 사회학과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STIK(Stop Torture In Korea)라는 인권운동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등 한국사회의 참담한 인권 현실을 국내외에 고발하고 시정을

[성명서]일본 대지진 재난에 대한 한국 시민단체의 성명

2011년 3월 16일 1562

일본 대지진과 관련하여 민족문제연구소를 포함한 국내의 과거사 단체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충격적인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일본 사회에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아래는 성명서의 전문>